듀란트가 OKC에서 이룬 업적이 폄하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90년대부터 농구를 봐오신 분들께는 비교가 되지 않겠지만, 나름 오랬동안 NBA 팬질을 해왔습니다.
2000년대 초반, 캐나다 밴쿠버에서 스티브 내쉬 배스킷볼 리그에서 농구를 배우며 처음으로 NBA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게 벌써 15년 전이네요. 처음에는 당연히 피닉스 선즈와 스티브 내쉬의 팬이었습니다. 주변 친구들이 모두 내쉬의 팬이었으니까요. 당시 어린 마음에 피닉스를 응원하면서 패배의 슬픔이란 뭔지도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2007년 샌안토니오 시리즈의 기억은 아직도 마음한켠 희미한 고통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벤치에서 일어났다는 점 하나로 스타더마이어 그리고 보리스 디아우가 출장정지를 받았었고, 당시 저는 뭐가 그렇게 억울하고 분했는지 집에서 방방 뛰면서 울분을 토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에는 팀 던컨과 포포비치가 그렇게 싫었을 수가 없었습니다 (10년이 넘게 지난 현재, 던컨도 폽감독도 너무 좋아하게 된건 비밀입니다). 이후 선즈는 샼도 영입해보고, 여러 트레이드를 통해 이것저것 시도를 해봤지만 결국 그들은 챔피언십에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2007년 샌안토니오 시리즈는 SSOL (Seven Seconds or Less) 선즈의 운명을 결정지은 시리즈였던것 같습니다. 그 당시 선즈는 챔피언십을 얻을 자격이 있었던 팀이고, 스퍼스만 극복했다면 - 그 아쉬운 출장정지만 없었더라면 - 역사에 남을 팀이 되었을 것이라고 아직도 생각합니다. 결국은 무언가 이루지 못하고 끝났지만요.
여러분들은 2000년대 중반 선즈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가요? 그 당시 농구도, NBA도 초보였던 저에게 혁명은 꽤나 멀게 느껴지는 단어였습니다. 공격의 혁신이고, NBA 오펜스의 새로운 지평선이고 큰 의미가 없는 말들이었죠. 단지 너무 재밌었고, 응원할 맛이 나던 팀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2019년에 비해 현저히 느렸던 당시의 페이스를 비웃는듯 그들은 끊임없이 달렸고, 내쉬의 동네한바퀴에 이은 완벽한 패스, 라자벨의 허슬과 수비, 숀 매리온의 기막힌 슛폼, 던컨을 상대로 40점씩 폭격하던 스타더마이어의 플레이 모든게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물론 역사는 그들을 다르게 기억합니다. 많은 NBA 감독, GM, 기자들은 SSOL 선즈가 현대 농구의 시초라고 얘기합니다. 더욱 빠르게 페이스를 푸쉬하고, 특출난 볼핸들러의 주변을 3점이 가능한 선수들로 메꾸며, 포지션 파괴자인 보리스 디아우를 통해 시대를 앞선 다양한 라인업을 보여줬습니다. 두 천재 댄토니와 내쉬의 합작품인 이 오펜스는 이후 2010년대 초반 스퍼스의 아름다운 패싱 게임, 그리고 현재 골든스테이트와 휴스턴이 대표하는 가드 지배적, 3점 위주의 스몰볼 농구로 이어지게 됩니다. 반면 누군가는 2000년대 선즈를 조금더 단순하게 정의하기도 하겠죠. "공격은 잘했고 재미는 있었지만, 수비를 못했다. 그래서 우승은 못했다."
이야기가 많이 샜지만 결국 피닉스는 우승에 실패했고, 이후 저 역시 캐나다를 떠나 미국으로 가게 됐습니다. 그리고 피닉스가 아닌 새롭게 응원할 팀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피닉스가 연고지(?) 를 통해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되었던 팀이라면 이번엔 지역과 관계없이 정말로 내가 스스로 정해서 빠져들수 있는 팀을 원했습니다. 그리고 마침 이 시기에 젊은 선수들 몇명을 데리고 완전히 새로운 출발은 기획하는 팀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오클라호마 씨티 썬더죠.
솔직히 말해서 이적한 첫 해부터 썬더를 응원하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엔 듀란트보다 오든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았을 정도였으니까요. 약 2년뒤 2011년쯤 부터 응원을 시작한것 같네요. 물론 그때도 OKC는 아직 젊고 새로운 팀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그들이 그렇게 빨리, 그렇게 강한 팀이 될줄은 몰랐을 겁니다. 하지만 듀란트/웨스트브룩/이바카/하든의 20대 초반의 선수들로망 구성된 코어는 리그에 돌풍같이 불어닥쳤고, 플레이오프에서 여러 강팀들을 떨어트리며 이후 우승할 댈러스에게 아쉬운 패배를 당한 OKC 팀을 저는 응원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끔씩 이런 생각 드시지 않나요? 시애틀이 팀을 잃고 OKC로 팀이 이적한 일은 미국 전역에서 욕을 바가지로 먹은 사건입니다. 아직도 현지에선 많은 사람들이 소닉스의 이적은 '날강도짓'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OKC 썬더는 이렇게도 순조롭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NBA의 강팀으로 안착할수 있었을까요? 뿐만 아니라, 오클라호마는 미국에서 가장 미식축구를 좋아하는 지역중 하나로 꼽힙니다. 썬더는 프로팀이긴 하나, 아직도 오클라호마 지역 최고의 인기를 가지고 있는 스포츠 팀은 OU Sooners 일 것입니다. 그 뒤가 OSU, 그 다음 정도가 Thunder 정도가 되겠죠. 특히 OU 경기는 10만명에 가까운 인원이 들어가는 스타디움이 매번 매진될 정도니까요. 이런 전통적인 미식축구, 대학 스포츠 열기에도 불구하고 OKC는 리그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충성심이 깊은 팬들이 많은 팀중 하나로 꼽힙니다. 팀이 어웨이 경기를 다녀온 후 돌아오면 많은 팬들이 공항에서 반겨주는 일은 유명하죠.
굳이 사족을 달 필요가 있을까요. OKC Thunder 라는 신생아 스포츠 팀이 오클라호마 지역, 나아가 전 세계에 수많은 팬들을 만들어내며 순식간에 전국구 팀이 될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명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케빈 듀란트 입니다. 제가 듀란트 팬이라서 오바를 한다고 생각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당시에도 저는 듀란트보다 웨스트브룩을 더 좋아했고, 로즈가 건강했을 때도 웨스트브룩이 로즈 못지않게 잘한다고 말하고 다녔던 몇 안되는 사람중 한명이었습니다. 아직도 제일 좋아하는 선수가 웨스트브룩인건 변함이 없고, 이적후 듀란트를 많이 욕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구단의 역사 첫 10년 가량 팀을 이끌고, 주춧돌이 되어줬던 선수가 듀란트라는 것은 부인할수 없습니다. 이제는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선수가 되어버렸고, 커리와 함께 뛰면서 서로 조명을 나눠 가지기도 하지만, 당시 듀란트는 농구 팬들이 쉽게 받아들일수 없는 충격에 가까웠습니다. 지금도 믿겨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7푸터가 듀란트처럼 드리블을 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며, 부드럽게 슛을 쏠 수 있는지 티비를 보면서도 눈이 거짓말을 하는지 의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듀란트의 능력은 팀의 성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것도 아주 뛰어난 성적 말이죠.
2012년과 2013년, 역대 최고의 선수중 한명인 르브론은 드디어 자신의 최전성기에 도달합니다. 재앙과도 같은 퍼리미터 수비는 물론, 일상적으로 60% 필드골로 30득점을 때려박습니다. 그리고 리그의 위계질서 바로 다음 층을 케빈 듀란트가 홀로 당당히 차지합니다. 매시즌 MVP 2위를 하면서 듀란트는 르브론 뒤꽁지에 바싹 붙어서 쫓아가며, 언제든지 추월을 할수 있을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하든 트레이드, 그리고 2013시즌 웨스트브룩의 부상등 악재가 겹치며 팀은 고전하지만, 케빈 듀란트는 점점 확고히 자신의 입지를 다져 나갑니다. (참고로, 2013시즌 썬더를 기억 못하는 분들이 많아서 종종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듀란트-웨스트브룩 시대가 열매를 맺지 못한 이유는 크게 세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하든 트레이드. 둘째는 2016 워리어스 시리즈 역전패. 그리고 셋째가 2013시즌 휴스턴 시리즈에서 베벌리에게 입은 웨스트부룩의 부상입니다. 당시 썬더는 히트와 더불어 리그 최고의 팀이었습니다. 붙어봤어야 결과를 알겠지만 챔피언십을 따낼수 있었던 기량의 팀이었음은 부정의 여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2014년, 시즌 대다수를 웨스트브룩 없이 치르며 듀란트는 평균 32 득점, 7.4 리바운드, 5.5 어시스트, .503/.391/.873 슈팅을 기록하며 압도적으로 MVP를 따내게 됩니다. 얼마 안있어서 발에 부상을 입을 때까지, 오래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듀란트가 잠시나마 르브론을 추월해 리그 최고의 선수로 자리를 잡는 순간입니다. 이후 웨스트브룩과 듀란트 번갈아 부상을 당하며 짧은 암흑기가 오고, 2016년 67승 샌안토니오를 상대로 승리, 그리고 73승 골스를 상대로 아쉬운 역전패를 당하며 듀란트 시대는 막을 내립니다. 여기까지가 OKC 썬더의 초기 역사의 끝이며 많은 OKC 팬이자 듀란트 팬이었던 분들의 가슴에 남아있을 추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모든게 끝이었다면, 제가 이렇게 듀란트 영구결번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듀란트가 OKC에 남긴 모든 발자취가 코트 위에서 끝났다면 결국 듀란트는 농구는 잘했지만 팀을 배신한 선수로 기억되었겠죠. 하지만 듀란트는 10년 남짓한 기간동안 오클라호마에 농구를 뛰어넘는 족적을 남기고 갔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슈퍼스타로 일약 떠오름에도 불구하고 늘 주변에 자신을 맞추려고 노력했습니다. 리그에서 가장 활발하게 사회 봉사활동을 하는 선수중 한명으로 유명했고, 큰 지역 이벤트가 있으면 언제나 참여할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2010년대 초중반 오클라호마는 심각한 태풍 피해를 몇번 입었고, 그때마다 듀란트는 직접 봉사에 참여함과 더불어 매번 거액의 금액을 피해 가정 지원 및 피해 복구를 위해 기부했습니다. 아직도 듀란트가 허리케인 피해 복구를 위해 백만 달러를 기부했다는 뉴스를 읽고 입이 벌어진 기억이 납니다. NBA스타에게 백만 달러가 무슨 큰 금액이냐 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정도 금액은 아마 르브론급 스타에게도 적지 않은 금액일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듀란트는 아직 25세 쯤의 한참 어린 선수일 뿐이었죠.
듀란트 이적후 때론 슬프기도, 때론 화나기도 했지만 저는 이제 마음속에서 듀란트와 화해를 맺을 수 있을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듀란트를 나쁘게 보지 못하겠거든요. 저는 지금 완성된 썬더 팀을 굉장히 좋아하고, 폴조지는 듀란트 못지않은 플레이를 해주고 있으며, 아담스가 이만큼 성장해준 것에 너무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듀란트가 OKC에 남긴 자취를 조금더 맑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것 같습니다. 듀란트가 최후엔 자신을 꺽은 팀으로 이적해 가버리고, 이후 트위터 사건 등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적으로 인해 듀란트가 OKC를 위해 이룬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그는 OKC의 첫 MVP였고, 구단의 불미스러운 이적에도 불구하고 모든 논란을 덮어버릴 실력을 가지고 수많은 팬들을 매료시킨 슈퍼스타였으며, 전통적 미식축구 동네에 최초로 메이저 프로팀을 정착시킨 최대 공헌자입니다. 그리고 이적 후에도 OKC 지역에서 캠프를 후원하고 학생들의 교육을 지원하는 등 계속해서 사회에 공헌을 하고 있다는 점, 그가 선수로 있던 동안 팬들의 뜨거운 사랑에 못지않게 열심히 보답하고 필요로하는 주민들에게 기부를 통해 보답해온 선수라는 점 모두 이적 하나로 인해 백지가 되지 말아야 할 것들입니다. 현재 OKC는 리그에서 가장 안정적인 팬베이스를 가진 구단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작디 작은 스몰 마켓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체사피크 아레나는 매경기 매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른 수많은 스몰 마켓 구단들은팬들이 경기를 보러 오지 않아 경영난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OKC는 고공 행진을 이어갑니다. 팀은 강하며, 매력적인 스타들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좀더 쉽게 말한다면 '잘나가는 팀' 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2014년, 듀란트는 MVP를 수상하면서 수많은 청자들을 울린 연설을 합니다. 그리고 그 연설의 마지막에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당신들은 행복할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행복할 때 내가 이 자리에 서있을수 있도록 도와줬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고마운 마음을 가져." 그리고 그는 MVP의 모든 영광을 그의 형제들과 미혼모로서 그를 길러준 어머님께 바칩니다.
OKC는 이제 잘나가는 구단이 된 것도 맞고, 이후 OKC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는 웨스트브룩으로 기억될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신생아 구단이 이렇게 많은 팬들을 얻고, 매년 크리스마스 경기가 잡히는 팀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절대 공짜로 생긴 것은 아닙니다. 케빈 듀란트라는 2010년대를 대표하는 선수가 없었다면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결국 안좋게 이적함에 있어 아쉬움이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추억과 고마움이 남아있습니다. 케빈 듀란트는 OKC 썬더의 슈퍼스타였습니다. 내쉬의 지휘아래 달려나가던 선즈가 잊혀지지 않길 바라듯이, 듀란트의 썬더 시절이 잊혀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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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는 않겠죠 다만 OKC 팬들은 잊고 싶어할 겁니다. 그렇게 팀에 충성심을 여러차례 어필했던 선수가 통수를 치고 이적한 것 자체를 지우고 싶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