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에서 수비DEFENSE라는 개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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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5-05-07 17:20:03
이런. 글자수 압박 때문에...-_- 일단은 매니아진에 올려봅니다. 결국은 핵어작전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글이니... 운영진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사족 하나를 덧붙이게 되어 죄송스럽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한창 플옵 1ROUND에서 핵어XX로 게시판이 파이어되고 그럴 때는 글을 쓰거나 코멘트를 쓰진 않았는데, 물론 제가 농구 지식이 한참 부족하고 그런 이유가 가장 컸고요.
그런데 그때부터 제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주제가 있었는데요. 그것은 라는 개념, 거창하게 말한다면 이랄까, 뭐 그런 것이었습니다.
농구(또는 스포츠)에서 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
이 부분이었는데요. 여기에 관해서 짧게 써보겠습니다.
수비를 네이버 국어사전에서는 이렇게 정의하네요.
"외부의 침략이나 공격을 막아 지킴."
지킬 守에 갖추고 채운다는 備를 쓰고 있으니, 거칠게 말하자면 농구에선 상대의 5명 공격수에 대항하여 자신의 골대를 사수한다는 개념이 되겠습니다.
옥스포드 영영사전에선 수비하다(DEFEND)는 단어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Resist an attack made on (someone or something); protect from harm or danger:
상대의 공격, 위협 등에 대항한다는 의미네요.
굳이 사전을 끌어들인 이유는, 수비라는 개념이 결국 상대의 과 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부분을 지적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농구에선 그것이 3점슛이든, 드라이브인이든, 픽앤롤이든, 점프슛이든, 포스트게임이든 뭐 그런 다양한 전략이 되겠죠.
그런데 핵어작전이 펼쳐지는 수비철학적 바탕에는, 그 공격과 위협을 하는 시각이 자리잡고 있는 듯합니다. 예컨대, 샼이 비로소 공을 잡기도 전에 그가 코트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상대편에게는 이라는. (그래서 그의 약점을 정당하게 공략한다는.)
당연히 틀린 시각은 아닐 텐데요. 틀렸다고 단칼에 정의내릴 수 있다면 세계 최고 리그의 총재와 리빙 레전드들을 비롯한 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머릴 싸매고 있을까요? 하하...
어쨌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습니다. 핵어작전을 옹호하는 모든 시각은, 농구코트 위에 서 있으며 아직 선수 한 명을 그 자체로 이자 이라고 판단하는 게 정당하다는 시각이라는 거죠. 이게 정당하다면, 당연히 그 공격수의 약점을 공략하는 게 맞는 것이고, 결국 핵어작전은 자유투를 못넣는 선수의 탓이라는 논리도 자연스럽습니다. ("연습해!!!!!!!!!!!!!!!!!!!!!")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 아직은 멀뚱하게 서 있는 선수의 존재 자체만을 으로 바라보기는 무리라는 시각도 당연히 존재할 수 있습니다.
제아무리 위력적인 선수더라도(거기에 자유투가 설령 0%에 가깝더라도), 그가 공도 잡지 않았고, 구체적으로 골대를 향한 공략을 개시하기도 전인데, 다시 말해서 을 펼치기도 전인데 그를 한다? 공격 없는 수비라? 이것은 상대의 직접적인 공격과 위협을 단단하고 민첩하게 걸어잠금으로써 팬들에게 공격과는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의 본질과는 멀리 있지 않을까요?
아니, 사실 수비의 이라는 게 어디 있을까요. 다 판단하기 나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는 (굳이 이렇게 말해야 한다면) 스포츠의 이고 인 부분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근본적으로 핵어작전은 농구를 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확률게임은 영 농구의 미학, 농구의 매력과는 거리가 먼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가끔 핵어작전조차 재밌는 스릴 있는 게임이 있었다 하더라도(SAS-LAC 6차전처럼), 대개는 무의식적으로도 무언가 찝찝한 느낌을 받는 측면이 훨씬 크다는 거지요.
설령 핵어작전이 자유투에 취약한 선수 책임이라는 것이 맞고, 그것이 다른 여느 작전들처럼 정당한 꼼수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이유를 떠나서요.
비유컨대, 능남과 산왕 선수들이 강백호에게 주구장창 핵을 썼다고 생각해보세요. 희대의 명작 슬램덩크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요... (...)
확률 낮은 자유투를 준 후 상대의 공격권을 빼앗아오려고 오프볼플레이어를 껴안을 때, 그 작전은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을 막는다는 이 아닙니다. 핵어게임은 수비작전이 아니라, 확률작전입니다. 라는 전통적 개념 자체를 바꾸어버린다는 거지요.
(물론, 그 개념은 농구 패러다임을 이끌어나가는 인물들과 팬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시시각각 바뀌어나가는 것일 테고요...)
이탈리아의 석학이자 제 닉네임인 이란 소설을 쓴 움베르토 에코라는 학자가 있는데요. 이 사람이 대중문화에 대해서 관심도 많고 해서, 여러 스포츠 종목에 대하여 촌평을 했던 글이 있어요. 거기서 농구에 대해서 이렇게 평해, 기분이 상했던 적이 있습니다. "농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그 지루한 기다림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책이 없어서 아주 정확한 인용은 아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핵어작전에 반대하는데요. 설령 그게 자유투 연습을 하지 않은, 프로답지 못한 프로선수의 책임과 탓이라고 하더라도, 그 작전은 농구에서 의 개념을 뒤바꾸고 농구를 확률게임적인 스포츠로 만들어 버리며, 이는 농구의 자연스러운 즐거움과 미학에 너무도 역행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농구라는 스포츠에 기대하는 , 또는 . NBA 사무국도 이런 측면에서 핵어작전에 대해서 잘 대처해주리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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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아마농구대회나 대학아마농구대회에서는 '핵어'작전의 효과가 상당할거라 생각한 적이 전에 있었는데, 쓰는 팀들은 한번도 못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