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드래프트 관련 번역 Vol. 7 - 삶이라는 롤러코스터, 크리스던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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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8 14:34:05
드래프트 관련 번역
이번 글은 이번 드래프트의 탑클래스 포인트가드 크리스 던에 대한 글입니다. 던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선수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만큼 아픔을 극복해낸 성숙한 선수라는 느낌도 듭니다. 이번 번역은 총 3개의 게시글로 나눠서 올라갈 것 같구요. 고친다고는 했는데.. 아마 의역과 오역이 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점 감안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평어체도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 참고로 이 글은 지난 2월에 올라온 기사로 토너먼트 이전에 쓰여진 글입니다.
Kris Dunn's entire life has been one big roller coaster ride
By Reid Forgrave in Foxsports, Feb 29, 2016 at 8:54p ET
프로비던스의 붉은져지를 입은 크리스던은, 자신의 농구커리어 밑바닥에서 그의 세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그는 3주 동안 계속해서 아버지의 카우치에 누워 있었고, 그동안 팀은 그 없이 경기했다. 이건 2016년 드래프트의 틀림없는 로터리 픽 유망주이며, 대학리그 최고의 투웨이 가드로서 2015-16시즌의 National player of the Year의 후보자이자, 거의 20년만에 가장 유망한 포스트시즌을 향해 프로비던스를 이끌었던 크리스 던의 과거 모습이었다.
그의 삶을 바꾸어 놓은 포인트는 2013-14시즌이 시작되기 전, 디비전 III 스쿨과의 연습 경기에서 벌어졌다. 던은 과거 1학년에 입학하기 전, 오른쪽 어깨에 관절 와순수술(Surgery on a torn Labrum)을 받은 경력이 있다. (수술 당시) 던은 심지어 프로비던스 대학에 등록을 마친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2013년 11월 (연습경기에서) 던은 루즈볼을 향해 뛰었고, 로드 아일랜드 대학의 한 선수와 출돌했다. 그리고 그는 어깨에 이상을 느꼈다. 이건 18개월 전 그가 수술해야 했던 곳와 정확히 같은 부위였다.
그는 즉시 알아차렸다. 그가 이뤄내고자 했던 그의 브레이크 아웃시즌은 이미 지나가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더 나쁘게도, 그는 그의 꿈이 멀리 달아나 버리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리스 던은 말했다. "제 심정은 이랬습니다. '난 내가 해야하는 모든 것들을 전부 다시 해야겠구나.'라고요. 이것은 회전근이 찢어진 거였죠. 전과 정확히 같은 수술이었어요. 저는 카우치에 그냥 앉아있을 뿐이었습니다. 3주 동안요. 그리고 윈터 브레이크 동안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죠. 말 그대로, (그 동안 해왔던) 모든 것을 다시 겪어야 했던 거죠."
"만약 당신이 이런 수술을 받게되면 다시 약해질 겁니다. 저는 수술후에 몸무게가 175, 180 파운드로 줄었어요. 제 팔이 약해졌기 때문에, 어떻게 드리블 해야 할지를 다시 배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 리프트 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어요. 다시 몸을 강하게 만들어야 했죠. 그리고 또 다시 모든 것에 맞춰서, 제 자신에 대한 컨디션을 조절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어요. 그리고 그때 알게 되죠. (이것이) 얼마나 연습에 영향을 줄지를요. 심지어 이건 경기를 뛰는 것도 아니에요. 단지 연습일 뿐인데도, 이것이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을 알아야 했어요.”
"(하지만) 저는 이것을 단지 저 혼자만을 위해서 한 건 아니에요. 저는 이것을 저의 형, 아버지, 조카들, 나의 사촌들을 위해서 했습니다. 이건 나의 여동생을 위해서 였고, 새엄마를 위해서 였어요. 저의 가족 전체, 그 사람들을 모두를 위해서 였습니다."
이건 프로비던스 대학교 농구팀의 구원자라며 환영을 받았던 젊은 선수에게는 초라하고 비참한 추락이었다. 프로비던스 지역 토박이인 에드 쿨리는 2011년 감독으로 팀을 이끌게 되었을 때, 프로비던스 농구팀은 몸부림치고 있었다. 프로비던스는 2004년 이후로 NCAA 토너먼트에 진출해본적이 없었던 팀이었다. 던은 맥도날드 올아메리칸에서 자신을 알렸고, 탑 25인의 리쿠르팅 선수로서 클래스에서 최고의 포인트가드로서 이름을 올리는 선수였다. 던의 가족들은 뉴런던에서 가까운 코네티컷에서 자라났는데, 프로비던스가 그를 얻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던의 2번의 수술은 2시즌 동안 그를 잃어야 했음을 의미했고, 이는 (팀에게는) 재앙과 같은 일이었다.
던에게 있어, 이런 추락속에서도 더 최악이라고 느꼈던 건, 그가 왔던 곳 그리고 그가 향해야 할 곳 때문이었다. 그의 어린시절은 (우리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달랐다. 그는 문제가 있는 편모가정에서 자랐다. 그의 형인 존과 함께 말이다. 그의 어머니인 피아 던은 크리스의 4학년 시절, 거의 모든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동안 던과 그의 형은 두 개의 침대가 있는 아파트에서 그들 홀로 살아남아야 했다. 음식을 훔쳐야 했고, 어떻게 해서든 돈을 마련해야 했으며, 살아남아야 했다. 그때 그의 아버지는 두 아이들을 보러왔고, 두 아이를 코네티컷으로 데려왔다. (과거 던의 부모는 별거 중이었고, 던의 어머니는 그들을 버지니아로 데려갔었다.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는 그들에 대한 소식이 끊긴 상태였다.) 코네티컷으로 옮긴 뒤, 제대로 된 삶은 다시 시작되었고, 던의 인생은 바뀌었다. 그리고 미래의 NBA 리거로서 변할 수 있는 도움이 되었다.
"저의 가장 높은 곳은 마치 지붕이었고, 그리고 제 가장 낮은 곳은 밑바닥이었습니다." 던은 말한다.
던는 다시 망가진 그의 어깨와 함께 카우치에 누웠을 때, 다시 겪은 최악에 상황에 대해서 눈물이 흘러 나왔다. 그는 1년전에도 똑같은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그의 첫 번째 수술은 그가 1학년에 입학하기 전이기도 했다. 이 말은 그의 대학 커리어는 (남들보다) 늦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현재 던은 두 가지를 극복해야 했다고 한다. 농구가 없는 삶에 대한 생각 그리고 최근에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생각으로 말이다. 던은 그의 어깨에 이상을 느낀 뒤 오래지 않아 그의 형에게 문자를 받았다. 그의 어머니가 50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고 말이다.
던은 말한다. "제가 사랑했던 두 가지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저는 농구를 사랑해요. 그리고 저의 어머니도요. 이 두 가지를 잃었다는 것, 이건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이것들은 삶을 바라볼 때, 완전히 달라지는 부분이에요. 마치 햇살은 바로 비치고 있지만, 제 두 눈은 구름낀 하늘을 보고 있는 것 같았죠. 어둠뿐이었어요. 살아가기 위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상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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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으로 성숙한 선수는 성장 가능성이 높다 생각합니다. 어느 팀으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잘 성장해줬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