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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Finals 1956/57 "셀틱스 왕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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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1 14:29:30

* 출처 : nba.com/history
* 연재 : Seasons와 Finals 번갈아서 주말 연재
* 필요한 부분은 의역과 보충 설명을 했으니, 이점 유의해주세요.
* 무단으로 퍼가는 것을 금합니다. 제게 쪽지를 보내신 후, 퍼가주세요.

1957 NBA Finals: Boston 4, St. Louis 3
- "Celtics Officially Launch Their Dynasty"


NBA Finals
Boston 4, St. Louis 3
Mar. 30: Sat., St. Louis 125 at Boston **123
Mar. 31: Sun., St. Louis 99 at Boston 119
Apr. 6: Sat., Boston 98 at St. Louis 100
Apr. 7: Sun., Boston 123 at St. Louis 118
Apr. 9: Tue., St. Louis 109 at Boston 124
Apr. 11: Thu., Boston 94 at St. Louis 96
Apr. 13: Sat., St. Louis 123 at Boston **125

Eastern Division Western Division
Division Finals
Boston 3, Syracuse 0
Mar. 21: Thu., Syracuse 90 at Boston 108
Mar. 23: Sat., Boston 120 at Syracuse 105
Mar. 24: Sun., Syracuse 80 at Boston 83

St. Louis 3, Minneapolis 0
Mar. 21: Thu., Minneapolis 109 at St. Louis 118
Mar. 24: Sun., Minneapolis 104 at St. Louis 106
Mar. 25: Mon., St. Louis 143 at Minneapolis **135

Division Semifinals
Syracuse 2, Philadelphia 0
Mar. 16: Sat., Syracuse 103 at Philadelphia 96
Mar. 18: Mon., Philadelphia 80 at Syracuse 91

Minneapolis 2, Fort Wayne 0
Mar. 17: Sun., Fort Wayne 127 at Minneapolis 131
Mar. 19: Tue., Minneapolis 110 at Fort Wayne 108

Tiebreakers
Mar. 14: Thu., Fort Wayne 103 at St. Louis 115
Mar. 16: Sat., Minneapolis 111 at St. Louis 114

밥 페팃. 하늘이 내린 천재 플레이어... 하지만


에어컨 시설이 없이도 보스턴 가든은 온도 조절이 되었다. 시원하고 서늘하게 될 수도, 뜨겁고 찜통이 될 수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보스턴 가든의 온도는 '날씨에 의해 결정되기 보다는 셀틱스에게 어떤 특별한 경기가 있는지에 달려있었다'라고 말한다.

날씨에 관계없이, 경사지고 오래된 관중석 위 천장에 무수한 nba 챔피언 배너들이 걸려 있는 눅눅하고 냄새나는 낡은 경기장의 공기를 '셀틱의 신비'라고 불렀지만, 그것은 신화라기보단 좀 더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동안 보스턴의 우승 전통은 상대팀의 어깨위를 짓눌렀고 그들의 슛팅을 흔들리게 했으며, 그들의 컨디션을 다운시켰다.

그런 사실은 셀틱스가 정상의 팀이 아닌 때, 치열하게 각축이던 리그의 여러 경쟁팀들중 단지 하나였을 때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느리지만 확실히, 그런 인식은 셀틱스가 게임의 양상을 변화시킬 선수들을 획득했을 때 모두 변했다.

제일 먼저 셀틱스는 에드 'easy' 맥컬리를 얻었다. 도미넌트하진 않지만 훌륭한 공격적 스타일과 달릴 수 있는 6'8" 190파운드의 센터였다. 다음으로 인근 홀리 크로스 대학 출신의 6'1"의 올 아메리칸 가드인 밥 쿠지. 쿠지는 비하인드 백 드리블에서 노룩 패스까지 환상적인 레퍼토리를 완벽하게 구사했다.

셀틱스는 여기에 빌 셔먼이라고 하는 또다른 위대한 선수를 더했다. MLB 브룩클린 다저스에서 프로야구선수 생활을 했던 Southern Cal 대학 출신의 샤프슛터이자 디펜스가 훌륭한 선수였다. 농구 코트 전체에서의 셔먼의 능력은 셀틱스가 리그 최고의 백코트팀이 되게 만들었다. 그와 맥컬리는 스피드와 민첩함을 가지고 있었으며, 밥 쿠지는 완벽했다. 그러나 스피드와 순발력만으로는 그들이 디비전 파이널을 넘어서기에 충분하지 못했다.

코치 레드 아워바흐는 그의 오랜 대학 코치 생활 당시 훌륭한 인사이더였던 빌 라인하르트가 그에게 말해준 샌프란시스코 대학의 소포모어 센터 빌 러셀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러셀은 특별함의 패키지였다. 그는 6'9"였으며 특출난 운동능력을 지녔다.(그는 440야드 대시를 49초 안에 끊을 수 있었다) 그의 타이밍 센스는 그를 훌륭한 리바운더이자 샷블록커로 만들었다. 그러나, 러셀의 공격 스킬은 별로 좋지 못해서 득점의 대부분을 팀원이 슛미스를 한 것을 잡아내 세컨샷을 메이드시키는 것에서 나왔다.

아워바흐처럼, 러셀은 승리에만 집중했다. 선수와 감독은 서로의 이 느낌을 공유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굉장한 팀 플레이어였죠"라고 쿠지는 러셀에 대해 말했다. "그가 없었다면 왕조도 없었을 것이고, '셀틱의 신비'도 없었을 거에요."

세인트루이스(현재의 애틀랜타 호크스)는 1956년 드래프트에서 3번픽으로 러셀을 택했지만, 곧 이어 클리프 헤이건에 대한 드래프트 권리와 맥컬리를 받고 보스턴에 러셀을 트레이드했다. 아워바흐는 1956년 드래프트에서 홀리 크로스 대학을 나온 6'7"의 포워드 톰 하인손과 샌프란시스코 대학에서 러셀의 팀메이트였던 K.C.존스라는 또 다른 보석 2개를 집어냈다.

셀틱스는 정규시즌을 동부디비전에서 시라큐스(현재의 필라델피아 76ers)에 6경기를 앞선 44승 28패로 마쳤다. 러셀은 평균 19.6리바운드를 잡아냈다. 쿠지는 어시스트 부문 리그 1위를 기록했고 MVP를 수상했다. 플레이오프가 시작될 때 즈음엔 하인손이 신인왕을 탔다.

보스턴은 동부디비전 파이널에서 쉽게 시라큐스를 물리쳤다. 그러나 세인트루이스는 겨우 34승 38패를 기록하고도 정규시즌 공동 1위 3팀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호크스는 이후 잘 짜여진 팀이 되었고 플레이오프에서 미네아폴리스(현재의 LA 레이커스)와 포트웨인(현재의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을 눌렀다.

이름값으로 보자면, 파이널 매치업은 볼 것도 없었다. 셀틱스는 호크스보다 10경기 이상 앞선 채로 시즌을 마쳤었다. 그러나 1957년 파이널은 이름값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걸려있었다. 호크스와 셀틱스의 선수들 그리고 팀 운영의 운명이 이후 오랜시간동안 뒤틀리게 된다.

아워바흐는 세인트루이스가 트라이시티 블랙호크스였을 때, 호크스의 구단주인 커너를 위해 일한 경력이 있었다. 맥컬리는 보스턴에서 6시즌을 플레이했었으며 헤이건은 셀틱스에 의해 리그에 데뷔했지만 호크스에서 뛰었다. 세인트루이스는 러셀을 보스턴에 트레이드했으며, 세인트루이스의 프론트코트 라인이었던 찰리 셰어는 보스턴이 드래프트했다가 방출했었다. 물론 쿠지는 커너의 블랙혹크스의 선수였으며, 블랙호크스는 시카고로 그를 트레이드했다. 양팀의 거의 모든 선수들의 상대방 팀의 역사와 관련이 있었다.

호크스는 그들의 보잘 것 없는 시즌 기록에도 불구하고 보스턴과의 매치업에서 강점을 보였다. 그들은 프론트코트에 맥컬리, 헤이건, 잭 콜맨과 셰어 이외에도 '비교불가' 포워드 밥 페팃을 데리고 있었다. 그들의 가드진도 훌륭했다. 슬래터 마틴이 팀을 이끌었다.(레이커스는 뉴욕으로 마틴을 트레이드했지만, 단 몇 주후엔 호크스가 그를 얻었다.) 다른 선발 가드는 콜맨이 포함된 트레이드로 로체스터(현재의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데려온 기본기 탄탄한 잭 맥마혼이었다.

호크스는 파이널에서 도박사들의 배팅을 받을 만한 준비가 되어 있음을 증명했다. 보스턴 가든에서의 1차전에서 셀틱스의 셔먼은 36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페팃은 37점을 기록했으며 맥컬리와 마틴은 각기 23점씩을 넣었다. 화력전에서 호크스는 홈팀을 2차연장까지 밀어붙였다. 기적적으로 세인트루이스는 24초 공격제한시간과 동시에 콜맨이 던진 장거리슛이 성공하며 125-123으로 승리를 거뒀다. 셀틱스는 재차 반격했지만, 득점을 올리진 못했다.

이후 이들의 파이널 매치업은 군중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세인트루이스는 1차전에서 러셀에 대항해 효과적이었던 맥컬리와 페팃의 프론트라인의 공격적인 움직임에서 그들의 득점 대부분을 얻었다. 보스턴의 공격 대부분은 그들의 가드진에서 나왔지만, 세인트루이스는 마틴과 맥마혼이라는 두명의 훌륭한 수비수와 플로어 리더를 데리고 있었다. 보스턴은 2차전에서 디펜스로 응수했고, 페팃을 11점으로 묶으며 119-99로 승리하며 시리즈 동률을 이뤘다.

3차전은 시작되자마자 팽팽한 수비전으로 진행되었다. 유달시리 많은 파울이 나왔고, 양팀은 이를 자유투로 꼬박꼬박 성공시켰다. 그러나 페팃이 종료 직전 장거리슛을 성공시키며 호크스는 100-98로 승리. 시리즈를 앞서나가게 되었다.

보스턴은 세인트루이스에서의 4차전을 123-118로 이기며 다시 시리즈 타이가 되었다. 쿠지는 33점의 페팃에 맞서 31점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셀틱스는 5차전에서 124-109로 셀틱스를 물리쳤다.

6차전은 세인트루이스로 돌아가서 열렸다. 호크스는 다시 벌어진 수비전에서 밥 쿠지를 15점으로 묶었다. 그는 12초를 남겨둔 94-94동점 상황에서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자유루를 던졌으나 미스하고 말았다. 승리에 대한 기대를 담아 호크스는 페팃에게 클러치슛을 맡겼으나 페팃의 슛은 실패했다. 하지만, 헤이건이 림 안으로 톡 건드려 넣어 96-94로 승리했다.

시리즈 3-3 동률에서, 시리즈는 다시 가든으로 돌아갔다. 아워바흐는 10년보다 더 긴 시간동안 갈망해왔던 챔피언십 반지 앞에 서있었다.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대다수 코치들처럼, 그도 어느 정도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코치로서 그는 그의 팀을 우승권 팀으로 이끌었지만, 번번히 결승에서 패배했다. 그의 프로 첫 코치팀이었던 워싱턴 캐피톨스 역시 똑같은 운명에 고통받았다.

이러한 의구심은 그가 보스턴에 와서 팀을 이끄는 동안에도 그를 괴롭혔다. "난 다른 코치들을 살펴보았죠."라고 그는 회상했다. "그리고 난 나 자신에게 말했어요. '난 여전히 그들만큼 뛰어나다'" 그러나 1957년 파이널은 그를 다시 불안하게 만드는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아워바흐의 경력은 그에게 다음 기회를 준비하지 않았다. 보스턴 백코트의 활약 없이도 7차전은 클래식이되었다. 쿠지는 2/20, 셔먼은 3/20의 야투를 기록했다. 그들은 필드골 시도 40개에 12.5%만을 합작했다. 부담감이 루키들에게 가해졌지만, 그들은 멋진 퍼포먼스로 응답했다. 19점 32리바운드를 기록한 러셀과 37점 23리바운드를 기록한 하인손.

셀틱스는 경기 초반 리드를 잡아나갔지만, 호크스는 1쿼터 종료시에 28-26으로 리드를 빼앗아왔다. 2쿼터 시작과 함께 보스턴은 맹렬히 나아갔고, 41-32로 앞섰다. 헤이건은 하프타임을 얼마 안 남기고 6점을 몰아넣으면서 호크스로 리드를 돌려 놓았다. 2쿼터 종료시 호크스는 53-51로 앞섰다.

셀틱스는 3쿼터를 73-68로 앞서며 마쳤고, 4쿼터 초반에는 8점으로 리드를 늘렸다. 그러나 호크스는 9-0 런으로 다시 응답하며 리드를 빼앗았고, 경기 종료 2분여를 남기고는 4점차로 앞섰다. 이후 보스턴은 101-100으로 따라붙은 자유투를 성공시켰다. 종료 1분여를 남기고, 세인트루이스에게 공격권이 있었고, 콜맨은 셀틱스의 추격을 얼어붙게 만들 슛을 던졌다.

그 순간, 러셀이 그가 만들어낸 새로운 디펜스 패러다임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블록슛이란 기술은 대학시절 빌 러셀이 만들어냈습니다. 단, 이때는 아직 블록슛이 스탯 카테고리에는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콜맨의 슛을 블록해냈고, 보스턴에게 102-101 리드를 가져다주는 슛을 결국 성공시켰다. 호크스는 득점을 하지 못했고, 보스턴이 다시 볼 소유권을 가지게 되었다. 호크스는 쿠지에게 파울을 했고, 쿠지는 타이틀을 가져올 기회를 담은 자유투를 던졌지만, 그는 2개 중 1개만을 성공했다.(당시엔 3점슛이 없었으므로 2개다 성공했다면 3점차로 거의 승부는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셀틱스가 103-101로 리드한 상황에서, 페팃은 경기 종료 1초를 남기고 2개의 자유투를 모두 성공시켜 경기는 연장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파울트러블이 호크스를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맥마혼이 먼저 파울아웃되었고, 이어서 헤이건이 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호크스는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연장전도 끝나갈 때 즈음, 보스턴은 113-111로 리드하고 있었다. 하지만, 1차전에서 클러치슛으로 세인트루이스에게 승리를 가져다준 콜맨이 또다시 재연장으로 가는 클러치 점퍼를 성공시켰다. 2차연장이 시작되고 몇 초후, 맥컬리가 로스커토프에게 파울을 하고 벤치로 물러나야했다. 근육질의 포워드 로스커토프는 125-123 보스턴 리드를 가져다주는 2개의 자유투를 성공시켰다.

동점을 이룰 오직 한번의 기회만을 가진채, 호크스는 볼 인바운딩을 페팃에게 풀코트 패스로 던져야만 했다. 호크스 벤치에서 마지막 남은 자원이었던 플레잉 코치 알렉스 하넘은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출장기회를 얻었다. 그는 페팃이 그것을 팁인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담은 채 백보드를 맞춰서 튕겨나오는 패스를 계획했다. 믿을 수 없게도, 하넘의 인바운딩 패스는 페팃에게 공이 가도록 백보드를 맞췄다. 하지만, 페팃이 던진 마지막 팁인 슛은 림을 빙글빙글 돌더니 밖으로 나오고야 말았다.

셀틱스는 락커룸에서 러셀의 수염을 깎아주면서 축하했고(러셀은 우승이 결정되기 전까지 턱수염을 깎지 않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몸을 식힌 후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보스턴의 첫 우승이었다. 쿠지는 모든 농구커리어 순간 중 그때를 가장 충만했던 때로 기억했다.

아워바흐에게도 그러했다. "힘들었어요. 첫 우승이 항상 가장 힘들어요. 그리고 가장 행복하죠. 내가 여름에 간 어디에서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했죠. '난 세계챔피언팀의 코치다.' 그리고 농구는 최고의 운동경기다 라고 말이죠."

'그'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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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WR
2008-04-21 14:31:35

연재가 자주 늦어집니다. 또 하루 늦네요.
이거 뭐라 말씀 드릴 여지가 없습니다. 저주받을 제 영어실력 탓인 듯 합니다.
57년 파이널은 역사에 길이남을 명승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셀틱스의 첫 정상 등극이라는 것을 제외하고서라도, 최고의 classic 경기입니다.

2008-04-21 22:40:09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일단 추천부터 하고요.

그런데 레드 감독의 경우, 아워바흐가 독일 발음이 맞는 듯 하지만,

미국에선 아우어벡, 혹은 아워벡 정도로 발음 하는거 같더군요.

물론, 우리들 입장으로선 다 외국인이니, 어느나라 발음을 갖다써도 맞겠습니다만,

나중에 미국에서 제작된 영상이나 중계를 볼때, 그사람이 그사람인지 모를경우도 있기때문에,

간단한 코멘트 정도는 본문에 넣어주는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예를들면,

*주1. 레드 아워바흐는 미국에선 레드 아우어벡 으로 발음합니다.


이런식으로요 :)

WR
2008-04-23 00:17:24

네, 앞으로는 고려해서 글을 작성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04-23 00:19:54

아;;;;; 네
글의 퀄리티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수만 있다면 저도 감사하죠~

2008-04-21 17:01:07

흠... 경기를 보지 못해서 잘은 모르겠는데..

러셀 vs 페티트면 엄청났겠네요..

잘 보고 갑니다

2008-04-22 00:07:55

정말 이 글만 읽어도 어느 수준의 경기인지 느낄 수 가 있네요

정말 한 치도 밀리지않는 클래스의 두 팀이 붙는 최고의 매치업이었을텐데..

역시 여기에서 승리한 보스턴이 앞으로의 다이너스티를 가져가는군요

2008-04-22 22:17:37

스포일러이긴 합니다만... 바로 다음 시즌에 세인트루이스가 기똥차게 복수해버립니다. 파이널에서 러셀이 부상당하는 바람에... 페팃이 골밑을 지배해버리죠.

사실 이번 시리즈도 본문에서 언급됐지만 완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습니다. 리그 최강 팀 보스턴에 비해 세인트루이스는 완전 언더독 팀이었죠. 당시엔 동-서부 4개팀밖에 없었습니다만 동부지구 4개팀의 승률이 서부지구 1위팀 승률보다도 더 좋았던 극강 동고서저였죠.

세인트루이스는 리그 꼴찌 로체스터 로얄스보다 고작 3승 더 많은 팀이었을 뿐이고 레이커스, 피스톤즈랑 가까스로 동률 1위를 맞춘 뒤 어찌어찌 파이널까지 진흙탕 싸움을 해서 올라갔죠. 5할 승률도 안되면서 파이널까지 올라온 세인트루이스는 리그 1위에 빛나는 보스턴 앞에서는 객관적인 전력은 많이 열세였습니다.

근데 세인트루이스가 정말 눈부신 선전을 보이며 7차전 명승부를 냈죠. 사실상 이 시리즈의 주인공은 첫 우승의 영광을 안은 보스턴이라기보단 일방적으로 밀릴거란 만인의 예상을 깨고 우승까지 할 뻔한 언더독팀 세인트루이스였죠.

2008-04-22 10:05:58

음.....이분이 그 감독이었군요.....아워벡....nba tv에 나오던데 ..누군가 했습니다.....

2008-04-22 23:18:16

푸른 늑대님, 제 말이 맞죠?(+_+)

NBA 매니아들에게 좀 더 익숙한 레전드들이 속속 등장할 5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 전보다 더 높은 관심을 받고, NBA 역사 시리즈도 더욱 흥미롭게 진행될거라 말했었는데, 정말 보스턴 왕조의 등장과 함께 정말 많은 호응이 있는 것 같네요 (56-57 시즌편에선 무려 800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했네요. 뭐, 조회수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요^^)

앞으로도 이렇게 기다리고 관심을 주고 계신 많은 역사 시리즈 팬들을 위해 건필해주세요.

본문으로 돌아가면, 드디어 보스턴 장기집권 시대의 서막을 열게 되는 시즌이군요. 그 유명한 러셀옹의 등장과 그와 함께 할 여러 레전드 플레이어들을 접하게 될 생각을 하니, 매주 주말이 기다려집니다.

마지막 사진에 등장한, '그'의 앞으로의 활약상이 기대되네요~

WR
2008-04-23 00:20:51

저번 Seasons가 조회수 700을 넘었습니다.
어쩔때는 300은 커녕 200도 못 넘어 쩔쩔매었던 히스토리도 있었는데 말이죠.
조회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많은 분들께 느바 역사를 알리고 혹은 함께 하고 싶단 저의 희망이라서요.
이게 다 스파르타 300 제군들 덕입니다.
앞으론 더 많은 이들이 히스토리를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스카티님,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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