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자 벨과 코비와 파울에 대한 잡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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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03 22:29:00
라자 벨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볼까요?
때는 00-01 시즌 파이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레이커스의 타이론 루가 예상외로 앤써를 상대로 좋은 수비를 보였던 것과 같이,
필라델피아에서는 무명에 가까웠던 라자 벨이 코비의 전담 수비수로 나와 아주 좋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미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레이 알렌을 상대로 좋은 수비를 보였던 라자 벨은 파이널 내내 코트에 서 있는 시간동안 끈질기게 코비를 가드했고, 완벽하다고 볼 순 없으나 그 해 레이커스의 플레이오프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코비를 잘 막아낸 선수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곧장 필라델피아와 계약을 맺고, 댈러스와 유타를 거쳐 피닉스에 안착했죠.
첫 파이널 무대에서의 짜릿한 기억 때문일까요? 그 이후로도 라자 벨은 코비만 만나면 스팀팩 쓴 마린 마냥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공식석상에서 루벤 패터슨처럼 '내가 바로 코비 스탑퍼다!!'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플레이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리그 최고의 슈팅가드를 상대로, '언더 독'인 라자 벨이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고 있다는 것을.
피닉스의 팀 컬러에서 'D'를 찾기란 사실 어려운 일입니다. 극상의 공격력으로 상대가 무너질 때 까지 계속해서 몰아치는 피닉스 특유의 스타일 때문에 아무래도 수비에 대한 열정에 플러스 알파를 주긴 힘든 노릇이겠죠. 그러나 라자 벨은 그런 피닉스의 '파이터'이자 에너자이저로, 상대팀 에이스 앞을 막아서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 플레이오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상대가 한 게임에서 81점을 올렸든, 리그 득점왕이든.. 그런 것은 벨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1차전부터 5차전까지, 코비와 라자 벨의 매치업은 그야말로 전쟁이었습니다. 라자 벨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치열하게 코비를 막았고 테크니컬 파울도 두려워하지 않았지요. 코비역시 라자 벨의 터프한 수비에 한치의 물러섬없이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있었던 그 파울은, 이미 1차전에서부터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두 선수 모두 피지컬한 게임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부상의 위험을 무릅쓴채 여기까지 해온 것이니까요.
자. 이제 다시 한 번 파울장면을 봅시다. 이전에 둘은 이미 코비의 엘보우 어택과 라자 벨의 맞대응으로 나란히 테크니컬 파울을 받은 상태였고, 그 이후로도 신체접촉이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코비에게 돌파를 허용한 라자 벨은 필요 이상의 과격한 파울을 범하고 퇴장당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벨이 저런 위험한 파울을 범할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저 파울 직전 피닉스는 14점차로 앞서고 있었고, 돌파 상황에서 코비가 벨을 가격하면서 들어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안티코비든 코비'팬'안티든간에 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정작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평상시 NBA 케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옮기는 팀마다 프런트와 동료들, 팬들로부터 그 됨됨이를 크게 칭찬받아왔던 그가 한 순간에 '어글리 가이'로 낙인찍혀버렸다는 것은 개인으로서 큰 문제입니다. 팀 입장에서도 그가 6차전에 출장하지 못할지 모르고, 그 점이 시리즈를 내주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전전긍긍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현재 피닉스에는 라자 벨을 제외하고는 코비를 막을 수 있는 선수가 없습니다. 아니, 막으려고 마음만 먹는다면야 매리언이나 디아우를 붙일 수도 있겠지만, 그 순간 피닉스 인사이드는 완전히 초토화되고 말겠지요.) 설령 라자 벨이 추가적인 징계조치를 받지않고 정상적으로 시합에 참여한다해도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을리 없습니다. 게다가 6차전은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리고, 스테이플스 센터의 열광적인 홈관중들에게 라자 벨이 어떻게 비추어질지는 뻔한 일이죠. 라자 벨이 강한 사나이이긴 하지만, 심리적인 문제가 전반적인 플레이의 위축을 불러올 확률을 무시할 수 없으며, 애매한 상황에서의 접촉이라면 결코 피닉스에게 유쾌한 방향으로 시합이 흘러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라자 벨은 열정적인 선수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그의 열정이 지나쳐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그의 파울이 정당했다거나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지요.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작 저 심한 파울을 당한 당사자인 코비 브라이언트는 결코 분노를 표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찰거머리 마크맨이 퇴장당했다는 사실에 미소를 지어 보이는 여유를 보였죠. 게임 후의 인터뷰에서도 필 잭슨이나 코비 브라이언트 역시 그것이 게임의 한 부분이며, 피지컬한 게임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설마 지금, 시리즈에서 앞서고 있다고 그들이 여유부리는거라 생각하시는 분은 안계시겠죠?
차후의 징계로 라자 벨이 코트에 서지 못하게 되든, 아니면 별 문제없이 코트에 서게 되든 간에.. 라자 벨은 자신의 비신사적인 행위를 분명히 반성하고 있으며 비록 피닉스가 승리를 챙겨가긴 했지만, 뒤숭숭한 분위기로 부담스러운 6차전을 맞아야 한다는 점만으로도 이미 대가를 치루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출장정지가 되면 레이커스 입장에서는 좀 더 마음이 풀릴 일이고, 피닉스 입장에서는 한숨을 내쉴 일인게지요.
다른 할 이야기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는데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이런 글에 정력을 소진한 것은
다름아닌 당신을 위함입니다.
코비가 먼저 엘보우 어택을 남발했는데, 파울 하나 당했다고 팬들이 광분한다고.. 그래서 그 팬들 때문에 코비가 더더욱 싫어져버렸다는 당신.
시리즈 내내 코비와 벨이 혈투를 벌이고 있었음을 잘 알면서도, 룩 월튼에게 팀토가 날아갔을 때는 잠잠하더니 '우리 에이스'가 린치 당했다고 라자 벨의 인간성을 들먹이는 당신.
가끔식은 옛말을 되새겨볼 필요도 있습니다.
역지사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 SCOTTIE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 + 카테고리유지되었습니다 (2006-05-0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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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추천받을만한 글이군요....저로하여금 반성하게 만드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