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임벌린, 그 엄청난 괴물의 여성 편력에 대하여......
10
7905
2004-05-30 10:10:45
체임벌린은 2만명의 여성과 잠자리를 가졌다고 말해서 파문이 일어난 걸로 유명한 선수입니다.
지금 들어도 기가 막힌 뉴스인데, 당시에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제가 그때 태어나진 않았지만 정말 쇼킹했을 겁니다.
그런데 체임벌린의 그런 여성 편력은 뭐랄까...... 유년시절을 그가 너무 가난하고 아프게 보낸 것에 대한 콤플렉스라고 할까요??
그의 유년시절에 가정은 10형제가 같이 살면서 경제적으로 넉넉치 못했죠. 게다가 체임벌린이 4살때,
폐렴에 걸려서 죽을 뻔 했었고, 십대 때에는 뇌염으로 다리에 이상이 생겨서 못 걸을 뻔 했던 유년 시절의 아픔이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에 대놓고 흑백 차별을 하던 때여서 체임벌린의 흑백 콤플렉스같은 것이 있었죠.
비슷한 시대에 무하마드 알리 역시 흑백 콤플렉스가 무지하게 심한 사람이었죠.
무하마드 알리가 아마추어 시절, 로마 올림픽에서 복싱 금메달을 따고서 자랑스럽게 환영을 받을 줄 알고 귀국했을때,
당시에 그 누구도 알리를 환영해주지 않았습니다. 그가 흑인이었기 때문에 환영은 커녕 뉴스에도 나오지 않았죠.
화가 난 나머지 백인 식당에 들어간 알리에게 돌아온 것은 백인들의 엄청난 몰매밖에 없었습니다.
로마 올림픽, 라이트 헤비급 복싱 금메달 리스트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환영은 커녕, 처참한 대가만 돌아왔을 뿐이죠.
결국 알리는 다리 위에 서서 올림픽 금메달을 강가에 던져버립니다. 흑백 콤플렉스는 물론 백인에 대한 증오의 표출이었죠.
그는 자기 증조부 때 물려받은 노예의 성과 노예의 이름이었던 '캐시어스 클레이'란 이름을 버리고
이슬람 식, 아랍어로 된 이름인 '무하마드 알리'로 이름을 바꾸었죠.
미국에선 생소했던 이슬람교를 믿음으로써 흑인 운동가로 문제를 일으키던 말콤X와 친해지고, 이슬람 교 부흥 운동을 했죠.
또한 카톨릭 교를 믿었던 자신의 아내와 이혼을 해버리고, 다시 이슬람 교의 아내를 얻는 등등......
여러모로 문제를 많이 일으켰습니다. 또한 무하마드 알리는 월남전때 미국에서 그를 징집하려고 하자.
"나는 베트콩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 왜 내가 그 전쟁에 참여해야 되는가?? 그 전쟁은 백인들을 위한 전쟁일 뿐이다."
라는 발언과 함께, 징집거부를 해서 선수 자격이 박탈되고 챔피언 벨트 역시 빼앗기게 되었죠.
더 많이 있겠지만, 무하마드 알리의 이런 행동들...... 흑백 콤플렉스에 대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체임벌린은 그 흑백 컴플렉스같은 것을 여성 편력으로 해결했던 겁니다. 흑인도 이럴 수 있다라든지......
무하마드 알리와 표현 방법만 다를 뿐이지, 이 두 선수가 이런 행동을 하게 된 원인은 비슷하다고 봅니다. 흑백 차별......
이런 콤플렉스는 무시당하면서 쌓여가는 콤플렉스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런 것은 점점 그 사람의 마음속에
쌓여가고 있다가, 나중에 그 사람이 힘을 얻게 되었을때 표출되어지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원숭이같은 외모때문에 항상 무시당했죠.
또한 그의 신분이 당시에는 바늘 장수로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모든 면에서 최악이었던 사람이었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항상 외모, 출신에 대한 컴플렉스를 갖고 있었고, 나중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게 되자,
자신을 놀렸던 사람들은 물론, 맘에 안드는 부하의 아내를 무지하게 겁탈합니다.
그들을 직접 죽이거나 자를 수 있는 권력을 가졌음에도 도요토미는 그들의 아내들을 겁탈하며 복수합니다.
이것도 일종의 컴플렉스에 관한 표출이지요. 자신의 외모, 출신에 대한 아픈 기억을 잊기 위해서......
체임벌린도 크게 다를 건 없죠. 당시에 심각한 흑백 차별, 유년 시절의 아픔을 잊기위해 성인이 되어서
자신을 과시하고 싶었을 지도 모릅니다.
한번은 그가 10대 시절에, 백인들이 뛰고 있는 길거리 농구 코트에서 같이 농구하기를 원했으나, 철저하게 외면받았고
그 뒤로 며칠 후에 바로 옆에다가 농구 골대를 만들어 흑인들을 모아서 농구를 했는데, 옆에 있던 백인들이
모두 농구하던 것을 관둔채, 체임벌린의 엄청난 플레이를 넉놓아 구경하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체임벌린은 흑백차별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민감한 선수였죠.
어느 한 토크쇼에서 진행자 왈, "당신은 너무 완벽한 스포츠맨이자 인텔리인데, 그 비결은 무엇인가요?"
"나는 흑인이 왜 백인보다 낮은 대우를 받아야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흑인을 대표해서 흑인의 뛰어남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완벽해지고 싶었다. 그 뿐이다." 라고 말하죠.
실제로 그는 나중에 최고의 농구 선수이면서, 5개국어 정도를 소화해낼 정도로 뛰어난 수재가 되었죠.
스페인어, 불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했다는데 이 모든 걸 독학으로 깨우쳤다는게 더 놀라운 사실!!
또한 체임벌린은 만능 스포츠맨이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농구만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죠.
그는 배구 대표로 뛴적도 있으며, 왠만한 일류 선수가 아니고서는 표지를 장식할 수 없는 테니스 잡지의 표지모델이기도 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주립 육상대회에서 높이뛰기 1위를 한적도 있으며, 삼단뛰기 대회에도 참가한 경험이 있죠.
물론 그 중에서 농구를 제일 잘 했지만 말입니다. 이 모든것!! 체임벌린이 자신을 과시하려고 했던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여성 편력도 그 중 하나죠. 흑인으로서 자신의 진가를 과시하려고 한것.
무시당한 만큼, 철저하게 악에 받혀서 체임벌린은 그토록 자신을 드높이기 위해 뛰었던 것입니다.
그는 흑인의 우수성을 백인들에게 입증, 또한 유년시절의 허약했던 기억을 떨쳐버리기 위해......
운동, 머리, 여성 편력까지도 남들 이상으로 해내면서 자신의 진가를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흑인도 이럴 수 있다는......
그가 당시에 이런 괴물이었던 사실...... 여자 2만명과 잠자리를 가졌던 사실......
이 모든게 유년시절에 죽을 고비까지도 갔었던 아픈 기억과 흑백 차별로 받아온 아픈 기억을 잊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할까요?
# 체임벌린이 세운 기록들. #
*NBA에서 한경기 최다 득점인 100득점 기록.
*NBA에서 한경기 최다 리바운드인 55리바운드 기록.
*한 시즌 평균 출장시간 최고인 48.5분을 기록. (연장전까지 쉬지않고 다 뛰었다는 얘기)
*통산 리바운드 갯수 1위
*더블 트리플 더블을 기록한 유일한 사나이 (20-20-20을 기록했다는 뜻.)
*데뷔 시즌에 신인왕과 MVP, 퍼스트 팀을 동시에 차지함.
*자유투 쏠때 노골된 공을 자유투 라인에서 점프해 덩크해서 덩크슛 금지법이 만들어짐. (XXL에서 발췌.)
*7년 연속의 득점왕.
*통산 11번의 리바운드왕.
*67-68시즌, 8.6어시스트로 오스카 로버트슨에 이어 어시스트 2위를 차지함.
*61-62시즌에 50.4득점, 25.7리바운드, 2.4어시스트라는 엽기 스탯 달성!! (그러나 MVP는 놓침.)
*4번의 정규리그 MVP (챔피언 경력은 2번)
*통산 30000득점, 20000리바운드를 기록해버린 유일한 선수.
*캐리어 평균 30.1득점 22.9리바운드 4.9어시스트
15
Comments
체임벌린의이런행동(?)을유발한. 동기를말한부분은전부이해가되지만. 2만명이가능한가요. 과장된듯...2만이라니-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