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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이야기: 4편-두 장군, 오르키니아에서 맞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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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31 22:16:23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최고 권력자였던 페르디카스가 프톨레마이오스에게 패하면서 마케도니아 제국의 권력 균형은 이전보다 더 크게 흔들렸다.

 

이제까지 평화를 유지했던 서아시아 대륙은 다시 전쟁터가 됐다. 그리고 그리스 본토의 평화는 언제 다시 깨질지 모르는 상태였다.

 


두 장군, 오르키니아에서 맞붙다

 

페르디카스의 죽음으로 권력의 축은 안티파트로스와 프톨레마이오스에게 향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자신이 통치하는 이집트를 지키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더는 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페르디카스의 부하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그런데 이때 크라테로스와 네오프톨레모스가 에우메네스에게 패해 전사했다는 소식이 전했다. 그렇지 않아도 전투에 패해 자존심이 떨어졌던 페르디카스의 부하들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장군 중 존경받았던 크라테로스가 그리스인인 에우메네스에게 패해 전사했다는 소식에 분노했다. 이들은 에우메네스를 치기 위해 이집트 땅을 떠났다. 또한, 안티파트로스를 비롯한 마케도니아인 세력은 에우메네스에게 추방과 동시에 수배령을 선고했다.

 

에우메네스는 궁지에 몰렸다. 그를 도울 수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쪽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르가이 왕조뿐이었다.

 

그러나 아르가이 왕조 역시 풍전등화 상태였다. 두 명의 왕은 각각 정신 지체 장애였거나, 너무 어렸던 까닭에 에우메네스를 보호해줄 수 없었다. 여기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어머니인 올림피아스 역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우메네스는 아르가이 왕조를 배신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는 그리스인이었고,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 대왕 덕분에 왕실의 문서 정리 작업을 책임지는 일과 동시에 마케도니아인조차 쉽게 될 수 없었던 기병대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됐다. 그런 아르가이 왕조를 에우메네스가 배신하든, 그렇지 않든 상황은 그가 승리하지 않는 한 파멸의 길에 접어들도록 요구했다.

 

에우메네스는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에게 페르디카스가 죽었고 그가 추방당할 위기에 놓였다고 전했다. 그리고 병사들이 자신을 떠날 기회를 줬다. 그러나 병사들은 그를 떠나지 않았다. 이에 에우메네스는 군대를 이끌고 안티파트로스를 비롯한 마케도니아 장군들의 추격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에우메네스는 병사들의 충성심이 전리품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병사들에게 줄 돈과 보물을 마련하기 위해서 소아시아 도시들을 약탈하여 전쟁 자금을 확보했다.

 

한편, 그때 안티파트로스는 적잖은 나이였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카산드로스는 조금씩 권력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애꾸눈 안티고노스 역시 권력에 욕심이 있었지만, 그의 최우선 목표는 소아시아를 떠돌고 있는 에우메네스였다.

 

에우메네스는 안티고노스가 비워놓은 켈라이나이로 이동해 그의 속주를 약탈하기 시작했다. 안티고노스는 그곳에서 반격을 가하지 않았지만, 정예병을 이끌고 에우메네스를 진압하기 위해 출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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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장군은 프리기아에서 맞붙었다. 에우메네스는 안티고노스가 한곳에 병력을 집중할 수 없도록 치고 빠지는 전술을 활용하여 그의 병력을 분산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그곳을 약탈하여 병사들의 충성심을 올림과 동시에 본인의 지휘권을 확고히 다졌다.

 

문제는, 안티고노스는 에우메네스의 이런 전술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과거 마케도니아에서 알고 지내던 사이였기에, 안티고노스는 에우메네스의 속성을 잘 알고 있었다. 안티고노스는 에우메네스의 전술을 파훼하기 위해 그가 약탈하는 길부터 차단했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병사들의 충성심을 무너뜨렸다.

 

약탈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에우메네스 군대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3,500명의 병사가 탈영했다. 이에 에우메네스는 병사들을 보내 탈영병들의 주도자들을 처형하는가 하면, 병사들을 다시 흡수해 그들의 환심을 사고자 했다.

 

안티고노스는 에우메네스가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에우메네스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이에 그는 페르디카스의 동생인 알케타스와 페르디카스의 차남인 아탈로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알케타스는 페르디카스가 살아있었을 때도 에우메네스를 돕기를 거부했던 인물이다. 마케도니아인인 알케타스에게 있어 피지배층인 그리스인인 에우메네스가 자기보다 더 큰 공을 세웠다는 점과 더불어 그가 자기보다 더 강력한 지휘권을 가지고 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았다.

 

당연히 이번에도 알케타스는 에우메네스와 손을 잡기 싫었다. 하지만 이번에 손을 잡지 않으면, 그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알케타스는 에우메네스와 손을 잡고자 했다. , 그는 총지휘관 자리를 원했다.

 

문제는, 에우메네스 역시 총지휘관 자리를 포기할 수 없었다. 지휘권을 잃을 경우 언제든지 알케타스의 손에 죽을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안티고노스에게 궤멸당할 일만 남았다.

 

 

안티고노스는 적의 약점을 빠르게 파악하여 이를 놓치지 않는 데 능했던 인물이다. 그는 에우메네스의 기병대 지휘관인 아폴리니데스를 매수하여 전투가 벌어질 경우 자신의 편에 서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안티고노스는 기만술의 대가였다. 그는 에우메네스의 전령들이 자기 진영에 와 있는 동안 한 병사에게 지원병이 도착했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리게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실제로 지원병이 온 것처럼 팔랑크스 대열을 두 배로 늘려 전진시켰다.

 

이러한 안티고노스의 전술은 그렇지 않아도 언제 분열될지 모르는 에우메네스 군대의 사기를 떨어트렸다. 여러 전투를 경험했던 안티고노스와 그의 군대는 에우메네스 군대를 도륙했고, 동방에서 획득한 그들의 전리품까지 노획했다. 이 전리품은 그리스인인 에우메네스가 마케도니아 군대를 지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기에, 에우메네스 입장에서 병사들을 잃은 것보다 더 치명적인 손실이었다.

 

에우메네스는 배신자인 아폴리니데스를 죽였고 오르키니아에서 퇴각했다. 그리고 아르메니아로 이동하여 새로운 병력을 모집하고자 했지만, 안티고노스는 그에게 쉴 틈조차 주지 않았다. 에우메네스는 안티고노스를 피해 카파도키아의 노라라로 최후의 퇴각을 감행했다. 바위산 꼭대기에 위치한 이곳은 소규모의 병력만 있으면 몇 년을 지켜낼 수 있는 곳이었다. 에우메네스는 자신의 휘하 병력 중 단 600명을 제외하고 모두 전역시켰고, 최후의 일전을 준비했다.

 

안티고노스는 에우메네스를 격파하는 게 목적이었지, 그를 죽이는 게 목적은 아니었다. 이미 충분한 희생을 치른 것은 두 사람 모두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안티파트로스가 고령에 접어들면서 마케도니아 본토의 변화가 어떻게 될지 몰랐기에, 안티고노스는 에우메네스를 제거하기보다 자신의 편에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 이에 그는 에우메네스의 안전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15년 만에 처음 만나 회담을 나누었다.

 

에우메네스는 자신에게 내려진 반역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 자신이 있었던 사트랍의 자리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안티고노스 역시 에우메네스의 제안을 딱히 거부할만한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최종 결정권은 그가 아닌 안티파르토스가 가지고 있었기에, 마케도니아로 전령을 보냈다.

 

전령이 본국으로 향한 이후 안티고노스와 에우메네스는 다시 갈라섰다. 안티고노스는 에우메네스에게 시간을 주고 싶어 했지만, 반대로 에우메네스는 시간을 벌고 싶어 했다. 안티고노스는 군대를 이끌고 페르디카스 잔당을 격파하기 위해 떠났다. 어쨌든 600명에 불과한 에우메네스의 병력이 지금 당장 자기를 위협할 수 없다고 내린 판단이었다.

 

그러나 에우메네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시간이 자기의 편이 되어줄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안티고노스와 그의 군대가 떠나자 때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에우메네스가 기다리던 그때가 곧 찾아왔다. 그 소식은 에우메네스는 물론이고, 안티고노스에게 엄청난 지위를 안겨줬다. 바로 마케도니아의 최고 권력자 안티파트로스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카산드로스가 칼을 뽑았다



불길은 다시 그리스로

 

안티파트로스는 아테네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테네의 약점은 군사력이나, 성벽이 아닌, 아테네 시민 그 자체, 그것도 민주정에 있었다. 안티파트로스가 포키온의 아테네에 내걸었던 조건으로는 아테네 시민들의 민주정을 과두정치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테네는 일시적인 위기를 넘기기 위해 그 조건을 받아들였지만, 문제는 과두정치로 다시 돌아서면서 시민들의 참정권에 치명타가 생겼다는 점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이제까지 자신이 누렸던 권리를 빼앗기면 분노한다. 특히, 오랫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권리를 잃어버린다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성향이 있다.

 

아테네 시민들에게 포키온은 위기를 넘겨주었던 영웅이었지만, 동시에 아테네의 민주정을 무너뜨린 대역죄인이기도 했다. 과두정치 시대로 돌아가면서, 아테네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최소 2,000드라크마의 자산이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2,000드라크마는 엄청난 규모의 자산이다. 당시 아테네 시민 중 이 정도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던 수는 약 9,000명에 불과했다.

 

자신의 권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한 아테네 시민들은 불만의 화살을 포키온에게 향했다. 그리고 이때 마케도니아 본토에서 대변화가 일어났다.

 

당시 마케도니아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자였던 안티파트로스는 일흔을 훌쩍 넘긴 고령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장거리 여행을 떠나기가 어려워진다. 이는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일흔을 넘어 어느덧 여든을 바라보고 있었던 안티파트로스는 동방 원정에서 돌아오자 더는 예전 같은 힘을 낼 수 없었다.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안티파트로스의 아들인 카산드로스는 아버지의 곁을 지켰다. 안티파트로스 역시 많은 것에 아들을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안티파트로스도 왕의 후견인 자리의 후계자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들 카산드로스는 아직 자기 곁을 떠나 스스로 능력을 증명한 적이 없었다. 이에 안티파트로스는 카산드로스가 아닌 폴리페르콘에게 왕의 후견인 자리를 물려줬다.

 

카산드로스는 아버지의 결정에 분노했다. 마땅히 자신의 것이라 여겼던 상속권이 박탈당한 것이다. 왕의 후견인 자리는 당시 정신지체를 겪고 있었던 왕과 어린 왕을 보좌하는 자리였기에 사실상 왕이나 다를 바 없는 권세를 누릴 수 있었다. 이에 카산드로스는 먼저 선수를 칠 준비를 했다.

 

우선 카산드로스는 아테네부터 공격하여 자기 능력을 증명하고자 했다. 오랫동안 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카산드로스 역시 아테네의 과두정치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여기에 안티파트로스가 죽었다는 소식이 알려진다면, 아테네 사람들은 과거 필리포스 왕과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에도 그랬듯이 다시 반란을 일으켜 민주정을 되찾고자 할지 몰랐다.

 

안티파트로스가 세상을 떠나고 폴리페르콘이 왕의 후견인 자리에 오르자 카산드로스는 사냥을 하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부하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톨레마이오스와 안티고노스에게 동맹을 제안해 폴리페르콘에게 맞서고자 했다. 카산드로스가 뽑은 칼은 아테네에 향했다.

 



한편, 그 시각 안티고노스는 페르디카스의 동생인 알케타스를 없애기 위해 군대를 이끌었다. 알케타스와 그의 군대는 안티고노스에게 대패했다. 그리고 알케타스는 자신을 따르는 세력이 자기를 배신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알케타스가 죽으면서 페르디카스의 남은 세력은 사실상 사라졌다.

 

알케타스를 격파함으로써 안티고노스는 사실상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다. 때마침 안티파트로스의 사망 소식이 그에게 들려왔다. 이제까지 안티고노스는 안티파트로스를 따랐지만, 안티파트로스가 죽으면서 그들의 세력을 따를 만한 이유가 없어졌다.

 

안티고노스에게 카산드로스는 아직 풋내기에 불과했으며, 에우메네스처럼 혼자서 무언가를 보여준 게 없었기 때문이다. , 안티고노스 역시 이제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

 

안티고노스는 에우메네스에게 다시 손을 뻗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에우메네스는 안티고노스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조력자였다. 그에게는 사실 에우메네스를 죽일만한 이유가 없었고, 오히려 그의 재능을 활용하는 편이 더 나아 보였다.

 

하지만 에우메네스는 안티고노스의 편에 설 수 없었다. 그는 아르가이 왕조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도 상술했듯이 아르가이 왕조 덕분에 그리스인이었던 에우메네스는 궁전 기록관에서 기병대장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에우메네스의 도움을 절실히 원했던 인물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어머니인 올림피아스와 새로운 왕의 후견인이 되어 권력을 잡게 된 폴리페르콘이었다.

 

에우메네스와 그의 부하들은 자기들을 보호했던 바위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본래 자신의 자리였던 카파도키아의 사트랍으로 돌아가 자신을 지켜줄 군대를 모으기 시작했다. 사트랍으로 돌아온 에우메네스는 올림피아스와 폴리페르콘으로부터 아르가이 왕조의 방어자 역할을 맡아달라는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는 매우 위협적이었다. 에우메네스는 폴리페르콘처럼 아르가이 왕조의 후견인이 될 수 없었지만, 명목상으로나마 그다음에 가는 지위를 얻게 됐다. 그리고 사트랍의 자리에 앉게 되면서 나라의 돈은 물론, 알렉산드로스 대왕 휘하에서 기병대인 헤타이로이와 함께 가장 강력한 부대였던 은 방패 부대인 토라키타이의 지휘권도 얻을 수 있었다.

 

에우메네스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안티고노스도 단 하나의 선택지밖에 남지 않게 됐다. 그는 카산드로스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알케타스를 제거했듯이, 이제는 에우메네스를 없애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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