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 [F1 역사] 뿌리(?)를 찾아서 - 메르세데스 편
앞서 얘기드린대로 F1에 관련된 글을 최대한 자주 올려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오늘을 시작으로 10편에 나눠 갓 F1에 입문하신 분들을 위해 현재 활동하고 있는 각팀들의 뿌리(?)에 써보고자 합니다.
순서는 공평하게(?) 작년 컨스트럭터 순으로 나열했고 각 팀마다 간략한 역사와 활동했던 대표적인 드라이버들을 써봤습니다.
그럼 첫 회로 작년 챔피언이자 터보 엔진 시대의 절대 강자인 메르세데스부터 살펴보겠습니다.
Mercedes AMG Petronas
이전 팀들
- 티렐 (Tyrell, 1970 ~ 1998)
- BAR, BAR-혼다 (British American Racing, 1999 ~ 2005)
- 혼다 (Honda, 2006 ~ 2008)
- 브론 GP (Brawn GP, 2009)
- 메르세데스 (Mercedes, 2010 ~ )
* 메르세데스 (Mercedes, 1954 ~ 1955)
대표적인 드라이버
메르세데스(1950s) - 후안 마누엘 판지오, 스털링 모스
티렐 - 패트릭 디파이에, 조디 쉑터, 잭키 스튜어트, 장 알레시, 마틴 브런들, 미쉘 알보레토 등등
BAR - 자크 뷜너브, 젠슨 버튼, 미카 살로, 사토 타쿠마 등등
브론 GP - 젠슨 버튼, 루벤스 바리첼로
메르세데스 - 미하엘 슈마허, 니코 로스버그, 루이스 해밀턴, 발테리 보타스
역사
- 1950년대 이전
메르세데스는 팀 역사가 한번 단절되었다가 이어진 팀들 중 하나인데, 모터 스포츠에 참가한 역사 자체는 페라리와 필적할 정도로 오래되었습니다.
메르세데스가 모터스포츠에 참가하기 시작한건 1930년대로 지금도 쓰이는 실버 애로우라는 별명이 이시기에 붙었습니다.
그 후 다임러-벤츠 AG라는 이름으로 활동해 오다가 1954년 메르세데스의 이름을 걸고 F1에 참가했습니다. 그러나단 1년 만에 F1에서 철수하고 말았는데 이에 결정타를 가한 사건이 너무나도 유명한 1955년의 르망 참사였습니다.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 모터스포츠 레이스를 법으로 금지할 정도 (스위스는 아직도 전기 엔진 한정으로 레이스를 허가할 정도입니다. 그나마 이정도로 제한이 풀렸기 때문에 취리히에서 포뮬러 E 레이스가 열릴수 있었습니다. ) 로 여파가 컸던 이 사건에 가장 중심에 서있었던 팀이 메르세데스였던 만큼 철수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메르세데스는 80년대 엔진 공급 업체로 복귀하기 까지 긴 시간을 모터 스포츠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 티렐
영국 출신의 켄 티렐이 만든 티렐 팀은 F3에서 주로 활동해 오다가 엘프(Elf, 프랑스의 석유 회사), 포드의 지원을 등에 업고 마트라 팀과 합작으로 1968년 처음으로 F1에 참가했습니다.
1969년 마트라와 결별하고 1970년부터 독자적으로 F1에 참가하기 시작한 티렐은 70년대 초반 잭키 스튜어트를 내세워 좋은 성적을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팀의 기대주였던 프랑수아 세베르가 1973년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그 충격으로 스튜어트까지 은퇴를 선언하며 위기에 빠졌지만 조디 쉑터, 패트릭 디파이에의 드라이버 라인업을 갖추며 가까스로 위기를 수습했습니다.
1976년 티렐은 스웨덴 그랑프리에서 P34라는 레이스카를 선보였는데 F1 역사상 처음으로 6개의 바퀴를 가진 레이스카였습니다. 그 성능은 동시대 다른 레이스카를 압도할 정도였지만 다른 규격의 타이어등 여러 문제가 겹치며 실험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F1이 터보 엔진 시대로 접어든 1980년대에도 티렐은 유일하게 자연 흡기 엔진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어 1984년 티렐은 컨스트럭터 포인트를 몰수당하는 사건을 겪게 됩니다.
당시 자연 흡기를 사용하는 레이스카는 의무적으로 무게를 추가해 터보 엔진을 사용하는 레이스카와 무게를 맞추게 되어 있었는데 갓 터보 엔진이 도입된 시점에서 몇몇 팀들은 이를 이용해 자연 흡기 엔진을 사용하는 대신 성능이 뛰어난 수냉식 냉각 시스템을 장착해 이득을 얻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티렐은 이에 착안해 레이스 도중에는 무게를 줄인채 달리다가 레이스가 끝나는 시점에 납이 들어간 연료를 섞은 물을 추가 탱크안에 넣었는데 이것이 1984년 디트로이트 그랑프리에서 덜미를 잡히며 컨스트럭터 포인트가 몰수당하고 말았습니다.
티렐은 물에 포함된 연료 함량이 1퍼센트 미만이라는 이유를 들며 FIA에 항소했지만 결국 항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침체를 겪은 티렐은 1990년대 초반 장 알레시와 하이 노즈 컨셉의 레이스카 티렐 019를 앞세워 잠깐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계속 중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다가 켄 티렐의 건강까지 악화되면서 결국 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BAT)에 팀을 매각하고 말았습니다.
- BAR
티렐을 인수하면서 새롭게 탄생한 BAR은 첫 해 슈퍼텍(Supertec)의 엔진을 사용했지만 이듬해부터 혼다와 엔진 공급 계약을 맺으며 혼다 엔진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해 자크 뷜너브가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팀 성적은 중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뷜너브의 팀 동료였던 올리비에 파니스는 뷜너브 만큼의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한편 혼다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가면서 혼다로부터의 압박도 거세지기 시작했는데 전통적으로 자국 출신의 드라이버들을 앉히려고 하는 혼다 때문에 2003 시즌 사토 타쿠마를 BAR에 앉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2004년 BAR은 놀라울만한 성적을 거두었는데 젠슨 버튼을 앞세워 많은 포디움을 따내며 페라리에 이어 컨스트럭터 2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했습니다.
그러나 이 즈음 F1에서 담배회사의 광고를 축출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었고 이에 대한 부담을 느낀 BAT는 2004년 팀 지분의 45%를 혼다에게 매각하면서 손을 땔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시즌인 2005년 BAR의 성적은 6위로 내려앉고 말았고 결국 남아있는 지분을 모두 혼다에게 매각하면서 BAT는 F1에서 손을 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BAT는 2019년 맥라렌의 스폰서로 다시 F1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A better tomorrow라는 프로젝트인데 필립 모리스의 Mission Winnow와 비슷한 개념인것 같습니다.)
- 혼다
혼다가 F1에 참여한 역사도 매우 오래된 편인데 1964년부터 68년까지는 자체 팀으로 F1에 참가하면서 1967년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첫 우승을 일궈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68년 로드카 판매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팀 운영에서 물러나 엔진 공급 업체로 F1에 참가하기 시작했고 80년대 후반 맥라렌과 함께 F1을 평정하면서 혼다 엔진이 한때 대세가 되기도 했습니다.
90년대 들어 혼다는 F1에 직접 참가하기로 마음을 먹게되는데 1998년 F1에 참가하려고 시도했지만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혼다는 멈추지 않고 끈질기게 준비한 끝에 BAR 팀을 인수하면서 2006년부터 자신들의 팀으로 F1에 참가했습니다.
첫 해 컨스트럭터 4위라는 성적을 거두었지만 루벤스 바리첼로, 젠슨 버튼의 강력한 드라이버 라인업에도 불구하고 레이스카가 받쳐주지 못하면서 성적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고 2008년 컨스트럭터 9위를 마지막으로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혼다는 팀 수석이었던 로스 브런에게 팀을 넘기며 F1에서 철수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혼다가 다시 F1에 발을 들인건 2015년으로 맥라렌을 시작으로 엔진 공급 업체로 꾸준히 참가하고 있습니다.
- 브론 GP
갑작스럽게 팀을 떠맡게 된 로스 브런에게 가장 급한 문제는 엔진 공급 업체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혼다가 철수했기 때문에 당연히 혼다 엔진은 사용할수 없었고 다른 팀들을 알아봤지만 새 엔진을 구하는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FIA에서 특례를 적용해 메르세데스 엔진을 사용할수 있도록 허가하면서 간신히 시즌을 시작할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험난했던 시작과 달리 브론 GP의 2009년 기세는 무서웠는데 도입된지 얼마안된 KERS를 장착하지 않은것이 오히려 레이스카 무게를 줄여주며 이득으로 작용했고 강력한 메르세데스 엔진과 함께 더블덱 디퓨저까지 3박자를 모두 갖춘 브론 GP는 시즌 초반부터 F1을 휩쓸기 시작했습니다.
후반기에는 업데이트에서 밀리기도 했지만 시즌 8승을 거두며 (버튼 6승, 바리첼로 2승) 컨스트럭터 챔피언과 드라이버 챔피언을 모두 휩쓰는 대반전을 이끌어 냈습니다.
시즌이 끝나고 맥라렌과 불협화음을 겪던 메르세데스가 투자회사와 함께 팀 지분의 75%를 사들이며 브론 GP는 메르세데스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 메르세데스
그동안 엔진 공급 업체로 활동해오던 메르세데스는 맥라렌과 함께 90년대 F1을 수놓았지만 메르세데스와 맥라렌의 관계에도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와중 메르세데스 엔진으로 깜짝 우승을 차지한 브론 GP는 메르세데스가 가질수 있는 최고의 옵션이었고 팀 지분을 대부분 사들이며 2010년 55년만에 F1에 팀으로써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페라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로스 브런을 팀 수석으로, 미하엘 슈마허를 드라이버로 영입한 메르세데스는 나머지 드라이버 한자리를 유망주였던 니코 로스버그로 매꾸며 기세좋게 출발했지만 첫 3년은 중위권에서 맴도는 성적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르세데스는 레이스카 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2013년 맥라렌에서 해밀턴을 영입하면서 컨스트럭터 2위로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그리고 터보 엔진이 다시 도입된 2014년 메르세데스는 F1을 말그대로 휩쓸면서 6년 연속 드라이버, 컨스트럭터 챔피언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이것으로 메르세데스 팀의 간단한 역사를 살펴봤습니다.
다음 편은 F1 역사의 산증인인 페라리 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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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털링 모스가 빠졌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 해 봅니다.
80년대의 티렐은 f-1 바깥에서의 사고로 팀이 나락에 빠져버렸죠. 르망 역사상 최고의 드라이버이자 뉘르부르크링의 서킷 레코드를 오래도록 가지고 있던 스테판 벨로프가 티렐의 야심작 이었는데.
그만 스파 1000km레이스 도중 28살의 나이로 사망해 버리면서 팀 전체의 플랜이 꼬여버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