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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에 월가 출신 거물을 두명이나 물리친 흑인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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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9 01:32:06

오늘은 버락 오바마 스토리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소개합니다. 1999년 늦가을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이자 인권변호사 그리고 시카고 대학교 로스쿨 객원교수를 겸임하던 38살의 버락 오바마(Barack Obama)는 시카고 남부 지역 선거구의 연방 하원의원에 도전했습니다. 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는 현역 4선 의원인 바비 러시(Bobby Rush)를 상대해야 했습니다.


53살의 바비 러시는 급진적인 흑인 결사단체인 블랙팬서 의장 출신의 흑인이었으나 오바마에게 그는 구태의연하고 무능해서 퇴출되야 하는 정치인으로 비쳐졌습니다. 그런데 시카고 남부의 흑인 유권자들은 오바마가 자신들의 이익을 잘 대변하고 있는 흑인 노장 의원을 퇴임시키려 하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바비 러시는 예비선거 내내 오바마의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물고 늘어졌고, 하버드 출신의 야심찬 백인 하수인이 흑인 지역구에서 대표적인 흑인 정치인을 몰아낼 음모를 꾸민다고 몰아붙였습니다. 오바마는 민주당 경선에서 바비 러시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투표결과는 더블 스코어 차이의 참패였습니다. 게다가 오바마는 선거 자금 때문에 적지 않은 빚을 떠안게 되었고, 아내 미셸과의 관계에도 틈새가 생겼습니다.


오바마 부부는 합산 수입이 연 30만 달러에 달했으며 백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하이드 파크의 넓은 타운하우스에서 가정부를 고용하며 상류층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바마의 잦은 선거 출마는 가정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였습니다. 연방하원의원 경선에서 러시에게 패한 후 오바마는 깊이 반성한 후 아내의 뜻에 따라 변호사 업무를 하며 시카고 대학에서 종신 교수직을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바마에게 평생 대학교수와 변호사 일을 하는 것은 따분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매일 법안을 제시하고 토론하며 현장에서 유권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을 훨씬 즐거워했습니다. 오바마는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으로 복귀해서 2년 동안 스무 개가 넘는 개혁적인 법안을 제출하고 통과시켰습니다. 주 상원의 민주당 소속 동료들은 오바마의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가 더 높은 곳에 도전한다면 돕겠다고 약속했습니다.

 

2003년이 되자 오바마는 훨씬 더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오바마의 아내 미셸은 그 이야기를 들은 후 기겁했습니다. 그녀는 지난 3년간 남편이 또 다른 선거에 뛰어들까봐 염려했고, 다른 것도 아닌 연방 상원의원 선거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가정을 빚의 수렁으로 빠트려 파멸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운이 좋아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다 해도 그녀가 원하던 단란하고 안정된 가정생활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습니다. 다정한 남편인 오바마가 유능하고 헌신적인 아내와 사랑스런 두 딸을 팽개치고 정치놀음에 몰두하는 것을 가정을 중시하는 집안에서 자란 미셸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오바마는 더 큰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고, 결국 미셸을 설득했습니다. 이번에도 지면 안정된 직장을 구하고 평범하게 살기로 약속까지 했습니다.


2004년은 대통령 선거가 있고, 일리노이 주에 배당된 2명의 연방 상원의원 중 1명을 투표로 뽑는 해입니다. 현직 연방 상원의원인 공화당의 피츠제럴드 의원이 스캔들로 인해 불출마를 선언한 가운데, 민주당과 공화당에서는 10여명의 예비후보들이 선거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었습니다. 민주당 경선 출마가 확실시되는 인물은 주 상원의원장의 아들이자 현역 일리노이 주 재무감사관(comptroller)인 35살의 댄 하인스(Dan Hynes) 뿐이었고, 오바마는 하인스와 충분히 맞상대 할 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중에 전직 연방 상원의원인 캐럴 모즐리 브라운이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모즐리 브라운은 1993년에 미국 역사상 최초로 연방 상원에 당선된 흑인 여성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임기 도중에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어 1999년 선거에서 공화당의 피츠제럴드에 패했습니다. 모즐리 브라운의 출마 선언으로 오바마는 크게 좌절했습니다. 그녀에게 흑인들의 표를 빼앗긴다면 오바마는 민주당 경선에서 승산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모즐리 브라운은 과거의 사건 때문에 민주당 후보가 된다 해도 본선에서 승리 가능성이 없다고 오바마는 생각했기에, 흑인 커뮤니티의 유력인사인 지인들에게 모즐리 브라운의 불출마를 종용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모즐리 브라운은 출마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오바마는 경선을 포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즐리 브라운이 난데없이 기자회견을 갖고 본인은 연방 상원의원 대신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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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지옥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 온 기분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댄 하인스를 뛰어넘는 새로운 강자가 민주당 예비선거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자로 10억 달러가 넘는 재산을 갖고 있던 블레어 헐(Blair Hull)이 바로 그 장본인입니다. 블레어 헐은 월가에서 각종 파생상품을 다루는 헐 트레이딩 컴퍼니를 1985년에 설립했고, 14년 동안 승승장구하다가 1999년에 자신의 회사를 골드만삭스에게 530억 달러에 매각한 후 헐 인베스트먼트를 세워 월가를 주도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월가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 가장 성공적인 사람이라는 찬사가 뒤따랐으나 2003년에 60세를 맞은 헐은 미국 상원에 진출하여 자신의 여생을 사회에 봉사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6년 임기의 연방 상원의원은 영국처럼 세습되는 귀족의 자리가 아니라 투표를 통해 선출되지만 미국에서도 귀족의 대표처럼 여겨질 수 있는 자리입니다. 미국의 자수성가한 거부들은 연방 상원의원에 출마함으로 인해 명예와 권위를 얻는 대신 자신이 이룬 부를 상당부분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고 미국의 국민들은 전부터 그런 현상에 대해 너그럽습니다. 게다가 미국의 선거 자체가 선거자금이 당락을 좌우하는 게 현실이어서 블레어 헐처럼 자신의 돈 3천만~5천만 달러를 선거자금으로 쓰겠다고 작정한 후보에게 승리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블레어 헐은 출마선언과 동시에 최상급의 선거전문가들을 참모로 기용했고, 일리노이 전체를 TV 광고로 융단 폭격했습니다. 그를 돕는 참모들의 능수능란한 전략과 광고방송에 제한 없는 금전적 능력에 힘입어 헐의 지지도는 순식간에 1위로 올라섰습니다. 블레어 헐과 백인 중산층이라는 지지기반을 공유하는 댄 하인스에게 비상이 걸렸습니다. 하인스는 아버지의 인맥 덕분에 일리노이 주에 있는 거의 모든 노동조합의 지지를 받아냈지만 헐의 무차별적인 TV 광고 때문에 그의 지지율은 하락하고 있었습니다. 하인스는 헐에 대한 두려움을 노골적으로 표현했고 헐과 공방전을 치르느라 무분별하게 선거자금을 모금해 결국 불법 선거자금 모금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블레어 헐이 최상급의 선거전문가들을 참모로 기용했지만 자타공인 일리노이 주 최고의 선거 전략가인 데이비드 엑슬로드는 오바마의 핵심 참모가 되었습니다. 엑슬로드는 예비선거가 시작되기 전에 오바마의 구애를 받았지만 두 배 이상의 보수를 주며 무제한 선거자금 사용이 가능한 블레어 헐의 선거참모가 되기를 희망해서 헐과 몇 차례 만남을 가진 바 있었습니다. 그 직후 헐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결격사유가 있다는 것을 알아챈 엑슬로드는 오바마 진영에 합류해 대통령 선거때까지 오바마의 제갈공명과 장자방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블레어 헐이 상상을 초월하는 승부욕과 추진력을 가진 것은 맞지만 그를 추진하는 힘은 정치인으로서의 비전이 아니라 귀족의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욕심인 만큼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밑바탕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댄 하인스는 헐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스스로 선거를 망치고 있었습니다. 헐이 여전히 지지율 1위를 지키는 가운데 시카고 트리뷴에서 헐의 감추고 싶은 과거를 폭로했습니다. 헐은 두 번 이혼한 경력이 있었는데, 두 번째 결혼이 막바지에 다했을 때 아내인 섹스턴에게 고소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헐이 자신을 창녀라고 불렀으며 발길질을 하면서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한 것이 그녀의 고소장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검찰은 쌍방 폭력으로 결론 내려 헐을 기소하지 않았지만 시카고 트리뷴의 보도 이후 열린 TV토론은 완전히 헐에 대한 심판장과 같았고, 헐이 질문공세에 시달리자 그의 딸이 아버지 옆으로 뛰어들어 그 질문에 대답하지 말라고 외치는 기상천외한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헐이 치욕스런 수모를 겪는 동안 오바마는 헐을 감쌌습니다. 오바마의 본심은 하인스로부터 백인 유권자의 표를 분산시키기 위해 헐이 필요했던 것이었지만 대중들은 오바마의 매너를 칭송했습니다. 오바마는 TV 토론에서 다른 모든 후보들을 압도했고, 그의 대중 연설 또한 선거의 주인공이 오바마임을 확신시켰습니다. 2004년 3월 민주당 경선투표가 종료되었을 때 각 후보의득표율은 오바마 52.8%, 하인스 23.7%, 헐 10.8%였습니다. 42살의 오바마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과반수의 득표로 민주당 연방 상원의원 후보를 쟁취했습니다.



오바마와 연방 상원의원 자리를 놓고 맡붙을 공화당의 후보는 44살의 잘 생기고 부유한 엘리트 잭 라이언(Jack Ryan)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잭 라이언 후보는 선거운동기간 내내 우위를 점하다가 막판 불법이민자와 처방약 이슈를 들고 나온 오버와이스 후보에게 상당부분 추격을 허용했고 자신의 이혼과 관련한 의혹이 투표를 앞두고 제기되어 곤혹을 치른 바 있었습니다.


잭 라이언은 아이비리그 다트머스 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과 로스쿨을 모두 최우등으로 졸업한 엘리트로 20년 가까이 월가 투자은행에서 승승장구해 1억 달러 가량의 재산을 모았고 30대 후반에 골드만삭스의 파트너 자리에 오른 입지적인 인물입니다. 하지만 40살이 되자 잭 라이언은 조기에 은퇴하고 자신의 재산과 능력을 비영리 공익 교육 사업에 바쳤고 4년 후인 2004년에 공화당 연방 상원의원 후보 자리를 차지해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정치인이었습니다.


오바마와 라이언의 대결 초반에 오바마는 48%의 지지율을 얻어 40%의 라이언을 앞서갔으나 갈수록 지지율 격차가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오바마 측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인 시카고시와 인근 메트로폴리탄지역에서의 지지율을 더욱 끌어 올려 승리하는 전략을 세웠고, 라이언 측은 라이언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무드를 타고 있어 판세를 충분히 역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라이언이 보수 백인의 표를 겨냥해 오바마를 급진적인 극좌파로 몰던 중에 그에게 절대 악재가 터졌습니다.


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는 당시 승리가 가장 유력했던 블레어 헐의 불미스런 이혼소송 기록이 공개되면서 역전의 전환점을 마련한 바 있었습니다. 본선에서 맞붙은 잭 라이언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이혼 서류철이 있어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곤혹을 치렀습니다. 잭 라이언은 전 부인인 여배우 제리 라이언(Jeri Ryan)과 1991년부터 99년까지 8년간 부부로 지내다 이혼한 바 있었고, 제리 라이언은 이혼 후에도 남편의 성으로 배우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캘리포니아 법원이 매스컴들의 집요한 요구를 받아들여 잭 라이언의 이혼 기록을 공개하도록 결정했습니다.




잭 라이언의 이혼 기록은 저녁 뉴스 시간대에 시카고의 TV에서 생중계 되었고, 블레어 헐의 이혼기록보다 훨씬 파격적이었습니다. 잭 라이언은 결혼 생활 중 아내인 제리 라이언에게 고소당했는데, 그 내용은 잭 라이언이 아내인 제리를 강제로 파리에 있는 퍼블릭 섹스 클럽으로 끌고 가서 사람들 앞에서 그와 성관계를 갖도록 강요했다는 것입니다. 제리 라이언은 사람들이 클럽 도처에서 성행위를 하고 있었고 그녀는 절망해서 울었는데, 남편은 자신에게 크게 화를 내면서 그녀에게 모욕을 줬다고 했습니다. 제리 라이언은 뉴욕에서도 남편이 감옥과 채찍 그리고 이상한 장치들이 달려 있는 클럽에서 다른 커플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그와 성관계를 갖기를 강요했다고 이혼 소송 서류에서 묘사했습니다.


이혼 서류 공개의 후유증은 엄청나서 그 다음날 아침 모든 신문이 1면 톱기사로 잭 라이언의 변태 행위를 다뤘습니다. 잭 라이언은 도저히 선거운동을 계속 할 수가 없어 2004년 6월 초에 공화당 후보에서 자진 사퇴했고, 공화당은 패닉에 빠졌습니다. 이제 오바마의 연방 상원의원 당선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로 굳어져 있었습니다.


그 즈음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존 케리와 민주당 지도부는 오바마에게 대통령 후보 지명 전당대회 화요일 저녁 기조연설을 제안했습니다. 오바마가 민주당의 세 번째 흑인 연방 상원의원으로 선출될 것이 확실한 시점에 그가 전국 매스컴의 주목을 받을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오바마는 스프링필드의 호텔방에서 연설문을 직접 작성했습니다.


2004년 6월 27일 화요일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오바마가 20분의 연설을 마쳤을 때 청중들은 완전히 광분하여 넋을 잃었습니다.


For alongside our famous individualism, there's another ingredient in the American saga, a belief that we are all connected as one people. 

If there's a child on the south side of Chicago who can't read, that matters to me, even if it's not my child. If there's a senior citizen somewhere who can't pay for their prescription and having to choose between medicine and the rent, that makes my life poorer, even if it's not my grandparent.  If there's an Arab-American family being rounded up without benefit of an attorney or due process, that threatens my civil liberties. 

It is that fundamental belief -- it is that fundamental belief -- I am my brother's keeper, I am my sisters' keeper -- that makes this country work.


인종과 나이를 불문한 민주당 대의원들은 오바마에게 동의하며 머리를 끄덕였고, 어떤 사람은 울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공화당의 부통령 지명자였던 잭 캠프가 폭스 뉴스에 출연해서 최고의 연설이었다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날의 주인공인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존 케리가 아니라 바로 전날까지 일리노이를 제외한 곳에서는 완전 무명이었던 버락 오바마였습니다.


오바마가 연설을 끝내자 예정에도 없이 미셸이 연단으로 올라와 남편의 등을 두드렸고 환호하는 청중을 향해 손을 흔들며 퇴장했습니다. 그리고 무대 뒤에서 기다리던 자신의 선거 참모들에게 오바마는 자신을 NBA의 소년 스타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I'm LeBron, ba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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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16-10-29 03:05:57

참 드라마틱하네요. 오바마가 이 악물고 한번만 더 시도해보자고 한게 인생을 바꿨군요. 미셸은 언론에서 정치인의 가족으로 주목 받는걸 정말 싫어한다고 읽었었는데 예전부터 그랬었나보군요. 특히 최근에 연설이 화제가 되면서 정치하라는 권유를 많이 받기도 하는 것 같은데 본인은 절대 안한다고 하고 있고요. 

WR
2
2016-10-29 09:45:20

버락 오바마가 사람을 설득하고 대중을 움직이는데 환상적인 능력을 지닌데 비해 미셸은 지적인 면에서 오바마보다 뛰어났습니다. 그 당시 프린스턴을 졸업하고 하버드 로스쿨에서 24살에 J.D.를 받은 흑인 여성은 미셸 말고는 전무하던 시절입니다. 그녀는 오바마보다 3살이 어렸지만 로펌의 선배 변호사였습니다. 예전부터 가족과 가정을 중요시해와서 지금도 그런 것에 변함이 없을 겁니다. (혹시나 미셸이 주변에서 부추겨 정치에 뛰어든다면 제가 조금 실망할 거 같습니다.) 미셸의 오빠도 월스트리트에서 잘 나가던 인물이었습니다.

/g2/bbs/board.php?bo_table=nbatalk&wr_id=4333347

WR
2016-10-29 09:53:06

https://youtu.be/d8hJVBrIGT0

이 영상은 2008년에 제리 라이언이 제임스 우드와 주연을 맡은 검찰 드라마 Shark 의 장면입니다.

제가 드물게 좋아했던 미드입니다. 제리 라이언은 나이 들어서 더 우아했습니다.

2016-10-29 11:23:24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아임르브론 수퍼루키다 뭐 이런건가요 그랬던 오바마가 이젠 오바마 아웃을 말하네요..

WR
2016-10-29 12:26:54

아임르브론은 말씀처럼 본인이 슈퍼루키라는 뜻도 있고 그날 연설이 르브론의 플레이처럼 빛났다는 자화자찬이기도 합니다. 오바마는 아웃을 말했지만 예전에 도전했다가 넘지 못한 장벽인 바비 러시는 70살의 나이에도 여전히 건재합니다. 하느님이 일리노이 1번 지역구에 출마해도 바비 러시에게는 못이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http://i.imgur.com/cy0bkTm.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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