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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왜 일본을 공격 못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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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7-21 12:53:01

밑에 일본에게 700번넘게 침략받았다는 글 보면 좀 이해가 안가네요
그정도로 일본이 예전부터 한국을 공격했는데 한국은 왜 일본 본토를 공격하고 침략할 생각을 못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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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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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3:02:50

고구려 정도를 제외하고는 어딜 공격해본적이 거의 없어서.. 국민성과도 관련이 있지 않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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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3:11:19

침략할 힘이 없었던 거지 침략을 안 하는 게 국민성은 아니죠. 결국 고구려가 친략을 한 것도 힘의 논리니까요. 원래 청천강 이북은 거란, 여진의 땅이었는데 세종이 4군6진을 개척한 것도 침략입니다. 우리의 국민성은 이러이러하다, 너의 국민성은 이러이러 하다는 우생학적, 인종주의적 논리의 근거가 되고 그리로 빠질 우려가 크기 때문에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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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3:24:13

동의합니다. 우리나라도 힘만 있었으면 이쪽저쪽 다 침략하고 다녔을겁니다. 그런시대였어요.하필 주위에 우리나라보다 강한나라밖에 없었을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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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3:30:27

글쌔요 남을 침략하지 않는 국민성이 나쁜 국민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란, 여진을 침략한건 그쪽에서 먼저 우리 나라를 건드렸기 때문이구요. 고구려의 경우는 애초에 땅이 워낙 척박해서 농업으로 먹고 사는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약탈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경우가 많이 다르죠.

우리 나라가 어디 다른 나라를 선제공격해서 침탈한적이 한번이라도 있던가요?(마찬가지 이유로 고구려는 제외합니다. 그 고구려도 사실 선제공격한 경우는 수나라를 공격한 것 이외에는 없는걸로 압니다)능력이 안되서 안했든 국민성이 달라서 안했든 침략전쟁을 하지 않은게 팩트입니다.

우생학적, 인종주의적 논지로 빠질 위험이 있다고 하시는데 전 어느 정도 그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논리를 바탕으로 우열만 가르지 않는다면 상관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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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3:35:08

나쁜 국민성, 좋은 국민성 나누는 것 자체가 벌써 우열을 정하고 계신 거니까요. 왜구들이 역탈을 일삼은 것도 명분으론 고구려가 처들어 간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너의 침량은 나쁜 거, 나의 침략은 어쩔 수 없는 거 따지기 시작하면 세상에 명분없는 싸움이 있을까요? 결국 힘의 논리로 귀결됩니다. 이건 논리가 아니라 인류의 역사가 그래요. 우리민족이라고 인류의 역사에서 예외일 순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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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3:37:53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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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3:39:28

그러니까 애초에 우리나라가 힘이 있었음 침략했을 것이다도 어디까지나 추측 아니신가요. 그걸 우리나라도 힘 있었음 다 패고 다녔을거야로 일반화시키시면 안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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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3:45:42

아니요, 그 이전에 침략받고, 공격 못 한 거에 민족의 우열성 따지시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게 일반화고요. 또 패고 나녔다는 가장 한 적 없고 인류보역사의 보편성을 말씀드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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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7-21 13:45:58

1. 침략 전쟁을 한 것이 팩트입니다.
2. 우생학적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시는군요. 그 차이를 바탕으로 일본인은 공격적이고 한국인은 선략하다고 주장하시면서 그래도 우열은 없다고 주장하실건가요? 모순입니다.

일본을 옹호하거나 한국을 비하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국가 간의 상호 작용이 정확히 어떻게 발생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답글 남깁니다. 주변국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면서 정작 우리 역사는 미화하는 일을 해선 안되겠죠. 우리도 충분한 힘이 있었다면 얼마든지 주변국 정벌을 감행했을 거고 그러지 못 했던건 걸국 그럴만한 여건이 안 되어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원래 평화로운 민족이어서라고 착각하는건 위험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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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3:43:42

지금 밖에 나와 있어서 글을 더 못 다는게 아쉽네요. 전 우생학적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렸고 우리나라 국민이 선략하다고 말한적은 없습니다. 맞았으면 갚아주는 국민성 좋다고 생각해요. 유약한 것과 수비적인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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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7-21 14:06:27

국민성의 차이, 그것의 우열... 우생학적 차별의 그것과 같아서 제 개인적으로는 좀 위험한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우생학적 차이라는 것은 히틀러가 갖고 있던 자신의 미적 가치와 결부되면서 폴란드인과 유태인, 집시들에 대한 씻을 수 없는 학살을, 그리고 일제는 제1신민 제2신민 제3신민 등으로 신민 등급을 나누며 억압하고, 미국 원주민들이 차별받는 그 근거가 되었습니다. 전체주의로 발전되는 그 시작점 중에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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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3:49:10

"남을 침략하지 않는 국민성"이라고 하셨는데 저한텐 그게 선량하다는 뜻으로 보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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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4:08:10

우생학의 의미와 역사적인 사례를 생각했을 때 우생학적 차이가 있다고 공개 게시판에 당당하게 말씀하셔도 괜찮은 건지 의문입니다. '나는 인종주의자다, 나치스트다' 선언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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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4:26:25

태어남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게 어떻게 인종주의, 나치쪽으로 연관이 되는지 의문이네요. 제가 우생학의 개념을 좀 잘못 이해한듯 합니다. 우생학이라는게 태어남으로 인해 생긴 차이에 우열이 있다고 보는거라면 저랑 생각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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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7-21 14:35:32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우생학이 인류의 유전에 우열이 존재하고 우생학의 입장에서 열등한 것(장애, 민족, 인종 등)은 개량해야 한다는 이론이거든요. 이걸 나치가 인종청소의 명분으로 내세웠습니다. 민족적, 인종적 특성의 보편성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우생학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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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7-21 14:38:21

우생학은 그 출발점에 있는 차이의 인식부터가 다르다의 차이가 아닌 우열적 인식을 기반으로 합니다. 긍정적인 유전자와 부정적인 유전자로 나누는 것에서 시작해서, 부정적 인자들을 제거하고 긍정적 인자들로만 채우는 것이 목적이거든요. 자연스럽게 인종 차별을 정당화하고, 정신병 환자나 노숙자, 또는 LGBT 등 사회적 약자 및 심신장애자 또는 사회적으로 도태된 분들을 억압하고, 결국 전체주의 국가들의 식민 지배마저 정당화하는 그 기반이 되기 좋았죠. 우생학 논리 자체를 오해하셨던 것 같은데, 다행입니다. 다만 앞으로 그런 오해는 정말 위험한 이론을 지지하는 형태가 되니 더 조심하시는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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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5:11:16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었네요
두분 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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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3:02:53

고려 때 몽골 연합으로 처들어갔다가 태풍으로 전멸하고 조선 때 대마도 정벌도 하고 그랬습니다만 일본은 전국시대 부터 적극적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 드리고 조총 등 군사적으로 발전했죠. 임진왜란 기점으로 일본 보다 한국이 역사를 통털어 한번도 군사력으로 강한 적이 없습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때 항모를 5척 이상이나 운용했어요. 우리는 소달구지 끌고 다닐 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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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7-21 13:27:19

사실 임진왜란 전황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된건 조총이라는 신문물보다는 일본에서 사용하던 장창의 길이나 실전 검술들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총의 경우는 왜란 후에 사실상 거의 모든 정규군들을 총포로 무장시켰을만큼 화력 덕후 집단이 조선 왕조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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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7-21 13:04:56

첫번째 이유는 이유가 없죠
일본은 대륙진출을 위한 목적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일본정벌할 이유가 없죠
대신 우리나라는 북벌을 여러번 시도했죠

두번째는 약하니까요..
일본까지 공격할 여력이 없죠
북벌도 제대로 못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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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3:03:40

일본은 섬나라라서 우리만 공격하면 되지만 우리는 북방국경지대를 방어하면서 바다건너를 공격할 정도의 땅크기와 인구수가 되지 않아서일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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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3:11:36

조선시대는 청나라 황제가 금색옷입을때
조선왕은 빨간옷 입어야되는 거의 반은
속국 비슷했다고 어디서 본거 같은데
다른나라 침략할 힘이 없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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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3:28:20

대대적으로 침공할 여력이 실제로 없었던 것과 별개로, 복색 등의 문제는 조공-책봉 관계라는 당시 외교 형태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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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4:43:13

조공-책봉관계라는게 상호 '외교관계'라기 보다
나라의 힘에 의한 불평등~ 관계이니
그 만큼 힘이 없다=청나라에 종속되었다=
왕가의 복식이 분봉왕의 그것이다=침공할
여력이 없다~~
다 일맥상통하는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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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7-21 15:23:15

학문적으로 조공-책봉 관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당시의 중국 중심의 외교 시스템 전체를 의미해요.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일본 및 류큐국(오키나와),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 등과 중국, 그리고 각 국가 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총체적인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물론 양국간의 무기대등을 기본으로 하는 현재의 외교관계보단 힘의 논리가 없지는 않겠지만요.
물론 청에게는 병자호란의 결과로 무너졌고, 실제로 중국의 통합 왕조와 힘대힘으로 붙어서 정복 전쟁을 할 여력이 있는가의 상황적 측면의 문제는 분명 닥터뱅님 생각과 다르지 않겠습니다만 그 시스템은 달리 봐야합니다.
중국의 천자는 책봉을 함으로서 자신의 서열을 분명히하고, 주변 번국의 왕들은 책봉을 받음으로서 왕권의 정당성을 얻게 됩니다. 그 열혈남 태종이 그토록 책봉에 매달려서 강한 친명 정책을 폈던 것도 그 이유였고, 광해군의 정당성이 특히 약했던 것도 책봉이 없어서도 그 하나거든요.
책봉과 관계를 위해선 조공을 보내야하는데, 그 조공에 대한 급부로 천자는 번국에 선물을 보냅니다. 근데 이 선물의 양이 어마무지해서, 조공량보다 기본적으로 더 많고, 실제 중국의 정부 내에선 '우리 먹고 살기도 힘드니 이번 조공은 받지 맙시다'하는 논의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조선은 명나라가 기존 1년 3회에서 3년에 1회로 제한하려하니까 엄청 바득바득 대들었어요.
그리고 책봉을 받은 번국 간에는 교역이 자유롭게 됩니다. 일본의 경우는 바쿠후가 생기고, 일왕이 천황임을 자처하면서 책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중국 및 그 번국과 직접적 교역관계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 반사이익을 번국인 류큐국이 또 중개무역을 하면서 얻었었고요. 태국의 경우는 정화의 원정 때 부딪히지도 않고 정당성 확보를 위해 조공-책봉 관계를 맺었는데, 임란 때 원군 보내겠다고 한 적도 있습니다. 생각보다 특이한 시스템이에요. 심지어 청 말기, 청나라와 영국 간의 무역 형태도 이 조공무역 형태였습니다. 여기선 당시까지 기술이 떨어져도 압도적인 인구수를 바탕으로 높은 생산력을 자랑하던 청나라에 반해 그 청의 차 등 고가의 물품들을 필요로했던 영국이 계속 적자를 보면서 결국 아편 전쟁으로 이어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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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3:14:48

침략전쟁은 인구수, 식량자원, 보급이 관건인데 일본을 처들어 갈만한 기술이나 국토생산력이 없어서죠. 그리고 임진왜란 전까지 일본천황이나 막부와 직접외교를 한 게 아니라 대부분 대마도주와의 거래 및 외교였습니다. 마주칠 일이 없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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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7-21 13:29:49

우선 왜구의 활동은 진정한 의미의 '침략'이라고 보기는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무장한 비정규군들이 정규군 규모로 움직인 것은 맞지만 바이킹과 달리 침범지의 거점화가 목적이라기 보단 약탈 등이 목적이었거든요. 실제 의미에 침략에 가까운 일본 정부 차원의 행위는 지금 당장 떠오르는건 백제와의 동맹을 통한 왜의 삼남 이남 지역으로의 파병과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 그리고 말하기 싫은 그 일이겠구요.
삼국시대 이래 한반도에 세워진 정권들은 기술 부족 등으로 못한 것 일수도 있지만 하고픈 요인 자체가 없어서 공격 '안'한 것이 더 클 수 있습니다. 북방 개척 이후 한동안 평화를 유지했던 조선 왕조 당시라면 성패 여부와 무관하게 하려면 할수는 있었죠. 당장 여몽 연합군 당시도 그렇고 비록 성과가 크지는 않으나 대마도에 출병한 적도 있으니까요. 실제 출병했던 당시인 대마도 원정 때도 대마도 병합은 목적 아니고, 다만 영향력 확대 및 왜구 활동 억제에 가까웠습니다.
이는 조선 당시에도 그렇고 농업 생산량이나 당시 경제 사정이 굳이 영역을 확대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안정되었거든요. 영토 확대가 개인의 정벌욕이 그 의도가 아니라면, 주로 경제 사정 때문인데 굳이 이미 편히 먹고 살고 있는데 정부 입장에서 방어 거점화도 힘든 일을 할 필요도 없던겁니다. 당장 윤관 때도 여진 정벌 과정에서 성 설치해놓고 방어 포기했고, 조선 때도 여진과 갈등이 있으면 부락 깨부숴놓고 복종시키고 돌아오는게 전형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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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7-21 16:51:31

사실 왜구도 침략으로 칠거면 한국도 신라구들이 일본 남부 큐슈일대를 약탈 및 살육을 해서 공포에 떨었다는 기록이 제법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뭐 물론 한국에서 지금 역사시간에 그런것을 가르치지는 않죠. 그 이후로는 중앙집권 왕조의 정책상 바닷가 공도정책과 국가허가로만 교역을 하는통에 대규모 해적집단이 조직되기 힘들었을거라 생각되구요. 어쨋든 이 신라구에 대해서는 일본역사서에는 자세하게 언급이 있는것으로 압니다.

그외에도 조선시대 중기 이전만봐도 관군들이 북방의 여진족 촌락들을 수시로 침략해 몇백단위로 일거에 학살, 토착민들을 자신들의 고향에서 내쫓고 마을을 싹다 불태우거나 하는식으로 사실 엄청 괴롭혔어요. 한국 민족이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다? 그런건 허상같네요 그저 국력이 약해서 대규모 정복전쟁을 해본적이 없을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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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3:35:08

맞아요. 신라 해적들 때문에 규슈 사람들이 살 수가 없었다고 하죠. 저는 이런것도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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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3:32:03

해서 얻을 이점도 별로 없었고, 고려시대쯤 부터는 국력 차도 꽤 많이나서 할 능력도 없었죠.
특히 임진왜란 이후의 국력차는 넘사벽이었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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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3:36:41

덧붙여 일본을 공격 안한 이유는

능력이 됐을 때 이를테면 세종 때에는 첫째, 명분이 없었고 둘째 실행비용 대비 가치가 현저히 떨어져서죠. 일본에 대규모 침략할 명분이 없거니와 고려 때 실패에서 겪었던 것처럼 풍랑을 뚫고 가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고생해서 뚫고 가도 고작해야 섬나라인데 좋은게 하나도 없단 말이죠 혹시나 정벌에 성공해도 그 후에 다스리려면 또 어마어마한 물자와 인력이 필요한데 그럴 가치가 전혀 없다는게..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이 섬나라여서 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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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3:56:31

왜구때문에 일본침략을 할거면 명나라가 먼저했겠죠. 우리나라는 소소하게 털린 정도면 (털게 별로 없어서 그런것도 있지만) 명나라 강남지역은 거의 은행강도 수준으로 금은보화도 자주 털렸죠. 명나라나 조선이나 일본을 털어서 왜구를 막는건 거기서 몽고처럼 대학살을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고 해안 방어를 강회하는 수준으로 대비하는게 훨씬 호율적이라는걸 알았을겁니다. 명나라 정부하고 일본 막부하고 왜구소탕에 대해서 의논하고 이런 자료도 많아요. 일본정부도 못막는데 명이나 조선이 쳐들어가서 소탕하는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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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4:04:15

간단하게 명분ㆍ실익ㆍ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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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4:14:45

섬나라인 일본을 침략하는게 쉽지 않을뿐더러, 하더라도 얻을게 별로 없었겠죠. 비슷한 예로 작은 섬나라인 영국을 국가가 성립된 이후로는 성공적으로 침략한 사례는 역사상 단 한번이죠. 북벌해서 대륙으로 뻗어나가는거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중국과는 힘차이가 꽤나 컸고요. 그리고 국력도 차이가 꽤 났고요. 한반도가 꽤나 살기 좋은 땅에 속해서 굳이 무리해서 타국을 침략할 필요도 없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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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7-21 14:42:52

사상의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호사카 유지씨가 쓴 글은 본 적이 있는데 일본인의 의식에는 기본적으로 손자병법이 깔려있다고 하네요. 힘의 논리가 중요시되고 지는 것은 악으로 여겨진다는 내용을 봤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성리학이 융성했다는 점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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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7-21 20:02:31

명분, 실익의 문제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대마도 정벌만 봐도, 고려-조선때 축적해 놓은 전투 스타일하고 맞지가 않아서

가성비가 떨어지고 고전한 측면이 있었죠. 실제로 정벌군 1만7천 데리고 가서 해안쪽은 싹슬이 했지만

대마도 안쪽 산악지대에서 벌어진 육전에서 피해 규모는 적었지만 패퇴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해안쪽에서 몰려드는 다른 왜구들 견제도 해야하고 좁은 지역에 2만에 가까운 병사가

머무를 해안 거점 기지 만드는데도 어려움이 있다보니 제대로 된 육전을 벌이지 못했죠.

 

아무래도 주 전투 상대가 북방민족들이다 보니 방어할땐 철저하게 수성전으로 하고 

대규모 공세시엔 기병전력을 이용한 회전을 주로 했던게 고려-조선

(초기에도 그랬고, 임란 전 여진이랑 싸울때도 그랬죠)의 전투 스타일이었는데, 

일단 바다를 건너야 하니 주 전력의 절반은 수군으로 꾸릴 수 밖에 없어서

일본 본토에 투입할 육군력 자체가 줄어드는 판국에 기병회전을 하려면 말까지 싣고가야 하는데다,

일본도 완벽한 평야지형이 아닐뿐더러 수성 가능한 곳이 많았기 때문에

그나마의 육전 병력을 또 공성에 할애해야할 상황이었죠. 결국 일본 한 번 제대로 털려면

십만군사를 모아가더라도, 육전 병력은 많아야 6~7만정도 활용 가능하고,

 나머지 수군은 일본 본토의 좁은 해안에 장기적인 공격 거점 육성하면서 몇달~수년을 있어야 한단 얘긴데

북쪽에도 화근거리가 있는 조선 입장에선 못할 짓이었죠.

(일본이야 전국시대 끝나고 남는 물자랑 병력 그냥 일방적으로 임진왜란때 갖다부은격이니 차이가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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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4:40:30

그냥 바다건너 일본까지 침략할 여력이 없었죠
신라부터 조선까지 계속 당했지만 수비가 전부였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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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5:12:58

일본은 그 천하무적이던 몽골도 침략시도했다가 포기했던 곳 아닌가요~

우리가 아무리 여력이 있었다고한들 일본침략은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야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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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7-21 15:46:45

5세기에는 고구려가 왜국을 공격해서 송나라와 연결하는걸 차단했다는 기록 신라가 일본 서쪽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있긴 합니다. 고려도 10세기에 수군을 이끌고 강제로 일본을 개항시키시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백제, 가야 - 혈맹인데 쳐들어갈 유인이 없음
신라 - 백제 고구려 상대하기도 바쁨, 삼한일통 이후에는 이 때는 딱히 왜적 문제가 두드러지지 않음
고구려, 발해 - 원교근공
고려 - 거란 여진 몽골 상대하기에도 힘이 부침, 후반기 왜구 때는 나라가 몽골에게 박살난 상태
조선 - 이 때는 서로 만만한 상대도 아니고 일본 잡는다고 왜구 근절된다는 보장이 없음

역사적으로 북쪽으로는 기병 강국들이 득시들거리고 서쪽으로는 최강의 물량 강국인 중국과 부대낀 상황에서 쓸데 없이 전선을 늘일 이유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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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7:13:07

근대 이전 '일본'의 침공은 임진왜란 정도죠. 왜구는 중국도 근거지를 제대로 토벌하거나 한 적이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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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8:51:53

한반도는 역사내내 북방의 이민족이나 통일왕조의 침략으로 국력이 소모되어왔기에 수군을 꾸려 일본을 침략할 여력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왜구의 규모도 단순 노략질수준이 아니라 상당한 규모의 조직적인 집단이라 명나라조차도 속수무책으로 털렸고. 이성계가 당시에 괜히 구국의 영웅취급받던게 아니죠. 자잘한 섬까지 포함한수치지만 기본적으로 일본열도가 기본적으로 한반도보다 두배가까이 커서 조선중기쯤엔 일본에게 인구수,농업생산력을 추월당하기도 했기에 한반도 통일왕조가 일본을 침략하는건 명분도 여력도 없고 침략을 통해 얻을수있는 이해득실도 불분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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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9:45:27

일본 본토는 몰라도
대마도는 정벌해서 해군기지 정도로 만들어도 좋았겠다 생각은 드는데
안한데엔 이유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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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20:07:06

아마 조선 초기 대마도 정벌때 병력하고 물자를 좀 더 넉넉하게 가지고 갔으면 고전은 했겠지만

대마도를 완전 복속(군신관계가 아닌 직접 통치지역으로)시킬수도 있었을 겁니다.

지리도 파악하고 해안에 거점도 만들고 명나라쪽으로 갔다 리턴하는 대마도 왜구도 영격해야 

대마도 완전 정복이 가능할텐데 조선이 그정도 까지 준비한 정벌은 아니었던지라...

 

다만 2백년뒤에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칠 줄 알았으면 그때 대마도를 어떻게든 했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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