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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우트(Doubt)>의 원작 희곡의 서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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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6 18:07:07

2008년에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 주연했던 영화 <다우트(Doubt)>의 서문을 한번 같이 보고 싶어 올립니다. 

 

영화 정보는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1689 여기를 참조하시면 될 듯 합니다. 두 명의 명 배우의 연기가 스크린에서 흘러넘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감독이자 각본을 썼던 존 패트릭 샌리가 쓴 글입니다. 약간 종교적인 글일 수 있겠지만, 종교의 필터 없이 보아도 꽤 괜찮은 글이라 생각되어 여기에 올립니다. 아직 한국에 번역본은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그냥 제가 번역해서 올립니다. 오역이나 잘못 전달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저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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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당신은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쌓아온 것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연극 안에는 조용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물론 어떤 사회에서도 말 못할 무언가가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눈에 띄게 드러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정치 토크쇼나, 미디어의 연예 면에서나, 여러 종류의 예술 비평의 측면에서나, 종교적 논의에서도 두드러집니다. 우리는 법정 문화 속에 살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유명인의 문화 속에 살고 있었지만, 그건 죽어버렸습니다. 현재 우리는 극단적인 옹호이거나, 반대하거나, 판단하거나, 판결을 내버리는 풍토 속에 살고 있습니다. 논의는 토론에 밀려 길을 내주었습니다. 소통은 의견의 다툼이 되어버렸습니다. 공적인 대화는 혐오스럽고 쭉정이만 남았습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아마 대화 깊숙한 곳 우리가 알지만 모르고 있는 어떤 것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제가 질문하나 해 보겠습니다. 논쟁에서 어떤 불편한 지점의 의견을 앞세워본 적 있으신가요? 극도로 피곤한 상태에서 자신의 삶의 방식을 변호해 본 적 있으신가요? 믿음이 완전히 사라진 신념을 위해 봉사를 해본 적 있으신가요? 어느 소녀에게 사랑을 고백한 후, 신념이 무너지는듯한 흐릿한 현기증을 느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순간이었습니다. 극본을 쓰기 시작할 때 처음으로 들었던 생각이었어요. 전 극본을 세워나갈 작은 공간을 찾았고, 그 극본은 내 인생의 시간 속에서 조용히 숨어있었었죠. 전 이 제목으로 시작했습니다. 의심.

 

의심이란 무엇일까요? 우리 각자는 모두 행성과 같습니다. 거기엔 견고한 지질학적 표면이 있고, 얼핏 영원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 질문을 한다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우리의 현재 모습을 표현할 겁니다. 저는 여러분들처럼 수없이 많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알고 있습니다. 너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는가? 신의 존재를 믿는가?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구인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 여러분의 대답은 여러분이 현재 위치하고 있는 지형이고, 얼핏 영원해 보이지만 그렇게 현혹되어서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한 대답의 이면에는 또 다른 당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없는 존재는 그저 즉흥적으로 움직입니다. 아무런 설명 없이 형체나 언어도 없이 의식이 길을 터줄 수 밖에 없을 때까지 솟구쳐 올라옵니다. 

 

이것이 (종종 처음에는 나약함으로 경험하게 되어)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의심입니다. 인간이 흔들리거나 불안해지거나 어렵게 얻은 지식이 눈앞에서 증발해버릴 때 인간은 성장의 순간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 외면적인 자아와 내면이 미묘하고도 난폭하게 조정을 할 때에는 처음에는 길을 잘못 들어서 헤매는 실수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익숙한 것을 향하는 단순한 감정일 뿐입니다. 인생은 당신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혼이 굳어버린 정신을 뚫고 나오는 지질학적인 현상이 일어날 때 펼쳐집니다. 의심은 현재로 다시 들어가는 기회일 뿐입니다.

 

연극. 전 이 이야기를 구상했던 1964년은 저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일종의 사춘기를 지나가는 듯 했습니다. 오래된 방식들은 행동, 옷차림, 도덕관념, 세계관을 지배했고 생기있던 표정은 죽어버린 가면으로 변했습니다. 전 브롱크스의 애덕 수녀원이 운영하는 카톨릭 교회학교를 다녔습니다. 이 여인들은 검은 옷을 입고 지옥의 존재를 믿고 그들의 남성 상대방을 받들고, 우리를 교육시켰습니다. 우리를 하나로 엮은 신념은 종교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기로 합의하고 꾸는 꿈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했지만 사회적 계약이라는 거래를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것을 믿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믿었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제가 느끼기에 당시 그런 학교들에서는 우리는 영원한 하나의 공동체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성인이었고, 우리는 모두 아이였습니다. 우리는 다른 많은 동물들처럼 함께 모여 따뜻함과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그 결과 우리를 노리려는 누군가에게 어처구니없이 위험한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믿음이 나날의 계율이면 약탈자들은 약탈하기 좋은 순간입니다. 그리고 약탈은 벌어졌습니다. 교회의 추문이 드러나 널리 퍼지자, 그 사냥꾼들에게는 좋은 날이 온 겁니다. 그리하여 목자들은 겉모습에 투자했고 위선의 대가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희생했습니다. 

 

전 그 시절의 교훈을 절대 잊지 않았지만, 그것에서 충분히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전 아직도 함께 공유되는 확신이나, 안전하다는 가정, 무엇이 최선인지에 대해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알고 있다는 다시 확인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지혜로운 사람들이 오랜 기간 단련했던 그 가치의 씁쓸한 필요에 따라 끌려왔습니다. 의심이라는 것이죠.

 

믿음이 무너지었지만 위선은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양심은 흐려졌지만 변화까지는 일어나지 않았던 불편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는 인생에서 가장 위험하면서도 중요하고 현재 진행형인 경험입니다. 변화가 시작되는 지점은 의심의 순간입니다. 저의 인간성을 드러내거나 혹은 거짓말쟁이가 될 수도 있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의심은 신념보다 더 큰 용기와 에너지를 요구하는데 그 이유는 신념은 머무는 장소이지만 의심은 무한하여 열정적인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저의 연극을 보고 확신을 못한 채로 나올 겁니다. 여러분들도 이 부분에서는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그런 감정들은 무시하세요. 우리는 불확실을 충분히 탐구하며 살고자 배워왔습니다. 마지막 말이란 없습니다. 우리 시대 말의 잔치 속에는 침묵만이 있습니다. 

 

존 패트릭 샌리

2005년 3월

뉴욕 브루클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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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9-04-26 21:30:07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WR
2019-04-26 21:51:55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심은 신념보다 더 큰 용기와 에너지를 요구'한다는 글귀가 가슴 속에 오래 남습니다.

2019-04-26 22:04:06

저도 그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제까지 저는 신념은 능동적, 의심은 피동적이라고 도식적으로만 여겨왔는데....

플라이 호네츠님 덕분에

이제까지 생각해보지 못한 사유의  방향성을 배웠습니다.

 

주제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시대의 유행하는 공기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서술한다는 점에서 필립 로스의 '휴먼 스테인' 도입부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콜먼이 내게 포니아 팔리에 대해, 그리고 자신과 그녀와의 은밀한 관계에 대해 털어놓았던 그 여름은, 정말 어울리게도 빌 클린턴의 비밀스러운 사생활이 세상에 낱낱이 까발려졌던 바로 그 여름이었다. 마지막 한 오라기까지 생생한 세부적 사실들, 그 생생함은 수치심과 마찬가지로 낱낱이 까발려진 구체적 사실들의 적나라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누군가가가 <펜트하우스> 과월호에서 새 미스 아메리카의 누드 사진들을, 그것도 우아하게 두 무릎을 꿇거나 등을 바닥에 대고 누운 자세로 찍은 사진들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로 인해 망신살이 뻗친 젊은 여성이 미스 아메리카 왕관을 포기하고 대신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대중 스타의 길로 들어서게 했던 사건 이후 우리는 클린턴의 이추문만큼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사건이 벌어진 계절을 보낸 적이 없었다. 뉴잉글랜드의 1998년 여름은 최고의 열기와 화창한 햇볕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계절이었고, 야구에서는 새로운 신화를 써가고 있던 흰 피부의 홈런왕과 갈색 피부의 홈런왕 사이에서 홈런 셩쟁이 벌어진 계절이었다. 미국에서는 그해 여름은 또한 수컷의 욕구를 주체하지 못하던 중년의 철부지 대통령이, 주차장에서 십대 아이들이나 할 만한 짓을, 뻔뻔하고 수컷에 홀딱 빠진 스물한 살짜리 여직원과 대통령 집무실에서 해오고 있었다는 사실로 인해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동체적 열정이자, 역사적으로 그 열정에서 가장 위험하고도 파괴적인 부분인 자기만이 성자인 척하는 감정적 도취가 부활하여 테러리즘-국가안보에 대한 가장 큰 위협으로 여겨지던 공산주의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의 뒤를 잇게 되면서, 경건함이니 순수함이니 야단법석을 떨어대면서 보낸 계절이 되고 말았다. 의회와 신문 그리고 방송에서는 자기만 옳다는 주장으로 눈길을 끌어 인기를 얻어보려는, 남탓을 못해, 남의 잘못을 개탄하지 못해, 그리고 그런 잘못을 처벌하지 못해 안달인 볼썽사나운 인간들이 도처에서 설교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오래전 미국이라는 나라가 막 생겨나고 있을 무렵 호손(이 사람은 1960년대에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불과 몇 마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살았다)박해풍토라고 밝혔던 잘 계산된 분노 상태에 있었다. 그들은 대통령과 장관들의 발기된 성기를 모두 잘라 리버만 상원의원이 열 살짜리 딸과 다시 마음 편히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있도록 만사 평안하고 안전하게 해줄 엄격한 정화의식을 실행에 옮기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1998년이라는 해를 견뎌내지 않은 사람은 자기만이 성자인 척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신문 연합의 보수적인 칼럼니스트 윌리엄 F. 버클리는 대통령의 부정행위-버클리는 다른 글에서 클린턴의 억제할 수 없는 육욕이라고 언급하기까도했다-를 빗대어 아벨라르가 그런 행동을 했을 때는 재발 방지가 가능했다면서 지금처럼 전혀 피를 보지 않는 탄핵 따위가 아닌, 차라리 아벨라르 참사회원이 처녀였던 퓔베르 참사회원의 조카딸 엘루아즈를 유혹해 몰래 결혼까지 해버렸다는 이유로 칼을 통해 아예 그 원인을 제거해버린 퓔베르의 교회만능주의자 동료들의 12세기 식 형벌이 최상의 방지책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살만 루슈디에게 사형을 선고한 호메이니의 파트와 달리 거세라는 징벌로 교정을 하고자 하는 버클리의 간절한 열말을 실행에 옮기느라 손에 피를 묻히게 될 형 집행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 같은 것은 전혀 약속되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야톨라의 판결처럼 엄격하지만 숭고한 이상을 위해서라는 분위기가 그러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었다.

미국에서의 그해 여름은 혐오감이 재발했던, 대통령의 사생활을 소재로 하는 조크가 끊이질 않았던, 그리고 억측과 이론화, 과장이 난무했던 계절이었다. 어른들의 생활에 대해 아이들이 계속 환상을 갖도록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생활이 얼마나 추잡스러울 수도 있는 것인지 설명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저버렸던, 인간은 떳떳치 못한 존재라는 점이 너무도 간단히 결정나버렸던 계절이었다. 갇려 있던 악귀가 온 나라를 헤집고 다녔고 당사자나 구경꾼 모두가 도대체 우리가 왜 이렇게 미쳐 돌아가고 있는 걸까의아했던 계절, 남녀를 막론하고 아침에 깨어나면 시샘이나 혐오의 경계선 너머로 자신들을 데려가는 잠 속에서 자신들 또한 밤새도록 빌 클린턴이 보여줬던 그런 뻔뻔함을 어떻게 하면 지닐 수 있을까 꿈꾸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던 그런 계절이었다. 나는 크리스토의 허무주의적 작품처럼 백안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완전히 감싸는, ‘이 안에도 한 인간이 살고 있을 뿐이라는 짤막한 글귀가 들어가 있는 대형 플래카드가 드리워진 꿈을 꾸었다. 이제까지 셀수도 없이 그래돴던 것처럼 그해 여름은 난잡함, 혼란스러움, 지저분함 자체가 부지불식간에 이사람의 이념이나 저 사람의 도덕성보다 훨씬 더 큰 작용을 하는 요소임이 증명된 계절이기도 했다. 그해 여름은 대통령의 성기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을 점령하고 있었고, 부끄럼을 모르는 온갖 추잡함으로 얼룩진 인생이 다시 한번 미국 전체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았던 계절이었다.

 

WR
2019-04-26 22:10:50

리플로 남겨주신 글도 정말 멋지군요. 기회가 되면 작품도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04-26 22:12:02

좋은 하루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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