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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을 맞아 쓰는 짧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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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7 00:19:26

 사회인이 되고 2/3 이상의 기간을 학생들을 가르치며 보냈던 터라.. 스승의 날이 되면 생각나는 에피소드도 많고 또 그렇기에 가끔은 좀 가슴 한 켠이 휑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그렇네요.

 

 아이들을 처음 가르쳤던 건 2004년이었습니다. 어느 새 14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렸네요. 이때는 그냥 시급이 좋아서 멋모르고 시작했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참 별거 아닌, 20대 초반 어리고 어리숙한 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제가 하는 말과 가르침에 조금씩 변화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거의 10년정도를 이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지요.

 

  이때 가르쳤던 아이들 중 몇몇은 아직도 연락이 되곤하는데 이제는 성인이 되어 훌륭히 자기 분야에서 자리를 잡고 활동을 하며 결혼까지 앞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뭐랄까요, 제가 키운 것도 아닌데 작은 벅차오름을 느끼곤 합니다.

 

 몇년이 흘러 학원도 보다 규모가 있는 곳으로 옮기게 되었고, 맡아야 하는 학생의 수도 꽤나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약 100~120명 정도를 왔다갔다 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과 관계를 잘 유지하고, 공부를 좀 더 재밌게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내기에 이르는데요. 이름하야 테스트 레터 였습니다.

 

 당시 저는 매 시간 수업전에 테스트를 시행했는데, 문제 유형은 객관식은 한 문제도 없이 모두 서술형 주관식뿐이었습니다. 객관식은 찍어도 맞지만 서술형 주관식은 풀이를 보면 아이가 어떤 부분을 모르는지 파악이 되기때문이었는데요. 서술형 주관식이다보니 문제 수가 많지 않고 하여 테스트지에 공백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매일 100여명의 시험지를 걷어 채점을 하고 테스트지의 구퉁이에 오늘 수업태도에 대한 부분과 테스트에 대한 부분, 예를 들면 수업시간에 이부분에서 집중을 못하는 것 같았는데 역시 이 부분을 놓친 것 같구나. 부터 오늘의 컨디션이라든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편지삼아 아이들에게 적어서 다음시간 나누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아이들이 적응을 못하더라구요. 이게 뭐냐고 입을 삐죽이는 녀석, 얼굴을 붉히며 조용히 시험지를 책갈피에 끼워넣는 녀석, 꾸기넣듯 가방에 쑤셔박는 녀석등등..

 

 그러다가 하루 이틀이 지나고 시간이 흐르니 아이들이 조금씩 변화가 되더라구요. 제가 나누어준 시험지에 다시 편지를 써서 되돌려 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 안에는 오답풀이 뿐 아니라 오늘 수업에 대한 피드백, 요즘 고민이 되는 일상이야기 등등 다양한 얘깃거리들이 담겨 있었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비록 학원 강사일 뿐이지만 아이들과 깊은 유대관계를 갖게 되었습니다.

 

아, 이런 제자랑..을 쓰려고 한건 아니고 진짜 자랑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이렇게 쌓은 유대관계는...이후 제가 학원을 옮기고, 아이들이 졸업을 한 후에도 이어져갔습니다.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는 진로에 대한 문제, 직업에 대한 문제, 때로는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 남자녀석들은 군대에 대한 문제 등등 이제는 자기를 가르치지 않는데도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연락이 오며 고민을 토로하는 녀석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녀석들은 나의 어떤 면을 보고 지금까지 의지하고 관계를 이어가는 것일까 의아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론 굉장히 고마워지더라구요. 그리고 현실에 지쳐, 삶에 치여 쓰러지려 할때마다 녀석들을 보며 또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곤 합니다. 지금은 학원을 벗어나 전혀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이렇게 무언가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제 등뒤에 있는 저를 지켜보는 많은 이들의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되구요. 어쩌면 제 지난 10년의 증명이 되어주는 이 녀석들이 지금 저의 가장 큰 보물들이 아닐까..합니다.

 

 가르친지 10년도 더 지났는데 스승의 날이라고 연락온 제자녀석의 카톡에 갑자기 무언가 감상에 젖어 아무도 관심없을만한 글을 너무 길게 적어버린 것 같네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매니아분들의 등 뒤에도 분명 많은 이들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저처럼 선생과 학생이 아니더라도, 친구, 가족, 다양한 관계의 지인들이 여러분을 믿고 있으며 언젠가 힘들어 잠시 쉬어가고 싶을 때 뒤돌아보면 언제든 손을 내어줄 준비를 하고 묵묵히 뒤를 지키고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란걸,

 누군가를 믿고 누군가의 믿음을 받고 있는 존재라는 걸 잊지 않고 용기를 내어 오늘 하루도 힘차게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매니아 회원 여러분 모두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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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18-05-17 00:39:24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들어갔을텐데, 참 대단하세요.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1
2018-05-17 09:27:18

돈이 많고적고를떠나 성공한 인생이네요
적어도 마음만은 풍족하실것같아요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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