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주의에 가까웠던 제가 곧 3일 뒤에 결혼을 합니다.
오늘로 모든 결혼 준비를 거의 마치고 이 글을 쓰네요.
34살이 될 때까지 커뮤니티에 글을 써본 적이 없는데 작년 부터 매니아에 빠져 엔게나 프리톡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함께 경기도 보고 프리톡에 올라오는 얘기들에 공감도 했던지라 제 얘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결혼 할 생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누구보다 제 시간이 소중한지라 결혼 이후에 시간을 배우자에 대한 희생이라 생각해 왔던 것 같아요.
학부 때부터 학기 중 주말은 과외에,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겨울 시즌엔 시즌 내내 스키에, 틈만나면 방학 때는
여행에 그렇게 지냈던지라 늘 교제하던 친구가 있음에도 굳이 결혼을 해야하나 싶었어요.
20 대 후반 무렵 꽤 오래 교제하던 친구와도 그 문제 때문에 헤어졌구요. 20대의 절반을 함께 지낸 친구였는데
결혼에 대한 확답을 달라는 얘기에 결국은 못하겠다 했어요. 네가 싫은게 아니라 결혼을 함으로써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그리 오래 만난 후에 헤어졌으면 슬플 법도 한데 저는 전혀 슬프지가 않더군요.
맨날 보는 친구들 조차도 저에게 비난을 할 정도로 멀쩡했어요. 이기적이었기도 했고 그만큼 아직 하고 싶은것들이
많았구요.
그러나 지금 결혼하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원래부터 동아리 모임에서 보면 인사만 하던 후배였는데 점점 친해지다가 사귀게 되었고 이 친구를 만났던 초반에도 저는 역시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했습니다. 평소엔 너무 바빠 같은 직장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여도 30분 보기도 쉽지 않았지만 휴가가 나면 제가 한창 빠져있던 스쿠버다이빙을 위해
혼자서 모든 휴가를 짜내서 여행을 다녀왔구요 그나마 가끔 있던 여유있던 주말엔 산에 너무 가고 싶어 등산이라고는 해본적도 없는 아침잠 많은 여자친구를 깨워서 제가 다니던 산에 끌고 다녔어요. 툴툴댈법도 한데 모든 걸 이해해주는 여자친구가 더 편해서인지 이기적이었던 저는 계속 그런 형식의 연애를 하고, 또 여자친구에게 동의없이
통보처럼 1년을 외국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 친구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장 힘든시기와 겹쳤음에도
불구하고 기다려주더라구요. 연락도 잘 되지 않는 곳이었는데 한국에 돌아올때까지 먼저 날마다 먼저 연락하고 돌아와서도 예전처럼 좋아해주고 이해해주고.
이 순간 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던 모든 것들에 대해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하고 여자친구와 지내는
시간이 너무 즐거워지기 시작했어요. 구체적인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이 친구가 좋아하는 걸 함께 하는게 더 즐겁고 그 시간이 기다려지고 헤어지기 싫어지더라구요.
그래서 저희는 연애를 시작한지 4년 조금 넘은 3일뒤에 결혼을 합니다. 노느라, 좋아하는 취미를 즐기느라, 후배들 친구들에게 술 사느라 모아놓은 돈도 거의 없는 저에게
'오빠, 나는 원룸형식의 오피스텔 이라도 함께만 살 수 있으면 좋아' 라고 말해 주는 정말 천사같은 친구입니다.
평생 정직하게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오늘로 결혼 준비를 마치고 나니 묘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 쓰다보니 길어졌네요.
먼저 결혼 하신 인생선배님들 너무 존경합니다. 양가 부모님들께서 저희 좋은대로 하라고 하셔서
준비가 수월했음에도 날짜를 잡은 이후로 4개월 동안 신경쓸일이 너무 많았네요.
다시 한번 존경합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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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멋지십니다. 감동적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