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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심보선ㅡ여, 자로 끝나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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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1 23:21:11



안녕하세여, 어디가세여, 나 몰라라 도망가지 말아여, 우리 피시방에서 만났던가여, 아니, 전생이었던 것 같네여, 어떻게 지내셨어여, 전 오늘 좀 슬퍼여, 사실 애인이랑 막 헤어졌어여, 육 개월 동안 밤마다 애무하던 그녀 다리가 의족인 줄 어제서야 알았어여, 뭘여, 제가 나쁜놈이지여, 저 위 좀 보세여, 저놈의 달은, 누가 자기 자리 뺏어갈까봐 낮부터 저러고 버티고 있네여, 참 유치하지여, 한 백 년 만인가여, 기억나세여, 당신의 아버지를 어머니라고 부르곤 했지여, 그냥 친근해서여, 전 호부호형 안 해여, 다 어머니라고 해여, 제 삶은 홍길동전과 오이디푸스 신화의 희극적 만남이지여, 도대체 누구냐고여, 몇 생 전이던가여, 우리 어느 심하게 게으른 나라의 국가대표 산책팀 소속이었자나여, 기억 안 나세여, 왜 저보고 사는 게, 납치할 아이 하나 없는 세상의 유괴범처럼 황당하게 외롭다고 그랬자나여, 불어였던가여, 스페인어였던가여, 왜, R 발음에 세상에 모든 부조리를 우겨 넣은 듯한 언어로 말했잖아여, 그렇지여, 첫번째 생 다음은 다 후렴구이지여, 그렇지여, 신은 희로애락을 무한의 버전으로 믹싱하는 DJ지여, 그렇지여, 우리 인간은 그 리듬에 맞춰 춤이나 출 따름이지여, 같이 커피나 한 잔 하실래여, 전 크림 안 넣어여, 하얀 게 뭉게뭉게 번져가는 걸 보고 있음 괜히 기분 나빠져여, 뻔한 성적 상상력에 지나친 예민함이라고나 할까여, 누구 기다리세여, 다행이군여, 요새는 뭐 하시나여, 전 요새 시 다시 쓰고 있어여, 사실은 아무거나 쓰고 이거 시다, 그러고 있어여, 엊그저께는 이력서에 사진까지 붙이고, 이거 시다, 이거 이력서 아니다, 그랬지여, 취직은 몇 번의 후생에나 가능하다 여겨집니다여, 아, 제가 이상한 놈으로 보이나여, 님의 표정이 불편하다는 의사를 살짝 비춰주시네여, 그러세여, 붙잡지 않겠어여, 커피 값은 제가...... 아, 그래주면 고맙지여, 안녕히가세여, 시간 뺏어서 죄송합니다여, 다음 생에 볼 수 있음 또 보지, 아님 말지,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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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1 23:55:58

심보선씨 시, 좋아합니다. 슬픔이 없는 십오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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