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p
자동
NBA-Talk
/ / / /
Xpert

[그리즈의 로스터 살펴보기] 3. Charlotte Bobcats

 
1
  2498
2010-09-23 16:59:43

안녕하세요~ 추석 연휴의 끝자락에 세번째 시리즈 글로 인사 올립니다.
ABC순서에 따라 세번째 팀은 샬럿 밥캐츠가 되었습니다.

글 순서는 경력이 가장 긴 선수- 경력이 가장 짧은 선수(이번 드래프트의 신인들이 되겠군요.)-드래프트 순위가 가장 낮았던 선수(언드래프티는 제외)- 드래프트 순위가 가장 높았던 선수-외국출신인 선수-나를 빼놓으면 섭하지(그 전 코너에서 다뤄지지 못했지만 꼭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선수)의 순으로 진행 될 예정입니다.

본 글의 정보 출처는 해당 팀의 공식 홈페이지와 미국 야후 스포츠, 그리고 영문 위키피디아를 참고로 하였습니다. 본 글의 정보 대부분은 영문 위키피디아가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부족하고 못난 시리즈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셨으면 하는 부탁을 드리면서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글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정정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지난 보스턴 셀틱스 글에서 샤킬 오닐을 다룰 때 "그는 현재 린제이 헌터의 은퇴로 NBA 현역 선수들 중 가장 오래된 경력을 갖고 있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라고 썼는데 그 부분에 대해 올리버밀러님이 댓글로 의문점을 지적해주셔서 저의 번역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수정을 하려 했으나 답글이 달린 글은 수정이 되지 않아 부득이하게 서문에서 정정합니다.

가장 오래된 경력이 아닌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로 정정합니다.(헌터가 70년생이고 오닐이 72년생입니다.)

저의 부족함으로 번역이 잘못되어 오류가 있는 글을 쓴 점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경력이 가장 긴 선수]

샬럿에는 경력이 가장 긴 선수가 두 명이 있습니다.

첫번째 선수는 이 선수입니다.



래리 휴즈입니다. 12년차가 되었습니다.

휴즈는 98년 1라운드 8번으로 필라델피아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농구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는데 97년 미주리 주 챔피언쉽에서 우승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세인트루이스 대학에서 1시즌을 뛰었는데 평균득점 20.9 점과 평균 5.1리바운드 평균 2.4 어시스트와 평균 2.16스틸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98년 드래프트를 통해 NBA 무대에 입성한 휴즈는 다양한 팀들을 거칩니다.

그 와중에 휴즈는 04-05시즌 All-Defensive 1st Team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필라델피아- 골든스테이트- 워싱턴- 클리블랜드- 시카고- 뉴욕- 샬럿 등의 팀을 거칩니다.

클리블랜드에서는 르브론 제임스와 한 솥 밥을 먹기도 했고 워싱턴 시절에는 아레나스와 뛰기도 했습니다.

원래 휴즈는 트레이시 맥그레이디가 끼인 삼각 딜에 포함되어 새크라멘토로 건너갔었으나 새크라멘토는 2010년 2월 23일 그를 곧바로 방출합니다.

2010년 3월 13일 샬럿이 무적 상태의 휴즈와 잔여 시즌 계약을 맺게 됩니다.

휴즈는 따라서 현재 FA 상태입니다.

두 번째 선수는 바로 이 선수입니다.



나지 모하메드입니다.

그는 98년 1라운드 29번으로 유타의 지명을 받습니다.

가나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모하메드는 시카고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켄터키 대학에 들어간 모하메드는 역시 같은 포지션의 자말 매글로어와 출장시간을 나눠 가지며 출장합니다.

98년 드래프트에 나갈 결심을 굳힌 모하메드는 유타 재즈로 부터 선택을 받습니다.

하지만 유타는 모하메드에 대한 권리를 곧바로 필라델피아에 트레이드합니다.

그 역시 여러 팀들을 거치게 되는데 유타로 부터 지명받은 후 곧바로 필라델피아로 트레이드되어 필라델피아에서 뛰다가 애틀랜타로 팀을 옮깁니다.

그리고 다시 뉴욕으로 팀을 옮겼고 04-05 시즌 중에는 샌 안토니오로 트레이드가 됩니다.

모하메드는 샌 안토니오의 05년 우승멤버가 되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샌 안토니오에서의 두 번째 시즌에서 그는 라쇼 네스테로비치와 센터 포지션을 나눠 갖습니다.

모하메드는 팀이 다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다시 한 번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게 됩니다.

그는 06-07 시즌 이번에는 디트로이트에서 시즌을 맞이합니다.

선발 센터가 되나 했으나 크리스 웨버가 디트로이트에 오자 그는 다시 선발 로테이션에서 밀려납니다.

그리고 다시 07-08 시즌 중에 샬럿으로 트레이드가 됩니다.

그는 닉스와의 12월 경기에서 시즌 하이인 20득점과 역시 시즌 하이인 4블락을 기록하는 쾌거를 올립니다.

2010년 2월 11일 미네소타와의 경기에서는 21득점과 시즌 하이인 20리바운드로 20-20을 기록하며 기쁨을 맛 보기도 합니다.



[경력이 가장 짧은 선수]

2010년 드래프트 픽이 없었던 샬럿은 언드래프트된 선수 한 명과 계약을 맺으며 루키 한 명을 로스터에 추가합니다.

이 선수입니다.



쉐런 콜린스입니다.

87년 생의 젊은 포인트가드로 캔자스 대학의 캔자스 제이호크스 팀에서 뜁니다.

그는 2010년에 여러 상을 수상하며 그 이름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그의 활약으로 그는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뛰어든 2010년 드래프트에서 그는 어떤 팀의 지명도 받지 못하고 언드래프티가 되고 맙니다.

마침 드래프트 픽이 없어 언드래프티들을 살펴보던 샬럿이 그를 섬머리그 캠프에 초대하며 FA 계약을 체결합니다.

쉐런 콜린스는 시카고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감옥에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그 것을 극복하려 애씁니다.

그가 16살 되던 해 그는 총탄에 의해 가장 친한 친구를 잃는 슬픔에 직면합니다.

그의 역경은 계속됩니다. 2006년에는 그의 두 아이 중 한 아이를 잃는 슬픔을 겪었고 다음 해에는 한 여성으로 부터 성추행으로 고소를 당하기까지 합니다.

이 여성은 콜린스가 엘리베이터 내에서 자신을 더듬고 만졌다며 그에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법정에서 기각되며 일단락되지만 그는 이 역경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시절에의 뛰어난 활약으로 그는 우든 어워드 5명의 후보에 존 월, 에반 터너, 웨슬리 존슨, 드션 버틀러와 더불어 자신의 이름을 올립니다.

하지만 지명을 받지 못하고 언드래프티가 된 콜린스는 샬럿의 부름을 받았고 올랜도 섬머리그에서 4게임에 출장하였는데 이 중에는 32득점의 활약을 펼친 경기도 있었습니다.

결국 콜린스는 2010년 8월 6일 샬럿과 2년 계약을 체결합니다.



[드래프트 순위가 가장 낮았던 선수]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47번으로 샬럿에서 가장 낮은 선수는 이 선수입니다.



도미닉 맥과이어입니다.

그는 프레즈노의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4년동안 리딩 스코어러로 활약합니다.

07년 드래프트에 참가해 2라운드 47번으로 워싱턴의 지명을 받습니다.

그는 당시 스틸픽 중에 한 명으로 평가받았는데 이 후 섬머리그 캠프에서 향상된 실력을 뽐냅니다.

워싱턴에서 뛰던 맥과이어는 2010년 2월 18일 새크라멘토로 트레이드 되었다가 다시 시즌이 끝난 후 무적 상태가 되었고 같은 해 7월 22일 샬럿과 계약을 하게 됩니다.



[드래프트 순위가 가장 높았던 선수]

다들 예상하시리라 믿는 바로 그...그...그 선수입니다.


콰미 브라운입니다.

2001년 1라운드 1번으로 워싱턴의 지명을 받습니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뛰어난 하드웨어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1235개의 리바운드와 605개의 블락을 기록했으며 이 것은 글린 아카데미 고등학교의 역사에 남을 만한 기록이었습니다.

당시 워싱턴의 드래프트에서 마이클 조던은 1라운드 1번 픽을 콰미에게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게다가 최고의 플레이어로 칭송받는 조던이었다는 점에서 콰미는 큰 기대를 안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드래프트 직전의 워크 아웃에서 콰미 브라운은 1픽을 가지고 있는 워싱턴의 코치 덕 콜린스를 만나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저를 드래프트하신다면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런 높은 기대 속에 시작한 루키 시즌에서 콰미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루키시즌에 불과 했기에 워싱턴은 그의 포텐셜에 대한 믿음을 여전히 갖고 있었습니다.

두번째 시즌부터 점점 페이스를 올린 콰미는 세번째 시즌에 평균득점과 리바운드 모두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뭔가 보여주기 시작했고 새크라멘토와의 경기에서는 30득점에 19리바운드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세 시즌이 끝이 났는데 이때부터 워싱턴과 콰미와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는 워싱턴이 제시한 5년, 30밀 계약을 거절하고 네번째 시즌이 끝나고 계약만기가 되어 FA로 풀리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네번째 시즌 그는 부상에 시달리며 다시 기록은 후퇴하고 맙니다.

시즌 말미에 그는 길버트 아레나스 등 팀 동료들과 마찰을 빚었고 심지어는 감독 에디 조던과도 갈등을 빚습니다.

지역 언론은 그에게 싸늘해지기 시작했고 팬들 역시 그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워싱턴은 1라운드에서 시카고 불스와 격돌했는데 1경기가 시작하기 전 비디오가 상영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아레나스가 팬들에게 콰미가 코트에 들어올 때 야유를 내지 말아 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팬들은 잘 응해주었지만 콰미는 이 게임에서 단 4분밖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 후 콰미는 팀 연습에 불참하는 등 마찰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은 복통을 호소하며 연습에 불참했는데 저녁에 중국 식당에서 목격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워싱턴은 잔여 플레이오프 경기에 그를 모두 불참시키는 조치로 그에게 대응합니다.

결국 2005년 8월 2일 그는 레이커스로 트레이드가 됩니다.(트레이드 상대로 워싱턴에 온 선수 중 하나가 카론 버틀러였습니다.)

2005년 12월 26일 그는 레이커스의 유니폼을 입은 채로 워싱턴의 홈 경기장인 MCI 센터(버라이존 센터의 전신)의 코트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경기장은 매진되었고 약 20000명의 팬들은 콰미가 입장할 때, 그가 공을 잡을 때 엄청난 야유를 퍼부어댔습니다.

2쿼터에서 그는 사샤 부야지치가 그에게 패스를 했을 때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가 머리에 패스된 공이 맞고 아웃 오브 바운드가 되는 실책을 저질렀습니다.

이 모습을 본 워싱턴 관중들은 엄청난 환호성을 터뜨렸습니다.

결국 이 경기에서 워싱턴은 레이커스를 상대로 3점차의 승리를 거둡니다.

레이커스의 센터 크리스 밈이 시즌아웃의 부상을 당하자 콰미는 선발 센터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 때 나름대로 선전하기도 했지만 앤드류 바이넘이 들어오며 다시 그는 벤치로 밀려납니다.

절치부심 기다리던 그는 바이넘이 부상을 당하자 다시 선발 센터가 됩니다.

하지만 그에 대해 많은 팬들은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는 오픈 덩크를 무산시키기도 하고 턴오버를 범하기 시작하며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코비가 그에 대한 비난을 막아보기 위해 애썼지만 이미 되돌이킬 수 가 없었습니다.

2008년 2월 1일 콰미는 동생 가솔에 대한 권리와 형 가솔이 포함된 큰 딜에 조각으로 포함되어 멤피스로 건너옵니다.

멤피스는 시즌 후 그와 계약하지 않음으로서 그는 무적 상태가 됩니다.

그는 디트에 2시즌동안 몸 담았다가 2010년 1년 계약으로 샬럿으로 건너옵니다.

그와 드래프트에서 처음 만났던 마이클 조던과의 재회였습니다.



[외국 출신인 선수]

샬럿에는 외국 출신인 선수가 3명이나 됩니다.

첫번째는 이 선수입니다.



보리스 디아우입니다. 그는 프랑스의 코메이유 출신입니다.

프랑스 농구 팀에서 뛰던 그는 2003년 1라운드 21번으로 애틀랜타의 지명을 받습니다.

그렇게 두 시즌을 치룬 후 피닉스는 조 존슨이 포함된 딜로 디아우를 영입하게 됩니다.

피닉스에서 그의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되기 시작합니다. 디아우는 올 라운드 플레이어로서의 명성이 높아지게 되는데 3D라는 별칭도 붙습니다.(Drive, Dish, Defend라는 그의 모토와 더불어 그의 백넘버 3번과 그의 이름 중 Diaw의 D를 따서 복합적으로 붙은 별명.)

그는 포인트가드부터 센터까지 5개 포지션을 넘나들며 활약합니다.

그는 포스트시즌에서도 활약하는 등 피닉스에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칩니다.

08-09 시즌 그는 샬럿으로 트레이드를 통해 건너갑니다.

그는 샬럿에서도 올 라운드 플레이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리피오드는 프랑스 여자 농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센터 중에 한 명이기도 합니다.

그의 아버지인 이싸 디아우는 세네갈의 높이 뛰기 챔피언이었습니다.

그의 다른 형제들도 농구를 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디아우의 절친한 동료는 토니 파커입니다. 파커 역시 프랑스계이기 때문입니다.(파커는 벨기에 출신이면서 프랑스계)

디아우는 파커의 결혼식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파커의 아내가 미인이기도 하죠..에바 롱고리아라고..)

이쯤에서 잠시 보는 토니 파커 아내의 위엄.








두번째 선수는 이 분입니다.



사가나 ㅤㅈㅛㅂ입니다. 세네갈의 다카르 출신입니다.

2001년에 1라운드 8번으로 클리블랜드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버지니아에 있는 오크 힐 아카데미 고등학교에 다니며 올 해의 선수가 되기도 합니다.

ㅤㅈㅛㅂ은 다섯가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아랍어, 영어, 프랑스어, 올로프어, 약간의 스페인어)

올로프어는 세네갈,감비아, 모리타니 에서 쓰이는 언어로 원주민 중 하나인 올로프 족이 쓴다고 합니다.

ㅤㅈㅛㅂ은 클리블랜드를 거쳐 댈러스-뉴저지-댈러스-샬럿의 팀을 거칩니다.

2006년 3월에는 두 명의 댈러스 팬이 크리스 크로스의 힙합 노래인 Jump를 가지고 ㅤㅈㅛㅂ에 관한 영상을 만들었는데 후렴의 Jump! Jump!를 비슷한 발음인 Diop! Diop!로 해서 ㅤㅈㅛㅂ의 블락능력을 표현했습니다.

세번째 선수는 이 선수입니다.



에두아르도 나헤라입니다. 멕시코 치와와 주의 메오끼 출신입니다.

그는 멕시코에서 태어난 두 번째 NBA리거라고 합니다.(첫번째는 호라시오 야마스)

그는 2000년 2라운드 38번으로 휴스턴의 지명을 받습니다.

이로서 그는 멕시코에서 태어난 두번째 NBA리거이자 드래프트로 뽑힌 첫번째 멕시코 출신 선수가 되었습니다.( 야마스는 언드래프티)

2006년 12월 닉스와 너겟츠의 충돌 당시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직접적으로 충돌에 관여하지는 않았고 선수들을 떼어놓는 데에도 애를 썼습니다.

그는 댈러스-골든스테이트-덴버-뉴저지-댈러스를 거쳐 트레이드를 통해 샬럿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는 리바운드 능력과 수비에 있어서 끈기와 집념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대학 시절 라틴계 학생들이 교육 분야에 있어서 당하는 보이지 않는 벽을 뚫고 장학금을 받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나를 빼놓으면 섭하지]

이 분을 샬럿에서 빼놓으면 저도 섭합니다.
그래서 이 분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사나이 중에 싸나이 제럴드 월러스입니다.

그는 2001년 1라운드 25번으로 새크라멘토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앨라배마 주에 있는 차일더스버그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매우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습니다.

그는 결국 Naismith Prep Player Of The Year Award 를 수상했습니다. 이 상은 고등학교 농구 선수들에게는 큰 영예로 여겨인다고 합니다.

그는 2001년 드래프트를 통해 새크라멘토에 입단하게 됩니다.

그는 새크라멘토에서 많은 출장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자신의 다재다능하고 비상한 운동능력을 어필 할 수는 있었습니다.

2004년 그에게 일대 전기가 되는 기회가 찾아옵니다. 바로 새 구단이 창단된 것입니다.

2004년 새로이 창단된 샬럿 밥캐츠는 확장 드래프트를 통해 제럴드 월러스를 영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블락과 스틸에 능력을 발휘했는데 평균 2.19블락과 2.44스틸을 기록함으로서 NBA 역사상(1973년 이후부터 블락이 기록으로서 인정됨) 월러스를 제외한 오직 두 선수 만이 단일 시즌 평균 2.00블락과 2.00스틸을 동시에 기록했는데 바로 데이비드 로빈슨과 하킴 올라주원이었습니다.

월러스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플레이 스타일 탓에 자주 부상을 당하는 편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Crash 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는 밥캐츠에서의 첫 두 시즌 동안 도합 39경기를 결장했는데 그의 에너지 넘치고 때때로는 위험해보이기 까지 하는 행동들이 부상을 가져다 주기도 하는 반면에 수비 스탯에 있어 화려함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코치였던 버니 비커스태프는 월러스에 대해 "월러스는 오직 한 가지 방법만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것은 효과적이다. 에너지..그것이 그의 게임이다."

월러스는 2008년 2월 23일 새크라멘토와의 경기 중 마이키 무어의 비고의적인 팔꿈치에 얼굴을 맞아 뇌진탕을 당했는데 그것은 그의 밥캐츠에서의 커리어 중 4번째 뇌진탕이었습니다.(역자 주:


그는 이러한 심각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시즌 말미에 다시 코트에 돌아와 활약하는 놀라움을 선보입니다.

2009년 1월 27일 레이커스와의 경기에서는 앤드류 바이넘에게 플래그런트 파울을 당했는데 이 충돌로 그는 기흉과 갈비뼈 골절이라는 중상을 입습니다.

그는 검사를 받고 7게임을 결장합니다.

그리고 이런 심각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받고 회복한 후 그는 다시 돌아옵니다.
2010년에는 올스타 멤버로 선정이 되기도 했고 덩크 콘테스트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후기]

월러스의 놀라운 재생능력을 마지막으로 보셨습니다.
언제나 지적해주실 부분이 있으면 확인해서 수정 혹은 수정이 불가능하면 다음 글에 서문으로 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팀은 ABC순에 따라 시카고 불스가 되겠습니다.
아무쪼록 부족한 글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2
Comments
2010-09-23 17:02:58

잘 봤습니다~

남자라면 지포스~
그나저나 제일 높은픽란에 있는 콰미를 보니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요....
WR
2010-09-23 17:05:05

콰미..
지포스는 재생재생열매를 먹은 남자입니다.
항상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den
min
16:42
1
1627
was
16:05
 
1156
글쓰기
검색 대상
띄어쓰기 시 조건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