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 브라이언트의 2008년 MVP를 회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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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6-07-25 00:39:41
크리스 폴이 2008년 정말 뛰어난 면모를 보여준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겁니다. 개인적으로 공식 투표라고 해서 곧이곧대로 다 믿는 편은 아니라 (가령 2015년 파이널 MVP 이궈달라라든가...?) MVP는 크리스 폴에게 더 어울렸다 정도의 발언들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라고 봐요.
다만 2008년 레이커스가 57승을 한건 당연하고 뉴올리언스 호넷츠가 56승을 한건 마치 기적이었다 같은 얘기가 가끔씩 들리는건 현실 왜곡이라고 생각합니다.
2006-07시즌이 시작하기 전, ESPN의 파워랭킹입니다. http://es.pn/2alPKAT
호넷츠는 9위에, 레이커스는 19위에 있죠. NBA.com의 파워랭킹에선 호넷츠가 12위에, 레이커스가 14위에 자리했습니다. 레이커스는 06-07시즌이 시작하기 전, 플레이오프에 갈까 말까 정도의 수준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실제로 레이커스는 42승을 기록하며 겨우 플레이오프에 나갔죠. 레이커스는 첫 30경기 동안 19승 11패를 달리며 서부 상위권 자리에 있었지만, 점차 시즌이 진행되면서 페이스가 다운됐고(그 이후 20경기 동안 11-9), 막판엔 부상자가 속출하며 결국 마지막 32경기 동안은 12승 20패 밖에 못했습니다.
호넷츠의 경우 스토야코비치가 15경기 밖에 뛰지 못해서 아주 전력 외였고, 그 외에 웨스트와 폴도 각각 50-60경기 출장에 그칠만큼 팀 전체가 부상에 시달렸죠. 결국 호넷츠도 39승을 합니다. 하지만 두 팀 모두 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잠재력이 있는 팀이었고 이건 07-08시즌이 시작되면서 현실이 되죠.
레이커스를 중심으로 만든 서부컨퍼런스 테이블입니다. 바이넘이 부상당하기 전 36경기 동안 25승 11패를 기록했고(바이넘이 부상으로 도중에 나간 그리즐리스 전 포함), 그 뒤로 바이넘이 아웃되고 가솔이 합류하기 전까지 10경기 동안 5승 5패를 기록했다가 가솔이 오고 나서 36경기 동안 27승을 했죠.
심지어 저 바이넘과 함께 했던 36경기 동안(바이넘은 그 중에 35경기 출장) 올렸던 성적은 더 올라갈 여지가 있는 성적이기도 했습니다. 바이넘의 월간 평균 득점은 11월-12월-1월을 거치며 11.4-13.9-17.3으로 계속 올라가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바이넘이 부상당한 1월 13일 멤피스 그리즐리스 경기 이전까지 레이커스의 이전 10경기 성적은 무려 9승 1패였고 5연승을 구가하던 중이었습니다.
가솔이 없었더라면 레이커스의 57승은 없었을겁니다. 하지만 바이넘이 부상당하기 전까지 코비 브라이언트는 어린 선수들과 함께 성장하는 팀을 이끌며 큰 보강 없이도 엘리트 팀을 만들 수 있다는걸 몸소 증명하던 중이었다는건 큰 의미가 있습니다. (시즌 전 브라이언트의 트레이드 요청이 큰 화제가 됐지만 레이커스는 데릭 피셔 영입으로 브라이언트의 입을 막았죠. 지금와서도 그게 통했다는게 놀랍긴 합니다)
당시 호넷츠의 웨스트, 챈들러는 이미 소위 말하는 '터진' 상태였어요. 웨스트는 06-07시즌 18.3점 8.2리바운드를 기록했고 챈들러는 9.5점 12.4리바운드 1.8블락을 기록했습니다. 스토야코비치는 다들 아시다시피 올스타 출신 선수였고 06-07시즌을 완전히 날려버렸죠. 주축 선수들이 부상이 없었다면 호넷츠는 06-07시즌에도 50승 근처의 성적을 거둘 수 있었을겁니다.
하지만 레이커스는 아니었어요. 라마 오덤 정도를 빼면, 루크 월튼, 스무쉬 파커, 앤드류 바이넘, 콰미 브라운, 브라이언 쿡... 이런 선수들이 주전으로 나오던 팀이었습니다. 바이넘의 06-07시즌 성적은 7.8점 5.9리바운드 1.6블락...
07-08시즌에 스무쉬 파커가 데릭 피셔로 바뀐 것 외에는 로스터가 거의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그런데 그 팀이 기록했던 첫 36경기 동안의 7할 승률은 그만큼 놀라움을 줄 근거가 충분했어요. 지금와서 간혹 '폴이 동료들을 다 살리고 놀랍게도 39승 팀을 56승으로 만들었는데 코비는 가솔 와서 쉽게 57승을 했네' 같은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건 전혀 사정을 모르고 하는 얘기죠.
첫 36경기 성적이 쭉 이어졌다고 가정한다면 레이커스는 산술적으로 56.9승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바이넘이 결장하기 시작한 이후 10경기는 콰미 브라운이 20분 정도 뛰고 나머지 시간을 로니 튜리아프가 메꿨는데 도저히 서부 탑팀이 가질 수 있는 빅맨 로테이션은 아니었죠.
그리고 가솔이 합류한 이후 마치 오랫 동안 함께 뛰어온 선수인 것처럼 팀에 융화된 것 또한 전혀 당연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시즌 도중에 합류한 선수치고 그 팀에서 당장 잘한 선수는 그리 많지 않았던게 그간의 역사였고, 심지어 당시 필 잭슨이 지휘했던 트라이앵글 오펜스는 배우기 어렵기로 악명이 높은 팀 오펜스이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즌 멤피스의 가솔과 LA의 가솔은 클래스가 달랐습니다.
가솔의 07-08시즌 멤피스 시절과 레이커스 시절을 비교하면 PER이 20.1->24.0, TS% 56.6%->63.9%, WS/48 .129->.239, BPM 1.5->5.1, 야투율이 무려 50.1%->58.9%였습니다. 그 정도로 레이커스는 가솔의 몸에 잘 맞는 옷이었고, 브라이언트에게 집중된 수비를 이용해 아주 쉬운 득점을 많이 쌓으면서 엄청나게 효율이 좋아졌죠. 멤피스에서 부동의 첫번째 공격 옵션으로 뛸 때와는 부담 자체가 달랐습니다.
팀 리더로서, 더 맨으로서 자신에게 상대 수비를 쏠리게 해 좋은 활약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건 아주 큰 공헌입니다. 이러한 공헌도는 사실 기록으로도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팀의 리더로 경기장이 아닌 훈련때 동료들을 독려하고 마음을 다잡는 역할 역시 기록에는 나오지 않죠.
여러 기록으로 인해 크리스 폴이 2008년 MVP에 더 적합했고 브라이언트는 그냥 공로상 개념으로 MVP를 강탈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레이커스가 발전해온 과정과 역사를 다 알고 있는 제가 보기엔 2008년 MVP에는 코비 브라이언트만큼 어울리는 선수가 없었다고 확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엔 05-06시즌 이후 가는 곳마다 들렸던 MVP Chants도 큰 영향을 줬을겁니다. 모든걸 갖췄는데 단지 팀성적만 부족했던 선수가 이제는 컨퍼런스 1위팀에서 뛰고 있고, 레이커스 팬들은 미국 전역의 NBA 경기장에서 실제로 가능성이 있는지의 여부를 떠나 이제는 마치 오기처럼 MVP를 외치는걸 보고 저널리스트들이 차마 그걸 외면할 수 없었는지도요.
개인적으로 기록은 그냥 기록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팀이 어떠한 지에 따라 같은 선수라고 해도 기록은 많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걸 무시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기본적으로 기록되지 않는 액티비티가 많은 농구라는 스포츠에서 기록이 조금 앞선다고 해서 어떤 선수가 다른 선수보다 더 나은 선수로 '확정'되는건 넌센스라고 생각합니다. 기록이 더 나은 선수는 말 그대로 기록이 더 나은 선수지, 농구를 더 잘하는 선수는 아니죠.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안드레 이궈달라를 두고 충분히 파이널 MVP에 어울린다고 말하는 것처럼요. 기록만 두고 보자면 이궈달라는 절대 커리를 제칠 수 없었지만 실제로 기록만 가지고 모든걸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안드레 이궈달라는 파이널 MVP를 수상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주문처럼 득점-리바운드-어시스트만을 외치는 것보다는 다양한 APBR Metrics 스탯들을 참고하는게 더 바른 시각을 가지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농구의 모든 부분이 기록으로 인해 판단되는건 매우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스포츠를 보는 이유는 그 과정을 즐기기 위해서거든요. 2점이라고 해도 어떠한 2점인지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달라지듯이, 기록이 있더라도 그 기록이 결과물로 나올 때까지의 과정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하는 한, 농구에서 절대적인 평가지표가 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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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괸적인 산술이나 숫자가 중요한것이 사실이죠.
하지만.....
"바스켓은 산수가 아니아"
이말이 기억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