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릭 유잉의 불운 그리고 뒤바뀐 NBA 역사
패트릭 유잉은 기대에 비해 부족한 업적을 이룬 NBA 스타플레이어로 기억됩니다.
1984년 드래프트에서 샘 보위와 마이클 조던의 운명의 엇갈림은 매니아에서 많이 거론되는 이야기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1984년 드래프트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일어날 뻔 했습니다.
패트릭 유잉의 대학시절 조지타운은 NCAA 토너먼트 결승에 무려 3번이나 진출했습니다. 그의 신입생 시절 조지타운은 결승에서 노스캐롤라이나와 붙었는데 종료 막판에 신입생 마이클 조던의 역전 슛을 허용한 이후 조지타운의 프레디 브라운이 노스캐롤라이나의 제임스 워디에게 패스하는 실책으로 인해 조지타운은 63-62로 패했습니다.
유잉의 3학년시절 전국 최강팀은 2년 전과 같이 마이클 조던의 노스캐롤라이나와 패트릭 유잉의 조지타운이었습니다. 하지만 노스캐롤라이나는 16강전에서 바비 나이트 감독의 인디애나 대학에게 치명적인 업셋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조지타운은 결승에서 아킴 올라주원의 휴스턴을 여유 있게 이기고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휴스턴은 연달아 두 해를 준우승에 머무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그때 조던, 유잉, 올라주원 등 슈퍼루키 3명은 4학년을 건너뛰고 NBA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선수는 대학을 꼭 졸업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던 존 탐슨 감독의 설득에 유잉은 한해 더 뛰면서 조지타운을 전국대회 2연패로 이끌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만일 그때 유잉이 NBA 드래프트에 참여했다면 1번 픽은 따논 당상이었습니다. 당시 그의 수비력은 빌 러셀 이후 최고라고 평가되었고 공격력은 러셀보다 한참 좋을 거라 평가된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유잉이 대학에 남기로 결정한 것 때문에 올라주원이 1번 픽이 된 것입니다. 유잉 때문에 조던의 운명까지 흔들릴 뻔 했습니다.
대학에 남은 유잉이 이끄는 조지타운은 그 전해보다 더욱 막강한 포스를 내뿜으며 전국 1위를 달렸고, 1986년에 다시한번 NCAA 토너먼트 결승에 올랐습니다. 상대는 조지타운보다 훨씬 약체로 평가되던 빌라노바였습니다.
전문가들은 빌라노바가 조지타운을 이기려면 완벽에 가까운 경기력을 보여줘야 할 거라고 말하면서 조지타운의 완승을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발라노바는 정말 완벽에 가까운 경기를 펼쳤습니다. 그 경기에서 빌라노바의 야투 성공률은 무려 78%가 넘었고 자유투 성공도 22대 6으로 조지타운에 앞섰습니다.
경기 결과는 66-64로 빌라노바의 우승이었습니다.
글쓰기 |
상대 야투가 저러면 못이기죠. 현 필라가 골스를 잡을수도 있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