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들어봐야 할 알앤비 앨범 List <4>
25. Lauryn Hill -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 (1998)
단
한 장의 앨범으로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칭송받는 뮤지션이 있다면 쉽사리 믿을 수 있겠는가? 여기 그 주인공 로린 힐이 있다.
전설적인 힙합그룹 푸지스의 중추적인 퍼포머로서 유명세를 떨치던 로린 힐은 돌연 푸지스를 나와 1998년 자신의 솔로 데뷔 앨범을
발매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열반에 오른다. 앨범 타이틀로 Miseducation라는 다소 의문적인 단어를 선택한
로린 힐은 앨범 속에서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들을 풀어 놓으며 잘못된 교육은 무엇이고, 제대로 된 교육은 또 어떤 것인지, 그것이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설파한다. 그녀는 앨범의 각 트랙마다 종횡무진하며 보컬과 랩을 오간다. 어떤 트랙에서는 둘이
동시에 등장한다. 양극단에 위치한 기예는 그 누구도 경험한 적이 없었고, 저울의 양쪽 추는 완벽하게 균형을 이뤘다.
24. Janelle Monae - The Electric Lady (2013)
2010년 세상을 경악케 했던 앨범 The ArchAndroid의 발매로부터 3년이 지나 자넬 모네는 The Electric Lady를 통해 다시 한 번 세상을 경악시킨다. The Electric Lady는 소울 음악이 어떻게 변모해야 현대에도 통용될 수 있을까에 대한 너무나도 완벽한 대답을 선보인다. 단 한 번의 감상으로는 그 저의를 파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컨셉과 서사는 덤이다. 이 앨범에는 흑인음악이라는 가두리 안에서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장르적 원료들이 모두 총망라되어 있다. 하나의 장르에만 한정할 수 없고, Black Music이라는 타이틀이 더 그럴듯해 보이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Prince, Erykah Badu, Solange, Miguel, Esperanza Spalding 같은 참여진의 면면 또한 흥미롭다. 이들은 기성복이 아닌 맞춤형 의복을 입은거처럼 앨범에 부합하는 핏을 선보이며, 자신들만의 개성으로 앨범에 기품을 더했다.
23. Remy Shand - The Way I Feel (2002)
22. Toshi Kubota - Sunshine, Moonlight (1995)
La
La La Love Song이라는 희대의 명곡으로 널리 알려진 토시 쿠보타. 확실히 쿠보타는 일본 뮤지션들만이 소유한 면면을
모두 보유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시대와 인종을 가로지르는 진취적인 도전 정신을 가짐과 동시에 자신이 나고 자란 시즈오카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노래로 그 정취를 표현하는 낭만적인 싱어송라이터이다. 동양권에서 장르 음악으로 인상적인 음악을 선보였던
수많은 뮤지션들이 있었지만 그중 유일하게 토시 쿠보타만이 천재와 선구자로 불릴만 할듯하다. 그만큼 쿠보타가 선보이는 음악 세계는
경탄을 자아냄과 동시에 왠지 모를 자부심(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마저 느끼게 한다. 앨범 속, 빌 위더스의 고전 명곡인 Just
the Two of Us를 세련되게 편곡한 단 하나의 트랙만으로도 그가 가진 천부적인 능력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21. Lucy Pearl - Lucy Pearl (2000)
소울
대부 라파엘 사딕은 80년대 후반 토니토니톤을 시작으로 각 세대를 대표하며 흑인음악계에 커다란 거인의 족적을 남겼다. 그런 그의
빛나는 업적 중 최고라 칭할만한 일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해도 Lucy Pearl과 Dance
Tonight이라는 대답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Lucy Pearl은 토니토니톤의 라파엘 사딕, ATCQ의 알리 무하메드, 엔
보그의 다운 로빈슨으로 구성된 슈퍼 그룹이다. 심지어 로빈슨이 합류하기 전 그 자리를 차지했던 멤버는 디안젤로였다. 이들은 팬들이
이들의 합에서 기대했을 음악적 성취를 이 단 한 장의 앨범을 통해 선보인다. 찬란했던 90년대의 흑인음악신을 뒤돌아 보며 그
당시의 질감과 정서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멋지게 구현해냈다. Lucy Pearl은 밀레니엄을 맞이한 이래, 하나의 개인과 동료들이
이뤄낸 최고의 음악적 성취 중 하나라고 할 만 하다.
20. TLC - CrazySexyCool (1994)
19. Chester Gregory - In Search Of High Love (2008)
인디아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체스터 그레고리의 2008년 앨범 In Search Of High Love는 듣고 난 뒤 전율을 느낄 만큼 만듦새가 완벽한 앨범이었고, 앨범이 시작된 후 인트로가 채 끝나기도 전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구매를 결정한 앨범이었다. 체스터의 절친으로 알려진 프로듀서 에릭 로버슨과 싱어송라이터 피제이 모턴 그리고 존 레전드의 프로듀서 데이브 토즈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탄생된 본작은 곳곳에서 그들이 대체 왜 체스터를 지원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여실히 드러낸다. 기존의 멜로디 중심적인 작법에서 탈피한 채 앨범은 그 무엇보다 우선하여 앨범 고유의 무드를 가지길 희망한다. 결국 이 앨범을 걸작으로 만들어 준 매개는 체스터의 무결점 보컬이다. 이미 발매 전후로 국내 알앤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If U Only는 앞서 얘기했던 특징들이 가장 잘 반영된 멋진 트랙이다.
18. Boyz II Men - Evolution (1997)
이
앨범은 굳이 나의 사족이 필요하지 않은 앨범이다. 맛집 블로거들의 맛집 리뷰처럼, 당신이 알앤비 음악의 팬이라면 각기 저마다
인상적인 평을 남기고 싶어 소개말을 준비해 두었던 앨범일 테니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별명은 보이즈투맨이었다. 지금 듣는 게
무어냐는 질문에, 그게 무어냐는 반문에, 대체 그런 걸 왜 듣느냐는 핀잔에,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이 무어냐는 질문에
나는 항상 망설임 없이 보이즈투맨이라고 대답했다. 평생 내가 누군가에게 건냈던 대답 중에 가장 멋진 대답들이었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난 뒤에는 Doin' Just Fine을 따라 부르며 하교를 했고, 0교시를 위해 등교하던 길에는 4 Seasons Of
Loneliness를 따라 불렀다. 점심을 먹고 농구장으로 향하기 전에는 All Night Long을 따라 불렀고, 석식 후
참고서를 펴기 전에는 석양을 바라보며 A Song For Mama를 따라 불렀다. 어떻게 이런 멋진 추억들을 잊을 수 있을까,
나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17. Lynden David Hall - Medicine 4 My Pain (1997)
지금부터 네오소울 역사에서 뜻깊었던 사건들을 나열하겠다. 1995년에 디안젤로는 Brown Sugar를 발매했다. 1996년에 맥스웰은 Urban Hang Suite를 발매했다. 그리고 1997년에 린든 데이비드 홀은 Medicine 4 My Pain을 발매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의 두 가지의 사건까지 밖에 알지 못한다. 심지어 린든의 이 데뷔 앨범은 앞의 두 앨범과 비교한다 한들 전혀 모자람이 없는 앨범임에도 말이다. 결정적인 사유는 아닐 테지만 이런 연유는 린든 홀이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데서 기인한다. 이 앨범은 앞의 두 걸작과 마찬가지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련미를 발산한다. 앨범 속에서 린든은 일정 부분 맥스웰보다 관능적이고, 디안젤로보다 농염하다. 앨범 속, 앨범 버전과 리믹스 버전의 두 가지 버전이 담긴 Sexy Cinderella는 린든이 남긴 위대한 유산 중 하나이다.
16. Frank McComb - A New Beginning (2010)
프랭크
맥콤이란 인물은 당신이 알앤비 팬이라면 가장 감정이입하기 쉬운 대상 중 한 명일 것이다. 대부분 뮤지션들의 취향이 그 범위가
정말 다양하고 고차원적인데 반하여 프랭크 맥콤은 데뷔 이래 한결같이 우리 중 누구라도 모를 리 없는 스티비 원더와 도니 헤더웨이를
자신의 우상이라 말한다. 맥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스티비 원더가 자신의 전성기인 70년대에 만들었던 코드를 그의 음악 속에
재현하려 하고,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도니 헤더웨이처럼 노래하고자 한다. 맥콤은 우리 같은 열렬한 알앤비 음악의 팬들과 일정
부분 그 정서를 공유한다. 어렸을 때부터 스티비 원더와 도니 헤더웨이같은 고전 소울 뮤지션들에게 심취했고 그들처럼 되고자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결국 현재 위치에 따라 서로 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상에 대한 존경만은 그 뜻을 같이한다. 피비 알앤비가 기존
알앤비의 영역을 대체한 지금 시대에 이런 시도들은 어쩌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맥콤의 앨범을 듣고 나면 그런 시도들은
사실 무모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작은 업적이었음을, 그에게 보내야 할 감정은 우려가 아닌 감사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15. Hav Plenty Original Soundtrack (1997)
이 리스트에서 소개할 3장의 사운드트랙 앨범 중 마지막 앨범.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시대 이래 흑인음악의 영역에서 제작된 사운드 트랙 중에서 시대상이 가장 잘 반영된 앨범이자, 완성도가 가장 뛰어난 앨범이다. 드레이크와 그의 파트너 40이 자신들 커리어 최고의 곡을 위해 샘플 기회를 아껴 두었다는 Babyface & Des'ree의 Fire로 앨범은 포문을 연다. 베이비페이스는 소리의 마술사답게 단출한 기타 연주와 편안한 리듬만으로 앨범의 심연으로 듣는 이들을 끌어내린다. 앨범 커버의 좌측에 표기된 참여진의 면면만으로 앨범의 대략적인 소개는 끝이 난다. 이 앨범은, 알앤비 장르의 음악적 성취는 90년대 후반까지라는 사람들의 인식을 몸소 증명하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단지 음악만으로 특별하게 변신시키는 마법을 선보인다.
14. Mariah Carey - Daydream (1995)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열띤 음악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논쟁들은 대부분 정해진 답도 없는
데다 무의미하지만, 그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어디에서는 스포츠 선수 줄 세우듯이 최고의 래퍼를 두고 논쟁을
하고, 또 어디에서는 뮤지션이 아닌 자신들이 선호하는 시대 자체를 비교하기도 하고, 이따금씩 거창하게나마 마이클 잭슨과 비틀즈를
링의 양 끝 위에 올려 서로 맞부딪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신이 설전을 주고받는 주제가 역사상 최고의 디바Diva라면 그
논쟁의 열기는 조금 빨리 식혀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대답에 나는 언제나 머라이어 캐리라는 대답을 했고, 이 앨범
Daydream을 머라이어 캐리의 최고 걸작으로 꼽았다. 역사상 최고의 디바와 그런 디바의 최고 앨범이라면 주저 없이 들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지 않은가.
13. Janet Jackson - janet. (1993)
자넷 잭슨의 음악적 평가에 항상 뒤따라오는 존재가 있다면, 바로 그녀의 오라버니 마이클 잭슨이다. 어떤 이들은 자넷이 마이클 덕분에 성공했다고들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되려 마이클의 후광에 가려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하기도 한다. 나의 의견을 묻는다면, 나는 후자에 가깝다. janet.의 존재는 그런 의견에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된다. Off the Wall에서부터 Bad에 이르는 기간을 마이클 잭슨의 황금기라 부르는 거처럼 Rhythm Nation 1814에서부터 The Velvet Rope까지를 자넷의 황금기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janet.에는 자넷의 가장 날카로웠던 음악적 감각과 27개의 곡을 황금 비율로 재단한 Jimmy Jam & Terry Lewis의 전성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앨범을 듣는 중에 어느 지점에 가면 꼭 마이클이 오버랩될 때가 많은데, 바로 그런 점이 그녀의 음악적 평가에 마이클 잭슨이 뒤따르는 이유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12. Erykah Badu - Mama's Gun (2000)
혹자들은
에리카 바두가 그녀가 쌓아온 과업에 비해 평가나 언급이 박하다고 말한다. 그런 의견에 적극 동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Baduizm과 Mama's Gun이라는 걸작들을 연달아 내놓은 것에 비해 실제 스포트라이트는 디안젤로와 맥스웰이 모두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 커리어의 시작을 디안젤로 콘서트의 오프닝 가수로 출발했던 그녀인 만큼 바두의 음악은 많은 면에서 디안젤로를
연상케 한다. 실제로 이 둘은 절친한 음악적 크루였다. 이 앨범 역시 제이 딜라, 퀘스트 러브, 제임스 포이저 등의 Voodoo
크루가 참여했다. 그런 점에서 미루어 볼 때, Mama's Gun은 디안젤로 최고의 역작인 Voodoo와 비견될만하다. 초반부의
슬로잼들은 알앤비 본연의 목적에 대한 그녀의 직관적인 이해와 한껏 농익은 요염함을 뽐낸다. ...& on은 그런 경향을
대표하는 곡이다. 후반부의 정적이고 몽환적인 잼들은 속삭이는듯한 그녀의 나지막한 음색으로 주도되며, 앨범의 참신함과 완성도를
대표한다. Bag Lady와 Time's A Wastin은 앨범의 킬링 트랙이면서 바두의 목소리 활용이 돋보이는 곡들이다. 새
천년의 출발을 알렸던 밀레니엄의 시작과 끝에 Voodoo와 Mama's Gun이라는 흑인음악을 대표할만한 앨범들이 발매된 것도
필시 우연은 아닐 것이다.
11. Michael Jackson - Off The Wall (1979)
그의 위대함은 차치하고서라도 정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음악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Off The Wall은 마이클의 솔로 앨범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이클의 현란한 춤사위와 장관의 무대 연출에 사로잡혀 마이클이 가진 목소리의 가치를 잊어버리곤 한다. 이 앨범 속에서 마이클은 잭슨 파이브 시절의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한 마리의 야생마처럼 곡을 휘어 휘어잡던 야성적인 모습과, 후에 Thriller와 Bad에서 곡의 흐름을 쥐락펴락하던 여유 넘치는 모습을 동시에 선보인다. Off The Wall은 알앤비/소울, 펑크/디스코, 팝/댄스 등의 장르 음악의 완성도에 한 사람 몫의 목소리가 기여할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준다. 앨범 발매 당시 마이클이 이제 막 20대에 접어든 청년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앨범 속의 마이클의 완숙미는 천재적이라는 진부한 표현을 제외하면 딱히 표현할 만한 형용이 없다. 굳이 내가 꼽아 주지 않더라도 앨범 내 모든 수록 곡들이 빼어난 완성도와 주체할 수 없는 흥을 여실히 드러낸다.
10. Donny Hathaway - Donny Hathaway (1971)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나의 음악적 취향이 점점 보수화되어 가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듣던 뮤지션들의 앨범만을 찾아 듣고, 기존의
장르적 전통을 깨버린 새로운 장르는 꺼려하며, 새로 발매된 앨범들보다 시간의 더께가 제법 쌓인 걸작들이 더 가치 있다고 맹목적으로
믿어 버리는 일들이, 이런 보수화의 경향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30년 전에 작고한데다 발매가 족히 40년은 더
된, 도니 헤더웨이와 그의 앨범 도니 헤더웨이를 찾아가곤 한다. 이는 당대보다 후대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회자되는 도니 헤더웨이의
사례를 통해, 지금 시대의 도니 헤더웨이들을 주목하라는 나 자신에게 보내는 충고와 같은 것이다. 도니가 선보이는 환상적인
목소리와 창법은 그를 흑인음악사에서 가장 뛰어난 보컬 중 하나로 규정지어 버렸다. 나무에 박힌 못처럼 서려있는 애환과 설원 위의
곧게 선 나무처럼 깃든 쓸쓸함은 언제나 듣는 이들의 마음을 절절하게 만든다. 나의 님에게 전하는 A Song For You,
She Is My Lady와 가장 유명한 소울 캐럴 중 하나인 This Christmas가 하나의 앨범 속에 공존하는 모양새란,
언제나 이 천재에게 존경 넘치는 감사를 표하게 만든다.
09. Joe - Signature (2009)
08. Frank Ocean - channel ORANGE (2012)
알앤비 음악이 점점 마니아만의 음악으로 또 마이너 한 감성으로 변모하면서 대중음악의 변두리로 밀려나는 이 시대에 프랭크 오션이라는 뮤지션과 channel ORANGE라는 앨범이 가지는 의미는 정말 남다르다. PBR&B는 알앤비와 일렉트로닉의 하위 장르의 특성들을 결합하고, 탈 전통적인 서사 구성 방식으로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은 신생 음악 장르(또는 흐름)이다. 그 신생 장르 내에서 프랭크 오션이 가지는 독보적 존재감과 기대는 장르 내 여타 뮤지션들과도 제법 차이가 있다. 이런 흐름이 태동하던 시기에 받았던 많은 우려들을, 프랭크 오션은 오직 channel ORANGE만으로 불식시켰다. 일렉트로닉 하위 장르 대신 브리티시 락 특유의 독특하고 쓸쓸한 감성을 차용하고, 자신이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본인의 생각과 사상들을 바탕으로 써 내려간 가사들, 그리고 20대 청년 예술가의 고심과 고독함을 담은 channel ORANGE는 결국 수많은 이들에게 쉽사리 잊지 못할 감동과 진한 여운을 선사했을 것이다.
07. D'Angelo - Voodoo (2000)
디안젤로가 선보인 3장의 정규 앨범들은 모두 이견이 없는 걸작들이다. 데뷔 앨범인 Brown Sugar를 발매하고 본격적으로 활동했던 1995년부터 2017년에 이르기까지 정규 앨범이 단 3장이라는 사실은 실소를 자아낸다. 음악적 아이덴티티가 꽤 명확한 뮤지션임에도 불구하고 각 앨범들이 모두를 관통하는 특성과 서로를 구별되게 하는 개성들을 가졌다는 점은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롭다. 그중에서도 2번째 앨범인 Voodoo가 가지는 믿지 못할 완성도와 농밀하고 괴기스러운 그루브는 빠져든 이 모두를 끊임없이 심취하게 만든다. Voodoo를 좋아하는 음악팬들 그 누구도 Voodoo가 듣기 편한 음악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진입장벽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 앨범의 특수함은 그가 선보였던 음울한 아우라 그리고 수많은 기행들, 구설수와 맞물려 묘한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일조한다. 20대 중반의 디안젤로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생각들을 하며 살았길래 원초적인 소울 음악과 다양한 타장르를 접목시켜 이런 진보적이고 농밀한 음악과 형식을 완성시켰을까. 결국 그 해답은 이 앨범 Voodoo 속에 있을 것이다.
06. Babyface - The Day (1996)
만약 누군가가 90년대 알앤비신에서 가장 중요한 앨범을 한 장 꼽아보라고 말한다면, 누군가는 알켈리의 12 Play를 꼽을 것이다. 누군가는 키스 스웻의 Keith Sweat을 꼽을 것이고, 누군가는 블랙 스트리트의 Another Level을 꼽을 것이다. 나는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마다 주저 없이 베이비페이스의 96년작 The Day를 꼽았다. 90년대 알앤비 신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베이비페이스는 자신의 작법을 완성시켰던 For the Cool in You, 본작 The Day 등의 정규 앨범 2장과 캐럴 앨범 Christmas with Babyface, 리믹스 앨범 A Closer Look, 흑인음악 최고의 라이브 앨범 중 하나로 손꼽히는 MTV Unplugged NYC 1997 등을 발매했고, 보이즈투맨과 토니 브랙스톤을 양성했다. 이 밖에 90년대 발매되었던 수많은 명곡들의 크레딧을 확인하면 대부분 작곡자는 베이비페이스였다. 결국 The Day에 담긴 것은 알앤비 음악 거장의 전성기이자, 90년대 알앤비 음악의 정수이고, 혼심을 다해 고심했을 애절한 한 마디의 멜로디일 것이다.
05. Maxwell - Maxwell's Urban Hang Suite (1996)
누군가 당신에게 그루브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질문한다면 당신은 무엇이라 대답하겠는가. 머릿속에서 쉽사리 정리되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을 떠올릴 필요 없이, 구글 검색창에 그루브를 검색할 필요 없이, 그 어떤 방법론적 요령도 요하지 않는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네오소울 뮤지션 맥스웰의 데뷔 앨범 Urban Hang Suite를 통해 실제로 그루브를 체감시켜 주는 것이다. 이 앨범은 네오소울이라는 장르를 논할 때마다 잊지 않고 회자되는 앨범이다. 이 앨범 속에 담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련되고 농밀한 그루브 감만으로도 다른 알앤비 앨범과는 범접할 수 없는 차이를 보인다. 거칠고 둔탁한 질감을 표현하는 것이 유행하던 당시 주류 사운드에 정면으로 반박하기라도 하듯이 섬세하고 절제된 세션이 돋보인다. 이는 일정 부분 앨범의 프로듀서를 맡은 스튜어트 매튜맨과 호드 데이비드의 공이다. 유려함과 여유 넘치는 재기를 완벽함으로 재단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앨범을 이끌어가는 건 섹시함과 감미로움을 한데 품은 맥스웰의 매끈한 음색이다.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앨범 수록곡 ...Til The Cops Come Knockin'은 마빈 게이의 All the Way 'Round 이후 알앤비 역사상 최고의 섹슈얼함을 담은 곡이다.
04. Javier - Javier (2003)
그동안 흑인음악을 들어오면서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앨범과 싱글들을 들었다. 하지만 어떤 앨범 앨범을 얼마나 들었고, 어떤 곡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통계적으로 환산할 수는 없다. 단지 기억과 추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면서 가장 많이 들었다 말할 수 있는 앨범이 있다면, 바로 하비에르의 데뷔 앨범 Javier이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앨범이 있을 것이다. 그 어떤 비평적 평가와 세간의 인기에도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가슴에 사무친 채 평생을 간직하는 앨범. 나에게는 이 앨범이 그런 존재가 되었다. 나의 감상이나 취향과는 별개로 이 앨범은 수록곡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데다 하비에르의 섬세한 터치로 여백을 채운 걸작 중의 걸작이다. 국내 팬들도 많이 접해봤을 Crazy와 October Sky 등이 각자 인트로와 아웃트로로서 완벽하게 제 역할을 수행한다. 지금은 비록 빛을 발하지 못한 채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지만 언젠가 이런 멋진 앨범을 들고 와 많은 이들에게 인정을 받을 거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03. Sade - Lovers Rock (2000)
샤데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성 뮤지션이다. 아마 남녀를 통틀어 생각해본다 한들 그녀만큼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뮤지션은 몇 되지 않는다. 샤데이의 앨범들은 가장 최근작(그마저도 2010년 발매)이었던 Soldier Of Love를 제외하면 모두 명반 반열에 올라있는 앨범이고, 그 어떤 앨범을 베스트로 꼽는다 한들 그 이유가 제각기 서로 다르다는 점이 정말 재밌다. 나 같은 경우, 데뷔 앨범인 Diamond Life는 가장 혁신적이고 관능적이었기 때문에 좋아하고, 소포모어 앨범인 Promise는 입문 앨범이고 취향과 가장 부합하기 때문에 좋아한다. 다른 앨범들도 마찬가지로 저마다의 각각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세 번째 앨범인 본작 Lovers Rock은 오로지 앨범의 선보이는 극단의 완성도 때문에 선택한다. Lovers Rock은 샤데이 최고의 역작이다. 앨범은 By Your Side, Somebody Already Broke My Heart, Lover's Rock 같은 샤데이의 대표곡들로 가득하고 The Sweetest Gift와 아웃트로 It's Only Love That Gets You Through는 고용하고 평화로운 무드와 온기로 듣는 이를 한없이 감싼다.
02. Stevie Wonder - Jungle Fever (1991)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흑인음악 본영이 가진 최고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보물, 스티비 원더. 흔히 음악팬들이 꼽는 스티비 원더 명반 3장은, 완성도로는 76년작 Songs In The Key of Life를, 수상 실적으로는 73년작 Innervisions을, 상징성으로는 72년작 Talking Book을 들 수 있다. 그렇게 전성기였던 70년대를 한참 지나 90년대 초반에 이르러 스티비 원더는 스파이크 리 감독이 감독한 동명의 영화 사운드트랙을 맡게 된다. 리 감독이 직접 스티비 원더를 찾아가 앨범 제작을 부탁했다고 하니, 지속적으로 후대까지 회자되며 정말 인상적이었던 협업 사례로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스티비 원더가 전곡 작사/작곡, 편곡을 맡아 제작된 이 앨범은 위의 대표 명반 3장과 견주어도 그 가치가 굳건한 걸작 중에 걸작이다. 너무나도 찬란했던 70년대에 비해 다소 아쉬웠던 80년대의 아쉬움을 날려 버리기라도 하는 듯이, 이 앨범은 스티비 원더에게 흑인음악의 개척자이자 구루로서의 명성을 되찾아 주었다. 스파이크 리의 영화는 흑인으로서 겪는 인종 문제와 흑인 가정 내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을 다루었기 때문에 다소 무거운 편이다. 이에 스티비 원더의 앨범은 그런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하며, 총천연색의 음악적 감상을 관객들에게 안긴다.
01. Bobby Caldwell - Heart of Mine (1987)
일전에도 이런 유형의 알앤비 앨범 추천 리스트를 작성한 적이 있다. 훨씬 전에도 추천하는 일은 소소한 즐거움이라 여기며 수많은 추천 리스트들을 작성했다. 내가 작성한 앨범 추천 리스트들은 모두 공통적인 특징을 공유한다. 최상단에는 고전 소울 뮤지션 바비 칼드웰이 있고, 앨범은 Heart of Mine이라는 사실이다. 이 앨범 속에는 내가 사랑(넓은 의미의)에 관한한 최고의 곡이라 생각하는 모든 곡이 수록되어 있다. 한 단어로 이 앨범을 꾸밀 수 있다면 정말 "아름다운" 앨범이다. 바비 칼드웰의 대표 앨범으로는 알앤비 음악팬들은 물론이고 힙합 팬들에게도 유명한 What You Won't Do For Love라는 대표곡이 담긴 78년작 What You Won't Do For Love와 다소 펑키하고 흥겨운 곡들로 채워진 82년작 Cat in the Hat과 본작 Heart of Mine이 있다. 그중에서도 최고작을 꼽자면 바로 이 Heart of Mine이라 할 수 있다. 블루 아이드소울의 효시격이라 할 수 있는 뮤지션이지만 그 어떤 흑인보다 호소력이 짙음 음색과 감성을 지녔다. 앨범은 도회적인 재지함과 감미로운 소울풀함으로 그득하다. 소설 듀이의 저자 비키 마이런과 브렛 위터의 "인생은 결국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격언처럼 이 앨범은 그동안 당신이 잊고 살았던 가장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 주는, 로맨틱 알앤비 앨범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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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이유는 첫째는 저의 재미를 위해서고, 두 번째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앤비 음악을 들었으면 해서입니다. 고전 소울 싱어 메이비스 스테이플스는 현재 소울음악신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나의 모든 것을 바쳤던, 사무치는 그리움이 담긴, 바스러져가는 세상"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저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하지만, 요즘 더 이상 정통 알앤비를 듣지 않는 세대를 보면서 제가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거 같습니다. 누구나 음악적으로 머물러 있고 싶은 시대가 있기 마련이죠. 저는 정통 알앤비가 우리 시대에 좀 더 머물러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순전히 재미로 계산해서 총 100장의 앨범 중에서 본인이 들어 본 앨범이
20장 내외 : 알앤비 음악의 팬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25-50장 : 알앤비의 열렬한 팬
50-75장 : 당신에게 필요한 건 단지 시간
80장 이상 : 무림의 은둔 고수 또는 취향 쌍둥이
올해 초 부터 작성하던 시리즈인데
NBA 좋아하시는 분들 중에 알앤비 음악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 같아서
매니아에도 올려봅니다.
재밌게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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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 앨범 때문에 전 자넷 잭슨을 마이클 잭슨보다 더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