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들이 사법시스템을 불신하는 이유
지난번 글에서 외국출장 전에 우리나라의 사법불신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말한 바 있어 오늘 그와 관련된 글을 올립니다. 글을 쓰려니 너무 방대한 내용이라 생각을 정리해서 요점만 간추려도 분량이 넘칠 것 같아 가급적 요점만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론에 앞서 밝히고 싶은 것은 글의 제목과 내용이 사법 불신에 대한 것이지만 이는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이 국민의 신뢰보다는 불신을 더 많이 받는 다는 뜻이 아니라(사실 우리나라는 유능한 인재들이 법조계로 너무 몰려서 문제임) 국민의 신뢰를 받는 측면이 더욱 많지만 불신을 받는 요소를 짚어보겠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사법에 대해 불신하는 두 가지 핵심 요소는 ‘불공평하고 일관성이 부족한 형사사법’과 ‘전관예우로 대표되는 법조비리’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대표되는 양형의 불공정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고위공무원이나 기업인 등의 범죄에 대하여 (만인이 납득할 만큼 공평하게) 엄중한 처벌을 요구해왔지만 국민이 수긍할 만한 판결은 많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법원은 업무상 배임죄에 있어서의 ‘배임의 고의’나 뇌물죄의 구성요건인 ‘직무 관련성’을 상당히 넓게 받아들여 법리상으로는 범죄 성립자체를 인정하면서도, 실형을 부과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판단하여 기업인들이나 공무원들에 대하여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을 해왔던 사례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법원은 정치인, 공직자, 기업인들의 범죄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처벌은 가벼웠습니다. 반면에 미국 같은 경우에 공직자와 기업인들이 배임이나 뇌물 혐의로 유죄 판정을 받는 경우 큰 처벌이 내려지기 때문에 이들은 가장 유능한 변호사들을 고용해서 (배심원이 판단하는) 유죄를 피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사회지도층에 대한 형사재판은 그 나라의 법치국가성과 문화적 성숙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고 우리나라 국민들의 사법불신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관한 더 깊은 이야기는 정치글로 번질 수 있어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국민의 사법불신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요소는 국민 스스로에게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판단할 때와 본인에게 닥쳤을 때의 기준이 확연히 다릅니다. 매니아를 포함해서 인터넷의 여론은 우리나라 법원은 범죄자(특히 초범인 경우)에게 지나치게 너그러우므로 더 높은 형량을 선고하고 엄격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형사재판에 피고인으로 임해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법원의 피고인에 대한 태도와 판결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법원과 검찰의 임관자격이 동일하기 때문에 재판부가 자신들에 준하는 엘리트인 검찰의 시각으로 사건을 대하는 점이 있습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음에도 형사소송에서 피고인은 실질적으로 자신이 유죄로 추정된다는 피해의식이 있고 판사들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있습니다.
그런 것과 관련이 있으며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 국민이 법조계에서 벌어지는 전관예우에 대해 맹렬히 비판하면서도 사건 당사자가 되어 변호사를 찾을 경우 지나칠 정도로 ‘전관’ 변호사를 선호하는 현상입니다. ‘전관’ 변호사는 판사 또는 검사로 최소 10~15년 이상 근무한 후 변호사가 된 사람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일반인들이 변호사를 찾을 때 전관 여부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현상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갑니다. 상습적인 범죄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 소송에 휘말리거나 피의자가 되는 것은 일생에 몇 번 없는 일입니다. 불치병 등 중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는 경우와 비슷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아낌없이 투자해 최고의 변호인을 구하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싼 돈을 들여 전관 변호사를 찾는 게 그만큼 효용이 있을까요? 여기에 대한 답변은 정말 어렵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전관 변호사들이 엄청난 돈을 버는 가장 큰 이유는 그만큼의 효용이 있어서 라기 보다는 수요공급의 경제법칙 때문인 면이 훨씬 크다는 것입니다. 효용이 전혀 없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제가 위에서 쓴 글만으로 추론해도 전관 변호사의 역할이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판사들은 철인이 아닌 이상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업무 부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판사의 숫자 증가보다 1심 본안사건 숫자의 증가가 두 배가 넘고 사건의 내용도 훨씬 복잡해졌습니다. 그런 이유로 판사들이 담당하는 모든 사건을 꼼꼼히 챙기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 상태로 재판에 임하는 경우 판사가 변호사보다 검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건 당연하면서도 안전한 일입니다. 변호사는 무조건 피고인의 편만 드는데 반해 검사는 기소 여부를 결정할 때부터 심사숙고해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형사재판은 재판을 받는 태도에 따라 재판장이 형량을 가감할 수 있는 재량이 있습니다. 괜히 판사에게 대들거나 말대답하는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피고인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속상하지만 변호인은 판사에게 무조건 복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변호인이 판사의 옛 상관이거나 지인인 경우 자연스레 판사는 변호인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전관예우는 이렇듯 판사가 의식하지 못하는 채로 이뤄질 수도 있습니다.
전관예우의 뜻은 공직에 있던 자가 퇴직 후 자신이 근무했던 기관으로부터 특별한 대접과 혜택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하나의 민족원형이 만들어져 오랜 세월동안 중앙집권의 아주 단순한 정치체제를 겪어왔습니다. 임금을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권체제에서 벼슬이라는 이름으로 관료조직에 몸을 담기를 원하는 간절한 욕망이 대를 이어 처절하게 작용한 것이 우리 대한민국이고, 그 결과 관료적 연고주의라는 단조로운 색채의 전통문화가 전국 어디에서나 지배적으로 작용해왔습니다. 이러한 관료적 연고주의의 특징은 사회의 분화된 관료집단 내에서 구성원들이 충성의식을 강요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이익을 제공하며 상호부조하는 것입니다. 전관예우는 바로 이러한 연고주의의 발현으로 법조계뿐 아니라 한국의 공직사회 어디에서나 발생합니다. 법조계의 전관예우는 판사나 검사로 근무하다가 변호사로 전환한 경우 법원이나 검찰청에서 특별 대접을 받으며 그가 관계한 사건처리가 왜곡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은 법조계의 전관예우는 어느 정도까지 이뤄질까요? 모두가 인정하는 확실한 팩트는 전관 변호사들은 그 이전에 고위직에 있었을수록 엄청난 소득을 올린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만 가지고 법조계에서 전관예우가 성행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용하다고 믿는 점쟁이가 돈을 많이 버는 이유는 그가 미래에 대한 예지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가 용하다는 사람들의 믿음입니다. 실제 재판에서 승소율에 상관없이 고객들이 전관 변호사를 많이 찾기 때문에 그들의 몸값이 오르고 효험이 있어 보이는 악순환의 구조입니다. 고법 부장판사나 법원장 그리고 검사장 출신이 퇴임하는 경우 그들을 향한 각종 로펌의 러브콜은 NBA에서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스타플레이어를 향한 각 구단의 러브콜에 뒤지지 않습니다.
대법관 출신의 변호사는 직접 사건의 변론을 담당하지 않고 변호인단에 이름만 올려놔줘도 일 년에 수십억원을 벌었습니다. 퇴임 후 로펌에 가면 일 년에 100억을 받을 수 있다는 (김영란 전 대법관의) 말도 있었습니다. 대법관들은 민사 또는 형사사건의 대법원 상고심에서 변호인을 맡는데, 상고심의 엄청난 숫자와 얼마 안 되는 전직 대법관의 숫자는 하늘과 땅 차이의 불일치가 벌어집니다. 현재 2심 판결 후 상고하는 사건 중에 3분의 2 가량이 심리불속행(본안 심리 없이 기각하는 것)으로 기각됩니다. 그런데 변호인 중 전직 대법관이 포함된 사건의 경우에는 심리불속행 처리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 실재하는 이유로 상고심에서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변호인 명단에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꼭 포함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이에 대한 법원의 입장은 최종 판결에만 영향을 안 끼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검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상하관계가 강한 조직입니다. 그런 이유로 조직의 상하 관계가 퇴임 후 변호사가 된 이후까지 연장되는 경우도 흔하게 있었습니다. 10~5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 그랬다가는 큰일 나지만) 퇴임해서 변호사가 된 전직 검찰간부가 예전 부하들을 모아놓고 회식자리를 만들거나 전별금, 용돈(20~30만원)이나 상품권 등을 주는 일들이 일상다반사로 있었습니다. 로펌에서 고위 검찰 출신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는 재판 전 단계에서 큰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일선 지방검찰청의 차장검사는 가장 바쁘면서도 중요한 자리입니다. 대부분의 결재를 전결 처리하며 검찰청의 업무를 이끌어갑니다. 차장검사의 중요한 업무 중에는 사건 배당이 있습니다. 기업인이나 공직자의 사건은 특수부에 배당 되는가 형사부에 배당되는가에 따라 향후 명운이 크게 갈릴 수 있습니다. 특수부는 해당 사건에 집중해서 깊게 파헤치는 속성이 있는 반면 형사부는 그것 말고도 처리해야 할 사건들이 산더미라서 파헤치는데 본질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명백한 형사 사건인 경우 어느 검사에게 배당하는가에 따라 피의자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끈질긴 독종 검사가 있는 반면 샐러리맨의 모든 면모를 갖춘 검사도 있습니다. 기소 전 초기 단계에서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가 자신의 옛 부하였던 지검 차장검사에게 사건 배당을 넌지시 부탁하는 경우 거기에 따라 피의자의 앞길이 바뀔 수 있지만 밖으로는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선임계도 내지 않은 상태에서 의뢰인을 위해 엄청난 일을 해준 것이 됩니다. 담당검사가 결정된 이후에도 검찰 선배 출신의 변호사가 선임계도 내지 않고 전화로 청탁하는 문제가 이미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 법조계의 전관예우는 제가 앞에서 언급한 정도에서만 이뤄질까요? 판사나 검사로 있다가 변호사가 되면 여러 모로 전 근무처의 근무자들로부터 상호부조식의 혜택을 부여받지 않을까요?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전관 변호사를 극단적으로 선호하는 이유는 실력 때문이 아니라 청탁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인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의 법원과 검찰 모두 10여 년 전부터 자정의 노력을 부단히 해온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구태의연한 전관예우의 악습을 근절하려는 고위 법조인들의 의지 또한 강한 것을 직접 확인합니다.
제가 직접 만나서 비교적 깊은 대화를 나눴던 현직 검사장, 고법 부장판사, 법원장 그리고 대법관 분들은 한결같이 언론에서 말하는 전관예우는 크게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분들 주장의 핵심은 현직 판검사들이 옛 상관이나 선배인 변호사를 대놓고 무시할 수는 없지만 사건에 영향을 주는 혜택을 주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서로 안면이 없다면 기계적인 응대 외에 변호사와 시간을 맞춰 얼굴 보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판사와 검사 모두 일이 많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니까 전관을 통하지 않고서는 변호사가 의뢰인의 해명을 담당사건 지휘 부장검사에게 전달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왜 일반 사람들이 훨씬 비싼 돈을 주고 전관 변호사를 찾는지, 로펌들이 비싼 돈을 들여 전관들을 영입하고 사건마다 담당 판검사의 지인을 배정하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우리나라 고위 법조인과 검사들은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사건에 영향을 주는 전관예우는 절대 안하니까 그렇게 알아 달라.”는 말만 가지고는 지금 상황이 크게 바뀔 거 같지 않습니다.
10~5년 전 전관 변호사들이 판사에게 회식이나 용돈을 주던 시절에도 판사들은 잘 아는 판사출신 변호사에게만 용돈이나 실비를 받았고, 검사는 검사출신 변호사에게만 받았습니다. 그분들이 같은 출신의 선배 변호사를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또 다른 큰 이유는 얼마 후 자신들도 변호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판검사들이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살인적인 경쟁을 하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높은 자리에 있던 전관은 대우와 수입 모두가 월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검사가 되던 판사가 되던 결국은 모두 변호사로 법조 커리어를 마무리합니다. 미국의 판사는 변호사나 검사로 실력을 쌓은 후 판사로 커리어를 마무리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판사나 검사로 임용되어서 실력을 쌓은 후 그것을 이용해서 변호사로 돈을 법니다. 미국은 물론이고 우리와 사법 시스템이 비슷한 일본에서도 전직 판사가 변호사로 직종을 바꾸는 일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그런 사고방식조차 용납되지 않습니다.
요점만 쓰려고 했는데 글이 너무 길어지네요. 이번 일요일에 제가 외국 출장이 있는데, 그 이전에 마무리하는 글을 다시 올리겠습니다. ‘전관예우와 법조비리’가 국민의 사법 불신의 핵심이 된 이유 중에는 두 가지 우리나라만의 특징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판사로 임용되어도 변호사로 커리어를 마치는 특이한 시스템이고 나머지 하나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법조 브로커’라는 존재입니다. 여기에 대한 것과 결론은 다음 글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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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