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자동차가 일본에서 라면을 팔게 된 까닭은
미국 생활 두 번째 해인 1990년에 저는 자동차에 처음으로 눈을 떴습니다. 그 계기는 일본제 차들 때문이었습니다. 그 해에 고급 브랜드인 렉서스와 인피니티가 미국에 상륙했고, 혼다에서는 일본 최초의 슈퍼카 NSX와 신형 어코드를 출시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25년 동안 4대의 차를 소유했는데, 저의 첫 번째 차가 1991년 혼다 어코드 EX입니다. 부모님의 돈으로 산 그 차를 유학생활 마칠 때 까지 10만 마일 가깝게 탔고, 1998년에 귀국해서는 가끔 동생의 엘란트라를 빌려 타다가, 새천년에 미국으로 돌아가 위스콘신 주 매디슨에서 2000년형 현대 쏘나타를 구매했고 몇 년 쓰다가 국내로 가져와서 2008년 초까지 탔습니다. 2008년에는 기아 로체 이노베이션을 사서 올해 초까지 탔는데, 작년 8월에 인천에서 큰 사고를 낸 것이 계기가 되어 올 초에 바꾼 것입니다.
올해 새로 산 차는 기아의 신형 3.3리터 K7입니다. 차를 바꾸는 대신에 멋진 스포츠카를 새로 사서 회사 일로 힘들어하는 와이프에게 선물하려고 마음먹었다가 가족 1명의 반대로 기존의 로체를 신형 K7으로 교체하는 걸로 마무리했습니다. 테스트 드라이브도 없이 예전에 한번 타본 K7을 생각하고 샀다가 처음에는 서스펜션이 너무 소프트해서 후회도 했지만 지금은 나름 만족하며 잘 타고 있습니다. 와이프에게 선물하려 했던 스포츠카는 포르쉐 카이맨과 BMW M4를 고려했다가 흰색 닛산 370Z로 결정되기 직전이었습니다. 닛산 370Z를 택한 건 가격 때문이 아니라 제가 그 차의 이전 모델에 대한 깊은 로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동차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바로 1990년 닛산 300ZX 터보입니다. 닛산 300ZX 터보는 1990년에 출시된 수많은 일본제 차 중에 자동차 매니아들에게 가장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차입니다. 1997년에 단종 될 때까지 매년 Car and Driver 잡지의 10베스트에 선정된 것은 물론입니다. 혁신적인 외관에 300마력의 3.0리터 트윈터보 엔진을 장착한 2인승 스포츠카였습니다. 그 당시에도 한국에 계시던 부모님을 졸라서 3만 달러가량이었던(당시 1달러는 700원 정도였음) 그 차를 살까 생각했다가 결정적으로 보험료 때문에 포기했었습니다. (후에 나이 들면서 부모님 돈으로 혼다 어코드 EX를 샀던 것도 부끄러워지더군요.)
한참 후에 알게 되었는데, 1990년은 일본의 자동차 산업의 신기원적인 해였습니다. 그 해에 일본에서만 770만대가 넘는 자동차가 판매되었고, 그 이후 일본 내 자동차 판매량은 지금까지 26년동안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습니다. 여하튼 990년 닛산 300ZX 터보는 일본이 세계의 고성능 스포츠카 시장을 선도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다음 해인 1991년에는 마쓰다에서 신형 RX-7을 출시했습니다. RX-7은 제가 지금껏 타봤던 차들 중에서 가장 비타협적인 고성능 스포츠카입니다. 비타협적이라는 단어는 승차감이 나쁜 걸 의미합니다. 실제 노면이 트랙처럼 매끄러운 것이 아닌데, 그 차는 모든 노면이 트랙인 걸로 착각하고 만든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고성능 스포츠카 매니아 중에서도 골수 매니아를 겨냥하고 내 놓은 차였습니다.
RX-7의 엔진은 피스톤이 상하 왕복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삼각형 모양의 로터가 회전하면서 흡입, 압축, 폭발, 배기를 하는 로터리엔진입니다. 전 세계에서 오직 마쓰다만 사용하는 엔진 스타일입니다. 일반 엔진은 피스톤이 두 번 왕복하는 사이에 한 번의 폭발이 이뤄지지만 로터리 엔진에서는 로터의 3변 모두가 연소실이 되어 로터가 1회전하는 사이에 3회의 폭발이 이뤄집니다. 이 때문에 RX-7은 1.3리터 (2로터)의 자연흡기로 240마력의 고출력을 낼 수 있었습니다.
1991년에는 또 미쓰비시 GTO가 3000GT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상륙한 해입니다. 300ZX 터보와 마찬가지로 3리터 트원터보에 300마력을 내는 엔진을 갖췄고, 거기에다 4륜구동을 기본으로 갖춘 차입니다. 멋진 외관과 4륜구동에도 불구하고 미쓰비시 3000GT는 매니아들에게 그렇게 많은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1993년에는 도요타가 신형 슈프라를 출시했는데, 슈프라의 성능은 동일 가격대에서 다른 경쟁 차들을 월등히 능가했습니다. 승차감이 별로 좋지 않은 등의 이유로 기존의 닛산 300ZX 터보를 여전히 선호하는 층도 적지 않았습니다. 1993 도요타 슈프라 터보는 그 당시까지 터보엔진의 끝판왕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일본이 전 세계의 고급 승용차 시장은 물론 고급 스포츠카 시장도 조만간 석권할 것이 불 보듯 확연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버블경제가 무너지면서 그 이후에 등장한 젊은 세대들은 철저하게 고급차들을 외면했습니다. 그들은 자동차를 신분의 표상이자 열정의 상징처럼 생각했던 선배세대나 지금 우리나라 젊은 세대와는 전혀 달리 단순한 이동수단으로 여기는 거였습니다. 90년대 후반 이후 그 잘나가던 일본의 고급 스포츠카들은 줄줄이 단종 되었습니다. 그나마 유일하게 남아있는 게 닛산 370Z입니다. 그 사이 고성능 터보엔진의 최강국이던 일본은 이미 대세가 된 터보 기술에서 가장 뒤지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닛산 370Z 조차도 자연흡기입니다.)
이렇듯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일본의 젊은이들은 고급 자동차를 살 여력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신형 젊은이가 신형 포르쉐를 구입한 경우 우리나라는 지나친 관심에 시달리는 반면에 일본은 지나친 무관심에 소외됩니다. 비싼 돈 주고 저런 시끄럽고 좁은 차를 산 머저리 소리를 들를 수는 있습니다. 지금 벤츠나 BMW가 잘 나가고 있지만 그건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20년간 제자리걸음이나 퇴보를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일본의 젊은 층은 고급차보다는 경제적인 전기차에 관심을 더 갖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올 여름 6.2리터에 453마력을 갖춘 무지막지한 카메로SS가 출시되자마자 1,000대가 팔린 것과 대조됩니다.
일본 젊은이들이 자동차에 대해 하도 관심을 안 갖게 되자 홍보 차원에서 렉서스 자동차는 카페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고, 최근 도쿄의 롯본기 벤츠 매장에서도 벤츠 브랜드의 라면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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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 라멘이라..
제가 먹기에는 양이 모자라 보여서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