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 대선에서 나타난 또다른 중요한 움직임
어제 매니아분께 버니 샌더스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주말쯤 올리겠다고 대답했는데, 일단 쓰면 글이 길어질 거 같아 오늘 잠시 틈을 내서 시작하는 글을 올립니다.
저는 몇 차례 도널드 트럼프와 관련된 글을 올렸지만 샌더스에 대해서는 이게 처음인 듯합니다. 버니 샌더스는 도널드 트럼프와 함께 이번 미국 대선에서 아웃사이더 돌풍을 일으킨 정치인입니다. 이번 선거의 트럼프와 샌더스 열풍에서 미국이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의미는 미국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에서 생겨난 직접적 피해 당사자들이 정치적으로 결집했다는 점입니다. 변화를 추진하는 주체가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라는 점은 변화의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19세기에 칼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주목했던 이유도 그 계급이 일하는 자와 이윤을 얻는 자가 다르다는 자본주의의 현실적 모순에서 가장 큰 피해를 겪는 당사자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정치적 결집은 세계를 주도하는 핵심국가인 미국에서 일어나는 저항이고, 유혈 혁명이 아니라 자신들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을 스스로 선택해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제도권 운동으로 나타났다는 점도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디테일로 들어가면 트럼프 열풍과 샌더스 열풍은 엄청나게 다릅니다. 트럼프는 미국의 근간이던 자유무역 정책과 개방적인 이민정책을 비난하고 고립주의를 내걸면서 봉인되어왔던 종교와 인종 혐오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이민자들을 범죄자 취급하여 그의 핵심 지지층인 중년의 블루칼라 백인 남성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습니다. 트럼프는 그들의 불만과 분노의 타겟을 마이너리티와 약자들에게 돌리며 강경 일변도로 정책에 반영했습니다. 트럼프가 제시한 처방과 해결책들은 일관성이나 현실성이 부족하고 대부분 거짓에 근거했지만 스스로 소외받았다고 느끼는 백인들은 열광했습니다.
버니 샌더스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보다 오늘은 시작의 운만 띄울 거 같습니다. 버니 샌더스 돌풍의 핵심은 이른바 ‘Y세대’입니다. Y세대는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출생한 X세대의 다음 세대이고, X세대를 잇는다고 해서 Y세대라고 불려왔습니다. 이들은 21세기로 들어오는 시점에 태어났다는 의미에서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 그리고 베이비붐 세대가 낳았다고 해서 ‘에코세대(Echo Boomer)’라고도 불리며, 인구규모 면에서 베이비붐 세대에 비견될 만큼 거대합니다. 나이로 따지면 대략 19세에서 34세 사이입니다. 21세기 세계에 불어 닥친 각종 변화의 중심에는 Y세대가 있었고, 그들은 지금도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게임체인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미국의 20대는 정치적 무관심으로 악명이 높은 세대였습니다. 하지만 2008년 대선에서 18~27세 사이의 청년들은 ‘변화’라는 키워드로 오바마를 당선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 당시 청년세대들이 왜 오바마를 지지하게 되었을까를 이해하려면 Y세대의 가치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흑인 혼혈로 태어나 농구선수가 되고 싶어 했고, 콜룸비아 대학과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후 흑인 인권운동에 몸담은 오바마의 인도네시아, 하와이, 캘리포니아, 뉴욕, 보스턴, 시카고, 워싱턴으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인생행로는 Y세대와 이데올로기 및 가치를 공유하는 중요한 요소들이었습니다.
Y세대는 이전 세대에 비해 다양한 인종이 함께 어울리는 삶의 경험에 익숙합니다. 부모 세대의 결혼과 이혼, 재결합 등을 통해 가족이 서로 다른 국적과 인종으로 구성된 경우도 적지 않고, 학교에서 다양한 이민자 자녀들과 어울릴 기회도 많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들은 자연스럽게 인종이나 민족, 젠더, 성정체성 등의 문제에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Y세대 중 다수가 경쟁과 능력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사회보다 경제적인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적인 사회에 더 높은 호감을 보이며 사회 정치적 이슈에 진보적인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민개혁, 동성결혼, 마리화나 합법화 등에 긍정적인 시각을 보입니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관심은 이전세대에 비해 높지 않고, 총기규제나 낙태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가난한 Y세대일수록 최저생계비 보장, 부의 재분배, 사회 안전망의 확장을 주장하는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높습니다. 이렇듯 2008년 대선에서는 오바마 그 자체가 이미 Y세대가 갖는 배경과 가치를 공유하면서 정치무대에 나선 것입니다. Y세대가 오바마의 핵심 지지 세력이 된 것은 당연했습니다. Y세대의 이런 가치관과 이데올로기는 이번 대선에서 자연스럽게 샌더스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습니다.
Y세대를 규정하는 또 다른 새로운 특징에는 ‘기간제 근로계약’과 ‘인턴근무’라는 불안정한 경제환경이 있습니다. 이 불안정성이 얼마나 극심한지는 Y세대가 대공황 세대보다 더 심한 경제적 혹사를 당하고 있다는 학자들의 지적을 통해 알 수 있고, 이 세대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혹사에는 높아진 교육비와 실업률이라는 중요한 요소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21세기에 들어 산업의 패러다임이 신기술로 이전됨에 따라 교육에까지 도입된 무한경쟁의 영향으로 교육에 투자해야 하는 돈이 늘어나면서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 학자금대출이라는 엄청난 빚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2015년 대졸 사회초년생들은 평균 3만 달러가량의 학자금 빚을 껴안고 대학을 떠났는데, 이는 X세대의 평균 학자금 대출액의 세배가 넘는 액수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회초년생들을 기다리는 것은 실업과 비정규직 그리고 가난이라는 삼중고입니다. 소득은 줄었지만 Y세대의 디지털 소비문화는 X세대보다 더욱 많은 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Y세대 미국인들의 저축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국 연준의 통계를 보면 Y세대의 실질 소득은 X세대의 20년 전 소득보다 9% 적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저축률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수입보다 더 많은 돈을 쓴다는 것으로 결국 빚을 내서 생활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들에게 앞으로 예상치 못한 지출이 발생하면 대비할 수 있는 완충장치는 거의 없으며, 당장 직업 이전과 주택구매 등이 어려워집니다. 거기에다 미국의 핵심 산업이 금융과 IT로 바뀌는 과정에서 유행하게 된 자율해고 및 극단적인 기업 효율화정책은 실업과 직업의 불안정만을 초래했을 뿐입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전체 인구 중에서 약 9천 만명이 속하는 Y세대는 이전 세대들이 누리며 지니고 있었던 국가의 보호라는 안전망까지 시작부터 잃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시간이 너무 늦어졌고 아침부터 할 일들이 많아서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화요일은 긴 글을 올릴 시간이 거의 없어서 미국이 대선 결과가 발표된 후에야 이 글에 이어지는 글을 올릴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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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하게 X세대와 Y세대의 경계선에 있고 말씀하신 부조리를 몸으로 느끼는 - 다행히 운이 좋아 어느 정도의 완충장치는 갖고 있는 - 제게 매우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언제나처럼 좋은 글 잘 읽었고, 다음 글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