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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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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1 12:37:25

《보다》를 보다 생각이 나 적습니다.


소설가 김영하의 산문집 《보다》에 김영하가 만난 역술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김영하는 원래 점 같은 것을 믿지 않는 성격이라는데 무엇을 할 지 몰라 방황했던 20대 시절, 딱 한 번 연대와 이대 사이의 점술인 거리를 찾아가 어떤 점집에 들어가서 점을 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꽤 인기가 있는 지 가게 앞에는 몇 사람이 줄을 서 있었는데 한 손님에게 15분 이상을 절대 할애하지 않던 그 총각 점쟁이가 웬일인지 청지기 역할을 하던, 역술인의 여동생(으로 추정되는 여자)에게 손님을 받지 말라고 한 후 1시간30분을 김영하 하고만 대화하며 보냈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실 거냐는 질문에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혁명가가 되고 싶다고 한 김영하 에게 역술인는 당신에겐 그쪽 운은 아예 없다고, 미래에 말씀 언(言) 자가 두 개나 있으니 글을 쓰는 일을 하면 40년 대운이라고 이야기를 했답니다.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나왔고, ROTC 과정을 곱게 밟고 있는 등 글과는 아무 인연이 없던 삶을 살던 당시의 김영하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후 지금은 한국에서 가장 핫한 작가 중 하나가 되었으니 그 역술인의 말은 온전히 맞아 떨어진 셈입니다. 그 후로 김영하가 그 점쟁이를 다시 만난 적은 없지만, 이제는 아주 유명해진 역술인이라 소식은 가끔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냥 찍었을 지도 모르지만)故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당선을 맞히고, 김정일 사후 그의 사주를 들고 가자 '죽은 사람 사주 가져와서 장난치지 말라.'고 한 말이 신문에까지 실려 유명해진 사람이며, 역삼 한가운데 고층 빌딩에 사무실을 개업했는데 3년치 예약이 끝나 있다네요. 아마도 그 근처에서 근무하는 분들 중에서 그 점쟁이가 누군지 짐작이 가는 분들도 있겠습니다.



제가 10대 후반에 농구 동호회 활동을 할 때 멤버 하나가 박수였습니다. 지금은 제가 농구를 하지 않으니 소식을 알 길이 없지만, 당시에는 꽤 유명짜한 역술인이었다는 이야기를 동호회 회장 형에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판수 일 한다는 말을 들은 후 뒷풀이를 할 때 어떻게 일을 하냐고 물어봤던 적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명리학을 할 줄 아니까 찾아오는 사람들 역을 풀어주는데 가끔, 아주 가끔 초월적인 영지靈知에 갑자기 닿을 때가 있답니다. 그러면 찾아온 사람의 '과거'가 보인다고, 걸어온 과거가 보이기 때문에 소용돌이 치며 흘러가는, 그 사람이 밟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미래를 점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취사선택의 가능성이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자신이 밥 먹고 사는 것 같다는 게 그 박수 형의 이야기였습니다.

아마도 그 박수가 보는 인간들의 미래는 워쇼스키 자매의 영화 《매트릭스3: 레볼루션》에서 주인공 네오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만났을 때의 그 장면과 비슷한가 봅니다. 박수의 말이 맞다면 말이지만, 뭐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s)가 실재할 수도 있겠습니다.

숙명과 운명, 카르마와 다르마, 뒤에서 날아오는 돌과 앞에서 날아오는 돌 등, 대체로 인간의 미래에 대한 여러 종교의 말들과, 그 박수의 말이 맞아 떨어지는 것을 보면 실제로 삶이 흘러가는 방식이 그러한 것일까요. 《보다》를 보며 10년도 더 된 옛날에 봤던 그 박수가 생각나 글을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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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6-07-11 13:46:48

참 글 잘 읽히게 잘 쓰시네요! K2님도 말씀언이 최소 하나는 있을 듯! 담백하고 재미난 글 잘 읽었습니다.

WR
2016-07-12 00:58:06

감사한 말씀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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