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하는 사람과 그의 가족들에게.
아프다는 건 당사자에게도 가족들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너무나 힘든 일임이 분명합니다. 잘하는 사람 못하는 사람의 구분이 의미가 없습니다. 원해서 아픈 사람 없고 원해서 환자의 보호자인 사람 없습니다. 환자는 투병 기간이 길어질수록 고통에 억눌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거닌다는 압박 때문에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걸 경험하게 됩니다. 이성적인 판단을 토대로 내린 치료 계획을 이 악물고 실천해 나가지만, 더딘 회복과 사라지지 않는 고통 때문에 계속 그 노력을 유지해 나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지 멀쩡하고 건강한 사람에게도 노력한다는 게 쉽지 않은 건데, 눈 뜨는 순간부터 눈 감는 까지 아픈 사람에겐 노력하고 올바른 행동을 한다는 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요.
가족들은 어떤가요. 중한 질환은 일화치료비도 만만치 않은데, 그러한 치료를 반복해서 시행하다 보면 굉장한 재정적 압박에 시달리게 됩니다. 보통은 환자가 그 정도의 돈을 못 내지요. 그 부담 모두 가족의 몫입니다. 게다가 그렇게 노력하는 것에 비해 회복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치료 계획을 모두 잘 따라가도 예상치 못한 변수 때문에 재발하거나 악화하는 사례가 부지기수입니다. 게다가 치료 계획을 다 따라가도 될까 말까 할 판에 환자가 치료계획을 이행하지 못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럼 그땐 진짜 터지는 겁니다. 치료라는 건 결국 환자 본인이 감당해야 하는 큰 작업인데, 주변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본인이 안 하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이성적인 보호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족이 아프면 1) 혈육이 아파서 안타깝고 2)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속상하고 3) 자기 몸이 아픈 것 같이 느껴져서 보호자도 같이 아파요. 그 공감하는 정도가 깊어질수록 마음 뿐만이 아니라 몸까지 같이 아픈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결국 모두가 환자가 돼버리고 모두가 감정적으로 변해버립니다.
질병이 환자뿐만 아니라 주변인들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공중보건 분야에선 ‘spillover effect’로 규정하고 이 현상을 기본 축으로 해서 환자의 질병이 가족 (부모, 배우자, 자녀 등.)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도 합니다. 정신과에선 family systems therapy라고 해서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를 타깃으로 치료하는 치료법이 다양한 환자군을 대상으로 시행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기에, 더 빠르고 효과적인 회복을 위해서라도 환자와 가족 사이에 서로에 대한 이해를 되찾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환자는 본인만이 피해자라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하며, 가족은 환자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도록 먼저 손을 뻗어 감싸 안아주어야 합니다. 환자와 가족이 서로를 적으로 내모는 상황은 최대한 피해야 합니다. 환자와 가족 모두 서로의 한계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기대치를 낮춰 조정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려는 유기적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감정적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족 간의 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갈등이 일어나도 결국 서로 걱정하고 사랑해서 싸우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서로 걱정하고 사랑한다는 것만 기억해야 합니다.
저희 할머니는 80이 넘어 치매가 오셔서 아버지의 형제분들이 각자 번갈아 가며 모셔보려 다가 포기하고 결국 요양원에 모셨습니다. 그때 고생했던 여파가 남은 것인지 작은어머니 한 분은 몇 년 전에 급작스럽게 돌아가셨습니다. 막내 작은어머니는 온몸에 고통을 호소하며 외출을 삼가기 시작하셨습니다. 할머니와 가족들 사이엔 넘을 수 없는 메마른 계곡이 생긴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막내 작은어머니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삼 일간 그렇게 아파하면서도 장례식장을 떠나질 않으셨습니다. 영안실에서 꽃단장 하신 할머니의 얼굴을 그 손끝에 닿았던 차가운 냉기로 기억하고자 하는 것처럼 수십 번을 어루만지고 그 누구보다 크게 오열하시다 결국 혼절하기까지 하셨습니다. 장례식을 치르면서 가족들의 마음에서 원망은 눈물에 녹아 사라지고 슬픔만이 짙게 남았습니다. 치매가 온 후엔 모두가 할머니의 독설을 싫어했고 할머니를 멀리했지만, 아버지와 그의 형제들은 그녀의 영민하고 강인한 모습만을 기억하는 듯했습니다. 치매가 흐려 놓은 그녀에 대한 기억을 모두가 다 같이 잊고 그녀의 가장 아름답고 헌신적인 모습만이 각자의 마음속에 남는 시간이었습니다. 다 지나고 나면 마음속에 사랑밖에 남지 않습니다. 사랑했던 기억에 울고 사랑하지 못했던 기억에 통곡합니다. 가족은 결국 사랑으로 이루어진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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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얘기를 잠깐 꺼내면.. 모친께서 치매십니다. 혈관성 치매. 다발성 뇌졸증과 고령으로 인한.
반신불수되면 다행이라는 걸 지금 다 회복하셨지만 치료기간동안 안 그래도 사이 안 좋은 가족들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죠.
저는 모친치료비에 제 모든걸 올인해서 장가도 못가고 집도 못샀고 그래서 원망도 엄청하고. 그 사이 나머지 형제들은 다 등돌리고 저에게 다 맡겨버리면서...
여튼. 긴병엔 결코 효자가 없습니다.
요즘 저도 진지하게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거 같네요.
개인적인 일도 겹쳐서. 진짜 힘드네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거요.
글 내용에 많이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