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려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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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7 16:46:18
영국은 세계 최초로 산업혁명이 일어난 나라이지만, 18세기에 영국이 세계의 강국으로 떠오른 이유는 인도와 북미 대륙의 식민지를 포괄하면서 국제규모의 무역을 전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에 국경을 넘는 원거리 무역거래는 약정에서 제품의 인도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며, 거래 단위로 크고 물류의 이동거리도 길 뿐 아니라 해적이나 도적들에 의한 약탈 위험 등 상거래 위험이 컸습니다. 그뿐 아니라 원거리 무역은 거래 상대에 대한 신용 조회가 어려워 누군가 중간에서 신용을 조사해 주고 대금의 지불을 주선해 줘야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영국에서는 무역과 금융이 함께 발전했고, 무역 중심국의 지위는 금융 중심국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20세기 초중반에 영국은 세계 패권국의 자리를 미국에 넘겨주고, 파운드는 기축통화의 자리를 달러에 넘겨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던은 국제금융센터로서의 지위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유로달러(euro-dollar)시장이라는 거대한 금융시장입니다.
달러는 미국이 발행한 돈이고 달러라는 화폐 가치를 궁극적으로 책임지는 국가는 미국이기 때문에 미국에 예치되고 미국의 통제를 받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하지만 2차 대전의 종전 후 미국과 소련 간 이데올로기 차이로 인해 심각한 의견충돌이 벌어지던 1940년대 말에는 상황이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소련은 2차 대전에서 가장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나라이고 나치 독일을 물리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나라입니다. 2차 대전 당시에 그러한 소련에게 미국은 달러를 통해 많은 경제 원조와 보상을 해줬고, 1940년대 중반에 소련은 미국 내에 이미 상당한 규모의 달러표시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두 국가 사이가 급속히 멀어지기 시작하자 소련은 자국의 달러 자산을 미국에 예치해 놓는 것이 불안해졌습니다. 유사시 제재를 받거나 동결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었고, 역사적으로 유사한 선례들도 많았습니다.
결국 소련은 자국보유 자산을 미국이 아닌 제3국에 예치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결국 런던에 위치한 몇 개의 은행에 40억 달러 가량의 자산을 예치했는데 이것이 바로 유럽에 있는 달러라는 의미에서 유로달러시장의 시작이 됐습니다. 그 이후 ‘유로달러’는 미국 밖에 소재한 은행에 있는 달러를 가리키는 공식 금융용어로 정착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본 밖에 소재한 은행에 있는 엔화를 가리키는 용어는 유로엔, 중국 밖에 소재한 위안화는 유로위안입니다.
1950~60년대 런던의 유로달러시장은 몇 가지 이유에 의해 점점 더 성장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는 1957년에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달러 통화로 행하는 금융 거래에 대해 아무런 규제를 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점입니다. 미국에 있는 은행이 달러예금을 받을 경우 반드시 일부를 지불준비금으로 예치해야 합니다. 그러나 런던에 있는 영국계 은행이 달러로 된 예금을 받을 경우 지불준비금 적립의무가 없어, 은행들의 영업은 훨씬 자유롭게 됩니다. 이로써 탈규제의 대규모 금융시장이 탄생했으며 각국의 금융기관들은 감독 당국의 규제를 회피할 목적으로 런던의 유로달러 시장에 경쟁적으로 진출했습니다.
영란은행이 파운드예금에 대해서는 지불준비금을 요구하지만 달러에 대해서는 제약을 두지 않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런던 은행들은 달러예금을 모두 다 대출로 운용할 수 있습니다. 대신 런던의 은행들은 자금이 모자라면 다른 은행에서 빌려오고 남아돌면 빌려줍니다. 이때 자금이 남아도는 은행은 자금이 필요한 은행에 3개월 또는 6개월 등의 정기예금을 들어주는 방법을 통해 자금을 지원하는데, 이처럼 런던의 은행 간 정기예금에 적용되는 금리가 바로 그 유명한 리보(LIBOR: London Inter-Bank Offered Rate)입니다. 요즘에는 국내에서도 주로 ‘라이보’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많은데, 국내의 CD금리와 유사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리보는 이론과 실제를 막론하고 전 세계의 변동금리 중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유로달러시장은 1970년대에 더욱 성장했는데, 그 결정적인 계기는 두 차례에 걸쳐 발생한 오일쇼크였습니다. 1973년 초에 배럴당 2.59달러였던 유가가 불과 1년 만에 12달러로 상승하자 오일머니라고 이름이 붙을 정도로 엄청난 달러가 산유국들을 향해 쏟아져 들어왔고, 이 막대한 자금을 산유국들은 상당부분 유로달러시장에 예치했습니다. 1978년 말 이란의 국내 혼란과 1979년 초의 이슬람혁명을 계기로 다시 제2차 석유파동이 일어났고 원유값은 배럴당 30달러까지 올랐습니다. 막대한 자금을 쓸어 담은 산유국들은 미국이 달러 동결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소문에 그들의 대부분의 자금을 런던 유로달러시장에 예치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더 시티(The City)라고 불리는 런던의 금융가는 유로달러시장 등 역외 금융시장 및 유럽의 외환 거래가 집중되어 있는 등 유럽 금융의 중심지입니다. 2016년 기준 유럽연합(EU)내 헤지펀드 자산의 80%와 유로달러거래의 80% 이상이 영국에 집중되며 전 세계 유로화 거래의 45%가 영국 내 금융시장에서 이뤄지고 있을 정도로 영국의 금융서비스 산업은 유럽연합 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현지시간으로 6월 23일에 실시됩니다. 2016년 2월 EU 정상회의에서 영국의 EU 개혁안이 합의되면서 영국의 EU 잔류에 대한 찬성여론이 확산되었으나 곧 이어 보수당의 차기 총리로 거론되는 보리스 존슨 등 일부 유력인사들의 EU 탈퇴 지지 선언으로 브렉시트 논란은 가열되었습니다. 지난달까지 찬성과 반대 의견이 팽팽했고 역사를 돌이켜볼 때 이런 경우 국민투표 결과에서 반대의견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비교적 느긋했던 영국의 금융기관들은 최근에 여론이 브렉시트 찬성 쪽으로 급격히 쏠림에 따라 긴장과 위기감이 돌고 있습니다.
브렉시트는 영국을 칭하는 Britain과 Exit을 합친 단어로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한다는 의미가 담긴 단어입니다. 근래에 EU와 유럽중앙은행(ECB)이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의 머리글자)등 남유럽 국가들에게 거액의 구제금융을 제공했기 때문에 EU 회원국의 재정분담금이 늘었습니다. 여기에다 실업률이 높아지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반감이 커지자 영국에서는 EU 탈퇴론이 큰 힘을 얻었고, 브렉시트에 반대하던 캐머런 총리 등 보수당의 주류도 이런 주장에 밀려서 6월23일에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한 것입니다.
영국은 유럽연합 국가 중에서도 특이한 경우입니다. 영국은 유로화 대신 여전히 파운드화를 사용합니다. 전통적으로 북미 등 비유럽권 지역과의 무역비중이 큰 영국은 EU 회원국 중에서 역내 교역의 비중이 가장 낮으며, 그 비중은 계속 감소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EU 가입 이후 지난 40년간 모든 해에서 EU로부터 수혜금보다 기여금이 더 많았으며 특히 EU 회원국의 재정분담금이 늘어난 최근에 와서 순기여금의 규모가 급격히 커졌습니다. 그 때문에 영국민들 중에서는 자국이 EU에 포함되어 있어서 손해라고 생각하는 의견이 팽배하던 중에 2015년 가을 시리아 및 중동 난민의 대규모 유럽 유입은 엄연히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영국 내에 EU 탈퇴 여론이 급격히 높아지는 주요 배경이 되었습니다. 영국의 국민정서는 전통적으로 대륙과의 통합에 회의적이었는데, 몇 가지 이슈에 이슈가 이어지자 탈퇴 여론이 급격히 힘을 받은 것입니다.
만일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 찬성의 결과가 나온다면 영국은 물론 유럽연합도 큰 변화와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특히 유럽 금융시장의 중심이었던 런던 금융시장은 당장 외환거래에 타격을 받아 경쟁력이 약화되는 등 큰 파도에 휩싸일 것이고, 파운드화도 약세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잉글랜드를 제외한 북아일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는 그동안 공동 농업기금과 구조기금의 명목으로 EU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지원금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브렉시트가 벌어진 후 유사한 규모의 자금이 계속 지원되지 않는다면 영국이 연방 국가를 유지하는 데 상당한 갈등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브렉시트가 현실화 되었을 때 영국이 맞이하게 될 커다란 변화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습니다.
브렉시트는 유럽 전체에 미칠 파급력이 작년에 이슈가 되었던 그렉시트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그리스는 경제규모가 유로연합 전체에서 1%남짓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나라이고, 경제구조도 수출 비중이 낮은 영세 자영업 위주입니다. 하지만 영국은 EU에 엄청난 액수의 분담금을 내고 있으며, 런던은 압도적으로 유럽의 금융 중심입니다. 게다가 브렉시트가 실제로 일어난다면 나머지 EU 국가들의 분담금이 대폭 늘어나야 하는데, 이 때문에 유럽 경제가 흔들리는 것은 물론 최악의 경우 EU 탈퇴 도미노가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됩니다.
투표일까지 17일이 남았고 현재 영국의 여론조사 결과 여전히 찬성과 반대 간 격차가 크지 않아 국민투표 날까지 브렉시트에 대한 불확실성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가 주목하는 투표인만큼 앞으로 보름동안 가장 큰 국제 이슈에 포함될 것입니다. 현재 상황에서 변화가 보이면 비교적 자세한 분석을 동반해서 여기에 대한 글을 다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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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