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든 헤이워드의 디시전 번역
이번 결정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결정이였습니다. 지난 주말 역시 태어나서 보낸 주말 중 가장 긴 주말이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제 인생에서 가장 놀라운 날들 중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똑바로 하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제 결정은 조금 오래 걸렸습니다.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시즌이 끝난 날부터 어제까지, 제가 아내 로빈을 포함해서 제 가까운 사람들과 얼마나 많은 대화를 했는지 셀 수조차 없었습니다. 저는 상황을 볼 수 있는 모든 각도에서 관찰하고, 모든 가능성을 검토햇습니다.
보스턴, 마이애미, 그리구 유터와의 대화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웟습니다. 한 팀을 만날 때마다 전 제가 그 팀에 딱 맞는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어제 밤에도 전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100퍼센트 확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재가 말도 안 된다 생각한 것은, 제가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제가 이걸 쓰기도 전에, 심지어 주변 사람들과 얘기도 해 보기 전에 저는 제 행선지에 관한 기사들을 읽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2017년 현대 사회가 움직이는 방식이라 생각은 합니다. 하지맘 상황이 그렇개 전개된 게 너무 아쉽습니다.
이 결정은 저와 제 가족의 삶을 바꾼 결정이였고, 그랫기에 우리는 이것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제가 원했던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제 선택을 팬들과 팀들에게 제가 직접 전하는 것이였습니다.
7년간의 유타 생활을 마치고, 저는 보스턴 셀틱스로 갈 것입니다.
이 소식은 재즈 팬들에게 버거울 것이라는 걸 압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저와 제 가족에게 엄청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지난 며칠 동안, 저는 진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팬들이게도 이 과정이 쉽지는 않을 거란 것을 압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보스턴에 가는 이유를 최대한 솔직히 적으려 합니다.
첫째로, 저는 유타에서의 지난 7년이 제게 어떤 의미였는지 말하려 합니다.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겟네요. 제 전부였습니다.
제가 2010년 여름에 처음으로 솔트레이크시티에 도착했을때, (클리셰라는 걸 알지만 사실인 걸 어쩌겟습니까) 저는 그저 어린 아이였습니다. 전 제가 온 방식을 기억합니다: 그저 돈을 아끼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인디애나에서부터 운전해 온 그 길을 기억합니다. 전 상위 픽으로서 제게 걸린 기대들을 알고 있었지만, 전 그저 20세 청년이였습니다. 고향 밖에서 일을 해 본 것도 처음이였습니다. 제 앞에 놓인 모든 것 때문에 긴장했던 때를 기억합니다. 제 프로 생활 첫 번째 루틴ㅡ제가 항상 써 왓던 서브웨이 포인트카드를 쓰기 위해 가까운 서브웨이를 찾아서(1마일 정도 떨어져 있던) 거기까지 매일 걸어갔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처음엔 그게 전부였습니다. 연습, 서브웨이, 비디오 게임.
그리고 저는 제가 여기서 보낸 시간 동안 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전 이 곳에서 진정한 의미의 성장을 했습니다. 전 이 곳에서 철이 들었고, 프로가 되었습니다. 전 20세 청년에서 두 아이와 아내가 있는 남편이 되었습니다. 가족을 떠나는 걸 걱정하던 소년은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습니다. 제가 여기 있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저는 그 모든 것들을 즐겼습니다. 이곳은 특별한 곳이고, 이 곳이 제게 끼친 영향은 제가 이 곳에 끼칠 영향보다 훨씬 오래 남을 것입니다.
유타 재즈, 그리고 저와 함께 했던 모든 동료들...그들이 제 떠난다는 결정을 가장 힘들게 했던 사람들입니다. 스티브 스타크, 그리고 밀러 가문 전체. 그들은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서 1등급입니다. 데니스 린제이... 솔트레이크의 위닝 컬처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있다면, 그일 것입니다.
전 제리 슬로언에게 지도받은 마지막 재즈 선수였고, 전 그것을 항상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이 제가 이 프랜차이즈의 일부분이라 느낀 가장 큰 이유였고, 그것은 제게 큰 의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프랜차이즈의 그 '일부분'인 사람들ㅡ제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사람들, 많은 팬들은 이름조차 모를ㅡ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제가 이곳을 떠나면 그들을 가장 그리워 할 것 같습니다.
첫 날부터 함께했던 마크 맥노운 어시스턴트 코치도 생각이 납니다. 그가 피지컬 코치였을 때 그는 신인이였던 저와 제레미 에반스를 산타바바라에 데려갔었습니다. 그는 저희를 G-Dilly and J-Dally 라 불렀습니다. 저와 에반스는 신인이였고, '너희는 맨날 노닥거려서(dillydally)'가 이유였습니다. 그 기억이 날 때마다 전 웃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역시 제 시작부터 같이했던 마사지사 더그 비렐도 생각납니다. 우리는 진짜 많은 대화를 나눳습니다. 다툼, 토론, 심지어 허심탄회한 진짜 토크까지. 다시 반복되지는 않을 일들입니다.(프로 운동선수로서 아주 중시하게 될 가치들입니다) 하지만 그게 이 조직의 방식입니다. 항상 진짜 우정이 있었고, 서로 신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피지컬 코치지만, 제가 처음 왓을 땐 그저 볼보이에 불과했던 아이제이아 라이트도 생각이 납니다. 우리는 나이도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의미로 우리는 함게 성장했고, 조직 안에서 함께 발전해 나아갔습니다. 저는 그가 저를 더 나은 선수로 만들어 주기 의해 제게 얼마나 많은 노력을 투자했는지, 그것에 대해 얼마나 감사한지를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신인일 때, '그 파티'에 초대해 준 것도 말이죠.
제 동료들 역시 생각이 납니다. 전 2012년을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제레미는 덩크 콘테스트에 참가할 예정이였고, 저는 그를 도와줘야 했습니다. 컨테스트 전날 밤, 올랜도의 숙소에서, 저희는 마치 기말고사 공부를 하나도 안 한 학생들 같았습니다. 아무런 아이디어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긴장하고 있었고, 아무런 아이디어도 없고, 어떻게든 뭔가 생각해보려 하고 있었습니다. 새벽 3시쯤에야 겨우겨우 찾아낸 허름한 YMCA 코트에서 저희는 머리를 맞댔습니다. 거기에서야 제레미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제가 공 두 개를 동시에 던져 주는 것이였습니다. 저희는 그걸 딱 한번, 진짜로 딱 한 번 연습했고, 제레미는 완벽하게 성공해서 콘테스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제가 스나이더 감독님을 처음 만났던 날, 같이 저녁을 먹었던 그 때 우리는 농구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가족...삶... 각자의 인격에 관한 대화를 나눳습니다. 감독으로서의 스나이더 감독님은 모든 부분에서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의 리더십, 독특한 방식의 동기부여, 그리고 세부적 디테일에 관한 엄청난 집증력은 제가 아주 그리워할 것들입니다. 농구선수로서 제가 오른 위치에 대해 감사해야 할 사람들은 많지만, 스나이더 감독님께 제일 감사합니다.
제가 왓을 땐 육성(development) 코치였고, 지금은 벤치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를 맡고 있는 조니 브라이언트 코치도 생각납니다. 지난 여름은 제 커리어에 있어서 농구적으로 가장 중요했던 시기였고, 선수로서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한 훈련을 했던 때였습니다. 조니(그는 자기 분야에서 그저 최고입니다)는 저와 항상 함께였습니다. 그가 제게 코비와 함께 훈련하라 권유했습니다. 그는 늦은 밤이던 새벽이던 상관없이 저를 계속 격려하고, 동기를 줫습니다. '이 비디오를 분석해.' '이 게임필름을 봐.' 그가 제 안에 숨어 있던 올스타 선수를 찾아 줫습니다.
그리고 유타의 모든 사람들. 사람들은 솔트레이크는 가족과 함께하기 좋은 곳이라 합니다. 그것이 그저 말뿐으로 들리는 건 압니다. 하지만 여기서 시간을 보내 본다면 그것이 사실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도시에 두 가지로 빚을 진 느낌입니다. 이 곳에서 제가 가족을 이루고, 도시 전체가 지난 몇 년 동안 제 딸들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줫을 뿐만 아니라, 그것보다 전에, 제가 처음 선수가 되었을 때부터, 이 도시는 저를 길러냈습니다. 이 도시가 저를 일부분으로 받아들인 느낌이였습니다.
그것에 대해 감사하다 하고 싶었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미지막으로 이 정도로 힘들었던 결정을 내렷을 때는 NCAA에서 듀크에 패배했던 대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그 때의 제 활약은 NBA 스카웃들의 레이더망에 올랐고, 제가 1라운드에 뽑힐 거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버틀러를 떠나 NBA로 가야 하나? 아니면 한 번 더 NCAA 타이틀에 도전해야 하나?
그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선택이였습니다. 그 고민을 함께할 수 있던 건 오직 한 사람뿐이였습니다. 상황을 모든 방향에서 분석할 수 있고, 가장 현명하고 솔직한 의견을 말해 줄 수 있는 스티븐스 감독님이였습니다.
스티븐스 감독님은 그 상황을 너무 잘 대해 줫습니다. 그는 제 옵션들을 분석해 주었고, 양쪽 입장 모두에서 조언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 필요했을 때, 그는 제게 판단을 맡겼습니다. 그 뒤로 모두가 알 듯이 저는 NBA로 발을 디뎠고, 유타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스티븐스 코치와 제 길이 갈렸다 해도, 그를 항상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은 제게 항상 큰 의미를 가졋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7년 뒤에 제가 더욱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스티븐스 감독과 저는 또 다시 갈림길에 함께 섰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가 가장 믿음직스러운 사람이였습니다.
결국 저는 보스턴 셀틱스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이 도시가 저를 이끈 이유는 많습니다. 보스턴에 흐르는 위닝 컬쳐ㅡ레드삭스,패트리어츠,브루인스ㅡ가 첫 이유입니다. 셀틱스 프랜차이즈의 독보적 역사ㅡ빌 러셀, 래리 버드, 폴 피어스....ㅡ 역시 그 이유 중 하나입니다. 현재 셀틱스가 가지고 있는 포텐셜ㅡ토마스와 호포드로 대표되는 유능한 스쿼드, 경영진, 프런트ㅡ도 크게 작용 했습니다. 그리고 스티븐스 감독님. 코트 밖에서 쌓아온 관계뿐만 아니라, 옛날에 인디애나에서 시작된 코트 안의 관계 역시 큽니다.
제가 2010년에 버틀러를 떠나 NBA로 가면서 스티븐스 감독님과 함께 이루지 못했던 일... 그리고 지금부터 다시 감독님과 함께할 목표입니다.
챔피언십 우승.
https://www.theplayerstribune.com/gordon-hayward-decision-free-agency-n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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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건 정말 명문이네요
유타 프랜차이즈에 대한 애정이 넘치네요
상국이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