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스 팬들의 18년간의 인고의 시간
CBS 스포츠에 실린 닉스의 과거 실패사례에 대한 일대기 기사를 주요 부분만 발췌하여 보았습니다.
기자 개인의 사견이 많이 개입되어 있으므로, 많은 부분에서 이견이 있을수 있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닉스팬 고통의 기록들 :
1999년 6/11일
비록 스퍼스에 1-4로 분패하였으나, 닉스는 동부를 재패하고 리그 파이널에 진출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순간이, 이후 18년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기간 동안, 닉스 팬들에게 있어 마지막 유의미한 기쁨의 순간이 되리라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2000년 9/20일
닉스는 프랜차이즈 아이콘인 패트릭 유잉을 크리스 더들리와 묶어 트레이드하기로 하고, 대신 33살의 글렌 라이스와 두장의 지명권을 받아왔다.
이 지명권은 이후 자말 틴슬리와 카림 러쉬가 되었다.
2001년 12/9일
오랜기간 닉스에서 성공적인 업적을 남긴 제프 밴 건디가 일신상의 사유로 갑자기 감독직을 사임한다. 밴 건디는 지난 5년간 닉스 감독직을 역임한 상태였다.
닉스는 이후 16년간 무려 10명의 감독을 갈아치우게 된다.
·Don Chaney (2001-2004)
·Lenny Wilkens (2004-05)
·Herb Williams (2005)
·Larry Brown (2005-2006)
·Isiah Thomas (2006-2008)
·Mike D’Antoni (2008-2012)
·Mike Woodson (2012-2014)
·Derek Fisher (2014-2016)
·Kurt Rambis (2016)
·Jeff Hornacek (2016-ongoing)
2002년 6/26일
닉스는 27살의 마커스 캠비와 당시 루키였던 네네를 덴버로 보내고, 대신 안토니오 맥다이스, 프랭크 윌리엄스, 그리고 지명권 한장을 받아온다. 닉스는 이후 이 지명권으로 마칙 람페를 지명했다.
99년 시즌까지도 팀의 핵심 선수였던 캠비는, 트레이드 이후 4번의 All Defense Team 선정과 한번의 DPOY 수상을 경험하게 된다. 네네 역시, 이후 덴버, 워싱턴, 휴스턴에서 핵심 조각으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반면 맥다이스는, 2년 뒤 스테판 마버리 딜에서 다시 트레이드되고 만다.
2003년
닉스는 아이제이아 토마스를 구단 사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런데 토마스는 당시 이미 (1) 랩터스 부사장직에서 파면당하고, (2) 3년간 CBA를 파행 운영하였으며, (3) 페이서스 감독직에서 짤린 경력의 보유자였다.
이후 닉스 재임기간 동안, 토마스는 지난 50년간 모든 스포츠 구단의 사례를 통틀어 최악 중 하나라고 할만한 구단 운영을 보여주었다.
2004년 1/5일
닉스는 스테판 마버리를 데려오기 위해 안토니오 맥다이스, 찰리 워드, 마칙 람페, 하워드 아이슬리와 1라운드 지명권 하나를 몽땅 넘겨주었다.
찰나의 성공적인 순간도 없진 않았으나, 마버리는 이후 닉스에서 온갖 끔찍한 기억만을 남기게 된다. 어찌나 끔찍했던지, 닉스는 마버리 바이아웃 협상이 중단되자 아예 마버리를 구단의 경기/연습 일체에 참가하지 못하게 했다.
이때 넘겨준 1라운드 지명권은 이후 고든 헤이워드가 되었다………
2005년 10/4일
닉스는 불스로부터 에디 커리와 안토니오 데이비스, 그리고 향후 윌슨 챈들러가 되는 지명권 하나를 받는 조건으로 팀 토마스, 마이클 스위트니, 저메인 잭슨 등을 내보냈다.
당시 불스 공식 블로그는 이를 구단 역사상 최고의 트레이드로 평가했다.
닉스는 트레이드 조건으로 또한 두 개의 지명권을 양도해야 했는데, 이는 이후 라마커스 알드리지와 조아킴 노아가 된다………
11년이 지난 후, 닉스는 노아에게 7200만불을 안겨주고서야 그를 다시 데려올 수 있었는데, 이때 노아는 이미 과거의 껍질만 남은 상태였다.
2007년
전설적인 여자농구 선수 출신으로 전 닉스 구단 임원이었던 아누챠 브라운 샌더스은, 닉스 구단과 토마스 사장을 성희롱 혐의로 고소했다. 재판이 진행되며 스테판 마버리가 구단 인턴사원과 섹스를 했다는 추문까지 들춰지는 등 막장으로 치닫는다.
샌더스는 결국 재판에서 승소를 하고, 닉스는 벌금으로 1150만불을 지급해야 했다.
토마스는 한푼도 내지 않았다.
2008년 4/2일
도니 왈쉬가 구단 사장으로 임명되었다. 왈쉬는 안정적이고 건전한 의사결정을 포함한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열고자 노력했다.
그는 팀 운영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자율권을 보장받았고, 실제로 본인의 업무에 충분한 역량을 보여주었으나, 임기 내내 팀 내부의 알력 다툼에서 오는 폄하에 시달려야 했다.
왈쉬는 3년 뒤 사장직에서 물러난다.
2008년 5/10일
마이크 디안토니가 닉스 감독에 취임하였다. 그는 다닐로 갈리날리, 윌슨 챈들러와 같은 재능있는 선수들을 육성하며, 닉스를 경쟁력은 없더라도 보는 재미는 있는 팀으로 변모시켰다.
2009년 2/24일
마침내 스테판 마버리가 바이아웃되었다. 이후 그는 중국 리그에서 커리어를 끝맺게 되는데, 이후 그가 남긴 것으로는 여러 편의 재미있는 웹캠 비디오 정도가 있다. 그가 바셀린을 먹는 영상을 포함하여.
2009년 6/25일
200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닉스는 8번째 지명권을 얻었다.
스테판 커리는 7번째로 뽑혔다……..
2010년 8월
구단주 제임스 돌란은 아이제이아 토마스를 또다시 구단 자문위원으로 복귀시키려 했는데, 이는 도니 왈쉬 사장의 심기를 몹시 건드리게 된다.
NBA 사무국은 토마스 복귀 시도를 최종 불허하였는데, 이는 당시 토마스가 플로리다 국제대학 감독직을 맡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2010년 2/18일
닉스는 한장의 1라운드 지명권과 또 한장의 1라운드 지명 교환권을 휴스턴으로 보내고, 대신 트레이시 맥그레이디를 받아 왔다.
이는 르브론 제임스를 영입하기 위한 샐러리캡을 비우기 위함이었다.
2010년 7월
닉스는 제임스를 상대로, 그의 클리블랜드 사무실에서 구단 홍보전에 나서며, 그를 역사상 최초의 빌리어네어 운동선수로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제임스는 닉스와 계약하지 않았다….
이후 닉스는 대신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를 영입하고야 만다. 미세골절 수술 이후 그의 무릎 상태에 대한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2010년 가을
카멜로 앤써니가 덴버를 떠나고 싶어한다는 보도가 쏟아진다. 카멜로는 다가오는 여름 FA 시장에서 닉스와의 계약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소식이다.
마침내 닉스는 프랜차이즈 수퍼스타를 맞이할 만반의 준비가 끝난듯 했다.
2011년 2/22일
닉스는 앤써니를 데려오긴 했으나, 대신 4명의 주전과 2장의 1라운드 지명권을 싸그리 넘겨주고야 말았다. 앤써니가 줄곧 닉스를 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닉스는 플레이오프에서 보스턴에 스윕당한다.
2012년 1월
‘린세너티’ 열풍이 터졌다. D 리그에서 올라온 제레미 린이 시즌 중반 팀을 곤경에서 구하며 스포츠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앤써니가 린의 등장을 그닥 반기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다.
불과 몇주 뒤, 린은 부상으로 이탈한다.
2012년 2월
마이크 디안토니가 갑자기 감독직을 사임한다.
프런트 오피스와의 견해차이가 표면적 이유였으나, 근본 원인은 앤써니와의 갈등에 있었다는 말이 나돌았다.
2012년 5/1일
마이애미 히트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중, 2차전을 내준데 분노한 스타더마이어가 주먹으로 소화기를 내리치다 부상을 입는다.
그는 3차전을 결장하여야 했고 닉스는 1-4로 시리즈에서 탈락한다.
2012년 7월
제레미 린이 결국 휴스턴과 계약에 합의하고 팀을 떠났다. 닉스는 제한적 FA였던 린에게, 그만큼의 금액을 제시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2012-13 시즌
시즌 중반의 슬럼프에도 불구, 닉스는 54승을 기록하며 꿈 같은 시즌을 보낸다.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로이 히버트가 카멜로 앤써니의 슛을 림에서 블락하면서 이 꿈은 덧없이 끝나고 말았다.
다음 시즌, 닉스는 37승을 올리는데 그쳤다.
2013년
닉스는 J.R. 스미스에 2450만불 짜리 4년 계약을 안겼다.
2013년 7/1일
무슨 이유에선가, 닉스는 마커스 캠비에 1라운드 지명권 한장을 묶어, 거품낀 1라운드 선수인 랩터스의 안드레아 바르냐니와 트레이드했다.
바르냐니는 이후 닉스에서 2300만불을 벌어가면서 71게임을 뛰는데 그쳤다.
2014년 5/17일
닉스가 마침내 필 잭슨을 신임 사장으로 임명했다. 잭슨은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통해 과거의 영광을 회복할 것을 약속한다.
2014년 7/9일
닉스가 앤써니에 맥스 계약을 안긴다. 리빌딩이 필요한 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계약에는 트레이드 거부권마저 포함되어 있다.
2014년 6/10일
데릭 피셔가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가 오클라호마에서 갓 은퇴한, 코칭 경험이 전무한 상태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2014년 6/25일
닉스는 DPOY 출신의 타이슨 챈들러를 댈러스로 트레이드하며 여러 선수들을 받아온다.
그들 중 2년 뒤 팀 로스터에 남아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15년 1/5일
닉스는 두명의 젊은 윙맨인 이만 슘퍼트와 J.R 스미스를 클리블랜드로 보내기로 하고, 대신 랜스 토마스와 몇몇 선수들을 받아온다. 삼자간 트레이드 과정에서 닉스는 클리블랜드의 1라운드 지명권은 받지 못했다.
스미스와 슘퍼트는 이후 한번의 우승 포함, 클리블랜드가 2년 연속 NBA 파이널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2016년 2/8일
피셔가 감독직에서 돌연 파면된다. 맷 반즈의 전처와 데이트했다는 등 온갖 추문이 나돌았다.
2016년 6/23일
닉스가 데릭 로즈를 영입한다. 수차례의 무릎 수술로 인한 그의 건강상태에 대한 의문이나 그가 다가오는 17년 FA가 된다는 점, 그리고 그가 강간 혐의로 재판을 받던 (이후 혐의 없음 판결) 중이라는 점 등에도 불구하고.
2016년 7/2일
닉스가 조아킴 노아와 7200만불짜리 4년 계약을 체결한다. 그의 무릎 상태에 대한 의문, 그리고 여전히 코트에서 위력적인 모습을 보일수 있을지, 심지어 다시 코트에 설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다는 일련의 시각은 뒤로하고..
다음 해 2월, 노아는 다시 무릎 수술을 받고 속절없이 시즌 아웃되었다.
2016년
필 잭슨과 카멜로 앤써니 간에 언론을 통한 신경전이 고조된다. 잭슨은 앤써니가 패스를 하지 않으려 들고,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비난하였으며,
또한 앤써니의 절친인 르브론 제임스를 상대로 인종차별적 언사 (posse)를 내뱉아 앤써니의 분노를 산다.
결국 트레이드 설이 나돌기 시작하는데, 앤써니의 트레이드 거부 조항 때문에 트레이드는 쉽지 않다.
2017년 1/10일
데릭 로즈가 갑자기 매디슨 스케어 가든 홈경기에 나타나지 않은채 연락두절 상태가 되었다. 그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나오던 와중에, 로즈는 가족 문제로 시카고에 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이후의 보도들에 따르면 당시 로즈는 감정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2017년 2/8일
닉스의 레전드 중 하나인 찰스 오클리가 전국중계 중인 클리퍼스와의 홈경기에서 강제로 쫒겨나는 일이 발생한다. 오클리는 여러 혐의를 받고 수갑이 채워진 채 연행되었다.
곧 언론에서 오클리와 돌란 구단주간의 불화에 대해 집중 포화를 퍼부었고, 결국 아담 실버 총재와 마이클 조단이 중재에 나서게 된다.
핵심
1. 상기 일련의 사태에는 모두 공통점이 있다. 결국엔 모두 책임자를 제대로 선정하지 못했다는 것. 기본적인 책임은 돌란에게 있다. 돌란은 계속해서 잘못된 사람들을 고용했으며, 도니 월쉬의 사례에서 보듯이, 문제를 바로잡으려 할 때마다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기만 했다.
2. 카멜로 앤써니 트레이드는 잘못된 것이었다. 앤써니가 닉스와의 계약을 바라고 있었음을 알았다면, 갈리나리, 팰튼, 챈들러 등 그 많은 재원들을 모두 다 넘겨줬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앤써니 영입을 위해 샐러리캡을 비우려는 취지였다 하더라도, 그거야 앤써니 계약 후 다음 여름시장에서 보다 쉽게 가능했을 일이었다.
3. 아이재이아 토마스가 얼마나 최악이었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성희롱 소송건은 차치하더라도, 토마스는 큰 규모의 딜을 남발하느라 팀 미래의 재능을 몽땅 소진시키고 말았다.
4. 필 잭슨 역시 아무 생각이 없는 듯 보인다. 당초 그는 리빌딩의 기반을 쌓으려 드는 듯 했다. 그러나 그는 오래지 않아 데릭 피셔를 해임하였고, 트라이앵글 전술을 강요하고 있으며, 커트 램비 수비 전문코치를 계속 옹호하고 있다. 닉스의 가장 큰 문제가 수비임에도 불구..
5. 돌이켜 봤을 때, 이 모든 사태의 분수령이 된 것은 밴 건디의 사임이었다. 만약 밴 건디가 더 오래 머물렀고, 닉스가 그에게 충분한 권한을 안겨줬더라면, 아마도 그는 이 모든 혼란을 극복해 내었을지도 모른다. 밴건디를 놓친 것은 실로 뼈아픈 일이다.
6. 본문에서 한가지 언급되지 않은 것은, CAA 매니지먼트가 닉스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강력한 에이전시 회사는 단지 앤써니의 에이전트일 뿐 아니라, 앤써니 딜 직전에 닉스가 고용한 수명의 구단 임원들이 속한 회사이기도 하다.
닉스 내부에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CAA의 조직이 있다는 말이다. 내부 정치다툼이란 어디에나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그들은 닉스가 이미갖고 있는 문제를 더욱 더 증폭시키는 듯 보인다.
7. 마지막으로.. Man, Marbury. Just ...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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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스팬도 아니고 또 그간의 행보를 알고있지만서도 없던 사리가 글 읽는동안 생길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