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 브라이언트에게 고맙습니다
이런 글을 많이 쓰지 않고 글재주도 없습니다만, 저만의 방식으로 그를 추억하기 위해 글을 써내려갑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하기 보다는 제 스스로에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레이커스에 관한 글을 많이 쓰지만, 저는 원래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팬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게리 페이튼이고, 키 에어리나에서 소닉스의 전성기를 볼 수 있었던 것이 큰 행운이었습니다.
레이커스 경기를 보게 된 이유는 일단 제가 응원하는 팀의 큰 걸림돌이었고, (샼 합류 전에도 밴엑슬, 에디 존스, 디박 등이 활약하던 나름 강팀이었습니다) 마침 최고의 센터였던 샤킬 오닐이 합류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엔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어서 TV에서 중계해주면 앞에 앉아서 게리 페이튼과 숀 캠프가 어떻게 플레이 하면 될지 혼자 심각하게 지켜보던 중학생이었습니다.
그러다 에디 존스와 비슷하게 생긴 8번 선수가 코트에 오르더군요. 아마 새크라멘토와의 경기로 기억하는데, 그 선수는 혼자 볼을 푸쉬하다가 괴상망칙한 패스 턴오버를 저질렀습니다. 문제는 조금 후 똑같은 실수를 또 하더군요. 이때 캐스터의 대사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This rookie kid is trying too much (이 루키 선수는 너무 많은걸 하려 하는군요)’
사실 이런 뒷목 잡는 선수는 그냥 웃으며 넘어갈 수도 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선수를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회상하면서 굳이 이유를 떠올리자면…플레이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 선수는 얼마 후 올스타전 덩크 콘테스트에서 비트윈 더 레그 덩크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비록 조던이나 카터의 덩크같이 두고두고 회자될 덩크 우승은 아니였지만, 관중석에서 열광하던 브랜디만큼이나 집에서 TV를 보던 저도 열광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확실히 ‘나는 코비를 좋아한다’라고 자각하기 시작했네요.
NBA 아케이드 게임을 하면 밴 엑슬 – 에디 존스 – 코비 브라이언트 – 엘던 캠블 – 샤킬 오닐의 로스터를 다룰 수 있었습니다. 에디 존스를 정말 좋아했기에 이 로스터가 현실에서 이루어졌으면 했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레이커스는 코비의 성장을 위해 과감하게 에디 존스를 트레이드 합니다. 비록 받아온 선수가 3점 장인이었던 글랜 라이스였지만 저는 바보같은 트레이드라고 생각했습니다. 코비를 좋아했지만 에디 존스를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잘해야 평균 18~20점 정도 내는 선수? 하지만 코비는 그의 커리어 내내 그랬듯이 저를 포함한 비관자들이 틀렸다는 것을 실력으로 증명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코비는 리그 최고의 스윙맨 중 한명으로 성장했습니다. 샼이 인간 흉기로 공만 투입되면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괴물이었다면, 코비는 어떤 위치에서 어떤 형태로든 득점할 수 있는 전천후 병기였습니다. ‘원투 펀치’라는 수식어가 정말 잘 어울렸는데, 두 선수가 타이슨 급으로 원투를 때려대는데 답이 없더군요. 원이 없으면 투가 들어갈 수 없고, 투가 없으면 원이 충분한 데미지를 못 주기에, 내외곽으로 때려대는 이 둘은 진정한 원투 펀치였습니다. 시간이 지난 요즘 ‘레이커스는 샼 팀인가, 코비 팀인가?’라는 논쟁을 보면, 당시 소닉스 팬으로서 ‘둘 다 충분히 알맞게 역겨웠습니다’라고 답하겠습니다.
당시 저는 종종 ‘샼과 코비가 NBA를 재미없게 만들고 있다’라고 비난할 정도로 둘은 무서웠습니다. 아이버슨의 플레이도 좋아하지 않고 필라델피아의 플레이 스타일이 흥미가 떨어진다고 생각했음에도, 결승전에선 필라델피아의 선전을 기도했고 1차전에서 아이버슨이 타이론 루를 넘어갈 때 환호했습니다. 뉴저지와의 결승전에선 ‘제발 힘을 내줘 무톰보 형!’ 하면서 소닉스에게 가슴 아픈 업셋을 안긴 선수를 응원했습니다. 디트로이트와의 결승전 당시에 미군들이 모두 레이커스에 내기를 걸었습니다. 결과는 언더 독의 승리였는데, 내기에서 돈을 딴 사람이 있었을까 하네요.
디트로이트전보다 더 기억에 남고 마음 졸이며 봤던 시리즈는 역시 밀리니엄 킹스와의 서부 결승전이었습니다. 지금도 매우 치열한 시리즈로 회자 되는데, 당시 라이브로 지켜보는 입장에선 피가 마르더군요. 특히 마이크 비비는 레이커스 입장에서 재앙이었습니다. 이 선수가 공을 몰고 하프코트를 넘어오면 ‘어 왠지 넣을거 같애’란 생각이 들고 실제로 가볍게 2점을 적립했으니까요. 샼-코비 시대의 시리즈를 단 하나 꼽으라면 기적의 역전승을 꼽아낸 블레이저스보다 킹스와의 시리즈를 꼽고 싶습니다.
샼이 마이애미로 떠날 때는 좀 놀랐습니다. 당시엔 언론에 보도된 것이 전부라서 저는 실제로 코비와 샼의 갈등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잔 부상 많은 나이 든 선수에게 맥시멈 계약을 안기기 싫었던 구단과 선수간의 협상 이슈가 더 컸죠. 비록 디트로이트에게 일격을 당했지만 코비만큼이나 샼도 무적의 선수 이미지였기 때문에, ‘샼 없이 될까?’라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트레이드로 온 브라이언 그랜트와 라말 오덤(그리고 후에 워싱턴에서 포텐을 터뜨리는 캐론 버틀러)이 마이애미에서 제가 기억했던 것 보다 잘해주지 못하면서 ‘역시 샼이 있어야 했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후 코비의 원맨팀 시절은 많은 기억이 없습니다. 일단 응원팀이었던 소닉스가 레이 알랜 체제에서 잘 해주고 있었고, 무엇보다 피닉스 선즈의 신나는 농구에 푹 빠졌기 때문입니다. 코비의 개인 퍼포먼스는 (81점 넣은 날 저녁 ESPN 뉴스가 생각나네요) 대단했지만 레이커스의 농구는 이기는 농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레이커스가 트레이드 루머가 나오지 않는 가운데 이대로 코비는 전형적인 약팀의 슈퍼 에이스로 남거나 다른 팀으로 가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07 시즌이 시작되기 전 저의 NBA에 대한 관심은 역대 최저가 아니였을까 합니다. 소닉스는 레이 알랜을 보스턴으로 보내며(전설의 BIG3!) 리빌딩을 진행하는 가운데 연고지 이전설이 횡횡했죠. 저에게 ‘오클라오마시티 슈퍼소닉스’는 더 이상 소닉스가 아니였기에 (나중에 이름도 바꼈죠) 애정을 붙일 팀도 없었고, 게리 페이튼도 마이애미에서 반지 챙기고 은퇴한 상황이었습니다. 코비는 좋아했지만 레이커스 경기를 보는것은 괴로웠고, 피닉스와 댈러스 경기를 즐겨 봤지만 제 마음을 사로잡는 플레이어는 없었습니다. (내쉬나 노비츠키가 좋은 선수가 아니였단건 절대 아닙니다)
나중에 실제 했음이 알려진 코비의 트레이드 요청 사건이 우야무야 마무리 되고 07 시즌을 시작했는데 이게 왠걸, 레이커스는 서부 1위를 달리게 됩니다. 당시 레이커스가 로스터에 추가한 것은 데릭 피셔 뿐. 작년 코비의 경기 패턴을 분석한 영상을 보니 이해가 됐는데, 그때 코비는 팀원들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드디어 깨우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막 포텐을 터뜨리기 시작한 (저에겐 애증의) 바이넘이 부상으로 일탈. 한때 위기라고 생각한 그 때 레이커스 프랜차이즈를 바꿀 또 하나의 사건인 가솔 트레이드가 일어납니다. 아직까지도 왜 그리즐리스가 그렇게 서둘러 헐값에 가솔을 넘겼는지 이해가 안 가지만 당시 좋아서 입이 찢어진 상태로 인터뷰 하던 코비의 얼굴이 떠오르네요. 지금은 가솔이 나이가 들고 부상에 시달려 제몫을 못하지만 당시에 가솔은 지금의 앤쏘니 데이비스만큼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럽산 백인 빅맨은 터프하지 못하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가솔은 골밑에서 공격적이며 화려한 움직임을 자랑했습니다. 게다가 가드와 함께 속공에서 코트를 달릴 수 있고 수비에서 헷지를 하는 동시에 골밑으로 복귀해 블록에 참여하는 수비력. 하이포스트에서 공을 뿌릴 수 있는 시야와 BQ까지. 비인기팀으로 중계가 없던 그리즐리스였기 때문에 농구잡지 루키에서나 보던 선수였는데, 실제로 보니 완전 사기더군요.
동부에선 빅 쓰리를 중심으로 한 보스턴이 끈적한 수비농구가, 서부에선 코비를 중심으로 한 레이커스의 화끈한 공격농구가 양대 컨퍼런스를 제압하고 결승에서 만났습니다. 말 그대로 창과 방패의 대결이었는데 아쉽게도 창이 방패를 뚫지 못했습니다. 얼마전 다시 시리즈 영상을 찾아 봤는데 코비에 폴 피어스를 붙인것도 모자라 뒤에서 가넷이나 포지가 함께 덮쳐 오더군요. 가솔이 가넷과의 매치업에서 우위를 못 가져가는 가운데 레이커스 오펜스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던 코비가 막히자 레이커스는 고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레이커스의 수비는 보스턴의 최대 약점으로 여겨졌던 론도를 전혀 압박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론도가 동부 결승에서 디트로이트를 만나 토 나오는 풀코트 트랩 디펜스 수업을 받지 않았다면, 코비에게 반지가 하나 더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올랜도에는 코비를 막을 수단이 전혀 없었습니다. 코트니 리는 코비를 1:1 수비하기엔 무리였고 시리즈 스코어 4-1로 드디어 코비는 우승을 차지합니다. 다음 시즌 보스턴과 다시 마주했고 4-3으로 가는 혈투 끝에 2회차 우승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우승을 차지한 이 두 시즌보다 저는 준우승을 차지한 07-08 시즌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왜냐하면 코비가 팀을 챔피언쉽으로 이끌 수 있는 리더로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코비 팬에서 확실하게 레이커스 팬이 되었네요.
이 후 두 시즌은 여전히 강팀이었지만 이전만큼의 오오라는 없었습니다. 코비도 조금씩 내려오고 있었고 가솔은 체력적 오버로드가 완연해 보였습니다. 건실한 선수였던 바이넘은 갑자기 말썽쟁이가 되었고 괴상하리만큼 3점이 안들어갔습니다. 코비의 개인기 외에 오펜스의 창의성 부족으로 답답한 플레이를 반복하는 가운데 크리스 폴 트레이드가 불발되었습니다. 폴 트레이드야 말로 프렌차이즈 플레이어 영입 뿐 아니라 레이커스의 문제점을 한번에 해결해주는 최고의 움직임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라마 오덤만 잃어버렸네요. 썬더와의 플레이오프를 지켜본 후 ‘이 팀은 정말로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판타스틱4의 결성은 설레일수 밖에 없었습니다. 잡지 루키에서 발간한 로스터 정리 특별호에서 안티 마이애미로 꼽히던 부르클린 네츠와 함께 우승 후보로 꼽혔던 기억이 있네요. NBA 오픈 코트에서도 모든 패널들이 서부 우승 후보로 레이커스를 꼽았으니 아주 얼토당토 하지 않은건 아니였지요. (놀랍게도 스퍼스를 꼽은 패널이 한분 있었죠. 바로 레지 밀러!)결론은 이론적으론 아름다웠던 모션 오펜스로 헤메다 부상으로 신음한 후 코비의 아킬리스 부상으로 처참한 시즌을 마무리합니다. 일부러 레이커스를 플레이오프에 올리기 위해 편파 판정을 한다는 음모론 속에 노장인 코비가 하프코트 볼운반부터 플레이메이킹까지 도맡는 슬픈 워리어스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소리가 없이 화면만 보고 있었는데 심판이 파울콜 손을 올리며 코비는 넘어졌고 무릎을 감싸 안았습니다. 코좀비라 불릴정도로 부상을 달고 살던 선수라 언제나처럼 일어날 줄 알았습니다. 절뚝이며 일어나 자유투를 쏘는걸 보고 10년 감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코비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코비가 시즌아웃 되고 하워드가 휴스턴으로 떠난 시점에서 레이커스는 리빌딩 모드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코비는 1년 쉬어야 했고 내쉬와 하워드 트레이드를 위해 모든 자산을 소모한 상태에서 보호픽을 사수하기 위해 탱킹이 필요했습니다. 어짜피 탱킹할 거 레이커스 레전드 대우도 할겸 티켓 장사 좀 할 겸 레이커스는 노장 선수에게 거대 계약을 안겨 줍니다. 이런 배경을 모두 무시하고 ‘코비의 계약 때문에 레이커스 리빌딩이 어렵다’고 비난하는 언론이 안타까웠습니다. 샤크레가 6반칙 퇴장을 당하고도 대체할 선수가 없어 코트에 복귀하는 팀에 누가 오고 싶어 할까요. 어느 팀이나 리빌딩을 위해 참고 견뎌야 할 때가 있는 법인데 말이죠.
이상적인 은퇴식 이야기를 할 때 샌안토니오의 데이비드 로빈슨이 많이 언급되죠. 현실적으로 어렵다는걸 알면서도 07-08 시즌처럼 기적이 일어나 코비가 화려한 은퇴시즌을 보내길 은근히 바랬습니다. 하지만 말년의 코비와 레이커스는 정말 괴상망칙한 농구를 했죠. 팀 플레이를 안하는 볼호그다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당시 코비가 공을 쥐고 리딩을 하지 않으면 너 한번 나 한번이 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스콧 감독의 무전술이 제일 문제입니다만) 퀵니스를 잃어버려 윙에서부터 포스트업으로 낑낑대며 전진하는 오펜스는 보면서도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왜 러셀이나 잉그램 같은 신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나’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데, 저는 코비가 그렇게 플레이 하는게 팀이 이길 수 있는 확률을 최대한도로 올려준다고 믿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코비는 프렌차이즈의 미래를 위한 선수 육성보다 ‘당장 오늘 경기, 이번 시즌을 이길 수 있는 방법’에 더 고심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태도가 옳다는건 아니고 그의 끔찍한 수비를 변호할 수 있는건 아닙니다만, ‘역시 코비답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기기 위해 슛을 던진 마지막 유타전까지요.
What Can I Say? Mamba Out
은퇴 이후에도 저의 NBA 팬질에서 코비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각종 인터뷰에서 에피소드를 이야기 하는 영상들도 시간날때마다 찾아봤습니다. 가장 최근 인터뷰는 론 아테스트(현재 메타 월드피스)의 디트로이트전 폭력사태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였습니다. 월드피스가 연습에서 피지컬하지 못하자 코비가 식당에서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코비: 이봐, 네 이름이 월드피스 아냐?
월드피스: 그렇지.
코비: 그럼 평화(peace)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잖아.
월드피스: 어떻게?
코비: 전쟁으로(through war)
다큐 맨 처음에 나오는 인터뷰인데 ‘역시 코비답다’라며 피식 웃었습니다.
디테일도 즐겨 봤는데 각종 인터뷰를 통해 농구 변태라고 익히 들어왔지만 영상을 보니 정말 징하더군요. 거시적으로는 슛과 패스의 디시전 메이킹부터 공을 잡는 위치와 잡았을 때 발 포지션까지 따지는걸 보고 역시나…하지만 때때로 ‘왜 이걸 못해’라는 느낌이 살짝 살짝 들더군요. ‘여기서 합을 뛰며 공을 잡으면 왼손으로 올라갈 수도 있고 오른손으로 올라갈수도 있고 페이더웨이를 하거나 턴어라운드 드리블로 제칠 수 있지’라고 분석하는데 ‘그건 그 스킬들을 다 할 수 있는 선수만 가능하잔아!’라고 생각하며 또 웃었습니다.
이 외에도 하나하나 따지면 끝이 없네요. 원래 짧게 끝날 글이었는데 쓰면서 한 줄 한줄 늘다보니 길어졌습니다. 사실 더 쓰고 싶지만 벌써 새벽 세시라 줄이고 싶네요. 글을 쓰는 동안 레이커스와 올랜도의 결승전을 보고 있습니다. 경기 중 재프 밴 건디 해설의 말이 공감 갑니다. '코비는 그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해 또 다른 우승이 필요 없다Kobe Bryant doesn't have to win another championship to prove his greatness')
제가 NBA를 보기 시작한 게 올라주원과 오닐의 결승전이었습니다. 조던의 1차 복귀와 2차 쓰리핏을 지켜봤지만 그의 블랙캣과 1차 쓰리핏을 지켜보지 못했습니다.
개리 페이튼의 열렬한 팬이었고 그의 끝을 지켜봤지만, 그는 이미 숀 캠프, 허쉬 호킨스, 슈렘프와 함께 전성기에 들어선 선수였습니다.
실수 투성이의 루키에서 슈퍼스타로, 슈퍼스타에서 전설로, 전설에서 고집센 늙은이까지 20년간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온 선수는 코비가 유일하네요. 저의 청춘 시기를 함께 했고, 코비가 이룬 업적과 비견될 수 없지만 나름 저만의 치열한 인생 속에 여러 영감을 주었습니다. NBA에서 그와의 마지막은 명예의 전당에서 연설일줄 알았는데 허무합니다.
아침 일찍 뉴스를 보고 하루종일 슬펐지만 이 글을 쓰며 마음이 많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코비와 딸의 사고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시간이 흐르자 브라이언 쇼가 했던 말이 공감이 갑니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 사람과의 추억을 떠올리는 거라구요.
코비는 저의 인생의 절반에 많은 추억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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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대로 쓰다보니 두서없는 글이 되어버렸네요. 일부러 수정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