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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역사를 바꿔놓은 트레이드 (90년대 올랜도의 어리석은 선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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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9-17 11:47:45

  | NBA 역사를 송두리째 바꿨을 트레이드  |  NBA-Talk

 

 위 글이 꼭 받아야 했던 트레이드에 관한 것이라면 이 글은 꼭 받진 않아도 되었던 트레이드와 그 결과입니다.

 

 90년대 초 올랜도는 18승, 31승, 21승을 올린 암울한 프랜차이즈였습니다. 하지만 그러던 올랜도에게도 봄이 왔으니, 92년 1픽이 손에 들어온 겁니다. 당해 드랲은 장님도 누구를 뽑아야 할지 알고 있었습니다. 올랜도는 루이지애나의 샤킬 오닐을 1픽으로 데려왔습니다. 

 

 

(젊은 샼, 젊은 크레익 세이거)

 

 팀 성적은 수직 상승했습니다. 21승 팀이 41승으로 두 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하지만 인디애나와의 타이브레이커에서 패배한 결과 아쉽게 플옵에는 나가지 못했습니다. 이듬해의 1라운드 스윕도 그렇고 샼의 커리어 초기는 밀러에게 물을 좀 먹었군요. 여담이지만, 올랜도의 플옵 실패에 대해 올랜도 관계자들 만큼이나 리그 관계자들이 땅을 쳤다고 합니다. 몇 년째 관람한 밀러의 3점 쇼보다는 20살 샼이 골대를 부숴버리는 게 더 화제거리였거든요.

 

 하지만 인생지사 새옹지마라, 플옵에 나가지 못한 올랜도는 93 드랲에서 또 1픽을 뽑았습니다. 얻어온 픽으로 매직 존슨과 제임스 워디를 연거푸 낚아올린 80년대 레이커스가 떠오르네요. 93드랲에서도 누구를 뽑아야 할지는 명백했습니다. Fab5의 대장, Mr. Timeout, 미시건의 크리스 웨버였습니다. 팬들은 역사상 최고의 트윈타워가 될 거라며 흥분했습니다. 몇몇 관계자들의 꿈엔 이미 샼과 웨버가 같이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장면이 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웨버는 드랲되고 15분만에 골스로 팔렸습니다. 그 대신 도착한 건 96년, 98년, 00년 1라운드 픽과 키가 크고 웨버만큼이나 잘 생긴 3픽 포인트가드였습니다. 페니 하더웨이였습니다.

 

 

(젊은 웨버, 젊은 페니, 젊은 크레익 세이거)

 

 최근에 IF&VS 게시판에 웨버vs페니를 올려보니 55:45 정도 나오더군요. 거기에 1픽 세 장이라니, 당연히 받아야 하는 트레이드가 아닌가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안 해도 될 트레이드였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화려하게 피어올랐다가 심각한 부상을 입고 98년 이후로 기량을 잃어버린 페니와 달리, 웨버는 마찬가지로 부상과 씨름하긴 했지만 그래도 02-03시즌까지 훌륭한 빅맨이었고 10년간 600경기 가까이 뛰었습니다. 그리고 웨버의 커리어가 꼬인 건 그에게 전통적인 빅맨 롤을 강요한 돈 넬슨과의 불화가 컸는데, 태어나기를 골밑에서 태어난 샼과 함께했다면 커리어 초기부터 웨버의 성향에 맞는 플레이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랬다면 기량이 만개하는 게 훨씬 빨라졌겠죠. 

 

 실제로 페니는 당시 올랜도 팬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고 회고했습니다. 위에 말한 55:45라는 건 이후 커리어를 다 아는 상태에서 하는 평가일 뿐, 당시 둘에 대한 기대치는 상당히 차이가 났거든요. 당장의 우승컵을 꿈꾼 팬들에게 5년 7년 뒤에나 돌아올 드래프트 픽은 너무나 멀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한숨이 환호성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페니는 루키 시즌부터 준수한 활약을 선보이더니 2년차에 올스타 및 ALL-NBA 퍼스트팀으로 뛰어오르며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샼&페니는 순식간에 리그 최고의 듀오가 되어 파이널까지 도약했죠. 반면 웨버는 페니를 제치고 ROY를 차지하면서 상쾌하게 커리어를 시작하는 듯했지만, 상기한 돈 넬슨과의 불화로 인해 1년만에 골스를 떠났고 2, 3년차에 이미 줄부상이 터지면서 버스트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습니다. 1라 픽 1+3 장을 넘기면서 데려온 유망주가 1년만에 팀을 떠났으니 골스의 성적은 바닥을 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96, 98, 00년 픽 역시 가치가 슬금슬금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가장 비관적인 회의주의자라도 장밋빛 꿈을 꿀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올랜도는 이미 물 밑에서 악수를 두고 있었습니다. 페니의 기량에 감명받은 프론트는 이제 좋은 파워포워드 하나만 있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웨버의 것이었던 바로 그 자리지요. 구단은 어수선한 시카고에서 곧 FA로 풀릴 호레이스 그랜트에게 눈독을 들였고, 그 샐러리 캡을 만들기 위해 주전 포인트가드 스캇 스카일스를 워싱턴으로 트레이드합니다. 문제는 그 트레이드에 골스에서 받아온 96년 1라 픽까지 같이 끼워 팔았다는 겁니다. 받아온 건? 96년 2라 픽이었습니다. 그냥 샐러리 비우기였고 워싱턴만 땡 잡은 거죠.

 

 스캇 스카일스는 괜찮은 포인트가드였습니다. 90-91시즌 처음으로 주전 포가 롤을 맡으면서 기량발전상을 수상했고 페니가 오기 직전인 92-93시즌에도 15.4득점 9.4어시스트를 올렸습니다. 그가 기록한 한 게임 30어시스트는 아직도 NBA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페니를 얻으면서 프론트는 점점 스카일스의 롤을 줄여나갔습니다. 스캇은 웨버-페니 트레이드 때 이미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스캇과 페니는 같이 뛸 수도 있었습니다. 착화 6-7의 장신이 상대 1번과 매치업하면 얻는 것만큼이나 잃는 것도 큽니다. 페니의 경우 가장 치명적인 건 무릎이었습니다. 선배 매직도 그러했듯이, 장신 포가가 작은 선수들을 쫓아다니면 무릎에 부담이 가게 되어 있습니다. 페니는 그걸 견딜 만한 강골도 아니었고요. 매직 옆에 바이런 스캇이 있었듯이 페니도 수비를 도와줄 만한 1번을 옆에 두고 뛰는 게 커리어에 더 나았을 겁니다. 실제로 페니는 스캇과 함께한 루키 시즌이나 무릎 부상 이후 커리어 후기에는 2번으로 뛰었습니다.

 

 아무튼 트레이드는 이루어졌고, 올랜도는 계획대로 호레이스 그랜트를 데려왔습니다. 팀은 57승을 올리고 그대로 파이널까지 치고 올라가 올라주원과 휴스턴에게 스윕당했습니다. 이듬해에는 60승을 올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플옵에 진출했으나, 기량을 회복하고 역대 최강의 팀을 꾸린 황제에게 또 스윕당했습니다. 95년 파이널 스윕 때는 괜찮다고 했던 팬들도 이때는 조금 실망했을 겁니다.

 

 하지만 미래는 여전히 밝아 보였습니다. 페니는 2년 연속 퍼스트팀이었고 제독과 드림, 유잉만 좀 더 늙으면 리그의 골밑은 샼의 놀이터가 될 게 틀림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당연히 올랜도가 샼과 재계약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팀원들끼리 사이도 좋았고, 줄 수 있는 돈을 봐도 버드 권한이 있는 올랜도가 다른 팀보다 유리했거든요. 하지만 여기서 올랜도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립니다. 구단이 샼에게 내민 계약서는 4년 54밀이 적혀 있었습니다. 참고로 알론조 모닝과 주완 하워드가 맺은 계약이 7년 105밀이었습니다. 그냥 나가라는 거였죠. 자존심이 상한 샼은 레이커스와 7년 120밀에 계약했습니다. 그리고 호넷츠에서 뽑혔다가 블라데 디바치와 트레이드된 18살의 코비와 함께 새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레이커스 팬 입장에서는 당연히 환영할 일입니다. 샼&코비 팬 역시 환영할 상황이죠. 샼이 올랜도에 남았으면 역사에 남을 듀오를 못 보지 않았겠냐구요. 그런데 저 위에서 이야기한, 웨버를 넘기면서 골스에서 받아왔다가 샐러리 비운다고 스캇 스카일스와 함께 넘긴 96년 1라운드 픽이 있잖아요. 그 픽이 11픽이었습니다. 코비는? 13픽이었습니다.

 

(사실은 올랜도에 갈 수도 있었다) 


 13픽으로 고졸 애송이를 뽑는 건 보통 도박이 아니지 않냐구요? 그럼 14픽 페자 스토야코비치나 15픽 스티브 내쉬, 17픽 저매인 오닐은 어떻습니까? 아무튼 페니만 남은 상황보다는 훨씬 더 밝은 미래가 기다릴 게 명명백백하죠.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스캇 스카일스를 꼭 처분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거니와, 처분하더라도 멀쩡한 96년 픽을 버릴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랜트가 꼭 얻고 싶으면 스캇만 처분하면 되는 거였죠.

 

 올랜도에 혼자 남은 페니는 다들 아시는 길을 걷습니다. 96-97시즌에 이미 부상으로 23경기를 결장했고, 플옵 1라운드에서는 61승 히트를 상대해 3-2로 분패했습니다. 3-4-5차전의 42-41-33득점은 그가 득점은 못 해서 안 한 게 아니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3연전 동안 페니가 47-48-47분을 뛰었다는 겁니다. 부상으로 60경기도 못 뛴 선수가 말이죠. 이듬해에는 부상으로 19경기밖에 못 뛰었고 다시는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웨버가 이제 킹스로 이적해 전성기를 맞이할 무렵이었습니다. 그 옆에는 위에서 언급된 페자 스토야코비치와 블라데 디바치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럼 밀레니엄 샼의 마지막 대항마였던 크리스 웨버를 포기하고 올랜도가 얻은 건 뭔가요? 웨버만큼이나 화려했지만 웨버보다도 커리어가 짧았던 슈퍼스타와, 코비/페자/내쉬/저매인이 될 수도 있었지만 샐러리 비운다고 길에다 갖다버린 96년 픽, 이 글 쓴다고 방금 보고 왔지만 그새 이름을 까먹어버린 98년 픽, 그나마 00년 픽으로 뽑은 마이크 밀러는 좋은 선수였습니다만, 프랜차이즈를 바꿔놓을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만약 올랜도가 샼을 잡고 잘 아껴놓은 96년 픽으로 코비/페자/내쉬/저매인을 뽑았다면 아직도 우승 없는 구단으로 남아 있진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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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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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7 11:56:21

결과를 아는 입장에서 과거의 상황을 보는 것은 참 재미있습니다.

지금의 정보를 가지고 80년대로 돌아간다면 역사상 둘도 없을 최고의 GM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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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9-17 13:33:41

미래를 모르는 상황에서도 웨버vs페니 딜은 많이들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웨버의 기대치가 그만큼 대단했거든요. 그리고 96년 샼은 조던 이후 리그를 지배할 거라는 데 손모가지를 걸 사람도 많았습니다. 실수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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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7 12:03:21

샤크에겐 왜 저런 액수를 제안한거죠?

WR
1
2019-09-17 13:07:05

혹시 제가 모르는 뒷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돈을 아낀 겁니다. 당시 리그는 맥시멈도 사치세도 없이 스타플레이어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98-99시즌 직장폐쇄로 치달았죠.

1
2019-09-17 12:06:01

 글 참 맛깔납니다.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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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9-17 13:14:10

감사합니다. 할 일 안 하고 이거 쓰다보니 텐션이 올라갔습니다

1
2019-09-17 12:06:18

스카일스는 당시 이혼인가 양육권 문제로
소송 들어가면서 농구에 전념하기
어려웠다고 들은 기억이 나네요.
물론 그래도 올랜도가 너무 장사를
못 하긴 했습니다만..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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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9-17 13:15:46

아 그 얘긴 처음 들었네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1라픽을 버릴 이유는 없었다 싶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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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7 12:07:55

샤크가 엔터테인이 좋아 lal로 간줄로만 알았더니 올랜도에서 형편없는 계약을 제시했었군요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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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9-17 15:14:35

샼도 협상을 해보려고 했습니다만, 리바운드랑 수비가 안 좋다느니 3년 옵트아웃은 안 되고 4년은 뛰어야 한다느니 기분 나쁘게 트집을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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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7 12:21:06

진짜 다른건 몰라도 샤크에게 왜 저런건지는 이해가 안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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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7 12:32:30

연이은 성공이후에 악수를 두는 그런 느낌이었나 보네요.

샼한테는 강팀이니 덜받고 남으라는 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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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7 12:38:13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1
2019-09-17 13:11:26

궁금해서 관련기사를 찾아보니까 올란도 매직은 샤크의 자유투를 우려했고, 한 선수에게 캡 스페이스의 82%를 할애하고 싶어하지 않았다네요. 당시엔 샐러리캡이 존재했지만, 맥스 샐러리라던지 사치세 같은 것이 없을 때였는데도요. 샤크와의 샐러리 협상시에는 그의 리바운드와 수비를 비판했구요. 올란도 센티넬은 당시에 공개 폴을 만들어서 샤크가 115밀리언달러의 가치가 있는지 투표를 실시했는데, 90% 투표자들이 그렇지 않다고 답했었다는군요. 지금와서 다시 투표한다면 절대 그렇게 나올리는 없겠지만요.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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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9-22 16:39:59

돈 쓰기 싫었던 거죠. 4년간 12.5리바를 했는데 리바로 트집을 잡는다는 게 말이 되나요. 수비랑 자유투도, 꼭 커리가 재계약하는데 수비랑 피지컬이 떨어져서 맥스 못 주겠다는 꼴입니다. 단 당시 끝도 없이 치솟는 선수들 몸값에 대한 경각심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1
2019-09-17 15:02:16

그때 여론도 그렇고 샤크가 올란도 나가도록 뭔가 등떠미는 분위기긴 했습니다. 당시 올란도 팬들도 샤크 VS 페니 중에 누구 한 명을 택해야 한다면 다들 페니쪽을 선호했구요.

 

마침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다른 FA들의 몸값들도 그랬고, 매직 존슨 시대 이후 왕조 재건을 노리던 레이커스가 베테랑들까지 마구 팔며 결국 샤크를 영입할 캡 스페이스를 만드는 큰 베팅까지 하기도 했구요. 만약 레이커스같은 통 큰 경쟁자가 없었음 결국 샤크는 남지 않았을까 합니다.

 

상황이 예기치 못한 채로 흘러가니까 올란도가 부랴부랴 샤크에게 레이커스 못지 않은 대우를 해주겠다며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죠. 사실 샤크가 빈정 상할만한 상황들이 많기도 했고, 샤크가 헐리우드가 가까운 L.A에 대해 선호하는 경향도 애초에 강했죠.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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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7 15:25:07

의외로 팬들의 사랑을 못 받았나봅니다. 페니가 너무 넘치는 사랑을 받은 것도 있구요.

1
2019-09-18 17:41:14

이후로도 그랬지만 샤크는 스타일 상 호불호가 많이 갈리긴 하죠. 안티도 많구요. 반면에 페니는 이미지가 굉장히 좋았고 열성팬들도 많았죠.

 

아직도 기억나는 게, 페니가 피닉스에서 기량이 많이 하락해 나중에 조 존슨에게 밀려서 벤치로 내려가고 출장시간도 많이 뺐겼는데, 당시 분노한 페니 팬들이 조 존슨을 jot 존슨이라며 마구 욕하고 그랬습니다. 그것도 무려 이곳 매냐 사이트에서 말이죠. 존슨을 욕한 이유는 단 하나, 우리 페니의 출장시간 뺏어갔기 때문이었습니다. 페니가 인기도 많이 떨어지고 기량도 시들할 때에도 열성팬들의 팬심은 여전히 대단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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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7 14:16:04

1
Updated at 2019-09-17 15:36:40

글 너무나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여러이유중 올랜도매직이 신생팀이라 돈 쓴느거에 좀 인색했고 마침 페니와 샥의 롤문제가 어느정도 작용했었던걸로 압니다
올랜도는 샤크 중심에서 페니의 롤 비중이 높아지면서 샤크가 불만아닌 불만이 있었고 올랜도 입장에선 당시 페니의 재능은 복귀한 조던과 견줄만큼 대단했으니까요
인기도 스타성도 매직과 자바 콤비와 비교하며 기대가 어마어마했는데 무조건 샥을 잡았어야했지만 올랜도 무능과 마켓의 한계였던거 같습니다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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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7 15:33:27

페니한테도 불만이 있었나요? 참 오닐도 어지간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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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7 17:17:49

당시 올랜도 스타팅 멤버 구성자체는 전체 최고엿습니다
올랜도에서 마지막으로 함께할때 나이가 페니24 샥23 그랜트30 앤더슨28 스코트27 이었는데 짜임새가 어느팀과 비교해도 나쁘지않았고 시즌시작전 우승후보 1순위였습니다
(시카고는 조던이 복귀했지만 조던이 예전같지 않았고 무엇보다 로드맨이 팀캐미 망칠거다가 대세였고요)

골밑에 샤크를 필두로 닉앤더슨과 데니스스콧 둘의 양사이드 3점슛 능력은 리그 최고수준이었고 그랜트도 건재했으니 페니 입장에선 패스줄곳이 많았고 볼 흐름도 고루고루 좋았죠
자기 자신 득점력도 나쁘지 않았기에 화력은 최고였습니다

단한가지 약점이라면 경험부족과 승부처에서 오닐의 자유투가 약점이었죠

하지만 샤크는 더 자기자신 중심적이길 바랬었습니다

결과는 승부처나 클러치때 페니의 비중이 점점 커졌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나 인기도 샥 못지않게 많이 받았었습니다

팀의 기둥이자 리더로 샥에서 페니로 넘어가고 있는 흐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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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7 18:14:07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올랜도의 삽질 덕분에 제가 지금까지 레이커스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WR
1
2019-09-17 21:29:31

왕조 님의 팬질 역사를 바꿔놓은 삽질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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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7 18:35:33

좋은 글 잘봤습니다. 참고로 저 골든스테이트의 픽들중 96년 1라픽(11순위), 98년 1라픽(5순위)은

다시 골든스테이트에게 돌아갑니다.

말씀하셨던 스캇 스카일스 트레이드때 골스의 98년 1라픽도 같이 워싱턴 불리츠로 갔고,

대신 워싱턴의 98년도 1라픽을 올랜도가 받아 왔죠. 결과적으로는 1라픽 교환이 된 셈이랄까요...

근데 워싱턴이 스캇 스카일스 받아오면서 따라온 골스의 96, 98 1라픽은 워싱턴이 골스에서 웨버를

트레이드 해오면서 (말씀하셨듯 돈 넬슨과의 갈등으로 트레이드 된 건입니다), 다시 골스로 넘어갑니다.

 

물론 96년 1라픽은 골스가 그 황금 드래프트에서 토드 퓰러(KBL에서도 뛰었었죠)를 지명하면서

대차게 망했습니다만..98년 1라픽으로는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중인 리그 최고의 하이플라이어를 지명했죠 

물론 그당시만 해도 트레이드 참 못하던 골스는 그 선수를 토론토의 4번픽 앤트완 재미슨과 바꿨고요.

 

오르티니어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만약 올랜도가 96년 11픽을 가지고 있었다면

샤크가 있었던 올랜도 입장에선 당해년도 11픽 퓰러, 12픽 포타펜코는 센터라서 무조건 걸렀을거고

페자나 코비, 내쉬(스카일스의 후계자로), 저메인오닐(파포로 판단했다면)을 갔을가능성이 컸고

(물론 포워드에 꽂혔다면 존 월러스나 월터 맥카티를 갔을 가능성도 있었겠지만요)  

98년 5픽이면 카터, 폴 피어스, 3점 던져대는 7푸터 독일멀대를 로스터에 추가했을수도 있었을겁니다.

즉 샤크-페니 듀오를 기본으로 해서 

96년에 내쉬나 페자, 코비, 저메인 오닐  중 택일, 98년에 카터나 노비츠키, 피어스 중 택일 할 수 있었던거죠.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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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9-18 05:33:41

저도 98년 픽이 스캇이랑 같이 이동했다는 글을 봤었는데, 다른 기사에서는 스캇+96년 픽만 이동한 걸로 나오더라구요. 그리고 96 드래프트 위키 페이지를 보면 토드 풀러 옆에 “Golden State Warriors (from Golden State via Orlando[6] and Washington)”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98 드래프트 페이지를 보면 빈스 카터 옆에 “Golden State Warriors (Traded to Toronto)”밖에 없어요.

그리고 96 드랲 페이지의 주석에 따르면 워싱턴이 웨버의 대가로 골스에 넘긴 건 96 11픽(올랜도에서 스캇과 함께 받아온 원래 골스 픽), 98 13픽, 00 7픽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골스가 웨버의 대가로 보낸다고 약속한 98 1라 픽을 워싱턴에서 보낸 98 13픽으로 지불했구요. 빈스 카터를 뽑은 98 5픽은 골스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올랜도는 원래 갖고 있던 12픽과 골스가 워싱턴에서 받아서 보내준 13픽으로 실없는 선수들을 뽑았습니다. 누굴 뽑았으면 어땠을까 상상해볼 여지도 크지 않습니다. 32픽에 라샤드 루이스가 있긴 한데 이놈은 알아보기 쉽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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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8 10:05:51

아~ 저는 레퍼런스 참고해서 봤는데, 드래프트 위키랑은 기록이 다르긴 하네요.

참고로 레퍼런스의 빈스카터 프로필에는 골스의 98년 1라 5픽이 아래처럼 돈 걸로 되있거든요.

June 30, 1993: Traded by the Golden State Warriors (as a future 1998 1st round draft pick) with Anfernee Hardaway, a 1996 1st round draft pick (Todd Fuller was later selected) and a 2000 1st round draft pick (Mike Miller was later selected) to the Orlando Magic for Chris Webber.

July 29, 1994: Traded by the Orlando Magic (as a future 1998 1st round draft pick) with Scott Skiles and a 1996 1st round draft pick (Todd Fuller was later selected) to the Washington Bullets for a 1996 2nd round draft pick (Randy Livingston was later selected) and a 1998 1st round draft pick (Keon Clark was later selected).

November 17, 1994: Traded by the Washington Bullets (as a future 1998 1st round draft pick) with Tom Gugliotta, a 1996 1st round draft pick (Todd Fuller was later selected) and a 2000 1st round draft pick (Chris Mihm was later selected) to the Golden State Warriors for Chris Webber.

June 24, 1998: Drafted by the Golden State Warriors in the 1st round (5th pick) of the 1998 NBA Draft.

사실 저도 구글리오타-웨버 트레이드에 대해서 아는 건, 웨버-구글리오타, 워싱턴 1라픽 3개,그 중

올랜도에서 받아온 원래 골스픽 포함되어 있다는 것 정도 예전에 농구잡지에서 빈스 카터를

골스가 두 번 놓쳤다는 식의 기사를 본 듯 해서(이건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레퍼런스를 찾아본거

거든요. 한 번 시간날때 재미삼아 여기저기 찾아봐야겠네요^^

1
2019-09-17 20:44:47

가뭄같은 비시즌을 달래는 단비같은 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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