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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재업..) 1951년 CCNY 스캔들이 정확히 뭔 사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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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2 16:11:27

NBA 역사 공부하다가 1951년 CCNY 스캔들이란 사건을 위키에서 봤는데 영어로 되어 있어서 무슨 사건인지 정확히 모르겠네요.

덧글 올리신분 답글 제대로 못봐서 아까 올렸는데 모르고 삭제해서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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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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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2 16:25:25

1950년대면... 허슬 플레이어님이 등장하실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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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2-12 18:41:55

저도 CCNY가 연루된 승부 조작 사건이라는 것만 알고 있네요. 자세한 정황은 Q&A계의 리빙 레전드 분을 초청해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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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3 01:07:49

50년대에 CCNY(뉴욕 시립 대학)의 선수들이 중심이 되어 터진 대규모 승부조작 스캔들이었습니다. 뉴욕 시립 대학은 50년에 NCAA 토너먼트와 NIT 토너먼트 우승을 동시에 석권한, 그야말로 대학 최고의 팀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뉴욕을 비롯한 동부 일대에 승부조작사들의 손길이 뻗쳐 있었고, 주니우스 켈로그라는 선수가 브로커로부터 승부조작 오퍼를 받았다가 거절한 뒤 이를 코치에게 알림으로써 승부조작 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결국 뉴욕 연방 경찰에서 수사를 벌였고, 뉴욕 시립 대학의 주요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연루되었음이 밝혀졌죠. 50년 토너먼트 우승의 주역인 뉴욕 시립 대학의 간판 스타 에드 워너, 에드 로만, 알 로스가 줄줄이 잡혀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뭔가 뒷배경이 더 있다고 본 연방 경찰이 심층 수사에 들어가자 뉴욕 시립대 뿐만 아니라 동부의 다른 대학 선수들까지 승부조작에 연루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죠. 그 중 몇몇 선수는 이미 프로로 데뷔해 올스타급 선수로 활약 중이었습니다.
 
4~50년대 최고 명문 구단이었던 켄터키 대학의 랄프 비어드와 알렉스 그로자는 대학 시절 켄터키를 2년 연속(48년, 49년) 우승으로 이끈 당대 최고의 농구 스타들이었습니다. 49년에 프로로 진출해 NBA의 인디애나폴리스 올림피언스 소속으로 뛴 두 선수는 나란히 올스타에 뽑혔는데 비어드는 뛰어난 수비력과 리더쉽, 리딩 능력, 득점력을 두루 갖춘 만능형 가드였고, 그로자는 득점력과 운동능력이 발군인 센터로 리그에서 20-10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프로에서 장미빛 미래가 펼쳐져 있었던 이들은 그러나 대학 재학 시절에 승부조작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51년에 NBA에서 영구 퇴출되었습니다. 두 선수는 승부조작 관여 없이 그대로 프로 커리어를 밟았다면 명예의 전당도 너끈히 들어갔을 재능들이었습니다.
 
50년도에 뉴욕 시립 대학이 양대 토너먼트를 제패할 때, 공교롭게도 브래들리 대학이 양대 토너먼트에서 모두 준우승을 거뒀는데, 그 브래들리를 이끌던 민완 가드가 51년 드래프트 전체 1픽인 진 멜키오리였습니다. 하지만 멜키오리가 드래프트에 지명된 이후, 그가 대학 시절 승부조작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말았고, 그를 뽑았던 볼티모어 불리츠 팀은 어처구니없이 전체 1픽을 허공 위로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명승부로 회자되던 50년 NCAA 결승전의 주역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승부 조작꾼들이었던 거죠. 뭐 결승전인 그 경기까지 조작을 하진 않았겠지만요.
 
그리고 롱아일랜드 대학에 셔먼 화이트라는 특급 유망주가 있었는데, 6-8의 신장에 어마어마한 운동능력을 자랑했던 흑인 선수였습니다. 대학 시절 평균 22득점을 넣던 그는 진작에 뉴욕 닉스 팀의 스카우팅 레이더에 걸려 있었고, 닉스는 그가 프로로 진출하면 반드시 지역 연고 픽으로 데려오겠다고 호언장담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화이트 역시 승부조작에 가담했음이 밝혀졌고, NBA로 진출하는 길은 영구적으로 차단되고 말았습니다.
 
프로 리그에 흑인 선수가 진출하는 길이 이제 겨우 열린 그 때에, 그가 정상적으로 프로에 데뷔했으면 아마도 빌 러셀보다 앞선 최초의 흑인 스타가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당시 3년 연속 준우승을 할 정도로 강팀이었던 닉스는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어 50년대에 적어도 한, 두번은 우승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겠죠. 그는 50년대판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였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으로 그는 영영 재능을 펼칠 기회를 잃었고, 50년대 닉스의 우승도 일장춘몽이 되버렸죠.
 
다소 억울한 케이스도 있는데, 바로 켄터키 대학의 특급 센터 빌 스파이비였습니다. 7풋의 장신 센터였던 그는 그야말로 슬램덩크 변덕규의 원조 버전으로, 처음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키만 컸지 허약하다고 (처음에는 키가 7풋인데 체중이 160파운드에 불과한 멸치였음...) 선배들에게 놀림 당하기 일쑤였죠. 하지만 그는 자신의 최고 재능인 키를 앞세워 결국 대학 탑 센터 자리에 올랐고, (체중도 200파운드까지 벌크에 성공...) 51년도에 켄터키 대학을 일약 우승으로 이끌었죠.
 
놀림감이던 말라깽이에서 일약 대학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그의 앞에는 창창한 농구 인생이 펼쳐지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50년대 초반 대학 농구판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승부조작 스캔들이 그의 발목을 잡고 말았죠. 켄터키 대학은 이미 레전드 졸업생인 비어드와 그로자가 승부조작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그야말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고, 수사관들은 빌 스파이비 마저 연루되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하지만 스파이비는 본인은 제의를 받긴 했으나 결코 가담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항의했죠.
 
사실 이때 승부조작 스캔들에 연루된 선수들은 결국에는 모두 조작에 가담했음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스파이비는 끝까지 그 사실을 부인했죠. 하지만 당시 승부조작의 불똥이 프로 리그까지 튈 것을 염려한 NBA는 스파이비 마저 영구 퇴출자 명단에 넣고 말았습니다. 프로 진출의 길이 막혀버린 스파이비는 억울해하며 소송까지 걸었지만 패소했죠. 그가 승부조작에 가담했다는 뚜렷한 증거도 없었지만 그는 가담자로 낙인찍힌 채 염원하던 프로 진출길까지 싹 막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스파이비는 NBA로 진출하지 못하고 세미-프로 리그인 ABL, EBL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죠. 정상적으로 프로 진출했음 52년 드래프트에서 당당히 1픽으로 뽑혔을거고, 어쩌면 조지 마이칸의 뒤를 잇는 차세대 스타 센터가 될 수도 있었지만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95년에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은 결코 승부조작에 가담하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50년대 대학 농구판을 뒤흔든 승부조작 사건은 54년에 잭 몰리나스가 마지막으로 체포되면서 일단락되었죠. 컬럼비아 대학 출신의 몰리나스는 53 드래프트에서 전체 3픽으로 포트웨인 피스톤즈에 지명되었고, 루키 시즌부터 발군의 활약을 펼치며 그해 올스타전 멤버로도 이미 선발되었죠. 하지만 그는 올스타전을 얼마 앞두지 않고 결국 승부조작 가담 사실이 드러나 쇠고랑을 차고 말았습니다.
 
몰리나스는 농구계에서 퇴출되었지만 그 악령은 사라지지 않고 나중에 또 농구판에 큰 파문을 불러왔죠. 몰리나스는 이후 아예 대놓고 도박사로 활동했으며, 제 버릇 못 고치고 또 농구판에 기웃거리며 승부조작의 판을 짰죠. 그는 60년대 초반에 아마추어 최고의 유망주였던 코니 호킨스와 로저 브라운에게 접근해 마치 후원자인 것처럼 돈을 뿌렸습니다. 이는 결국은 이들을 승부조작판에 끌어들이기 위한 작전이었는데, 마침 그가 벌인 대규모 승부조작 스캔들이 들통나게 되버렸죠. 아무것도 모르고 몰리나스와 접촉했던 호킨스와 브라운은 실제로 승부조작에 결코 가담하지 않았음에도 공범으로 몰려버렸고, 대학과 NBA로부터 영구 퇴출 처분을 당했습니다. 결국 이들은 아마추어 리그나 길거리 농구를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는데, 코니 호킨스가 뉴욕 길거리 농구의 전설이 된 것에는 이런 아픈 사연이 있었죠. (프로 진출을 못하니까 길거리 농구에서 레전드가 되버린... 뭐 승부조작 스캔들 이전부터 원체 길거리에서 이름난 천재 유망주긴 했습니다.)
 
이 두 농구 유망주의 미래를 망쳐버린 몰리나스는 승부조작 건으로 감옥에 갔다온 후, 나중에는 갱단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습니다. 그리고 호킨스와 브라운은 선수로서 한창때인 20대 초반을 그야말로 허송세월로 보내며 제 2의 빌 스파이비가 되는 듯 했으나, 67년에 ABA라는 신생 프로 리그가 생겨나면서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었죠. ABA는 NBA를 상대로 우수한 선수들을 확보하기 위해 NBA 스타를 직접 꼬시기도 했고, 얼리 엔트리를 도입해 우수한 대학 스타들을 선점하기도 했으며, 또한 61년 승부조작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되어 NBA 진출길이 막혀버린 몇몇 젊은 유망주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습니다. 그 덕분에 호킨스와 브라운에게도 프로 진출의 길이 열렸고, 그들은 쌓였던 한을 제대로 풀며 결국 나중에는 둘 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게 됩니다.
 
51년에 대대적으로 터진 대학 농구의 승부조작 스캔들은 그야말로 농구라는 스포츠가 탄생한 후 가장 큰 파문을 일으킨 대사건이었습니다. 한창 인기를 구가하던 대학 농구는 이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그 여파는 프로 리그까지 이어졌죠. 팀을 대표하던 간판 스타인 랄프 비어드와 알렉스 그로자를 승부조작 파문으로 잃어버린 인디애나폴리스 올림피언스 구단은 결국 52-53시즌을 끝으로 해체되고 말았고, 승부조작 가담자인 진 멜키오리를 모르고 1픽으로 뽑았던 볼티모어 불리츠도 경영난에 시달리다가 54년에 팀이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후로도 한참 NBA는 고작 8개 팀 체제로 운영되는 시대를 겪을 수 밖에 없었죠. 이때 하마터면 농구라는 스포츠 자체가 존망의 위기까지 처했다가, 그나마 겨우 살아남았던 겁니다.
 
7개 팀, 32명의 선수(그 중 정말 억울한 사람 1명 포함)가 대규모로 연루되어 처벌받은 뉴욕 시립 대학 승부조작 스캔들은 지금은 거의 잊혀진 사건이지만 농구라는 스포츠의 역사에서 굉장히 큰 위기였고 최악의 스캔들이었죠. 이 사건을 주동했던 팀인 뉴욕 시립 대학은 아직까지도 NCAA 3부 리그를 전전하면서 과거의 영욕을 모두 잊은 듯 조용히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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