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쉬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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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2-02-03 11:10:19
아래의 글에 리플로 달았다가 좀 내용도 안맞는 것 같고(평소에 생각했던 것을 적은 것이라) 해서 다른 글로 씁니다. 농구를 잘 모른 상태에서 한동안 경기를 보았던만큼 잘못된 사실관계 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지적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1) 일단 MVP라는 것은 절대적인 능력이 가장 훌륭한 선수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절대적인 능력'이란 것을 측정할 수가 없죠. 스킬 챌린지, 3점 컨테스트, 덩크 컨테스트 모두 합한 다음에 여기서 우승한 사람을 '절대적인 능력이 가장 우수한 선수'라고 불러야 할까요?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그 선수가 정말 'valuable' 한 선수일까요? 결국 MVP는 한 선수가 리그에서 보여준 '임팩트'라는 (주관적이며 intangible한) 것에 좌우되게 되어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개인 성적이 특출하지 않은 선수가 그러한 임팩트를 보여주기란 몹시 어렵고, 팀 성적이 우수하지 않은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2) 내쉬가 백투백 MVP를 받았다는 이유로 그를 거품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빌 시몬스가 그랬던가요. 내쉬는 단순히 "border-line all star"급 포인트가드일 뿐인데, 감독을 잘 만나서 매직 존슨 급의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다고. 하지만 1)에서 언급했듯이, MVP는 임팩트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내쉬는 그만큼의 임팩트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농구를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 그리고 농구에서의 전술들에 대한 변천사를 다룬다면 (저는 잘 모르지만) 내쉬가 한자리에 분명히 (상당한 길이로) 언급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불세출의 패싱 센터' 제이슨 키드나 아예 자바를 대신해 센터로 뛰기까지 했던 매직 존슨을 생각해보면, 위대한 포인트 가드들은 대개 포인트 가드 이상의 것을 할 줄 아는 선수들이었습니다. 사실 '가드'라는 말 자체가 볼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농구에서는 오랫동안 가드는 볼 운반을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에 여러 매니아분들께서 어시스트라는 스탯의 과대평가에 대해 지적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일리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좋은 스코어러를 가졌느냐에 대해 상당한 차이가 날 수 있는 스탯이니까요. 가령 아무리 좋은 패스를 넣어줘도, 패스를 받은 동료가 손에 기름을 칠했다면 어시스트로 기록되지 못할 겁니다. 결국 경기의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패서'가 아니라 '스코어러'인 셈입니다. 존 스탁턴은 '순수한 포인트가드'로서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예외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역시 사실은 존 스탁턴-칼 말론이라는 '콤비'로 기억되죠. (개인적으로 존 스탁턴은 오늘날 플레이했더라면 더욱 주목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는 일이지만요)
4) 피닉스에서의 내쉬는 처음으로 공격을 만들어나가는 포인트 가드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포인트가드들의 역할이 득점과 공 운반이었다면, 내쉬가 피닉스에서 부여받은 역할은 공격을 셋업하는 역할이었죠. 내쉬는 공을 잡고 페인트 존을 들락날락하면서 빈자리를 엿보고 빈자리가 나는 순간 그곳으로 공을 넣어주거나, 반대로 빈자리에 상대가 신경쓸 때 정확한 점퍼를 날렸습니다. 기존의 가드-스코어러(가령 존 스탁턴-칼 말론/페니-샤킬/ 케빈 존슨-바클리) 조합과는 다른 양상이었죠. 포인트 가드가 중심이 되기 시작한 것이 피닉스에서의 내쉬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잘못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정정 부탁드립니다)
5) 이걸 댄토니의 전술 덕으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댄토니가 이 전술로 그 자신도 올해의 코치상을 받을만큼의 성공을 거둔 것은 내쉬라는 선수가 가진 다재다능함 때문이었습니다. 내쉬는 빈 공간을 찾아낼 수 있는 비전이 있었고/ 방심할 때 한방 꽂아넣을 수 있는 정확한 슈팅이 있었으며/ 페인트 존을 쉽게 들락날락할 수 있는 볼 핸들링 및 키핑 능력이 있었죠. 이러한 장점은 댈러스 시절부터 알려져 있었으며, 당시 이 모든 것을 갖춘 가드는 결코 많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댄토니가 뉴욕으로 떠난 이후, 빌 시몬스는 듀혼(당시 뉴욕 포인트가드...맞나요?) 등의 성적이 상승했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의기양양하게 말합니다. "내쉬의 성공은 댄토니 덕이었다. 속공 덕이었다"라고. 그러나 뉴욕의 그 누구도 내쉬가 되지 못했죠.
다이아몬드 원석으로 유리 자르는 칼을 만들 수도 있고, 커팅을 해서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전자의 용도가 후자보다 떨어지지는 않지만- 결국 후자가 통상적으로 (금전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가지겠죠. 그러나 그 용도가 무엇이 되었든, 가치가 어찌 되었든, 사실 이 모든 것은 다이아몬드이기에 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내쉬는 어디까지나 내쉬였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성과들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다루는 사람과 전술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입니다.
6) 결국 저는 내쉬가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정당한 평가'가 대체 누구의 평가를 기준으로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다만 저는 그가 2차례의 MVP를 받을만 했으며, 정말 좋은 포인트가드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포인트가드라는 포지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놓은 장본인은 분명 내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내쉬의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포인트가드라는 포지션 자체가 가지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때문인지 그는 아직까지 아쉽게도 우승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경기를 보지 않고 그냥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경기를 보고 제각기 느낀 점을 말하죠. 만약 정말 사실 관계가 잘못된 점이 있다면 모를까. 그게 아닌 단순한 평가에 대한 문제라면 '거품'이니 아니니를 따지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모든 일은 적절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걸요. 거품조차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솟아오르지 않습니다.
이 게시물은 은빛님에 의해 2012-02-03 06:29:05에 'NBA-Talk' 게시판으로 부터 이동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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