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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선수] 당당한 비주류의 길을 선택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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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0 07:22:07
Quiz. 오늘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Hint 1. 루이지애나 주립대 (LSU) 출신
Hint 2. LSU 역사상 피트 마라비치 이후 최초로 NCAA 시즌 평균 30+득점을 기록한 선수
Hint 3. 2년 연속 SEC 컨퍼런스 최우수 선수상에 이름을 올린 선수
 
Answer. 샤킬 오닐?! ... 오답이다.
 
 
그 누구보다 강력한 공격력을 지니고 있었던, 피스톨 마라비치 이후 루이지애나가 배출한 최고의 공격형 가드. 수많은 편견을 이겨내고, 자신을 비롯한 세상 모두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였던 선수. 커다란 벽에 의해 자신의 믿음을 시험 받기도 했지만 끝내 굴복하지 않으며 뜻을 꺾지 않았던 남자.
 
이번에 만나볼 그 때 그 선수의 주인공은...
 
 
 
 
 
 
 
 
 
크리스 잭슨, 아니... 마무드 압둘 라우프(Mahmoud Abdul-Rauf)다!
 
[ 누구보다 강한 신념의 사나이, 마무드 압둘 라우프 ]
 
 
 
 
 
1.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은 뉴올리언스의 농구 천재 
 
[ 피스톨 이후 뉴올리언스 최고의 농구 천재로 불리우던 크리스 잭슨 ]
 
크리스 잭슨은 태생적으로 ADHD 틱 장애의 일종인 튜렛 증후군을 앓던 아이로 태어났다. 튜렛 증후군은 일반적으로 안면경련 등을 일으키는 신경장애를 말한다. 하지만 잭슨은 자신의 장애를 피하려하거나 힘든 현실 앞에 움츠려들지 않았다. 되레 농구공을 벗삼아 누구보다 높이 비상했다.
 
일찌감치 농구 선수로 두각을 나타낸 그는 1988년 McDonald's All American으로 선정되며 고교 시절부터 전국구 유망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잭슨은 루이지애나 주립대에 합류하며 NCAA 무대에 등장함과 동시에 팀의 주축으로 맹활약했다. 신입생 시절이었던 1988-89 시즌, 경기당 평균 30.2득점을 기록하며 마라비치 이후 처음으로 시즌 평균 30+점을 기록한 선수로 그 이름을 남겼다. 소포모어였던 1989-90시즌에도 평균 27.8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주포로 활약한 잭슨은 일찌감치 NBA 드래프트에 참가하기로 결정한다.
 
1990년 드래프트에 참가한 잭슨은 1라운드 3번이라는 높은 순번으로 덴버에게 호명되며 NBA에 입성하게 된다. 당시 1번 픽은 시라큐스의 데릭 콜먼이었으며 2번 픽은 오레건 주립대의 게리 페이튼이었다. 그의 뒤로 조지아 공대의 샤프 슈터 데니스 스캇(4번-올랜도), 제2의 조던으로 손꼽히던 켄들 길(5번-샬럿)의 이름이 호명되었다는 것을 돌이켜 본다면 덴버가 그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했을지를 짐직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덴버는 잭슨을 영입하기 위해 굉장히 공을 들였다. 덴버는 1990년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되던 스타 플레이어 알렉스 잉글리쉬가 36세에 접어들며 노쇠화 현상을 보였기에 그와 재계약을 하지 않고 과감한 리빌딩 과정에 착수하기로 했다. 하지만 1989-90 시즌 43승 39패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덴버였기에 로터리 픽을 보유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결국 덴버는 드래프트를 통한 리빌딩을 위해 과감한 트레이드를 감행했다. 먼저 당시 29세의 나이로 팀 내 득점 1위를 기록한 6-3의 가드 팻 리버를 댈러스 매버릭스의 1라운드 9번 픽과 트레이드 시켰다. 그리고 자신들의 1라운드 15번 픽을 패키지로 만들어 마이애미 히트의 1라운드 3번 픽과 트레이드를 감행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덴버는 전성기에 접어든 팀 내 최고 득점원을 드래프트 픽과 트레이드 시킨 뒤, 거기에 본디 자신들의 1라운드 픽까지 합쳐서 트레이드 패키지를 만든 끝에 잭슨을 영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포스트 잉글리쉬' 시대를 열어갈 주역으로 잭슨을 선택한 셈이었다.
 
 
 

2. 의심의 눈길을 뛰어넘은 덴버의 영건
 
[ 모두가 실패라고 말했지만, 잭슨은 포기하지 않았다 ]
 
덴버의 과감한 결단은 잭슨의 영입으로 그치지 않았다. 1989-90 시즌의 멤버 14명 중 팀에 남은 것은 단 6명에 불과했다. 팀내 평균 연령도 급격히 떨어졌고 버니 비커스태프가 신임 단장으로 취임했다. 단 한 번의 여름으로 완전히 다른 팀이 되어버린 덴버였다. 급격한 리빌딩으로 인한 성적하락은 피할 수 없었다. 덴버는 전년도 대비 -23승에 해당하는 20승 62패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모두가 예상했던 몰락이었고, 보다 큰 도약을 위한 준비 단계임을 알고 있었기에 결코 당황하지 않았다. 되레 더욱 더 리빌딩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덴버의 사정과는 별개로 잭슨에게는 시련의 계절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잭슨은 마이클 애덤스 등에게 주전 자리를 양보해야 했고, 언제나 팀의 주축으로 활약하던 그였기에 벤치 출장이 어색했던 것인지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물론 경기당 22분 남짓한 시간을 플레이하면서도 평균 14.1점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득점력을 선보이며 1991년 루키 세컨드 팀에 이름을 올리는 등 최소한의 가능성은 입증했다. 하지만 팀에서 그에게 걸었던 기대에는 다소 미치지 못하는 성과였다.
 
잭슨의 소포모어 시즌이었던 1991-92 시즌. 덴버는 드래프트 1라운드 4번 픽으로 조지타운 출신의 특급 센터 디켐베 무톰보를 영입했다. 무톰보의 영입과 함께 덴버의 리빌딩은 마무리 단계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같은 포지션을 두고 경쟁 관계에 있던 애덤스가 트레이드 되었다. 공석이 된 주전 가드 자리는 당연히 잭슨의 차지였다.
 
많은 이들의 기대 속에 개막전 주전 가드로 경기에 임한 잭슨이었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골든 스테이트와의 개막전에서 9개의 야투를 던져 3개만을 성공시키며 7득점 2리바운드 3어시스트에 그친 것이다. 개막전 포함 총 6경기에 주전 가드로 선발 출장했으나 평균 8.3득점(야투 41.7%), 2.1리바운드, 3어시스트에 그쳤다.
 
결국 잭슨은 다시 벤치로 돌아와야했다. 이후 산발적으로 선발 출장을 하기도 했으나 결국 81경기 중 단 11경기에 선발 출장하는 것에 그치며 루키 시즌보다 더욱 부진한 소포모어 시즌을 보내야했다. 팀은 전년도 대비 4승을 추가하는데 그치며 24승 58패를 기록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덴버는 1992년 드래프트에서 라폰소 엘리스, 브라이언 스티스 등의 유망주를 영입하며 리빌딩을 계속 진행시켰다. 이로써 리빌딩을 시작한 이후 불과 세 시즌만에 탄탄한 선수진을 구축하는데 성공한 덴버는 본격적인 반격을 준비했다.
 
잭슨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망스러웠던 두 번의 시즌을 마무리한 그는 루이지애나의 득점 기계로 명성을 떨치던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며 시즌 개막을 기다렸다. 덴버의 팬들마저 잭슨의 성공 여부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 시작할 무렵, 잭슨은 크게 도약했다.
 
1992-93 시즌 개막전 주전 가드로 다시 한 번 기회를 잡은 잭슨은 반격을 시작했다. 덴버는 샌안토니오와의 개막전에서 2차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125-121의 승리를 거두게 되는데, 이 날 잭슨은 48분을 플레이하며 32득점 6리바운드 6어시스트로 맹활약했다. 개막 이후 5경기에서 평균 23득점, 3.8리바운드, 4.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덴버 공격의 선봉장으로 우뚝 섰다.
 
그 해 잭슨은 81경기에 모두 선발 출장하며 평균 19.2득점(야투율 45%), 2.8리바운드, 4.2어시스트, 93.5%(경기당 2.7개 성공)의 자유투 성공률을 자랑하며 팀 내 득점1위, 어시스트 2위에 랭크되었다.
 
잭슨은 극적인 부활과 함께 MIP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데뷔 이후 세 번째 시즌만에 잠들어 있던 공격 본능을 깨우며 화려하게 비상하는데 성공했다.
 
잭슨, 엘리스, 무톰보 등 젊은 선수들의 활약에 힘입어 덴버는 36승 46패를 기록, 전년도 대비 +12승을 기록했다. 잭슨 - 레지 윌리암스 - 엘리스 - 스티스 - 무톰보로 이어지는 확고한 스타팅 라인업을 완성시킨 덴버는 본격적으로 플레이오프를 향한 도전을 시작했다. 대규모 리빌딩과 함께 잭슨이 입단한지 3년 만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3.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은 신념
 
[ 그 무엇도 압둘 라우프의 신념을 꺾을 수는 없었다 ]
 
화려한 부활에 성공한 잭슨에게 1993-94 시즌을 앞두고 커다란 변화가 생긴다. 이슬람 교도로의 개종을 선언한 것이다.
 
잭슨은 친구들과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드라이브를 하다가도 교회 앞을 지날 때면 오디오의 볼륨을 줄였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의 믿음과 하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던 잭슨이 돌연 이슬람 교도의 삶을 살아가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는 말콤 X의 사상에 크게 감화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오프 시즌 중에 메카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하마드 알리가 그러했듯 사회 권력의 어두운 면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에 회의감을 느끼며 이슬람 교도가 되기로 결정했다.
 
그는 크리스 잭슨이라는 너무나 미국적인 이름을 버리고 이슬람 교도로 다시 태어났다. 마무드 압둘 라우프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서.
 
잭슨, 아니 압둘 라우프는 하킴 올라주원과 마찬가지로 시즌 중에도 라마단 금식 기간을 철저히 지키는 등 이슬람 교도로써의 삶에 충실했다. 너무나 달라진 그의 모습은 급기야 이혼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의 문화/종교적인 변화는 가족들마저 이해하기 힘든 정도로 급격하고 파격적이었던 것이다. 이혼 당시 압둘 라우프는 "사랑하는 처와의 이별이 너무나 가슴 아프지만 나의 신념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라고 이야기했다.
 
압둘 라우프는 결국 코트 위에서도 '사고'를 치고 만다. 1996년 3월, 경기 시작 전에 갖게 되는 국민 의례를 단독 보이콧 해버린 것이다. 모두가 성조기 앞에 기립 정렬한 채로 가슴에 손을 얹고 예를 표할 때, 그는 요지부동으로 제자리를 지켰다. 유례 없는 '사고'에 리그 사무국은 당황했고 압둘 라우프에게 출장 정지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압둘 라우프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사고'로 인한 징계가 내려진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입을 열었다.  "네, 제가 사고 쳤죠. 하지만 멋진 사고 였어요. 저는 어떤 이득을 얻기 위해서, 혹은 개인적인 이기심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 제가 확신하는 것은, 제겐 잘못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리그 사무국이 허둥지둥 징계를 내리자 되레 분위기는 압둘 라우프를 지지하는 쪽으로 바뀌어갔다. 찰스 바클리는 공개적으로 압둘 라우프를 지지하노라 이야기했으며, 이제껏 누구도 제기하지 않았던 개인의 신념에 대한 문제들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결국 사무국의 출장 정지 징계는 단 한 경기만에 철회되었다. 대신 조건을 걸었는데, 국기에 경례를 하지는 않더라도 의레 세리머니에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달라는 것이었다.
 
징계가 철회되고 다시 압둘 라우프가 코트로 돌아오는 날. 많은 이들은 압둘 라우프의 국민 의례 세리머니에 주목하고 있었다. 경기 시작에 앞서 "The Star-Spangled Banner"가 울려펴졌고, 모든 선수들이 성조기 앞에 기립하여 정렬했다. 그 중에는 압둘 라우프의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모두가 가슴에 손을 얹고 성조기를 바라볼 때, 압둘 라우프는 조용히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자신의 믿음 앞에 기도를 드렸다.
 
 
 
 
4. 당당한 비주류의 길을 선택한 남자
 
[ 전 세계를 누비던 압둘 라우프는 일본 무대를 밟기도 했다 ]
 
덴버의 미래를 이끌어 줄 것이라 손꼽혔던 압둘 라우프. 하지만 그는 언제나 마무리가 좋지 못했다. 특히 플레이오프 무대에만 서면 평소 답지 않은 부진에 빠지며 '토너먼트에 약하다'라는 악평을 듣기도 했다. 결국 국민 의례 보이콧으로 전미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1995-96 시즌이 끝나고, 사루나스 마샬리오니스와 미래의 1라운드 픽을 받는 조건으로 새크라멘토 킹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새크라멘토에서 두 시즌을 보내고 FA가 된 그는, 1998-99 시즌 수많은 팀들의 러브콜과 새크라멘토의 재계약 제의를 거절한 채 갑작스레 터키(페네르바체)로 떠나버렸다.
 
터키에서 한 시즌을 플레이한 그는 1999-2000 시즌 코트를 떠났다. 하지만 단 1년 만인 2000-01 시즌 밴쿠버 그리즐리스로 컴백, 마이크 비비의 백업 가드로 출장하며 맹활약했다. 특히 라커룸의 맏형으로 훌륭한 리더쉽을 보이며 팀의 분위기를 추스렸다. 불꽃 같은 2000-01 시즌이 종료되자 그는 또 다시 코트를 떠났다. 이후 두 시즌간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압둘 라우프의 커리어가 끝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2003-04 시즌이 시작되자 러시아 리그에 선수로 복귀했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곧이어 2004-05 시즌에는 이탈리아에서 플레이했다. 그리고 또 다시 1년간 코트를 떠났다. 팬들이 "이제 정말로 은퇴했나보다" 라고 생각할 무렵 2006-07 시즌이 되자 불현듯 그리스 리그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고, 또 다시 1년의 휴식기를 가진 후 2008-09 시즌에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지난 2009-10 시즌에는 일본의 교토 한나리즈 소속의 선수로 플레이하기도 했다. 과연 다가오는 2010-11 시즌에는 어떤 나라의 어떤 팀에서 플레이하게 될 지, 아니면 휴식기를 갖게 될 지, 그 휴식기가 은퇴를 의미하게 될런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압둘 라우프는 강력한 공격형 포인트 가드였다. 그의 강력한 무기는 정교한 슈팅과 빠른 스피드였다. 멋진 슈팅폼을 가지고 있었던 압둘 라우프는 슛릴리즈도 굉장히 빠른 선수여서 단신으로써 중장거리 슛을 훌륭한 공격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선수였다. 슈팅 매커니즘이 굉장히 안정되어 있었기에 생애 통산 자유투 성공률이 90.5%에 육박할 만큼 꾸준하고 적중률 높은 슈팅을 보유한 선수였다.
 
또한 날카로운 돌파로 상대팀의 골밑을 공략하는데도 능했다. 낮은 자세로 현란한 드리블링을 선보이며 페네트레이션을 즐겼다. 림에서의 마무리 기술도 뛰어나 득점력에 있어서만큼은 리그 최상급의 실력을 지닌 선수였다. 특히 빠른 발을 이용한 속공 전개는 일품이었으며 패싱 능력을 갖춘 동시에 실책이 적어서 공격형 가드임에도 높은 생산력을 자랑했다.
 
다만 그의 수비는 부족함 투성이였다. 대인 방어는 물론이고 팀디펜스에 대한 이해도도 부족해서 평균 이하의 수비수라고 평가 받았다. 자신이 볼을 가지고 움직이는 공격에 비해 상대 선수의 움직임을 쫒아야 하는 수비에서는 튜렛 증후군 등에 의한 집중력 저하가 작지 않은 약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본인 스스로도 공격에 비해 수비에는 크게 공을 들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일반적인 단신의 공격형 포인트 가드들과 마찬가지로 코트 비전이 넓지 못했다는 것도 약점으로 지적되던 선수였다. 돌파에 이은 킥아웃이나 트랜지션 게임을 통한 오픈 코트 활용은 수준급이었으나 세트 오펜스를 조립하는 능력이나 하프 코트 오펜스를 통해 어시스트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다소 부족했다.
 
너무나 매력적인 선수였지만 언제나 부족했던 2%가 많은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가 NBA를 떠난 지 10여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들이 기억하는 압둘 라우프는 반쪽 짜리 공격형 가드의 모습이 아니었으면 한다. 모든 차별과 의심 앞에 움츠러들지 않았던 남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문제를 사회의 전면으로 이끌어냈고, 스스로의 믿음에 당당했던 만큼 다른 이들의 그것들도 의연하게 이해하노라 이야기했던 남자.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농구라는 축복을 즐기며 인생을 살아가는 남자로 기억됐으면 한다.
 
"저는 성조기 앞에 예를 표하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게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 성조기 아래에서 싸워온 이들이 있으니까요. 충분히 그들을 이해해요. 하지만 여러분들도 저의 신념을 이해해주셔야 합니다. 전 단지 가슴에서 우러나는 무언가를 느낄 수가 없었고,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 뿐입니다."
- 마무드 압둘 라우프, 1996년 3월 출장 정지 징계 직후

당당한 비주류의 길을 선택한 남자. 마무드 압둘 라우프였다.
 
  
Mahmoud Abdul-Rauf (1991 - 1998 , 2001)
생애 통산 586경기 출장 (336 선발)
평균 14.6득점, 1.9리바운드, 3.5어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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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0-08-20 07:29:38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덕분에 새로운 많은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네요

2010-08-20 07:44:13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Updated at 2010-08-20 07:52:26
성조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연찮게 티비에서 라이브로 봤죠

미국 언론이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올라주원도 같은 무슬림인데 이 사건으로 인터뷰를 했는데 내용이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압둘 라우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쪽이었습니다

 

부차적으로 해설가가 그 당시 슛릴리즈가 nba에서 가장 빠르다고 했었던게 기억나네요
 
이 때 게임이 라폰소 엘리스가 부상으로 돌아왔던 쯤이었던 것 같은데
나오자마자 한손으로 잡아내는 블록을 시전
무지 열광했었던 기억도 나네요
WR
Updated at 2010-08-20 07:53:41

저 역시 최초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NBA 사무국의 출장 정지 징계가 되레 반전의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어린 시절의 일이기에 형님/삼촌들로부터 전해들은 소식이 대부분이긴 합니다). 해서 조금은 애매한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출장 정지 징계로 한 경기를 결장한 이후에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달라"는 방향으로 선회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
2010-08-20 08:48:5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 선수 포인트 가드 님의 글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자신의 신념을 꿋꿋이 지키는 멋진 선수네요.
 
그런데 포인트가드님은 이런 글 쓰실 때 어디서 자료를 찾으시나요?
그때 그 선수 시리즈 글 읽을 때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안 드네요.
WR
2010-08-20 09:18:21

좋게 생각하면 꿋꿋하게 신념을 지킨 사람이고, 나쁘게 생각하면 괴짜(돌+아이)죠. 이혼도 불사했고, 국가 세리머니 보이콧에, 은퇴-복귀-은퇴-복귀... 저는 개인적으로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입장이라서 글의 방향도 긍정적으로 흘러갔나봅니다.


그때 그선수의 자료 수집 루트는 "신뢰할 수 없는 두뇌 속 기억들" + "초딩 시절부터 수집한 매거진 & NBA 일기장" + "인터넷" + "지인 찬스" 정도인 것 같네요.

솔직히 요즘은 워낙에 모든 자료가 데이터베이스화 되어있어서 조금만 공들이면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정보들이기도 하구요 ^^;
2010-08-20 08:56:00
재미있는 글 잘 봤습니다
2010-08-20 11:02:5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10-08-20 15:42:24

동영상에 나오는 경기가 제 기억으로는 

불스가 nba record 를 세웠던 시즌 중간에 덴버 원정 가서 연승 끊겼던 경기 같은데 맞는건가여 ...
루키시즌의 풋풋한 맥다이스의 모습도 
2010-08-26 04:32:10
1996년 2월 4일 경기네요.
 
자세한 스텟입니다.
2010-08-20 15:47:16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참 굴곡 많은 인생이네요...
2010-08-20 17:10:29
LSU만 보고 샤킬 오닐이라고 대놓고 오답을..
2010-08-20 19:14:34

제가 예전에 녹화한 경기에 덴버경기가 있는데 이 선수 신인시절인가 그럴 때 경기였죠. 목을 가끔 빠르게 끄덕이는 버릇(?)이 있는거 같더군요. 딸꾹질 심하게 하는줄 알았었죠.

2010-08-20 20:53:32

얼마만에 그때그선수 입니까 너무 반갑네요!!!!! 선추천 후감상~

2010-08-21 00:07:19
전 왠지 아이버슨이 떠오르네요 플레이하는걸 보니까
빠른 슛 릴리즈도 그렇고 자신보다 훨씬 큰 선수를 앞에 두고도
전혀 두려움이 안 보이는 것도 그렇구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2010-08-21 10:25:18

예전에 한창 농구 열심히 볼 때 나름 좋아했던 선수군요.포가님의 글을 보면서 참 예전 생각 많이 합니다.

2010-08-22 01:46:26
아.. 예전 원온원 기사 생각나네요~
 
드리블-슛이 연속 10번 성공되지 않으면 집에 갈 수 없었던..
신발의 좌우 대칭이 안 맞으면 미쳐버리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2010-08-22 14:12:20
포인트가드 님의 "그 때 그 선수" 는 오랫만에 보는거 같네요
매번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10-08-25 22:49:31
믹스 신선한 충격입니다.
고맙습니다~~~^^
2023-07-25 16:34:21

'스테픈 커리가 롤 모델로 삼았다고 하는 유일한 선수' (2023, 본인 오피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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