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든이 끊어야 할 포틀랜드 가계의 빅맨 저주
오든이 끊어야 할 포틀랜드 가계의 '빅맨' 저주
프로로서의 첫 시즌을 시작해 보기도 전에 무릎수술과 함께 주저 앉았고, 두 번째 시즌은 개막전에서 또다시 발목에 부상을 당하며 팬들을 실망시켰던 그렉 오든. 오늘 마이애미와의 경기에서16분을 출장했고, 공격리바운드에 이은 덩크슛까지 성공시키며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어느 정도나마 기대를 갖게 해주었습니다
이 글의 취지는 “왜 포틀랜드가 드래프트한 유능한 센터들은 드래프트 직후 모두 다 심각한 하체 쪽 부상으로 이어지느냐” 입니다. 70년대부터 시작 된, 이 이상한 Rip City의 전통아닌 전통은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얄궂고, 또 그 드래프트 된 센터들의 팬들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가슴아픈 현상이기에.... 오늘 짧게나마 이 포틀랜드시의 OMEN에 대해 글을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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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1월 5일생.
신장: 210cm (6-11)
1972, 1973, 1974 대학 최우수 선수 선정.
1972, 1973 대학농구 우승 (UCLA)
1974년 NBA 드래프트 1번으로 포틀랜드 블레이저스 합류
1977년 NBA 우승, All-NBA Second Team, All-Defensive First Team.
1978년 NBA MVP, All-NBA First Team, All-Defensive First Team.
1986년 NBA 우승, 올해의 식스맨 수상
빌 월튼은 NCAA 와 NBA 역사상 “기량”면에서는 최고의 백인 센터입니다 레전드 존 우든 감독이 이끄는 UCLA대학을 2년 연속 우승으로 이끌면서, 전 세계 농구인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백인이라고는 보기 힘든 빠른 몸동작과 놀라운 점프력, 그리고 빅맨으로서는 납득이 안 갈 정도의 탁월한 패싱 센스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빌 월튼은 ‘절대로 막을 수 없다’던 압둘자바의 스카이 훅슛을 아주 “자주” 블락을 해냈던 센스있는 수비수였기도 합니다. 그래서 빌 월튼은 전성기 때도 17~8점만 득점해 주면서도 게임 전체를 장악했던 선수였습니다. 리바운드를 14~5개씩 잡아주고, 블락을 4~5개 해주고, 현란한 피벗 동작에서 터져나오는 어시스트까지 4~5개를 해주는 이 괴물센터의 인기는, 그가 백인이라는 사실에 편승해 하늘을 찌를 듯 했었습니다. 포틀랜드 시민들에게는 정말로 요원한 꿈만 같았던 NBA 우승을 선사하며 Blazermania 열풍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1993년에 줄리어스 어빙과 나란히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빌 월튼은 아마도 부상만 아니었다면 체임벌린, 러셀, 압둘자바와 어깨를 나란히 했었을 법한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습니다.
1974년, 이 대학농구의 스타는 포틀랜드팀에 드래프트 전체순위 1번 픽으로 영입됐습니다. 작은 도시 포틀랜드의 희망이었고, 그는 ‘장미도시의 구세주’라고까지 불리우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첫 시즌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지요 – 시즌 시작하자마자 코뼈가 부러지더니, 연이어서 발목이 부러지고, 발등과 발바닥 부상까지 겹쳐 버립니다. 포틀랜드의 “구세주”는 첫 두 시즌 동안 병원과 재활원에서 살다시피 합니다. 아직은 젊은 나이의 월튼, 절치부심 끝에 3년차였던 1976~77 시즌에는 리바운드왕과 블락왕을 동시에 거머쥐며, 팀을 가뿐하게 우승시켜 버립니다. 압둘자바의 레이커스를 스윕해 버렸고, 줄리어스 어빙을 필두로 한 스타군단 필라델피아 식서스를 모두 제압했기에 그 우승은 더 값졌습니다. 월튼이 건강하기만 했다면, 포틀랜드가 우승을 꽤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누구에게나 들게끔 만들었지요. 만장일치로 파이널 MVP는 그의 몫이었습니다. 다음 시즌인 1977~78 시즌에는 리그 MVP까지 거머쥐며 압둘자바를 NBA First-Team에서 끌어내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시즌 60게임을 마쳤을 때, 경기중 월튼의 다리가 부러져버리는 대형사고가 났고, 결국 그 이후로 그는 다시는 전과 같은 플레이를 펼치지 못 하게 됩니다. 플레이오프에 맞춰서 재기에 성공했지만, 시애틀과의 2차전에서 또 다시 부상부위를 다침으로써, 그의 화려하고도 짧은 선수로서의 전성기는 막을 내립니다.
그후, 월튼은 샌디애고 클리퍼스에 새둥지를 틀고 계속되는 부상과 맞써서 싸웁니다. 그의 투지와 의지는 대단했습니다. 80년대초 당시에 AFKN 스포츠 뉴스를 보면 그의 활약상이 항상 하일라이트를 장식했고, 특히 그의 압둘자바의 스카이훅 블라킹 능력은 부러진 다리를 가지고도 해낼 수 있었던 신기한 기술이었습니다. 1985년이 되자, 빌 월튼은 자신의 농구인생 막바지에 우승 한번을 더하며 끝내고 싶다고 공언을 하며, 보스턴 셀틱스와 LA 레이커스 두팀을 지목하고, 자기를 영입해달라는 공개광고를 냅니다. 레이커스의 제리 위스트 매니저가 월튼의 화려한 부상경력을 의심하며 머리를 굴리고 있는 사이, 보스턴의 래리 버드는 레드 아워백옹의 사무실에 가서 담판을 합니다, “빌 월튼이 보스턴에 오기를 원합니다. 당장 빌 월튼을 제게 주십시오. 우승으로 갚겠습니다.” 결국, 월튼의 영입은 버드의 입김(?)에 의해 결정됐고, 버드는 3년 연속 MVP를 받으며 팀을 다시 한 번 우승시킵니다. 빌 월튼 또한 올해의 식스맨 상을 수상했고, 지금까지도 NBA에서 리그 MVP와 올해의 식스맨을 모두 수상한 유일한 선수로 남아 있습니다.
계속되는 다리와 발목부상으로 프로 4년차에서 일찌감치 전성기를 마감해야 했던 명예의 전당 센터, 그가 포틀랜드 블레이저스 팀의 빌 월튼이었습니다.
샘 보위 (Samuel Paul Bowie)
1961년 3월 17일생.
신장: 216cm (7-1)
1980년 고등학생으로서 올림픽 대표팀에 차출됨.
1982년부터 1984년까지 All-American Team에 뽑힘.
1984년 NBA 드래프트 전체순위 2번으로 포틀랜드 블레이저스 합류
샘 보위는 레바논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아주 좋은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던 유망주 센터였습니다. 80년대 당시에 켄터키 대학의 경기를 보게 될 때마다 항상 들었던 의구점이, ‘이 선수가 흑인이냐 백인이냐’였습니다. 얼굴이나 몸은 허연데, 점프하는 모습이나 몸 움직임은 흑인 같았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레바논계였더군요. 아시아 선수권에서 한국의 발목을 붙잡는 레바논 선수들 보셨을 겁니다. 말이 아시아인이지 체격이나 체형은 완전히 유럽인과 같았습니다. 샘 보위는 점프가 빠르고 높았습니다. 그리고 팔다리가 워낙 긴데다가 어깨까지 떡 벌어져 있어서 정말 하드웨어는 NBA 레전드 센터감이었습니다. 실제로 보위의 프로 첫 두어 시즌 경기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클라이드 드렉슬러와 픽앤롤을 기가 막히게 잘 했던 선수였습니다. 상대팀의 수비대형을 읽는 안목도 뛰어났었고, 드렉슬러가 빼주는 공을 센스있게 잡아 호쾌한 덩크로 마무리하던 선수였죠.
이 선수는 그 유명한 1984년 NBA 드래프트에서 올라주원과 조던 사이에 끼어 전체순위 2번으로 포틀랜드가 데려온 선수였습니다. 조던과 바클리, 샘 퍼킨스를 모두 놔두고, 부상전적이 있었던 선수를 뽑은포틀랜드를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혹자는 NBA 드래프트 역사상 최고의 뻘짓(?)이었다고까지 얘기합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모두 결과론에 치우쳐 파생된 억측일 뿐입니다.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조던이 이렇게까지 위대한 선수로 성장하리라고는 상상조차도 못 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포틀랜드의 결정은 탁월했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샘 보위는 샘슨, 올라주원, 유잉과 더불어 대학 4대 센터로 불리던 선수였습니다. 둘째로, 포틀랜드로서는 이미 마이클 톰슨과 웨인 쿠퍼라는 빅맨들을 보유하고는 있었지만, 압둘자바에 대응할 수 있는 운동능력과 사이즈, 힘이 모두 되는 센터를 뽑아야만 했던 시기였습니다. 셋째로, 이미 포틀랜드에는 조던과 비슷한 스타일의 드렉슬러가 있었고, 팀은 이 선수를 중심으로 런앤건 스타일의 뛰는 농구로 전환하던 시기였습니다. 당연히 잘 뛸 수 있는 빅맨이 필요했지요. 포틀랜드의 당시의 결정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현명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샘 보위는 첫 네시즌동안 압둘자바와 같은 상대팀 센터들보다는 자신의 부상과 싸우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첫 시즌부터 발목을 다치더니, 두 번째 시즌부터는 아예 작정을 한 듯 다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부상도 보면 항상 하체 쪽입니다. 발목, 발꿈치, 무릎, 허벅지... 결국 이 선수는 전성기 한 번을 제대로 경험 못하고, 뉴저지로 트레이드 된 후, 별 볼일 없는 선수로서 NBA의 선수생활을 마감해 버립니다. 이 선수도 그렉 오든과 같은 무릎연골 부상으로 좌초됐다고 보는 견해가 많지만, 실제로는 무릎 뿐 아니라 다리 전체가 그야말로 ‘병동’이었던 선수였습니다.
빌 월튼과 마찬가지로 잘 뛰고 점프력이 좋은 빅맨이었고, 빌 월튼처럼 온갖 다리부상에 신음해야 했던 선수, 샘 보위. 그가 포틀랜드가 드래프트로 뽑은 두 번째 대형센터였고, 그 역시 포틀랜드 Omen(?)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1964년 12월 19일생.
신장: 223cm (7-4)
1982년 세계농구선수권 우승 (구소련)
1986년 세계농구선수권 준우승 (구소련, 토너먼트 MVP)
1988년 올림픽 금메달 (구소련)
1992년, 1996년 올림픽 동메달 (리투아니아)
1995년 유로리그 우승 (레알 마드리드)
유럽 최우수 선수상 (1984, 1985, 1986, 1988, 1995, 1997, 1999)
사보니스는 1986년 부상 전까지, 레드 아워바크 감독 같은 분들로부터 NBA를 포함한 세계 최고 중 하나라는 소리를 듣던 선수였고, 여러 면에서 빌 월튼의 업그레이드형이라는 평가를 받던 선수였습니다. 신체조건이 뛰어났고, 잘 달렸으며, 센터로서 갖추고 있어야 할 모든 센스와 BQ까지 겸비하고 있던, 보기 드문 거인었습니다.
1983년에 이 선수가 구소련 대표팀의 일원으로 미국대륙을 쓸고 간 후, 모든 NBA 스카우터들은 이 동구권 선수에게 완전히 반해 버렸습니다. 외국선수 나이제한법에 걸려서 NBA로 데려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애틀란타는 19세의 사보니스를 드래프트합니다. 그리고 2~3년이 지나 사보니스를 데려올 수 있는 시기가 되자, 이번에는 구소련 정부가 훼방을 놓습니다. 자국선수들이 라이벌인 미국의 프로리그에서 못뛰게 한다는 규정을 새로이 만든 것이죠. 당시에 구소련의 국가대표가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소련이라는 거대 조직의 일원이 됨을 뜻했습니다. 선수로서의 자유와 권리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했죠.
결국 애틀란타는 사보니스를 포기했고, 그의 드래프트권은 포틀랜드에 넘어 옵니다. 이미 샘 보위에 구단의 미래를 걸 수 없다고 판단한 포틀랜드로서는 클라이드 드렉슬러와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운동능력 최고의 사보니스를 탐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3~4년 안에 사보니스를 영입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포틀랜드는 1라운드 24번픽을 사용해 사보니스를 드래프트합니다. 그 때가 1986년 6월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후, 사보니스는 세계농구 선수권에서 맹활약하며, 팀은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토너먼트 MVP를 차지합니다. 게임당 평균 25분 정도만 뛰고도 평균 17점, 11리바운드, 4블락샷을 기록했죠. 포틀랜드는 사보니스의 활약에 흐뭇해 할 수 밖에 없었고, 포틀랜드 시민들은 소련정부가 그를 하루속히 미국으로 보내주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때, 사보니스가 발목을 삐는 부상을 당합니다. 이 부상의 여파는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86년 후반기에 다시 게임을 뛰는 사보니스의 모습은 분명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1987년, 사보니스가 발목을 제대로 삐어 버립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사보니스가 이번에는 절뚝거리다가 병원 계단에서 구릅니다. 이 대형사고로 인해 사보니스는 양쪽 아킬레스근을 아주 심하게 다쳐 버리고, 다시는 전처럼 뛰거나 점프할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리죠. 이 때 투여받은 약물의 부작용으로 몸도 부어 오르고 두상까지 커져버려 10년후 NBA에 들어올 때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와 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나마 사보니스가 그 사고 이후에도 경기를 뛸 수 있었던 것은,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그를 데려다가, 미국국민들로부터 매국노 소리까지 들어가며, 최신 의학기술로 뛸 수 있게끔 재활시켜놓은 포틀랜드 구단의 공이었습니다.
포틀랜드 구단이 드래프트하기 직전까지 그렇게 잘 뛰어다녔던 천재 거인, 아비다스 사보니스.... 그 또한 포틀랜드가 드래프트함과 동시에 발목을 다치고 결국에는 운동능력을 잃어 버린채 남은 커리어를 보내야만 했던 또 다른 비운의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렉 오든
1988년 1월 22일생.
신장: 216cm (7-1)
2005, 2006 High School 최우수 선수
2007년 All-American First Team 선정 (오하이오 주립대)
2007년 드래프트 전체순위 1번으로 포틀랜드에 영입됨
그렉 오든의 잠재력은 언급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다만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오든의 신체연령(?)이 생각보다 더 오래된 듯 하다는 것입니다. 이미 제작년 대학 시절에 다쳤던 손목도 의사들의 견해와는 달리 회복기간이 상당히 오래 걸렸습니다. 드래프트 직전에는 허리 디스크의 문제가 발견되기도 했었습니다. NBA입단 직전에는 편도선 수술을 받기도 했죠. 그리고, 포틀랜드에 합류한 이후, 하루 스케쥴이 빡빡하거나 하면 금방 피로함을 호소하곤 해 왔습니다. 다른 19세의 팔팔한 신인선수들과는 달랐습니다. 오든이 그리 강골이 아닌 것 만큼은 거의 분명해 보입니다.
이제 오든은 첫 시즌을 시작하기도 전에 무릎연골 수술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시즌은 개막전에서 발목부상을 입었습니다. 모든 포틀랜의 팬들과 오든의 팬들이 불안해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포틀랜드 가계에 흐르는 이 지긋지긋한 빅맨 징크스를 어찌해야 할까요? 월튼, 보위, 사보니스, 그리고 오든. 네 명 모두가 정말로 잘 달리고 잘 점프하는 뛰어난 신체능력를 갖고 있었지만, 결국 그들 중 월튼, 보위, 사보니스, 이 3명은 포틀랜드에 드래프트 된 순간부터 부상으로 시작, 일찌감치 전성기를 접어야만 했습니다. 제발 그렉 오든만큼은 이 이상한 징크스를 깨고, 부상에서 훌훌 털고 일어나 앞서간 3명의 센터들 몫까지 힘차게 뛰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서 필자의 소원대로, 드와이트 하워드와 함께, ‘제 2의 러셀 vs 체임벌린’ 라이벌 시대를 열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든이여! 포틀랜드 가계에 흐르는 빅맨 저주를 끊고 영원하라~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오든... 역시 불안합니다 .; 이제 루키(시즌을 날렸으니 루키...)인데 화려한 부상전적...
부상 앞으로 안당했으면 좋겠네요.
P.S 오든 양발 길이가 안맞는다던데 맞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