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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임벌린을 다시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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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2 11:35:40

(평어체 양해바랍니다.)

체임벌린 얘기가 나오면 항상 적지 않은 글들이 소세지처럼 매달리곤 한다. '정말 그렇게 뛰어난 선수였냐', '진짜 4대 센터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냐'... 항상 이런 낚시성 글들이 올라오는 경우를 포털에서 종종 본다. 그래서 그에 대한 글들은 항상 본의 아니게 떡밥성 글이 되버리는 경우가 많다.

결론부터 써보자면 난 '그렇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센터 중 한 사람이라고 칭하고 싶다. 단지 그의 기록만 보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의 전설적인 힘만 보고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그가 NBA선수로서 남긴 업적은 그 누구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것이며 절대로 가벼이 볼 수 없는 것이기에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나는 체임벌린빠도 아니고 고도의 안티도 아니다. 다만 생각 이상으로 저평가 당하는 체임벌린을 보면 가끔은 답답함마저 느낀다.

가장 많은 오해라면 다음 세가지가 꼽힐 것이다.

"그 당시 농구수준이 별거 아니었다."
"그의 운동능력과 내구성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별거 아니다."
"그는 스탯만 챙긴 개인플레이어다."

그의 시대를 목격한 이가 거의 없어서인지 체임벌린에 대한 소견마다 이런 말들은 항상 따라다닌다. 하지만 이것들은 앞에서 말했다시피 오해다.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다. 잘못 아니까 당연히 잘못된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먼저 당시 농구수준을 보자. 당시 농구 수준으로 포괄해서 말하면 너무 넓으니까 그와 맞붙었던 선수들만 간단히 언급해보자.

1. 빌 러셀(1957 ~ 1969)

경력: MVP 5회(1958, 1961 ~ 1963, 1965), 올스타 MVP 1회(1963), 파이널 우승 11회(1957, 1959 ~ 1966, 1968, 1969), 퍼스트팀 3회(1959, 1963, 1965), 세컨드팀 8회(1958, 1960 ~ 1962, 1964, 1966 ~ 1968), 디펜시브 퍼스트팀 1회(1969; 이 해 처음 신설)

발가락에도 반지 끼운다는 러셀옹이 가장 먼저 꼽힌다. 역대 최고의 센터 탑3에 꼽히는 사람이자 역사상 최고의 리더로 꼽히는 사람이다. 혹시 이 양반 체격(208cm, 102kg)보고 '호리호리하고 머리 잘 굴리는 센터'라고 생각하는 사람 있는가? 만일 있다면 말하고 싶다. 러셀 역시 엄청난 운동능력과 파워를 자랑했던 사람이라고. 단지 체임벌린을 상대하다 보니 약해보였던 것뿐이다. 더구나 러셀은 체임벌린이 평균 50점 넣게 넣던 62시즌에 그를 35점대로 막았던 사람이다. 게다가 역대 최고의 샷 블락커로 불리기도 한다. 73년 이전까지 블락을 세지 않는 바람에 러셀의 블락 기록은 남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경기 기록관들은 러셀이 2~3번의 1번꼴로 한 경기에 두 자릿수 블락을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체임벌린은 이런 러셀과 142번이나 경기를 했다.


2. 월트 벨라미(1962 ~ 1975)

경력: 신인왕(1962), 올스타 4회(1962 ~ 1965)

벨라미도 빠질 수 없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사실 이 선수는 조금 낯설지도 모르겠다. 올NBA팀에 한번도 뽑힌적이 없고 두각을 제대로 드러낸 시즌이 없기 때문. 하지만 올 NBA팀이 없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체임벌린과 러셀과 같이 뛰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세컨드팀까지밖에 없었으니 그 두 자리는 항상 그 둘의 차지였다. 로마 올림픽 금메달의 주역이기도 하고 신인시즌에 평균 30점 19리바운드, 통산 평균 20.1점 13.7리바운드를 기록한 이 센터가 처지는 센터라고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벨라미는 윌트를 상대로 40점을 넣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센터였으니까.


3. 윌리스 리드(1965 ~ 1974)

경력: 신인왕(1965), 시즌 MVP(1970), 올스타 MVP(1970), 파이널 MVP(1970, 1973), 퍼스트팀 1회(1970), 세컨드팀 4회(1967 ~ 1969, 1971), 올스타 7회(1965 ~ 1971), 디펜시브 퍼스트팀 1회(1970)

뉴욕의 혼이라고 하면 킹콩 유잉을 흔히 떠올리지만 그 전에는 윌리스 리드가 뉴욕의 심장같은 존재였다. 한시즌에 MVP세트를 싹쓸이한 몇 안되는 선수이며(그 이후 조던과 오닐만이 이 대업을 해냈다.)70년 파이널에서는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하고도 절뚝거리면서 코트에 나와 살인적인 투혼으로 뉴욕을 우승으로 이끈 인물이다. 뉴욕의 역사상 두 차례 우승은 모두 리드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이 때가 빅 애플의 절정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체임벌린은 파이널에서 리드와 세 차례 맞붙었고 전적은 1승 2패다. 괴물을 두번이나 굴복시킨 리드는 그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4. 네이트 써먼드(1964 ~ 1977)

경력: 올스타 7회(1965 ~ 1968, 1970, 1973, 1974), 디펜시브 퍼스트팀 2회(1969, 1971), 디펜시브 세컨드팀 3회(1972 ~ 1974)

써먼드는 역사에 남을 만한 수비형 센터다. 압둘자바를 가장 괴롭혔다는 센터가 바로 써먼드다. 또한 윌트도 러셀에 비견될 정도로 잘 막았던 인물이다. 더구나 역사상 최초로 쿼드러플더블을 기록하기도 했다.


전성기 윌트와 맞붙은 선수는 이렇게 4명이다.(카림은 윌트의 전성기가 지날 즈음에 등장했다.)저 4명 모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들이며 벨라미를 제외한 3명은 위대한 50인에 등록되어 있다. 그리고 윌트는 저들과 한시즌에 10여번씩 싸워야 했다. 따라서 그 당시 골밑 수준이 빈약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별로 없다. 게다가 당시에는 3점 라인도 없어서 수비 범위도 지금보다 훨씬 좁았다. 심지어 1,2번들까지 페인트존에서 리바싸움에 가세했을 정도다.(웨스트나 빅O의 리바 개수가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한마디로 골밑싸움이 엄청 치열했다는 얘기다. 이 사실까지 더해지면 60년대 골밑이 별 볼일 없었다는 얘기는 더욱 설득력이 없다.

그의 운동능력도 짚고 넘어가자. 그의 운동능력은 지금 기준으로 봐도 살인 수준에 가깝다. 배면뛰기가 아닌 가위뛰기로 높이뛰기에서 2미터를 넘었고 100야드 달리기에서 10초9를 주파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필리의 레전드 빌리 커닝햄은 "그는 팀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빨랐다."라고 했을 정도. 더구나 그는 과학적인 트레이닝조차 받지 않았다. 그의 평생 주치의였던 스탠 로버가 가끔씩 몸 상태만 체크해줬을 뿐 오로지 혼자 힘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고 혼자서 운동능력 유지 운동을 해왔다. 그리고 그 말근육은 모두 전문 트레이닝없이 키워낸 것들이다. 이런 운동능력 때문에 윌트는 체격빨로 농구한다는 오해를 받아야 했고 그 때문에 스스로 운동능력을 자제하고 순수 농구 스킬로 플레이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사실 진정으로 윌트를 볼 때 그를 경외하게 만드는 것은 내구성이다. 바로 출장 시간과 게임 때문. 그가 부상으로 시즌을 날린 건 단 한 시즌(70시즌)뿐이고 그 나머지 시즌에는 시즌 당 평균 79게임을 뛰었다. 그리고 통산 평균 출장시간은 45.8분으로 압도적으로 1위이며 한 시즌 평균 출장 시간 순위에서 상위 7개는 모조리 윌트 차지다. 더구나 37세의 고령에도 평균 43.2분을 뛴건 윌트밖에 없다. 지금도 35살이 넘으면 30분 출장도 쉽지 않은데 체력 관리 프로그램도 체계화되지 않았던 당시에 그 정도로 오래 뛴건 정말 경악스럽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나는 여러 사이트에서 윌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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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08-09-12 12:02:38

네이트 서먼드가 쿼드러플더블 맞죠? 아마 그 선수보고 채임벌린옹이 자신을 제일 잘 막은 선수라고 해줬던 거 같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WR
2008-09-12 14:01:42

써먼드는 카림도 상당히 잘막았죠. 자바의 야투율을 40%대로 떨어뜨렸을 정도니..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09-12 12:25:51

게시판에 쓴 제글 보고 욱한마음에 쓰신거 같은데...
낚시성이니 머니 하는건 상당히 기분나쁘군요 ...
충분히 제기할만한 글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은...

WR
2008-09-12 14:02:27

원투펀치님 글보고 그런게 아니라 이전부터 그런 글들이 각종 포털마다 있었습니다.

오해 없으셨으면 합니다.

2008-09-12 14:04:16

아 그랬군요 ~
괜한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WR
2008-09-12 14:05:36

아 아닙니다. 제 글이 올라간 타이밍이 워낙 절묘해서 오해하실법만도 하네요..

2008-09-12 12:26:11

1980년대 보스턴보다 강력했던 1950년대 보스턴을 상대로 우승 2번이나 따낸 걸 가지고 폄하하는 소리는 무시하는게 낫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논리적으로 말씀하시니까 머릿 속에 착착 들어오네요.

2008-09-12 12:31:14

80년대 디트 배드보이즈가 한 조던 수비도 거의 폭력이었죠 ..유니폼 잡아끄는것은 기본이고...

저땐 더 심했을텐데...체임벌린은 괴물은 괴물입니다...

2008-09-12 12:38:38

그리고 쳄벌린을 폄하한 내용은 없었떤거 같은데...
누가 괴물인줄 모르겠습니까...
다만 4대센터시대에 뛰었다면 그때만큼의 도미넌트는 없었을거란
글이 요지였죠

2008-09-12 12:49:58

원투펀치 님의 글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대체적으로 레전드에 대해 폄하가 일어나니까 쓰신 글 같습니다. (이 싸이트 말고요..)

'전혀 안 통한다' '지금오면 발린다' 등의 글이 있고.. 그걸 무시로만 대처하다보면

은퇴한 선수들의 폄하가 확산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제일 중요한 건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들을 욕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기가 그래서 그렇죠.)

WR
2008-09-12 14:00:53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 말은 단지 '과연 그 때 골밑이 4대센터 시대와 비교해서 그렇게 떨어졌냐'는 겁니다.

2008-09-12 12:44:10

체임벌린이 대단한건 알지만 그렇다고 MDE를 폄하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생각됩니다.

일단 NBA10대 센터들이 4명이나 나온시기에 활약했으며 거기다 무톰보,모닝,사보니스 같은 준수한 선수들이 활약한 시기에서도 하킴과 함께 가장 빛난 선수입니다.

거기에 전성기때에는 상대할 수 있는 센터조차 없다고 할만큼 압도적인 선수였습니다.(모닝의 부상이 더 아쉬운점이죠.) 궁디로 민다음 덩크는 그누구도 상대하질 못했습니다.

핵어

2008-09-12 13:10:17

굳이 MDE를 폄하하지 않더라도 체임벌린의 위대함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MDE의 MVP시즌 기록을 48분으로 환산하면 35-15-3.6 정도가 나옵니다. 즉 MDE가 최고의 시점에서 체력 저하 없이 48분을 매경기 뛴다면 35-15-3.6의 시즌 평균 스탯이 나온다는 건데, 이것은 MDE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체임벌린은 실제로 48분을 뛰었죠.

따라서 MDE를 전혀 깎아내리지 않고 체임벌린과 같은 기량을 가지고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체임벌린이 더 나은 스탯을 기록했을 겁니다.

2008-09-12 13:30:16

출장 시간 얘기를 하시는데 ...
60-70년대 48분뛰었다고
지금 현대농구에서 48분 환산으로 그대로 한다는건
좀 아니지 않을까요 ...
그리고 60-70년대 쳄벌린이 현대와서 통한다고 하시면서
샤킬오닐이 60년대로 들어가면 통하지 않을거란 논리도
좀 이해하기 힘드네요

2008-09-12 13:54:01

왜 아닐까요? 다른 스탯은 상대적으로 결정될 수도 있지만 출장시간은 스스로의 체력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분야입니다. 체임벌린이 요즘 시대에 오면 갑자기 체력이 떨어지기라도 하나요? 그 당시에는 공수 전환 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빨라서 코트를 왕복하는 횟수도 많았는데요.

'현대농구에서 체임벌린이 경기당 48분을 뛰지는 못할 거다'라고 주장하시려면 당시 농구와 현대 농구는 어떻게 다른지, 그 다른 점이 출장시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가 근거로 제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원투펀치님의 글에서는 그런 근거를 찾을 수 없군요.

그리고

2008-09-12 14:00:43

대단히 공격적이시네요
저한테 무슨 감정이라도 ...ㅜ
샤킬오닐 60년대 가정은 헬탄트님 보고 한얘기가아니라
본문 보고 한 얘깁니다만은...
그리고 그때 시절보다 지금 시대의 농구가 더 피지컬해졌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쓴겁니다만은...
그때 풀출장했다고 지금 시대에서도 고스란히 풀출장할것이다란
말은 저로썬 좀 이해하기 힘들군요 ...
머 각자 주관적일테니 결론은 안날듯 합니다...

2008-09-12 14:06:53

저는 특별히 공격적으로 쓴 적 없습니다. 감정도 없고요. 그렇게 느끼셨다면 유감입니다만, 저는 사실을 제시했을 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원투펀치님께서 본문에 욱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때보다 지금이 더 피지컬해졌다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근거입니다. 오늘날은 골밑의 피지컬함이 리그 역사상 가장 덜한 시대입니다.

3점도 없어서 거의 8명이 바글대던 좁은 페인트존에서,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헐렁한 몸싸움 규제 룰의 적용을 받으며, 심지어 주먹으로 때리는 것까지 용인되던 수비수들을 상대로 싸워야 했던 게 당시의 골밑입니다. 심지어 당시에는 수비자 3초룰도 없었습니다.

요새 항상 90년대보다 덜 피지컬해졌다고 말하죠? 그 90년대보다 더 피지컬했던 게 80년대고, 그 80년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피지컬함을 넘어서 폭력적이었던 게 60년대입니다.

이건 주관적인 견해와는 상관없는 객관적 사실입니다. 만약 지금이 더 피지컬해졌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쓰셨다면, 그 근거는 분명히 잘못됐습니다.

2008-09-12 14:03:27

그렇군요 ...
머 사람마다 각자 생각이 다른거니까요 ...
머 저도 쳄벌레인이 지금 뛴다고 해도
4대센터보다 근소하게 우위를 보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요지는 그때의 말도안되는 스탯은 힘들다는 거였구요
이정도에서 결론을 지어도 될거 같네요...
쳄벌레인이 괴물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으니까요

2008-09-12 14:09:48

그건 동의합니다
80-90년대에 데뷔했어도
넘버1센터는 쳄벌린이었을거라는데엔
절대 동감은 합니다.
개인능력은 압둘자바보다 위로 생각하니까요

2008-09-12 16:33:52

솔직한 심정으로 말씀드리면, 체임벌린에 대해 말씀하시는 분들께 이 당시 경기를 한번 보십사. 하고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흥미로 이 당시 경기를 여러차례 봤지만(체임벌린은 필리의 레전드라서 더욱) 기술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에는 솔직히 동의하기가 힘듭니다.

물론, 잔기술들은 현시대로 오면서 계속적으로 발전해왔고, 그렇기 때문에 체임벌린의 기술은 기본기에 충실합니다.

하지만, 그런 기본기에 경악할만큼 기술을 깔끔하고 완성도가 높죠. (거의 완벽하다고 평하고 싶습니다.)

당시에 맞서던 선수들의 경기력 또한 대단했다는 데 동의합니다.

제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가넷피어스님께서 말씀하셨던 센터들은 4대 센터보다 나쁜 평가를 받는 선수들이 아닙니다.

빌러셀의 경우에는 그보다 하이 클래스에 놓는 선수들이죠. 실제 경기력을 보아도 솔직히 러셀의 수비력은 4대 센터들보다 더 우위에 있었다고 보아집니다.

더욱이, 체임벌린에 대한 폭력 일화는 유명한 얘기입니다.

당시에 체임벌린을 폭력성 파울 없이 제대로 상대할수 있었던 이는 빌 러셀 한 명 뿐이라는 우스갯 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체임벌린은 무수한 폭력성 파울을 당했습니다.(전성기 서장훈 선수를 생각하시면 될 듯 하나, 서장훈 선수에게 가해지는 프레싱보다 더욱 무서웠구요.)

무엇보다, 저런 기록들이 세워질 당시 필리는 전력상 체임벌린에게 기대던 정도가 강한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작 우승할 호기에 이르러서는 구단주와의 갈등으로 팀을 옮기게 되었죠.

만약 이당시 체임벌린이 필리에 계속 남았고, 구단주가 이전의 구단주(체임벌린을 아들처럼 대했다죠.)였다면 체임벌린의 우승 횟수는 최소 2-3회 이상은 올라갔을 것입니다.(이건 제 의견만이 아닌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우승을 위해서는 운 또한 중요한데 체임벌린은 안타깝게도 그 운이 조금 부족했던 선수입니다.

사실, 이 선수가 보스턴같은 라인업(1967년 우승 당시 빌리 커닝햄, 할 그리어, 챗 워커, 루셔스 잭슨, 윌리 존슨이 버틴 라인업은 보스턴을 4-1로 침몰시켰습니다.)으로 전성기를 조금만 더 보내었다면 러셀의 반지 갯수는 달라졌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실제로 1967년 필리는 역사에 손꼽히는 팀중 하나이기도 하구요. 무려 68승 13패를 기록한 팀입니다.

67-68 시즌에도 62승 20패를 기록하면서 전체 1위에 올랐으나, 캐미스트리가 무너지면서 보스턴에게 4-3으로 역전당하고 말았는데, 만약 이때 체임벌린이 필리에 계속 남았다면? 하는 생각을 필리팬분들은 많이 하시곤 할 정도입니다.

체임벌린의 우승 횟수. 안타까운 부분이지만, 사실 운이 없던 탓이지 본인의 실력이라고 말하기는 힘든 부분이라는 것이 이런 이유입니다.

67시즌의 필리 우승 당시 경기를 보시면, 체임벌린의 전성기적 실력에 어우러진 팀이 얼마만큼 강팀이 되는지를 여실히 볼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헬턴트님께서도 말씀해주셨지만, 사실 체임벌린이 그러한 기록을 세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의 체력 덕분이었습니다. 연장전을 가도 지친 기색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으며, 정말 처음과 끝의 경기력이 거의 일정한 선수였기 때문에 그런 기록이 가능했던 것이죠.

지금도 비율 스텟으로 평균 18리바운드이니, 하는 말들이 올라오는 선수들이 많은데, 체임벌린은 그런 스탯을 실제로 경기 내내 교체 없이 뛰면서 올렸던 선수죠. 즉, 체력이 가장 큰 원동력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전 기록의 폄하를 솔직하게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2008-09-13 09:53:09

근데..러셀이 mvp 수상이 5회인데..퍼스트팀 3회가 ...ㅡㅡ;; 엠비피 됐는데도 퍼스트에 못들었다는 건가여??

궁금...........

2008-09-13 15:43:06

제가 챔벌레인이나 러셀, 등 과거의 선수들을 조던보다 더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도

가넷피어스님이 글에서도 쓰셨는데 과학적인 트레이닝이나 3점라인이 없었고 또

결정적으로 그들은 있으므로서 현재의 농구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점에서 그들의

업적을 폄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2008-10-04 00:07:38

뜬금없이 나타나서 이런 말 하기는 뭐 하지만

체임벌린 점프력이 1m에 달했다고 하던데...

이런 피지컬은 요즘도 흔치 않다고 보는데요...

지극히 개인적 생각이지만

전성기의 압둘 자바를 맨투맨 상황에서

8~90년대보다는

6~70년대쪽의 센터에서 더 잘 막을 수 있다고 봅...니다

더욱이 3점이 없던 시대에는

농구가 '진짜' 센터 놀음이잖아요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그때는 팀에서도 센터에게 가장 큰 무게를 두었을 것이고

센터 스스로도 자신의 가장 완벽한 기량을 끌어내려고 노력했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NBA 역사에서 쿼드러플더블이 얼마나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쿼드러플더블은 그 자체로 ㅎㄷㄷㄷㄷㄷㄷㄷㄷ = =;;;;;;;;

2008-10-15 11:22:09

그러고 보면 예전에 Rookie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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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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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1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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