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글) 조던이 농구의 신이였다면 코비는 평범한 인간에서 시작해 거의 신의 영역까지 접근한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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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도 중반 상황을 생각해보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조던의 1차 은퇴 (우리가 지금은 그 결과물을 알기 때문에 1차은퇴 2차은퇴로 이야기 하고 복귀도 했으니 그런걸 알지만 그 당시엔 그냥 '은퇴' 였겟죠) 때문이였을까요? 당시 잡지나 기사에서 많이 나온 단어가 '제 2의 조던' 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아니 사실 생각해보면 해롤드마이너가 덩콘 우승할때 제2의 조던 이런 얘기가 나왓으니 제가 NBA 보기 전인 92년? 93년부터 나온 얘기인지도 모르죠.
제 2의 조던이라는 얘기는 마치 현재 르브론의 뒤를 잇는 돈치치 그 이상으로 팬들의 이목을 끌어당길만한 화두였고, 그 글감으로 기사를 적으면 지금 기준으로 보면 조회수가 잘 나오고, 옛날 기준이라면 부수가 잘 팔렷거나 시선 땡기는 그런 것이엿을 겁니다. 95년만 하더라도 심심하면 '제2의 조던 누구인가' '제 2의 조던이 될 선수는?' 'XXX 선수는 제 2의 조던으로 각광받을 것인가' 이런 느낌의 제목과 글들이 2~3개월에 한번씩 나왓던거 같습니다. 주제도 명확해서 쓰는 사람도 편하게 쓸만한 글, 독자에게도 이목을 끌만한 글제목.
그렇게나 조던의 존재는 크고 위대했으며 1차복귀후 커리어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런 글들이 계속 나왔엇죠. 조던의 스스로의 커리어와 농구 그 자체의 아이콘, 실력과 상업성과 세계화를 모두 갖춘 SG 포지션 1위의 조던은 뭐 당연히 넘을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고요.
그리고 팬들과 기자들 모두 제 2의 조던을 실제로도 찾고 있엇습니다.ⓐ90년대 중반은 그런 분위기였엇죠.
누가 감히 그 당시에 이미 농구의 신이라고도 종종 불렷던 조던의 아성을 넘볼수 있었을까요? 아니 그런 불멸의 선수에 뒤꽁무늬라도 따라갈 것은 가능했을까요? 너무 쉽게쉽게 쓰인다는 느낌을 주는 단어 '제2의 조던'은그런 환상적인 느낌만큼이나 무게감은 매우 컸습니다. 실제로 여러 선수들이 부담을 느꼇었죠.
96년에 많은 기대를 받고 NBA에 진출하게 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않은 코비였습니다. 그 시대의 드래프트 패러다임중 하나는 '포텐셜 있는 고졸 선수들을 빨리 뽑는다' 였습니다. 그것에 큰 방점을 찍어준 선수가 작년 드래프트 1라운드 5번 케빈 가넷ⓑ의 NBA무대 연착륙이였죠.
코비는 고교무대에서 스타였습니다. 고등학교때 (JUNIOR) 스탯은 31.1점 10리바 5.2어시 모든 포지션 다 뛰엇다고 하고 아디다스 캠프에서 MVP를 받는등ⓒ 뛰어난 활약을 보였고, 그 보상은 모든 농구인들이 바라는 꿈의 무대 NBA 드래프트 1라운드 13번으로 샬럿호네츠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리 얘기가 되어 있던 것이엿죠. 안목 좋기로 유명한 당시 레이커스 부사장 제리 웨스트가 준수한 스탯을 보여주며 전성기 나이에 들어가기 시작한 매우 좋은 주전 센터 블라디 디박과 트레이드를 해서 LA 레이커스로 온 것이죠. 코비의 미래를 이정도까지 예측하고 트레이드를 단행한 것이였을까요? 여러 선수들을 드래프트로 뽑은 좋은 안목을 가진 제리 웨스트를 감동시킨 것은 무엇이였을까요? 실패할까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다리우스 마일스 조나단 벤더 에디 커리등 기대에 비해 너무나도 아쉬운 고졸출신 선수들 또한 많았으니 말입니다...
(코비의 커리어 스탯입니다. basketball-reference.com 참조)
그런 코비의 루키시절은 의외로 대개 평범하고, 루키라는 환경에서 누릴 특별함과 번뜩이는 재능과는 좀 거리가 있엇다고 생각합니다. 신인시절 가넷은 스탯볼륨만 조금 작았을뿐 나중에는 팀 주전이 되고 28분여를 뛸 만큼 팀의 필요에 금방 맞게 되는 선수가 된것에 비해
코비의 루키시절은... 풋사과 같았습니다. 평범했엇던걸로 기억해요. 고교때 그렇게 날라다니던 선수가 별일없이 조용하네? 이런거엿습니다. 많이 나오지를 못했어요. 몸도 NBA 선수들에 비하면 호리호리하고 슈팅도 길지않고 기회도 많이 못받는 수준. 하지만 깡다구 있고 당돌했어요. 조금이라도 나오면 뭔가를 보여줄려고 애쓰는 그런 젊고 패기있는 선수 정도였습니다. 덩크라도 할려고 애를 쓰고 슈팅이라도 던질려고... 적어도 주눅드는 모습은 보이지않는 그런 선수였습니다. 지기 싫어하는 깡다구와 중2병스러운 자신감도 있엇지만, 그런 프라이드를 증명하기 위해 땀흘리며 노력하는 모습은 이때부터 있엇죠.
당시에 에디존스라는 뛰어난 SG가 레이커스에 있엇지만 코비는 선배인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려고 애를 썻엇죠. 에디존스도 그런 코비를 좋게 여겨서 이것저것 가르쳐주고, 수비적인 부분을 많이 배웟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벤치에서 시작한 97-98시즌이였으나 이런 당돌함, 경기에 나왓을때 뭐라도 보여줄려하는 열심과 멋진 덩크는 ... 마치 조던이후 목말랏던 팬들의 갈증을 해갈해주는 퍼포먼스가 아니엿을까 생각됩니다. 다른 뛰어난 선수들에 비하면 실력과 스탯이 많이 부족한 당시 어린 코비였는데 , 경기에 나가면 뭔가를 보여주는 모습이였거든요. 그래서 팀에서도 6번째 선수로 낙점후 많은 시간을 출장시킨 만큼 성장한 모습을 스탯으로 드러냈습니다. 빈틈이 있으면 재빨리 돌파해서 덩크로 마무리하는 모습. 중거리도 조금씩 넣는 모습.
(98년 올스타 투표수, https://www.basketball-reference.com/allstar/NBA_1998_voting.html )
스탯이나 실력은 약간 부족할수도 있겟으나 팬들의 목마름을 풀어주는 플레이를 보여 많은 인기를 얻은 코비는 투표로 당당하게 올스타 선발로 출장할 수 있었고
https://www.youtube.com/watch?v=KGLFK0I6-mk
조던과의 매치업을 통해 넥스트 조던의 가능성에 대한 아이콘으로서 상징적인 장면을 전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엔 그저 2년차 선수였고, 많은 경쟁자들중 하나였지만
마치 천자를 업은 조조인것처럼 조던과 1:1을 하는 장면을 올스타에서, 그리고 정규시즌에도 이후 꾸준히 보여주며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게 되죠
그리고 코비는 계속 성장을 하게 되죠. 자신의 농구론에 합당하게 스스로 만족할때까지 연습하고 연습하여 매년마다 눈비비고 괄목상대할 만큼 자신에게 부족한 면을 고치면서 성장합니다 . 직장폐쇄가 있던 98-99 시즌에 팀은 코비의 성장을 믿고 당시 가장 뛰어난 가드수비수중 한명이자 올스타 슈팅가드 에디존스를 트레이드 하였고, 코비는 그 기대에 보답하여 nba 서드팀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한시즌 한시즌 거듭되는 동안 코비의 성장은 레이커스의 우승과 직결되었습니다. 샤킬오닐이 워낙에 엄청난 영향력을 보였지만 혼자서 잘할 순 없는 법이죠. 샤크가 종종 갇히게 될때 코비는 그틈을 놓치지 않고 골밑으로 컷인해 들어왔으며 , 샤크의 패스는 코비의 빠른 덩크로 반드시 이어졋습니다.
그리고 그걸로 끝나지 않았죠. 그 다음해에 샤크가 코비에게 패스해주면 코비는 돌파뿐만이 아니라 미들슛을 넣었고 점점 슈팅레인지가 길어져서 3점도 넣을수 있는 선수가 되어버리죠. 그때 경기를 보신분들은 아실겁니다. 초반에 코비가 슈팅레인지가 짧아서 림 앞을 맞고 나오는 일이 많았는데 점점 길어지고 안정적이게 된것을요. 또한 연습과 노력으로 실력이 향상되는만큼 팀의 영향력과 지분이 높아지고, 이것은 후발주자 코비가 샤크보다 더 슈팅을 많이 던지게 되는 시즌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3연속 우승, 눈부시게 뛰어난 업적을 샤크와 코비는 이루어냈고 그들은 더블 나이트매어로 불리며 말 그대로 상대에게 악몽을 선사하는 존재가 되었죠. 악몽을 주는 존재가 한명도 아니고 두명이였습니다.
샤크와 코비가 서로 패스를 하며 잘 섞엿을땐 무적의 모습을 보였으나 농구에 대한 접근법과 생각이 서로 달랏던건지 물과 기름처럼 잘 융화되지 못한 경기력을 보엿을때가 조금씩 늘어났으며
결국 04년도 결승에서는 코비의 부진으로 팀이 패배하게 되고
레이커스는 새로운 변화를 원했기에 샤크와 코비 중에서 선택해야했고 그중 코비와 함께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코비는 다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동부에선 아이버슨,빈스카터,레이알렌등 여러 슈팅가드들이 동부 올스타 슈팅가드로서 이름을 바꾸고 경쟁하고 있었지만 서부는 99년 이후부터 슈팅가드는 항상 코비 브라이언트이었고, 99-00 00-01 세컨팀 이후 01~04년까지 3시즌 연속 가드 퍼스트팀에 자리잡아 계속 그 자리를 지킨 챔피언 같았엇죠. 이미 정점에 있어서 굳이 성장할 것이 있을까? 하는 코비는 03시즌 이후 벌크업을 시작하더니 04년 05년이 될수록 몸이 두꺼워지고 근육질이 되었습니다.
벌크업이 그 당시 유행중 하나이긴 했습니다만, 그 이전에 코비가 실력과 스탯과 슈팅거리등 약점을 매년마다 개선하는 것도 필자인 저로선 놀라운 일이였고 매년 코비를 볼때마다 기대하던 점이긴 했으나, 벌크업까지 해서 04-05시즌을 맞이하는거 보고 혀를 내둘렀엇죠. 아 정말 말도 안되게 노력하는 선수구나. 거의 미친 수준처럼. 영어단어에 madly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선수는 어쩌면 코비인지도 모르겟습니다.
그리고 잘 아시는대로 고전을 하죠. 득점왕도 2번을 하고 81점도 넣으며 서드팀 한번, 퍼스트팀 2번을 기록할정도로 뛰어난 개인의 역량을 보여줬지만 팀 성적이 잘 안나오며, 과거의 영광만큼의 결과가 잘 나오진 않았습니다. 원맨팀급으로 팀을 이끌어 플옵에 7위, 8위로 진출하긴 했으나 모두 피닉스 선즈에게 계속 1라운드에서 덜미를 잡히게 되죠. 그리고 전성기의 나이를 향해 달려가는 코비를 다른팀들이 바라만 볼리가 없었습니다. 코비를 데려오기 위해 많은 팀들이 애를 썻고, 그중 제가 지켜보고 있는 달라스와는 상당히 심도깊은 이야기가 진행되었지만 코비가 스스로 자신은 LAL 팀에 남겟다고 의지를 표현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트레이드 딜이 무산된 기억으로 남아 있네요.
하지만 그런 코비의 팀에 대한 선택은 보상받은 것이엿을까요? 경험치를 먹인 선수들이 크게 보강한 것도 아닌데 다들 공2, 방2업 된 마린인 마냥 기존 선수들이 좋은 퍼포먼스를 보엿던걸로 기억합니다. 조던파머, 샤샤 부야비치, 투리아프, 바이넘등의 지난시즌 같이 했던 선수들이 기량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며 07-08시즌은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서부 상위 싸움을 샌안 , 뉴올과 함께 계속 했던걸로 기억합니다. 여기서 가솔트레이드를 성공하며 방점을 찍어버리죠. 비록 결승에서 보스턴의 강한 수비에 고전하며 아깝게 패배했던 레이커스 였지만
이후 더욱 깊은 모습을 보여준 레이커스는 결국 코비를 더맨으로 한 상태에서 2연패에 성공하게 됩니다. 리빌딩을 해야하는 레이커스의 당시 상황에서 코비의 선택과 충성과 노력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였죠. 매우 좋은 동료들과 함께 2연패를 함으로서
증명하기 어려운 명제중 하나였던 슈팅가드 중심으로 우승할수 있냐? 하는걸 조던에 이어서 코비가 다시 보여주었고, 조던이후 코비가 처음으로 슈팅가드 더 맨으로서 2번이나 우승했기에
제 2의 조던 이야기는 00년대 중반 넘어가면서부터 코비로 모아지게 되엇지만, 이 2번의 우승으로 인해 제 2의 조던이 아닌 제 1의 코비로 인정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코비도 이전부터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했엇고요. 조던은 조던이고 나는 나일 뿐이다. 이것을 2번의 자신의 더 맨 우승으로 제 1의 코비로서 입지를 다지게 됩니다.
나이상 최정점기엿던 30살 31살에 우승한 그는 이후 잘나가던 달라스에게 일격을 맞고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노쇠화 되기 시작하며 멤버들을 교체하여 도전했지만 미끌어지고
레이커스는 다시금 리빌딩의 길을 선택하게 되나 프랜차이즈 스타 코비를 팔아서 자산을 만들지는 않고 계속 동행하게 됩니다.
무려 12-13시즌까지 , 8년 연속 퍼스트팀을 딱하니 차지하던 코비도 아킬레스건 부상과 노쇠화, 잔부상 재발이 겹치면서 쉽지않은 후반기를 보내긴 했으나
여전히 계속 올스타에 선정되고 , 자신만의 농구철학과 밈과 캐릭터를 여실히 보여주며
https://www.youtube.com/watch?v=GTJwoWHMEw0
정말 코비답게 마지막 춤을 추면서 마무리를 합니다
누군가가 "코비는 어떤 선수였어요?"라고 저에게 묻는다면
마지막 경기를 보여주고 싶네요...
이런 멘트도 덧붙여야죠
농구의 신이 마이클 조던이엿다면
코비 브라이언트는 평범한 인간에서 시작해 거의 신의 영역에까지 이르렀던 선수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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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적으면서 중반부터는 그냥 한호흡에 쭉 적어버렷습니다. 찾는거 최대한 덜 찾고요...
그리고 글을 적으면서 마치 인생의 꿈, 주마등처럼 뭔가가 지나가는 느낌을 받네요...
제 인생도 코비의 나이먹음에 따라 흘러갔으니 말입니다...
제가 본 코비 브라이언트라는 선수는
그냥 평범한 인간 농구 선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언론들이 제 2의조던을 찾았엇죠. 이미 커리어 중에 농구의 정점, 농구의 신으로 인정받는 선수에 대해
코비는 매년마다 도전했습니다. 마치 하늘을 향해 날아볼거라고 애를 쓰는 이카루스처럼요
딱히 코비와 LAL의 팬이 아니였음에도
이번시즌 코비는 어떻게 변화되었을까
이번에 코비는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까
이번엔 어떤 변태같이 득점을 해낼려나
하는 기대감을 오프시즌에도 주었고 인게임 중에도 주던 선수였습니다.
매년마다 성장하는게 눈에 보였고
이미 정점에 있어도 더 자신을 갈고 닦는 노력을 하는것이 보여서
결국 ... 슈팅난사, 혼자서 득점하는 듯한 밈을 가지고 있어도 (그리고 스스로 그런걸 즐기면서...)
팀을 2번이나 우승시켜서
비록 조던의 아성은 넘어서지 못했지만
조던만큼의 말도안되는 재능은 가지지 못하고
매우 뛰어난 재능도 사실 아니지 않았나? 싶었던 어떤 모습을
무한한 노력과 발전으로 인해
제 2의 조던은 아득히 넘어가서
제 1의 코비가 되고 , 사람으로 시작해서 데미갓까지 올라간 그런 선수엿던거 같습니다.
코비가 올타임 10위정도 되는데... 매우 뛰어난건 사실 아닐수도 있죠.
하지만 코비의 시작과 성장과 연속을 계속 보게된 저로선
00년대 농구선수를 단 한명만 골라봐라
00년대 농구를 한 단어로 정리해봐라
하면.
코비 브라이언트 를 보면 알수 있다
이것이 농구가 아니겟는가
농구가 주는 감동이 이것이 아니겟는가
라고 말할수 있을거 같습니다.
계속 상념에 사로 잡히게 되네요
당신의 농구와 노력
그리고 당신의 철학과 그걸 보여준 인생은
농구경기를 뛰어넘어
감동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노력과 삶을 걸어온 여정이
한편의 영화를 보고 그후 주는 여운같이
계속 주마등처럼 그려지게 되네요
불꽃같던 코비
인생을 통해 영감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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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기억하는 제2의 선수로 언급된 선수들은 제리 스택하우스, 앤퍼니 하더웨이, 해롤드 마이너, 코비 브이언트, 레이 알렌, 빈스 카터, 마이클 핀리, 라트웰 스프리웰, 그랜트 힐 등입니다. 생각해보면 90년대 초반부터 말까지 계속 화두로 언급되었습니다.
ⓑ가넷의 고등학교 스탯은 25.2점 17.9리바운드 6.7어시스트 6.5블락 66.8%필드골
(https://en.wikipedia.org/wiki/Kevin_Garnett 참조)
그리고 가넷은 20년정도만에(two decades) 처음으로 고등학생 출신으로 드래프트 된 선수였고
(https://en.wikipedia.org/wiki/1995_NBA_draft 참조)
루키때 스탯은 10.4점 6.3리바 1.8어시를 기록, 루키 세컨드 팀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선수가 되었죠.
(https://www.eskimo.com/~pbender/misc/awards96.txt 참조)
그래서 '고졸 선수를 뽑아도 괜찮더라' 라는 패러다임을 제시하게 됩니다. 이후 코비, 저메인오닐, 티맥등이 뽑히고 그들의 성장과 성공사레를 본후 조나단벤더, 다리우스마일스, 타이슨챈들러, 에디커리등 5번픽 이내로 뽑는 일도 생기고 콰미브라운처럼 무려 1번픽으로도 뽑고 하는 일도 생깁니다. 하지만 항상 성공만 있던건 아니엿고 유행과 거품처럼 설레발 많이 쳣다가 사그라들었죠. 물론 절정은 03년 1번 르브론 제임스였습니다.
ⓒ https://en.wikipedia.org/wiki/Kobe_Bryant 참조
ego
work ethic
그에게 배운 두 단어입니다. 고마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