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 시카고 경기를 보고 있으면
제가 '농구'라는 걸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NBA 구단 중 가장 폐쇄적인 집단의 적나라한 민낯을 보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물론 농구 경기를 뛰는 건 주전 5명부터 벤치 멤버들까지 선수들입니다. 보일런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감독인 내가 선수들 대신 경기를 직접 뛸 수는 없는 것’인데요. 문제는 공수 전술 모두 큰 틀을 짜서 선수들에게 반복 학습시켜 실제 경기에서의 재현도를 높이고, 시즌을 치르며 이것저것 조정해 나가야할 감독이 아무런 대책 없이 선수들로 하여금 대책 없는 막농구를 뛰게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토 포터 주니어(이하 오포쥬)가 발 부상으로 아웃되고서부터 시카고가 공격이랍시고 보여준 것들은 정말 단순하고 단순한 플레이들의 반복입니다. 현재 시카고는 스페이싱을 강조한다는 명목 아래 선수들 5명의 선수들이 3점 라인 밖에 서서 5-Out 구도를 취하면서 3점 라인에서의 핸드오프나 단일 핸들러 위주의 단순 픽앤롤 공격만 반복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단조로운 공격을 많은 시간 동안 가져가고 싶다면 픽앤롤이나 아이솔 몰빵이 어느 정도 가능해서 본인 득점부터 어시스트까지 기복 없이 책임지는 에이스급 핸들러가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현 시카고에는 그런 선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돌파 성공률 관점에서 봐도 시카고가 RA(제한 구역)에서의 슈팅 시도는 최다인데 성공률은 꼴찌급이라는 처참한 결과가 문제가 크단 걸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더 심각한 건 3점 라인 안쪽으로 들어갔을 때 자유투라인 부근에서부터 림까지 드리블하면서 본인이 득점을 할지 아니면 킥아웃/골밑으로 디쉬 패스를 할지 선택지 여러 개를 들고 있으면서 상대 수비가 고민하게끔 만들 선수가 전무하다는 점입니다.
버틀러 트레이드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리빌딩은 올 시즌 3년차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에이스급 핸들러를 구하기 힘들다는 걸 상기한다면 플레이메이커의 부재 자체가 심각한 문제인 건 아닙니다. 로터리 추첨에서 운이 안 따라준 면도 있고요. 그렇지만 이렇게 에이스가 없는 상황에서도 각 선수들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생각 하나 없이 단순하고 단조로운 공격을 반복하는 건 심각한 인지 능력 오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건 감독이나 프런트가 지금 선수진의 역량을 너무 과대평가했거나, 이들의 결점을 가려줄 방법을 떠올리지 못해서 방치하고 있거나, 아니면 둘 모두에 해당될 텐데 어느 쪽이 되었든 크나큰 문제고요. 감독과 프런트의 거대한 그림자가 선수단과 경기력에도 거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니 시카고의 황당한 경기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그들의 폐단 또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셈인 겁니다.
한 마디로 지금 상황은 픽앤롤이나 아이솔같이 단순하지만 말처럼 실행하기 쉽지 않은 플레이들을 주전이 나오든 벤치 멤버가 나오든 그저 5-Out 구도를 깔아줬으니 이후에는 너희들이 알아서 진행하라고 경기장에 던져놓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다른 팀들은 이를 위해 여러 가지 플레이들을 펼치지만, 예시로서 밀워키의 경기 모습을 담은 영상을 하나 첨부해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Mc86UY3iNk
▲ 위에서 예시를 들 때 밀워키의 것을 들었는데요. 현 리그 최고 팀 중 하나인 밀워키로서 명감독에 확고한 에이스 그리고 구성원들 모두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팀을 시카고가 따라갈 수 있다는 뜻에서 올린 건 절대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현재 시카고가 하는 것처럼 단순히 핸들러를 위한 스크린만 걸어주면서 픽앤롤이나 아이솔을 진행시키는 거 말고도 스크린의 다양한 활용 방법이 있다는 것인데요.
5-Out 구도를 바탕으로 그 안에 내용물을 채워넣는 밀워키와 달리 시카고는 첫 번째 돌파를 위한 의미있는 스크린이나 패스 플레이도 전무할뿐더러 설사 어느 선수가 페인트존으로 들어갔다 하더라도 마무리도 잘 안 되고 킥아웃도 제한적인 상황이 무한 반복되고 있는 겁니다. 이러니 선수들이 그저 공을 돌리면서 시간 낭비하고 결국은 현 시카고에서 가장 위력적인 득점원인 라빈한테 떠넘기듯이 공을 주는데, 라빈이 넣으면 득점이고 못 넣으면 득점 실패인 그런 장면들이 무수히 쏟아지고 있습니다.
▼ 빅맨을 활용해서 기브앤고 같은 플레이들을 펼치는 건 이제 기대도 안 합니다. 그런 킬패스는커녕 지금은 아래 장면들처럼 사이드체인지를 위해 코트 반대쪽으로 패스를 돌리는 볼 리버설도 최근 경기에서는 거의 안 나오고 있어요.
사실 오포쥬가 빠지기 전에도 시카고 공격력은 최하위권 이었지만, 오포쥬가 빠진 이후로는 아예 땅을 뚫고 들어갈 정도로 못합니다. 이쯤 되면 도대체 보일런이랑 시카고 선수들은 팀 연습에서 무얼 연습하길 래 저런 경기력을 보여주는 지 직접 찾아가서 보고 싶을 정도인데요. 전술의 실행력을 따질 수준이 아니라 도대체 감독이 무얼 보여주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는 행위들이 반복되고 있는 겁니다.
농구는 5명이 하는 거지만 지금 시카고 선수들이 보이고 있는 ‘행위’는 그저 아무런 의도 없는 플레이들의 반복일 뿐입니다. 이런 걸 하도록 지시하는 보일런 감독부터 이런 인물한테 3년 연장 계약을 주도록 밀어붙인 부사장 존 팩슨까지 전부 문제인데요. 존 팩슨이 지금 선수단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말로써 추구하는 농구 - 열정이 있고 끈기가 있으며 영리함까지 갖춘 농구 - 는 지난 몇 년 간 프런트 자신의 손으로 쫓아낸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불스 팬으로서는 쓴웃음을 짓게 만듭니다. 존 팩슨이 자기의 꼭두각시로서 쓰려고 임명한 보일런은 당장 오늘도 패배를 당한 뒤 늘 그렇듯 경기 내용과 똑같이 알맹이 하나 없는 인터뷰 어록을 남겼는데요.
https://twitter.com/highkin/status/1200651929375739905
보일런 : 우리는 우리가 하고자 하는 플레이를 계속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승리는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어떤 플레이인지 수식하고자 뒤에 '노력'이니 '터프함'이니 '단합'이니 이런 말들이 따라나옵니다).
기자 : 어떤 면에서 그런 것들이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건지?
보일런 : * 우리가 승리를 (혹은 승리하는 구도를) 만들어내면 승리는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다. 기자 당신도 이 대사가 나왔던 영화를 본 적이 있는지?
* 이건 1989년에 나온 Filed of Dreams라는 영화에서 나온 대사로서 보일런 버젼으로 옮겨봤는데, 원문은 이렇습니다. “If you build it, they will come." 영화에서는 '너가 그걸 만들면 그들이 알아서 찾아올 거'라는 뜻으로 쓰였는데, 보일런의 황당한 점은 이렇게 패배 이후 인터뷰에서도 전술에 대해서 진지하게 접근을 하지 않는 다는 겁니다. 기자가 좀 더 구체적으로 답변을 듣고 싶어해도 저렇게 항상 '열정'이니 '터프함'이니 의미없는 동어 반복과 말장난 으로 일관하고요. 사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전술에 대해서 논하는 것을 '안' 하는 게 아니라‘못’ 하는 걸 수도 있겠네요. 아무런 내용이 없는 경기 내용을 반복하고 있으니깐요.
항상 변화를 주는 것이 느린 그 시카고 구단주조차도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인지하고 그의 아들(이자 현 시카고 사장)을 골든스테이트와의 경기에 파견(?)하고 부사장 존 팩슨을 이번 로드 트립에 동행시키기도 했는데요(시카고 비트라이터 Darnell Mayberry에 따르면 존 팩슨이 조만간 입장 표명을 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빠르면 이번 로드 트립 중에 일어날 수도 있겠고요). 그럴 만도 한 것이 작년 케이블 중계 방송사 수익이 엄청나게 떨어지기도 했었고, 또 올해는 홈 관중 동원률이 심상치 않습니다. 탱킹을 시작한 17-18 시즌부터 보면
시카고 불스 최근 홈 관중 동원률
- 17-18 시즌 99.3%
- 18-19 시즌 96%
- 19-20 시즌 93%
로 심각하게 하락 추세에 있는 건데요. 조던 에러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함과 동시에 경기력을 떠나서 구단 행사나 관리 등에 신경을 많이 쓰는 시카고에서 관중이 이렇게까지 떨어진 건 2010년대 들어 전례가 없던 일로서 이는 시카고 경기력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대변함과 동시에 현금 장사하는 구단주에게는 경각심을 줄만 합니다.
팀의 리딩 스코어러가 따로 인터뷰까지 잡아가며 감독이 선수단을 신뢰하지 않으면 자기도 감독을 신뢰하기 힘들다는 말이 나오고, 부상의 악재가 겹치고 겹친 골스 상대로 4쿼터에 압도당하며 패배를 하며, 공수 모두 끔찍한 경기력을 보여주는 팀이라면 지금쯤 이미 감독과 프런트는 물갈이 되었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웃기게도 시카고 팬들조차 지금 당장 짤라 버렸으면 하는 그들의 희망사항은 접어둔 채로 이들이 팀을 나가는 건 아무리 빨라도 이번 시즌이 종료된 이후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팬들이 추측하기로는 존 팩슨이 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팀을 나가는 겁니다. 왜냐하면 부 사장 존 팩슨과 구단주는 그 둘은 물론 그들의 가족들끼리도 두루두루 교류하는 절친 사이이고, 팀이 이렇게 수렁에 빠진 상태에서도 구단주는 존 팩슨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그가 ‘경질’ 당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임’의 선택지를 주기 위해서 배려를 할 거라는 예측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답답한 마음에서 힘이 쭉쭉 빠지는 부정적인 쓴 소리를 길게 풀어서 썼는데, 보일런과 팩슨이 그대로라면 반등의 요소와 변화의 의지 둘 다 없는 시카고 농구를 보는 건 스스로를 고행의 길로 빠뜨리는 거라 슬슬 그만보고 내년 드래프트에 나올 대학 선수들이나 좀 더 보고자 합니다. 항상 좋은 의견 남겨주시는 불스 팬분들도 정신 건강 보전을 위해 지금의 시카고 경기는 멀리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진짜 차라리 예전 조던 시절 시카고 경기를 보는 게 훨씬 더 재밌고 생동감을 줄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이번 시즌은 너무 참담하네요. 지난 시즌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로 2월 한달간 5승 5패로 나쁘지 않은 모습과 나름 쏠쏠한 영입으로 이번 시즌만큼은 조금은 달라질거라 기대했는데, 기대가 산산조각나는 시즌이네요.
프런트 오피스나 코칭 스태프가 개판이어도 열심히 뛰는 선수들이라도 응원해줘야겠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올 시즌 모습을 보니 그냥 정나미가 다 떨어지네요. 어떻게든 긍정적인 점을 찾아보려고 해도 전여 없는 이 상황이 너무 답답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