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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You, Mama - 리키 루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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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1-06 20:39:24


theplayerstribune에 올라온 리키 루비오의 이야기입니다.

이 글 하나에 리키 루비오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아오고 있는지 한 눈에 나타나 있는 글인거 같아서

부족한 영어 실력임에도 적어보게 되었습니다. 

 

오역과 의역들 존재하니 너그러운 양해와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2015년에 저는 팀버울브스가 있던 곳에서 멀지 않은 미니애폴리스 시내에 있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새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아침에 안개가 걷히자 아래를 내려다보며 미시시피강을 보이는 곳이였죠. 

아파트는 크긴 했지만 그리 크진 않았어요. 저는 바로 침실이 두 개인지 확인했어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저를 보러 올 때, 부모님만의 방이 있어야 하니까요.


그 해 여름, 부모님은 스페인에서 오셨습니다. 보통 부모님들은 제가 노는 것을 보거나 

휴일을 기념하기 위해 오시곤 했습니다.  우리는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에서 관광을 했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함께 미술관과,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식당으로 모셨습니다. 쇼핑몰에도 모시고 갔구요.

우리는 항상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마치 휴가라도 온 것처럼요.


이 특별한 여행들을 통해 도시를 빠져나가며 드라이브를 자주 했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했던 대부분은 도로에서 있었던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죠.

부모님은 음악을 계속 틀었습니다. 제게 고향에 있는 친구들과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어요. 

그러다 한동안 침묵하시다가, 별안간 아버지께서 제 어린시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우리 아버지는 그걸 좋아하세요.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특히 제가 이미 들은 이야기들을 하시길 좋아합니다.



이번에 아버지는 내가 어떻게 축구와 농구를 결정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10살때 우리 어머니는 제가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들었어요. 전 축구를 선택했습니다. 

당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였고 축구를 더 잘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농구였어요. 

사실 아버지는 여자 농구팀을 지도했어요. 그래서 농구가 아버지의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였어요. 

제가 농구를 포기한다는 것때문에 아버지를 조금 실망시켰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 주 후, 축구와 저는 정말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그리고 농구가 그리워졌죠.


 

 

 

그래서 어머니한테 가서 제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했어요. 저는 농구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그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해요. 부모님은 이미 축구 클럽에 돈을 지불했어요.

 

"시즌 중반에는 바꿀 수 없어."라고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엘 마스누에 있는 지역 스포츠 클럽에서 일했어요. 

그래서 스태프들에게 제가 농구팀 중 하나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물어봤어요. 

시즌이 이미 시작된 후 팀에 합류하는 것은 보통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아버지가 클럽에서 몇 시간 더 일한다면 그들은 제가 플레이할 수 있도록 허락할 것이라고 말했어요. 아버지는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었죠. 아버지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를 다시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비록 아버지가 많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기꺼이 추가 근무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어요.


어머니, 아버지, 가족. 그게 제 팀입니다. 항상 그랬어요. 저는 가족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리고 축구가 아닌 농구를 선택한 지 15년 후, 

저는 부모님과 함께 미네소타에서 도로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몇 시간 후에 우리는 로체스터에 있는 마요 클리닉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작은 방에서 의사가 들어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3년 전에 우리 어머니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2012년에 폐에서 시작됐어요. 

우리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어머니가 극복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믿을 수 밖에 없었어요. 

 

그게 우리 어머니예요. 알죠? 엄마는 나의 슈퍼히어로입니다. 

저는 어머니가 가족을 부양하는 것을 보고 자랐어요. 저는 어머니가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았고, 

남은 시간을 쪼개 당신의 아들을 축구와 농구 연습에 데리고 가주셨죠.


그리고 어머니는 암을 이겨냈습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우리가 모두 이겼어. 가족으로서 말이야."


그리고 우리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습니다. 의사가 들어와서,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우리는 알았습니다. 

그냥 알고 있었어요. 얼굴에서 볼 수 있었어요. 우리는 이 많은 테스트들을 봐왔습니다. 

이 많은 방들, 그리고 많은 만남들을 겪어봤죠. 이때쯤, 우리는 그들의 눈에서 그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2012년 어머니가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바르셀로나의 의사가 그의 얼굴에 가졌던 것과 같은 모습이었어요.


의사가 암이 재발했다고 말했어요. 빠르게 퍼졌다고요.


최악이였습니다.


전 엄마의 손을 꼭 쥐었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아빠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어요.


그날 밤, 저는 제 아파트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벽이 얇았어요.


밤새 부모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부모님은 거의 잠을 못 주무셨어요. 저도 잠들 수 없었어요. 

저는 제가 어떻게 느꼈는지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네요.. 

너무 무력하게 느껴졌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어머니의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것이었어요.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어요. 

그냥 길을 잃어 버렸어요.


다음 날 저는 농구장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날 밤 제 일부가 고장났어요. 제 인생은 영원히 바뀌었습니다. 그만큼 엄마는 제게 소중한 존재였어요.


전 그 아파트가 싫어졌어요. 

 

 


 

4년 전인 2011년에 저는 로스앤젤레스에 아파트를 얻었습니다.


그 아파트가 마음에 들었어요. 해변 근처였어요. 

그 해 여름에 NBA 락아웃이 일어났는데, 제가 울브스로서 첫 시즌을 치루기 전이었어요. 

저는 락아웃동안 작은 장소를 빌려서 매일 운동도 하고 바깥 날씨들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제 에이전트가 픽업 게임에 대해 말해줬어요. 다른 프로들이 있을 거라고 해서 가봤습니다. 

처음 갔을 때는 이미 경기가 진행 중이었어요. 

저는 K.G, 폴 피어스, 폴 조지, 대니 그레인저 등... 제가 몇 년 동안 보고 들은 모든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들과 함께 뛰었습니다. 그 해 여름은 그런대로 돌아갔습니다.


때때로, 제가 고향에 있는 친구들에게 그 픽업게임들에 대해 말할 때, 

친구들은 제가 겁 먹은 적이 있는지 묻습니다. 

네, 아마 좀 그랬을 수도 있어요. 워낙 뛰어난 선수들이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은 2008년에 대해 잊어버리고 있었던거 같아요. 

 

그들은 스페인 대표팀을 잊어버린거 같았어요. 

그들은 우리 스페인 국가대표팀이 얼마나 잘했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올림픽 금메달을 가리는 결승경기에 진출했습니다. 난 17살이었어요. 열일곱입니다! 

우리는 미국 팀에게 졌지만, 그들은 미친 듯이 좋은 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코비, 르브론, D-Wade, 

그리고 다른 많은 훌륭한 선수들.


2011년에 이미 전 그 정도 수준에서의 어떻게 플레이를 해야할 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속해있는 사람들을 보여주기로 결심한 LA-런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인생의 모든 일이 다 이유가 있다고 믿어요. 

그 락아웃 기간이 제 게임을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겨룰 수 있는 기회를 줬어요.


KG를 만나게 된 것도 그래서였어요.


픽업 게임이 끝나고 그가 저한테 온 게 생각나요.


"리키!!!!! 꼬맹이! 너 미네소타로 간다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제 영어가 그리 좋지 않다는 걸 그가 아직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아주 조용했어요.


KG는 미네소타와 프랜차이즈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봐, 내가 말해줄게. LA, 여기 도시 괜찮지? 하지만 날 믿어. 

미네소타에 가서... 그 사람들에게 너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지? 날 믿어봐. 

그들은 모든 걸 다시 되돌려줄거야. 날 믿어보라구!"


저는 KG 같은 선수가 NBA 챔피언, 그 빅티켓이 저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어요.


"믿어라!" 

 

그날은 언제나 기억할 거예요. 나중에 저는 울브스 팬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KG는 진실을 말했어요. 미네소타에 대한 그의 말이 맞았어요. 팬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맞았어요. 

락아웃이 끝나자 트레이닝 캠프를 시작 할 시간이 됐습니다. 

저는 아직 NBA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시즌이 얼마나 긴지, NBA 규칙이 국제 규정과 어떻게 조금 다른지에 대한 기본적인 것 뿐이죠.


그리고 저는 미네가 지난 두 시즌 동안 단지 15승,17승을 거두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새로운 리그, 새로운 국가에서의 새출발이였습니다. 

2011~2012시즌 개막전 밤은 정말 대단했어요. 우리 엄마와 아빠가 타겟 센터에 있었어요. 

저는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습니다.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제 이름을 외쳤던 팬들의 모습이 떠올라요.


사람들 속에서 부모님을 찾을 수 있었어요. 우리 엄마 - 그녀의 얼굴입니다. 

저는 그녀가 가장 크고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제 가족입니다. 그건 제 팀입니다.


신인 시즌 중반, 저는 레이커스와의 경기에서 ACL과 LCL 부상을 당했습니다. 저는 그 여름동안 재활을 했고, 2012년 같은 여름의 어머니가 처음으로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후 2년 동안, 많은 힘든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한 팀으로서, 우리는 위기를 벗어날 뻔했지만, 

거기까지는 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가끔씩 농구에 대한 집중력을 잃기도 했습니다. 스페인에 있는 엄마에 대한 걱정 때문에요..

모든 사람들이 제 상황을 안 것은 아니지만, 그걸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미네소타 사람들은 정말 멋지고 힘이 되었어요. 팬들, 스태프들, 제 팀원들 -- 

모두가 엄마의 상황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정말 많은 신경을 써줬어요. 그것에 대해 영원히 기억할 거예요.

 

 

 

 

그 많은 도움을 준 사람들 중 한 명은 플립 선더스입니다.


플립은 2014년에 팀버울브스로 돌아왔고 저는 그와 그의 아들 라이언 선더스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정말 자상한 가족입니다. 그들은 미네소타의 가장 좋은 부분을 나타냈죠. 

2015년, 우리가 1위로 칼 앤서니 타운스를 드래프트할때 플립이 저를 불렀습니다. 

그는 제가 KAT와 여름 동안 운동을 함께 해주기를 원했어요.


휴가를 마치고 바로 비행기로 돌아와 KAT와 함께 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날, 플립이 몇 분 늦게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몇 가지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저는 플립이 옆에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는 모자를 낮게까지 눌러쓰고 있었어요. 그는 굉장히 말라보였어요. 진짜 말랐어요. 

인사를 하러 갔는데 플립이 만나서 반갑다고 했어요. 세션이 끝난 후 그는 저를 사무실로 불러들였습니다.


플립은 호지킨 림프종을 앓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 해 여름에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플립, 멋져 보여요."라고 말했어요.


진심이었어요. 하지만 나조차도 진실을 말하고 있는건지 잘 몰랐습니다. 플립은 창백하고 말라 보였어요.


그날 잠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그에게 어머니가 겪고 있는 일을 말해줬고, 

그는 그가 받고 있는 화학요법과 마요 클리닉에 대해 말해줬어요. 

전 어머니에게 그것을 추천하게 되었죠. 플립은 그녀에 대해, 그리고 제가 모든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감정들을 어떻게 다스리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우리 둘 다 자신의 힘든 싸움들에 대해 잊게 만들었어요. 단 몇 분일지라도요. 

그는 결코 본인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플립은 그런 사람이었어요.


시즌이 시작되기 3일 전, 우리는 LA에서 레이커스와 경기 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직원들이 회의를 소집했어요.


플립이 숨을 거뒀어요.

 


 

조직원 모두가 힘들게 받아들였습니다. 힘든 하루였어요. 그리고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그때쯤, 어머니의 암이 재발했습니다. 어머니는 괜찮아보였지만 문득 플립이 생각나 무서웠어요. 

마지막으로 플립을 봤을 때, 그의 상태가 그렇게 나쁜지 모를 정도였으니..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어머니의 예후에 대해 사실대로 말해달라고 했어요. 무슨 일인지 정확히 알아야 했어요.

2015~16년 시즌이었는데, 그렇게 얘기하면서 스페인으로 당장 간다고 했습니다.


그 시즌은 제게 지옥이었어요. 기복이 너무 심했습니다. 좋은 경우보다 안좋은일이 더 많았어요. 

거의 매일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어머니 소식을 들었어요. 

가끔은 어머니가 몸이 안 좋아서 전화를 끊을 수 밖에 없거나, 밥을 해줘야 하거나, 어머니가 토할 때도 있었습니다.


너무 멀게만 느껴졌어요. 전 어떤 도시에 있든 간에, 어떤 호텔에 있던, 경기 끝나고 나서든,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지? 난 엄마와 함께 있어야해' 라는 생각밖에 안들었습니다.



그 해 올스타 휴식 기간 동안, 저는 고향 스페인으로 가는 티켓을 예약했어요. 

휴식일은 4일뿐이고 비행기로만 17시간이 걸렸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저는 그때 플립을 생각하던 기억이 나요. 제가 가야만 한다는 걸 아마 플립도 이해했을 거에요.



문을 열고 엄마의 얼굴을 다시 봤을때..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입니다. 

아빠가 말하길 내가 지금 여기서 얼굴을 보여준게 엄마에게 최고의 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난 엄마가 아프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나는 엄마의 손을 힘껏 잡았어요. 

저는 내내 엄마의 침대 옆에 앉아 있었어요. 놓기 싫었어요. 

엄마는 나에게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얘기했어요.


 

하루 뒤, 저는 다시 비행기를 타야 했습니다.


시즌이 끝나기까지 두 달이 더 흘렀습니다. 코트에서 다시 해야 할 일을 했어요. 

그러나 몹시 힘들었어요. 제 마음은 코트와 멀리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 항상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시즌 마지막 경기가 끝난 후, 저는 다시 집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몇 주 후에 돌아가셨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마치 안개가 감싸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랬습니다. 저는 어디로 가야할 지 몰랐어요.

매년, 제가 훈련 캠프를 위해 미네소타로 돌아갈 때, 저는 매일 똑같은 방식으로 시작합니다. 

엄마와의 페이스타임.. 엄마가 돌아가신 후 첫 번째 시즌, 저는 일어나서 엄마한테 전화할까 생각하곤 했어요. 

전화기를 부시고 싶었어요. 하지만 엄마의 전화번호를 지울 수가 없었어요. 가끔 문자도 보냈어요. 

난 여전히 하고 있어요. 한동안, 제정신을 잃고 있는 것 같았어요. 하루종일 혼잣말을 하는 것 같았어요.

 


 

 

그 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저는 화가 나있었습니다. 저는 많은 것을 탓했습니다. 

농구를 탓했어요. 제 기분을 주위 사람들에게 탓했어요. 그저 모든 걸 탓했어요.


우울증을 겪은 것이죠.


그리고 그 이후에 농구를 다르게 보았습니다. 저는 인생을 다르게 바라 보았습니다. 

예전처럼 심각한 느낌은 없었어요. 우린 그냥 게임하는 거예요. 

그리고 때로는 그냥 밖에 나가서 공을 던지고 잊어버리는 것이 제게 안도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영원히 통하지 않습니다. 최대한 물을 밟고 버티고 있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물에 빠져 있는 것 같았어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혼자서는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몰랐습니다. 

 

제가 마침내 도움을 받았을 때, 

-- 제가 치료사와 이야기를 하러 갔을 때, 저는 그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제 친구들과 아빠, 오빠, 여동생에게도 기대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제가 누구인지, 제가 항상 그래왔던 엄마의 소년으로 저를 다시 데려와주었습니다.


가족들은 엄마가 여기에 없어도 우리가 여전히 그녀와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마요 클리닉에서 치료 받고 돌아오며 드라이브 하던 날들 중에서 엄마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어요.


당신이 평생하고 싶었던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지도록 돕는 것이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친구들이 놀러오면, 엄마는 항상 친구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가 무엇인지를 물었고, 

어머니는 저녁으로 그것들을 요리하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분이셨어요.


로체스터에서 미니애폴리스로 가는 자동차 한 대가 계속해서 도로 여행을 하며 더 안좋은 소식들을 들은 후, 

저는 어머니에게 중요한 것을 말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우리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전 엄마에게 그렇게 약속했어요.


2017년 솔트레이크시티에 집을 하나 빌렸습니다.


막 이사 온 참이였죠. 친한 친구들하고요. 

몇 주 전에 저는 미네소타에서 유타 재즈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모든 일은 이유가 있기에 일어나요.


저는 미네소타를 사랑했어요. 난 여전히 그래요. 

그 장소, 그 사람들은 언제나 제 마음 속에 있을 것입니다.


그렇단 말이죠. 믿으세요. KG가 말한거처럼. 

 

유타에서의 기회는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을 위한 것이였습니다. 

제 첫 해에는 NBA에서도 팀들이 저지에 광고를 낼 수 있는 시즌이 있었습니다. 

재즈는 '5 FOR THE FIGHT' 패치를 달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암 연구를 위한 자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일은 이유가 있기에 일어나요.


저는 퀄리티 트릭스의 CEO인 Ryan Smith를 만났고, 

다른 재단과 제가 어떻게 제 재단을 만들 수 있는지 대해 물었습니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어요. 

그 해에, 아빠와 저는 헌츠맨 암 연구소를 포함한 유타에 있는 몇 개의 다른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아이들을 만났고, 저는 많은 미소를 보았어요. 

그 미소들은 아이들보다 저와 아빠에게 더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 날 집으로 가는 길에 아빠는 우리 둘 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마마(Mama)가 오늘 우리와 함께 그곳에 있었던거 같아,"라고 아빠는 내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녀를 자랑스럽게 만들고 있어."


1년 후, 저는 자선단체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리키 루비오 재단입니다.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서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재단이라고 느낄 수 있는 재단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NBA 선수로서 제 플랫폼을 활용하여 웃음을 선사하고, 사회적 명분을 위한 기금을 모금하고 싶었습니다. 

전 거짓말 하지 않을거에요. 병원에서 아이들의 미소가 절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어요. 

그게 나의 성취하는 방법이에요. 엄마도 원하셨을 거예요. 저랑 같이 계셔요.

 

 

 

 

전 더 이상 미네소타에 처음 갔을 때의 21살 어린아이가 아니에요.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실 때, 저는 제가 선수로서 이루고 싶은 것을 머릿속에 목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제 영향력과 플랫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었어요. 

저는 그 리스트에 이뤄냈다고 표시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명단에서 표시하지 못한 것이 몇 개 남아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NBA 챔피언십 우승" 입니다.


아직 진행중이에요. 저는 지금 피닉스에 있어요. 

또 다른 새로운 도시, 또 다른 새로운 아파트, 그리고 더 새로운 도전들이 있습니다. 

가능성이 큰 훌륭한 젊은 팀이 있습니다. 모든 위대한 일에는 시간이 좀 걸립니다. 

우리는 그걸 얻으러 갈거에요.  그 점에 대해선 그때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리스트에 있는 또 다른 것은 "우리 국가대표팀 가족과 함께 농구 월드컵 우승"입니다.


그리고 올 여름 우리 스페인 대표팀은 중국에서 열린 FIBA 월드컵에서 우승했습니다. 

우리 엄마가 그걸 봤으면 정말 좋아 했을거에요. 

농구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정말 대단한거 같아요. 

저는 스페인 농구를 우러러보며 자랐고, 우리 나라의 성공에 또 다른 한 장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제게는 정말 특별한 일이었어요. 

저는 MVP로 선정되었고, 2008년 올림픽이 끝난 후 11년 만에 코비가 이 상을 저에게 수여하게 된 것은

마치 제가 하나의 원을 닫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농구는 저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많은 방법으로이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다른 많은 것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물론 그것들 중 하나는 여전히 엄마의 아들로서 있는 것입니다.


전 매일 엄마를 자랑스럽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그러한 존중들을 받을 자격이 있어요.


우리는 한 팀입니다.


전 우리를 영원히 얻었어요


사랑해요 엄마.(I love you, Mama.)


 

30
Comments
2019-11-05 22:32:10

WR
2019-11-05 22:59:36
2019-11-05 22:33:06

 잘봤습니다 루비오에 대해 조금은 더 알게되었네요~

WR
2019-11-05 23:00:54

저도 코트 위에서의 루비오만 알았지 코트 밖에서의 루비오는 잘 몰랐었는데

이 기사를 통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거 같습니다 

2
2019-11-05 22:41:38

행복하자

WR
2019-11-05 23:01:36

비록 초반이지만 서로에게 잘 맞는 핏인거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2019-11-06 14:44:52

유타 초기에도 그런소리를 들었던터라.. 잘되길 기도합니다.

2019-11-05 22:49:06

너무 잘읽었습니다 ㅜㅜ 피닉스에서도 날아오르자 룹신!!

WR
2019-11-05 23:02:54

아마 NBA에서 가장 루비오 같은 재능을 필요로 했던 팀이 선즈였을거 같습니다.

오래오래 행복농구 했으면 좋겠습니다

2
2019-11-05 22:53:43
이글 올라온 뒤로 현지 미네팬덤에서도 화제가 쫌 되고 있죠.(미네소타 현지팬들 보면 리키를 정말정말 애정합니다) 뭐 제가 개인적으로 느끼는거지만, 루비오는 미네소타팀에게 있어 아픈손가락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참 고맙고, 참 좋은 선수입니다. 한 명의 선수로뿐만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서도 말이죠. 좋은 글 옮겨주셔서 감사합니다.
WR
2019-11-05 23:06:21

저도 읽으면서 루비오의 미네소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알게 되었고 미네소타 팬들이 왜 루비오를 좋아했는지

이해가 가더라구요. 이 글 새벽에 봤을때 왠지 코코넛님이 옮겨주시지 않을까 하고 기다리다가,

오늘 경기 이기면 한번 올려봐야지 맘을 먹었어서..

부족하지만 한번 옮겨봤습니다.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2019-11-05 23:18:13

좋은글 감사합니다. 아픔을 가지고 이겨내고 성장했네요.
NBA 챔피언십우승 꼭 선즈에서 이룰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9-11-05 23:47:53

넘나도 따뜻한것 

2019-11-06 01:25:01

 정말 감동이 있는 글이네요. 너무 좋은 번역과 글 소개 감사합니다. 

2019-11-06 02:18:48

사랑해요 루비오

2019-11-06 05:35:26

언젠가 다시 미네소타에 돌아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어려운 상황을 견디면서 코트에서 그렇게 멋진 모습들을 보여준 루비오 잊지 않겠습니다.

2019-11-06 09:20:49

팀의 암흑기를 그래도 잘 버텨주던 선수죠. 심한 기복 때문에 욕도 많이 했는데 이런 뒷 이야기가 있었군요...눈물이 핑 도네요

2019-11-06 10:07:25

앞으로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루비오.

2019-11-06 11:22:17

 좋은글 알려주시고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
2019-11-06 11:53:55

프로스포츠선수에게 그 스포츠 선수로 살아간다는게 개인을 얼마나 죽이고 살아야 하는지 느끼게 되네요....

 

선수도 하나의 인간일뿐이죠. 어머니의 죽음을 이겨내고 그녀의 죽음을 토대로 사회에 기여하는 루비오의

모습이 정말 멋있게 느껴집니다.

2019-11-06 13:08:19

루비오 멋지네요. 피닉스에서 계속 좋은 활약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2019-11-06 13:21:18

응원합니다!

2019-11-06 13:59:19

 한 편의 영화 같네요. 이제 우승이든 플옵이든 좋은 결말로 영화를 마쳤으면 좋겠습니다.

2019-11-06 17:06:37

덕분에 좋은글 읽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2019-11-06 18:10:26

 

어머니 생각나서 저도 눈물이 줄줄 흘렀네요 

2019-11-06 19:06:59

루비오 멋집니다. 팀 선즈에 와서 정말 오랫동안 한 축이 되었으면 합니다.

2019-11-07 06:49:56

그랬구나...
그리도 힘들었던 거구나...
이제는 늘 꽃길만 걷길

2019-11-07 07:35:42

루비오에게 이런 가슴아픈 일이 있었군요 응원합니다 루비오 새삼 멘탈이 대단하다고 느껴지네요 저였으면 다포기하고싶고 농구에 집중도 안되서 때려치고 싶었을텐데...

2019-11-08 04:14:37

눈물나는 이야기네요. 번역 감사합니다.

2019-11-09 00:34:07

루비오 썬즈에서 우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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