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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P의 산실 인디애나 페이서스. 그리고 그 잔혹사...(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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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1-25 17:20:48

1985년 개설된 MIP(Most Improved Player). 큰 발전을 이룬 선수에게 수여하는 상입니다.

발현되지 않았던 포텐셜이 어느 기점부터 폭발하여 올스타 급으로 급격히 성장한 경우에 주어지곤 합니다.

 

그간 33명의 수상자가 나왔는데 그 중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팀이 올랜도 매직과 인디애나 페이서스

입니다. 두 팀은 각 5명씩의 수상자를 배출해왔습니다. MIP를 배출해본 팀도 17개 팀밖에 되지 않는데

그 중 두 팀이 10명을 배출했으니 유망주 키우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그 중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MIP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인디애나 출신의 MIP들은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MIP를 받은 이후 대부분 커리어에

치명적이거나 치명적일 수 있었던 큰 부상을 당해왔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공교롭게 오늘,

또 한명이 안타깝게 큰 부상을 입어 그 리스트에 추가가 되었습니다.

 

그럼 인디애나 출신의 MIP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제일런 로즈

 

 

크리스 웨버, 주완 하워드 등과 함께 미시간 대학 Fab Five로 이름을 떨쳤던 제일런 로즈입니다. 쟁쟁한

Fab Five의 선수들 사이에서 1학년으로서 평균 19점의 득점 리더였던 그는 총 597득점으로 신입생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1994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3번 픽으로 덴버에 지명된 로즈는 1996시즌에

인디애나로 트래이드 됩니다.

 

대학시절의 명성에 비해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던 로즈는 인디애나에서도 처음에는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주전이 아닌 식스맨으로 기용이 되었고 또 특별한 이유도 없이 DNP에 오르기도 했으며

포지션도 1,2,3 번을 왔다 갔다 하는 등 로즈는 당시 래리 브라운 감독과 여러모로 맞지 않았습니다.

 

이 후 래리 버드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며 스몰포워드로 자리를 잡은 로즈는 프로 5년차이자 27세가 되는

1999시즌에 다소 늦었지만 드디어 기량을 만개하며 MIP를 수상하게 됩니다. 레지밀러와 함께 인디애나의

부흥을 이끌며 NBA 파이널까지 진출했던 로즈는 2001시즌 중에 시카고 불스로 트레이드가 됩니다.

트래비스 베스트, 노먼 리차드슨과 함께 시카고로 가게 되었으며 이때 시카고에서는 브래드 밀러, 케빈

올리, 그리고 인디애나의 팬이라면 누구나 애증을 가질 론 아테스트가 인디애나로 오게 됩니다.

 

시카고에서도 훌륭한 개인기량은 보였으나 팀의 성적은 최악을 면치 못했습니다. 특히 2002시즌에는

프랜차이즈 최악의 원정 기록인 3승 38패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2003시즌, 시카고는 스카티 피펜까지

재영입하며 도약을 꿈꾸었지만 딱히 효과는 보지 못했고 결국 감독까지 교체하며 리셋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로즈는 토론토로 트레이드 되었지요.

 

<코비의 81득점 당시 매치업이었던 제일런 로즈>

 

2003시즌의 로즈는 정점에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빈스카터가 뉴저지로 떠난 2004시즌에 많은 롤을

맡으며 반등하기는 했으나 그 후로는 많은 부분에서 기록 감퇴가 있었고 2005시즌 뉴욕, 2006시즌

피니스를 거치며 커리어를 마감했습니다. 로즈는 큰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으나 기량이 늦게 만개

했고 이른 감퇴를 보이며 다소 아쉬운 커리어 후반기를 가졌습니다. 현재는 방송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요.

 

뛰어난 득점력과 함께 코트 비전이 좋았던 제일런 로즈. 처음부터 좀 더 큰 롤을 부여받아 포텐셜을 빨리

터뜨렸다면 어쩌면 르브론 이전의 르브론도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커리어 마지막을 약팀들을

전전하며 마무리 한 것이 조금 아쉽네요.

 

2. 저메인 오닐


 

작은오닐, 동안의 블락커 저메인 오닐입니다. 그 유명한 1996드래프트 출신으로 코비와 함께 고졸로서

NBA에 진출했습니다. 전체 17번 픽으로 포틀랜드에 지명된 저메인 오닐은 중용받지 못했습니다.

당시 포틀랜드는 사보니스, 라시드 월래스, 클리포드 로빈슨 등 양과 질 모두에서 최고의 골밑 자원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저메인 오닐에게 까지 기회가 돌아가기는 힘들었습니다. 너무 어리기도 했지요.

오닐은 처음 17경기를 부상으로 나오지 못하고 당해 12월에 덴버 너깃츠와의 경기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당시 나이 18세 1개월 22일로서 나중에 앤드류 바이넘에 의해 기록이 경신되기 전까지

최연소 NBA 데뷔 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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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과 파워를 모두 갖춘 저메인 오닐>

 

포틀랜드에서의 4시즌 동안 거의 기회를 받지 못했던 오닐은 2000시즌 인디애나로 자리를 옮기며 드디어

묵혀두었던 기량을 펼치게 됩니다. 이적 첫 해 80경기를 촐장하며 32분동안 12.9득점 9.8리바운드로

거의 더블더블을 달성하게 됩니다. 특히 평균 2.8개의 블락으로 리그 총블락 1위를 달성하는 등 뛰어난

수비실력을 뽐내게 됩니다. 계속해서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가던 오닐은 2001년 MIP를 수상하고 첫 올스타에

선정됩니다. 그 후로 5년 연속 올스타, 1번의 세컨팀, 2번의 써드팀 등 에 선정 되며 명실상부 한 NBA탑스타

중 하나로 자리잡습니다.

 

오닐의 성장과 함께 승승장구하던 인디애나는 베테랑 레지밀러와 오닐, 아테스트 등의 젊은 선수들의

조화가 최고조에 다른 2004시즌에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오릅니다. 순조롭게 항해하던 페이서스는

2004년 11월 19일. NBA역사상 최악의 폭력사태에 휘말립니다. 그리고 레지 밀러의 오랜 우승의 꿈은

산산조각 나버립니다. 론 아테스트, 스테픈 잭슨과 함께 사태의 중심에 있었던 오닐은 25경기 출장정지를

당합니다. (추후에 15 경기로 감경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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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펀치>

 

우승의 꿈이 멀어짐과 함께 오닐의 몸상태도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시즌 말미에 어깨 부상을 입었으며

다음 시즌에는 51경기에만 출전했습니다. 부상에 신음하던 그는 2006시즌에는 13경기를 결장했고

인디애나는 플래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2007시즌부터는 경기력과 모든 기록이 확연히 하락했으며

결국 인디애나는 리셋을 선언하고 2008시즌에 그를 토론토로 보내게 됩니다.

 

공격에서는 더 이상 많은 역할을 부여받지 못했지만 여전한 수비력으로 팀에 기여하던 오닐은 그러나

팀 성적에 만족하지 못한 콜란젤로에 의해 1시즌을 채우지 못하고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하게 됩니다.

마이애미에서의 오닐은 크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성적을 기록하며 커리어 후반기로 접어들게 됩니다.

 

2010시즌, 오닐은 보스턴 셀틱스에 합류하게 됩니다. 재미있게도 보스턴은 샤킬 오닐도 영입하게 되는데

한때 국내 무성의한 기자에 의해 둘을 형제로 알고 있던 팬이 보았다면 형제가 함께 뛰는 줄 알았을

겁니다. 샤킬 오닐은 두명의 오닐이 골밑을 지배할거다 라는 취지의 인터뷰를 했었는데 아쉽게도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저메인 오닐은 고질적인 무릎과 손목 부상 등으로 고작 24경기에

출전했기 때문입니다.(샤킬오닐 본인도 37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 시즌에는 손목 수술을

받아 시즌 아웃이 되었으며 결국 보스턴에서는 그를 방출하기에 이릅니다.

 

2012시즌 다시 돌아온 오닐은 피닉스와 단년계약을 체결합니다. 실제 경기에서 보다는 락커룸에서

영향력을 보여주길 원했던 피닉스에서 그는 팀의 어린 선수들의 멘토가 되어 주었고 짧은시간이지만

코트에 나와있을때는 적지 않은 영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18분 출전에 8.3득점, 5.3리바운드, 1.4블락으로

말이죠. 그리고 2013년 골든스테이트에 합류했지만 또 다시 손목부상으로 긴 공백을 가졌으며 시즌 

후반기에나 팀에 합류했습니다. 시즌을 마친 후 오닐은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굴곡 많은 커리어를 가졌던 저메인 오닐입니다. 효율이 좋지 않아 공격력은 뛰어나다고 할 수 없었지만 당시

인디애나의 강력한 수비를 이끌었었고 콘로우 헤어가 아주 잘 어울려 매력이 있었던 선수입니다. 워낙 어린

나이에 데뷔하여 많은 시즌을 보냈지만 부상으로 인해 전성기가 길게 가지는 못했지요. 슈퍼스타가 되기에는

한끝이 모자랐는데 부상이 아니었다면 조금 더 성장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인디애나의 MIP들. 생각보다 글이 길어져서 다음편으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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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9-01-24 17:29:19

이제 그레인저-조지-올라디포의 스윙맨 잔혹사인가요

WR
2019-01-24 17:56:50

그렇지요 ㅠㅠ

2019-01-24 18:00:00

그러고보니 인디애나 출신들이 MIP들이 많고, 말년에 다 부상이나 부진으로 커리어가 씁쓸해던 패턴이 있었네요...이걸 마핑보이즈가 언급도했었고..

2019-01-24 18:43:47

제일런 로즈 - 저메인 오닐 모두 좋아했던 선수들이네요.

밀러가 은퇴하기 전까지 제가 유일하게 응원하던 팀이었는데...

2019-01-24 20:47:12

좋은글 잘봤습니다

2019-01-25 03:16:37

올라디포가 언제 다쳤냐는 듯 멋지게 돌아오길 기원하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히 보았습니다.

2019-01-25 09:35:34

슬프네요 정말ㅠ

늘 그랬듯이 팀은 나락으로 빠지진 않을 것 같지만(짐 오브라이언 체제 때 제외하고..)

에이스들의 부상은 주기적으로 나타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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