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바리 파커의 수비는 발전이 가능할까?
시카고 불스의 자바리 파커 영입에 대해 2년차 팀옵션이라는 점과 더불어 많이 언급되는 것은 바로 파커의 치명적인 수비입니다. 시카고 팬분들은 물론이고 타팀 팬분들도 하나같이 지적하는 파커의 수비에 대한 제 생각을 만화 슬램덩크에서의 몇몇 대사들과 함께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1. 이정환의 “수비는 경험이다!” 대사에서의 전제조건
농구를 시작하지 얼마 지나지 않은 강백호의 수비를 보면서 이정환은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저는 처음에는 이정환의 말에 공감했었으나, 최근 들어서는 점점 "동물적 육감" 이 중요하다는 전호장의 말에 끌리고 있습니다. 전호장의 말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수비 능력은 재능이 절반 이상” 이라는 것인데, 리그에서 공격은 물론이고 수비 부문에서도 여러 가지 재능이 뒷받침되어야 경험이나 노력이 도움이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파커는 과연 여러 경험을 발판삼아 수비를 점점 발전시키고 있을까요?
▼ 아래는 16-17 시즌 밀워키 vs 클블 경기에서 르브론이 게임 위너 3점샷을 꽂아넣는 장면입니다.
▲ 파커가 스크린 뒤쪽으로 가면서 완전히 오픈 상태가 된 르브론은 (슛 거리는 좀 되지만) 너무나도 편안하게 3점을 꽂아 넣습니다. 물론 르브론이 롱3를 잘 넣은 점과 파커와 같은 팀 동료인 헨슨이 스크린 도움 수비를 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로지 파커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파커가 앞서 르브론을 수비했던 ‘경험’ 들을 간과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 르브론이 저 경기에서 롱3를 던진 것은 게임 위너 3점이 다가 아닙니다. 위의 장면에서 파커는 컨테스트할 생각도 안 하는데 르브론은 보란듯이 롱3를 꽂아 넣습니다.
▼ 심지어 쿤보가 열심히 수비할 때도 성공시키면서 좋은 슛감각을 보여줬습니다.
▼ 3쿼터에는 비록 안 들어가긴 했지만 게임 위너를 넣을 때와 정말 유사한 장면 - 비슷한 지점에서 파커가 스크린 뒤쪽으로 가면서 르브론의 오픈 3점 찬스 발생 - 도 있었습니다.
같은 경기 내에서 이런 경험을 반복하고도 정말 중요한 순간에 또 다시 르브론에게 공간을 내어준 파커가 경험이 적어서 수비를 못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정환의 수비에서 경험이 중요하다는말에 깔린 전제는 바로 ‘강백호 같이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면’이라는 조건일 것입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노련하게 예측 수비를 하는 것 또한 하나의 재능이라고 본다면, 안타깝게도 파커에게 그런 재능은 없어 보입니다.
2. 재능이 넘치는 강백호의 본능적인 도움 수비
맨투맨 수비가 자주 언급된 슬램덩크이지만 강백호의 천재적인 도움 수비 장면들도 많이 나오곤 합니다. 자기가 마크하는 공격수를 놓치지 않음과 동시에 팀원이 힘에 부칠 때 도움 수비를 감으로써 순간적으로 숫자에서 우위를 가져가는 것이 핵심인데요. 능남과의 경기에서 승부처일 때 윤대협의 공을 가로채거나, 변덕규를 골밑에서 블락하는 장면은 강백호의 천재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NBA 리그에서도 이렇게 동분서주하며 1인분 이상 몫을 해주는 수비수가 있고, 자기 마크맨 정도 잘 막는 수비수도 있으며, 마지막으로 자기 마크맨도 놓치는 수비수가 있을 겁니다. 파커는 어느 수비수에 해당하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 아래는 17-18 시즌 밀워키 vs 덴버 경기에서 요키치가 득점을 하는 장면입니다.
▲ 요키치는 수비수를 상대로 여유롭게 득점하는데요. 요키치 상대 수비수가 아닌 파커는 자기 마크맨을 놓친 것은 아니기에 딱히 잘못한 것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 장면과 미들턴(등번호 22번)의 디그 (dig : 말 그대로 손을 찔러넣는 행위로, 도움 수비수가 순간적으로 공을 가지고 있는 공격수 쪽으로 가면서 수비하는 행위 ) 를 비교하면 조금 다른 접근도 가능합니다.
▼ 미들턴은 요키치의 공격을 조금이라도 더 견제하려는 도움 수비를 보여주는데, 요키치가 득점에 성공하지만 상대 공격수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더 긴장하게 만드는 측면에서 이런 움직임 하나하나는 소중합니다. 그리고 제가 본 경기들 대부분에서 파커의 이런 움직임은 지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도움 수비 이전에 수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본인의 마크맨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파커는 자신의 마크맨도 놓치는 초보적인 실수를 종종 저지르기에 이런 파커한테 도움 수비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습니다.
▼ 16-17 시즌 밀워키 vs 골스 경기에서 나온 아래 장면은 이미 스크린을 통해서 스위치가 된 상태입니다. 즉 파커는 코트를 활발히 움직이는 이궈달라(9번)을 마크해야하는 상황인데요.
▲ 이궈달라를 따라가지 않은 파커는 그렇다고 듀란트한테 더블팀을 들어간 것도 아닌 굉장히 어정쩡한 상태를 연출합니다. 골밑에서 수적 우위를 점한 골스는 이궈달라가 리바운드를 따낸 후 손쉽게 2점을 적립합니다.
▼ 아래 장면은 클블과의 경기에서 나온 장면입니다. 밀워키 다른 수비수들(델라, 쿤보 등)이 커버를 쳐주었던 것이 다행이지만, 무슨 왕따게임도 아니고 파커가 처음에 마크맨을 놓친 이후에도 자기가 수비할 상대를 찾지 못하면서 우왕좌왕하는 장면은 조금 웃기면서도 측은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 위의 두 장면들에서 파커는 수비할 때 수적 우위를 가져오기는커녕 오히려 수적 열세를 만드는 당황스러운 상황을 연출합니다. 파커와 라빈의 수비 실력을 시카고측에서도 잘 알 것이기에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고 최대한 간단한 수비 전략을 취할 것입니다.
사실 이는 파커를 3번으로 기용하는 데에 있어 최대 걸림돌이기도 합니다. 요즘 트렌드상으로는 윙 플레이어들이 수비의 틈이 생기면 이를 잘 메꾸어주어야 하는데, 파커는 사실 일대일 수비하기도 바쁜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즉 파커를 코트에 내세우면 그만큼 수비를 보충해 줄 수 있는 선수가 줄어드는 것이고, 시카고 로스터를 보면 수비 커버쳐 줄 선수로는 크리스 던 밖에 없기 때문에 염려스러운 상황인 것입니다.
3. 수비에서의 “집중”에 대해
북산 vs 산왕전에서 도감독은 정우성이 경기에 집중하지 않고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자 벤치로 불러들입니다. 사실 정우성은 원래 수비 실력이 엄청나니 비유가 완전히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파커의 아쉬운 수비 집중력을 보면서 혹시나 더 집중하면 수비에서 좋은 성과를 보이지 않을까 하고 기대 할 수도 있습니다. 파커는 보스턴과의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짧은 출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표출하기도 하였는데요. 실제로 이 절박함은 4차전 전반에 좋은 수비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 골밑에서 적극적으로 박스아웃하며 리바운드를 잡은 먼로에게 밀착 수비를 하여 블락을 만듭니다.
▲ 일대일 수비에서도 상대 공격수를 끈질기게 따라붙으면서 끝까지 브라운의 슛을 컨테스트하고자 합니다.
▲ 골밑으로 진입하려는 베인즈를 막아서며 턴오버를 유도하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전반 내내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준 파커는 그러나 경기 후반에 들어서 주춤하면서 몇 가지 치명적인 실수 를 저지릅니다.
▼호포드의 외곽 슛을 컨테스트 한 이후에 속공을 염두에 두어 너무 멀리 가버리고, 결국 수적 우위를 가져간 보스턴은 테이텀이 오픈 3점을 꽂아넣으며 응징 합니다. 수비의 끝은 언제나 리바운드 라는 기본을 어긴 플레이입니다.
▼ 아래 장면은 파커를 아예 코트에서 빼버리게 만든 장면입니다. 돌파하는 상대한테 달라붙어 막는 것도 아니면서 본인의 마크맨을 놓쳐버려 모리스의 오픈 3점을 허용한 것입니다.
파커는 공격에서 보여주는 빠른 스텝과 다른 선수들에 밀리지 않는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수비에서의 집중력이나 그 집중력을 경기 내내 유지하는 능력, 그간 수비 경험에서 배우는 정도, 순간적인 반응 속도, 그리고 도움 수비를 가는 타이밍 판단 같은 것들이 모두 재능에서 나온다고 한다면, 파커는 수비 재능이 부족하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화려한 공격과 마찬가지로 튼실한 수비 또한 재능에서 나온다고 본다면, 수비가 약한 선수들이 수비력 상승을 이루어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 자신을 포함한 많은 팬분들은 응원팀 선수가 수비에서 발전하는 미래를 꿈꾸곤 합니다. 특히나 그 선수가 젊다면 더더욱이요. 그러나 파커는 그 기대와는 정반대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었는데요.
https://nbamania.com/g2/bbs/board.php?bo_table=nbatalk&wr_id=5433072&sca=&sfl=wr_subject&stx=%ED%8C%8C%EC%BB%A4&sop=and&scrap_mode=&gi_mode=&gi_team_home=&gi_team_away=
리그의 선수들은 수비를 하라고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발언을 하며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가장 최근의 인터뷰에서 파커는 "농구는 공격과 수비 모두 중요한 쌍방향적인 스포츠이고, 자신 또한 수비의 중요성을 잘 안다" 라는 수습성 발언을 남겼습니다. 속마음이 무엇이 되었든 다음 시즌에는 코트 위에서 조금이라도 더 발전된 수비를 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실 파커가 다음 시즌에 수비가 나아지는 것보다는 전천후 공격수가 되는 것이 더 쉬워보이긴 합니다
사실 둘 다 이루기 어려운 일이고 현실적으로 판단했을 때 파커를 포함한 시카고의 약점은 뚜렷하기에 당장 다음 시즌부터 반등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파커의 시원시원한 공격과 더불어 시카고의 미래가 기대되는 것은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조금 못해도 좋으니 일단은 선수들 모두가 건강히 뛰면서 재밌는 경기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신체 툴은 좋은 편이라 공격에서 보여지는 민첩함을 보면 수비에서 그 반만 따라가줘도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사실 공격에서도 파커와 밀워키 팀원간의 패스 타이밍이 조금 어긋나거나, 패스 강약이 안 맞는 장면이 종종 보였는데 어쩌면 말씀하신 부상 공백때문에 수비를 포함한 팀 플랜 자체를 충분히 연습하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최근에 파커 영입하고 나서부터 경기를 찾아보는 건지라 많은 경기를 본 것은 아니지만, 밀워키 경기들에서 느낀 바로는 밀워키 팀 디펜스 자체가 꽤나 공격적으로 도움 수비를 나가던데 거기에 따라가지를 못하니 파커의 수비 약점이 더 두드러보이는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훌륭하십니다
그나저나
라빈-파커-발렌타인까지..
상대팀 에이스들이 찾는 맛집이 3군데나 있어 초인기팀이 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