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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 브라이언트, 가장 극단적이며 자기 자신에게 충실했던 인물 - by Bill Plasch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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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06-19 18:09:37

안녕하세요.

 

코비에 관한 글이 없나 구글링하며 그리움을 달래던 중 LA Times에 실린 글이 있어서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2016년 4월 12일에 작성된 글이고, 코비의 극단적이고 양면적인 면모를 조명하며 은퇴에 대한 필자 나름의 안타까움을 담은 글입니다. 번역은 참 어려운 것이라고 느꼈네요. 즐겁게 감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오역은 주저하지 마시고 지적해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LA 지역의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극단적인 인물인 코비 브라이언트는 항상 자신에게 충실했다.

 

 

이십 년의 시간은 번쩍이며 휙 사라졌다꽉 쥔 주먹에 치이고 악 문 이에 물렸던 이십 년의 세월은, 사랑을 갈구하지도 증오에 지체되지도 않는 초연하고 흡족한 행진 아래로 사라졌다. 

 

그는 잠재력을 가진 10대 레이커로서 1996년 여름에 이 도시의 문턱에 나타났다.

 

농구는 일견 우리의 삶과 닮아 있어요, 시간에 치이죠.” 18세의 코비 브라이언트는 말했다. “누구든 조소의 대상이 될 수 있죠. 그러나 그럴 때 해야 할 것은 일어나서 고개를 쳐들고 다시 노력하는 겁니다.”

 

그는 2016년 봄,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말의 충격적인 증거를 보여주었다.

 

37세의 브라이언트는 얼음이 담긴 백으로 미라처럼 둥둥 감긴 만신창이의 몸을 이끌고 벤치에서 나와 게임을 마친 직후였다. 그의 눈은 무거워 보였고, 어깨는 축 처졌으며, 후에 인터뷰 무대를 내려갈 때 그의 아려오는 무릎은 후들거렸고 그는 고통으로 인해 넘어져 비틀거리며 앞으로 향했다.

 

 

별거 아니잖아요?” 그는 어색해하고 의아해하며 말했다.

 

그렇다, 이건 별일이었다. 이것은 많은 것을 의미했다. 이것은 위대함과 무모함, 역사와 연극, 불멸과 무분별, 챔피언십과 혼돈이었다.

 

이는 농구계의 화려한 스타와 화려한 도시 사이에 이어져오던 20년 간의 잊지 못할 연고가 이제는 막을 내리고 있다는 것에서 미칠 노릇이었고, 좋건 나쁘건 우리는 이토록 길고 언제까지나 지속되었던 현역 스포츠 슈퍼스타와 다시는 유대감을 가질 수 없음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돌아오는 수요일에 레이커로서의 마지막 경기를 치를 것이고, 이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당신만은 아닐 것이다. 혹은 환호성을 지르거나 MVP 챈트를 연호하거나, 이 늙은 볼호그가 끝내 코트를 떠나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라도 그것은 당신만이 아닐 것이다.

 

 

 

 

그는 NBA 역사에서 한 팀에서 20시즌을 뛴 첫 번째 선수다. 아직 이 시즌들이 업적과 고뇌, 오싹한 연극과 바보 같은 드라마로 공평하게 채워지진 않았지만, 이 모든 것은 “The Black Mamba” 라고 이름 붙여진 브라이언트의 인정사정없는 또 다른 자아로 빈틈없이 채워졌다.

 

그는 NBA 역사에서 세 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렸다. 또한 그는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은 샷을 놓쳤다.

 

그는 한번에 81점을 몰아쳤으며, 이는 NBA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단일 경기 득점이다. 그러나 또한 그는 피닉스를 상대로 한 결정적인 플레이오프 게임 후반전에 단지 세 개의 샷을 시도하는 동안 1득점을 올리는데 그치고, 레이커스는 더 우수한 선수가 필요하다고 말한 전력도 있다.

 

그는 레이커스가 다섯 번의 챔피언십을 쟁취하는데 있어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이커로 일컬어지는 매직 존슨에 필적할만큼 공헌했다. 그러나 또한 그는 샤킬 오닐과 공존하지 못하는 이유로 세 개 이상의 타이틀을 더 따내지 못하는 대가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한 번의 리그 MVP, 두 번의 NBA 파이널 MVP였고, 18번의 올스타였으며, 이 올스타 출전 기록은 NBA 역사에서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그러나 주로 득점에 치중되어 있다는 이유로, 그는 ESPN과 SI에서 선정한 NBA 올타임 탑 10에 들어가지 못했다.

 

 

 

LA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극단적인 존재인 브라이언트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존재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영웅으로서든 악당으로서든 본분을 다했다는 것이다. 그는 절대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절대 경쟁을 멈추지 않았으며, 싸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LA -궁극적으로 그의 화려함과 투지에 빠져 그의 단점들을 간과해버린- 가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자신 또한 LA를 포기하지 않았다.

 

젊은 브라이언트의 강력함은 동료 슈퍼스타인 샤킬 오닐과의 공개적인 다툼 속에서도 불구하고 2000년에서 2002년까지 3년 연속으로 팀을 NBA 챔피언십으로 이끄는데 일조했다.

 

끝내 샤킬은 트레이드 되었고, 코비는 남았다.

 

브라이언트는 2003년에 콜로라도 주 Eagle의 어느 19세 호텔 종업원과 공공연하게 즉흥적인 불륜 만남을 한 뒤에 성폭행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러나 이는 고소인이 증언을 하지 않으며 취하되었다. 그는 공식적으로 사과했으며 소송을 처리하는 동안 그의 인기는 사라져갔고 그의 저지 판매량은 곤두박질쳤다.

 

신문의 헤드라인은 점점 사라졌고, 코비는 견뎠다.

 

2007년 여름, 오닐 트레이드에 대한 비난을 뒤집어 쓴 데 대한 분노와 약화된 로스터에 대한 문제로 브라이언트는 “이런 상황이라면, 나는 명왕성에서 플레이할 것이다.” 라고 말하며 공공연하게 트레이드를 요구하며 여름을 보냈다.
*명왕성은 2006년에 행성분류법이 바뀜에 따라 행성의 지위를 상실했는데, 행성(Lakers)을 떠난 명왕성(Bryant)처럼 다른 팀에서 뛰겠다는 불만 섞인 표현인 것 같습니다.

 

명왕성은 행성의 지위를 상실했고, 레이커스는 빅맨 파우 가솔을 영입했고, 코비는 팀에 남았다.

 

2008년에서 2010년 사이에, 마치 회춘한 듯 코칭하고 플레이 한 필 잭슨과 브라이언트는 레이커스를 세 번의 NBA 파이널과 두 개의 추가된 챔피언십으로 이끌었으며, 그 동안 리더로서의 그의 유산이 확립되어갔다.

 

잭슨은 지쳐 떠났고, 코비는 남았다.

 

2013 시즌 후반기에, 34세의 브라이언트는 아킬레스 건 파열로 고통스러워했는데 이는 그의 커리어의 종말이 시작되는 신호처럼 보였다. 그는 다음 두 시즌 동안 41경기를 뛰는데 그쳤고 그의 몸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부상 후 7개월이 지난 뒤, 그가 코트로 복귀하지 않았음에도 레이커스는 그에게 헌신에 대한 대가로 2년 간 총 48.5밀리언 달러 규모의 연장계약을 쥐어주었고 코비는 남았다.

 

그 시즌, 일부 통계에서는 그가 인게임에서 최악의 플레이어라고 측정될 정도로 그의 기술은 분명한 하향세를 보였고 브라이언트는 마침내 11월 29일, 팬들에게 은퇴를 피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다는 것을 알리는 시 한 편과 편지 하나를 공개했다.

 

그리고 코비는 마침내 떠나갔다.

 

 

 

브라이언트가 공동 대표로 있는 플레이어스 트리뷴 웹사이트에서 공개된 은퇴를 알리는 짧은 시는 “친애하는 농구에게” 로 시작하여 브라이언트가 그가 사랑하는 게임을 계속 플레이하기에  얼마나 지쳐있는지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또한 그날 밤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공개된 은퇴를 알리는 편지에서는 팬들의 지지에 대한 감사를 전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저 꼬마였지. 너의 일부는 내가 되었어. 또한 너의 일부는 그렇지 않았지. 그러나 너의 모든 것은 내가 플레이어가 되도록 도와주었고 오늘 너의 앞에 있는 남자를 만들었어.”

 

그리고 마지막 장이 시작되었고, 그것은 아메리카 스포츠 역사 속 그 어떤 이들과도 다른 코비 브라이언트의 전형적인 방식 속에서 이루어졌다. 절대 믿은 적이 없는 세상에 마음을 여는 것, 냉랭한 인간에서 편하고 포용하는 이로 변한 것, 악당으로서의 어두움을 지우고 히어로의 영예를 단단하게 다진 것, 그 모든 것을 포함한 그의 인생과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풀며 남은 5개월을 보냈다. 유타 재즈를 상대로 한 첫 번째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네 개의 에어볼을 날리며 시작되었던 레이커스에서의 커리어는 눈부시게 마무리되었다.

 

이제 그는 종착역에 있고, 유타와의 게임이 있는 수요일 밤의 LA, 시작한 곳에서 끝을 맺는다. 당신은 그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불이 나도록 달려온 시절 후, 코비 브라이언트의 역설적인 점은 그의 가장 주목할만한 기억이 특정한 어느 샷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그의 위대한 달리기가 시작된 팀워크가 있다. 2000년에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를 상대로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역전승을 이뤄낸, 샤킬 오닐을 향한 그의 앨리웁을 기억하는가?

 

위대한 달리기가 끝난 데 대한 그 자신의 축하가 있었다. 스테이플스 센터의 스코러어 테이블에 서서 팔을 쭉 편 채, 관중의 함성을 기분 좋게 누리던 그와, 대 보스턴 셀틱스 2010년 파이널 승리의 색종이 조각들을 기억하는가?

 

집중하여 저지를 꽉 문 그를 당신은 아마 기억할 것이다. 혹은 어느 여름 오후에 부인 바네사에게 자신의 외도를 눈물로 인정하며 입술을 깨무는 그를 기억할지도 모른다. 혹은 그의 가장 터프한 부분으로 여겨지는, 4월 밤 샷을 날리고 몸이 무너지고, 아킬레스 건이 찢어진 후 두 개의 프리드로우를 던질 때의 고통을 참는 그를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길 원한 적이 없다. 그는 그저 승리하길 원했다. 하지만 결국에 이십 년 동안 농구의 절대적인 존재로서, 결점 많은 인간으로서 LA에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준 코비 브라이언트는 어떻게든 둘 다를 이뤄냈다.

 

.by Bill Plasch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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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8-06-19 10:54:42

선추천 후감상

WR
2018-06-19 12:55:28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06-19 10:56:14

추천부터 하구 읽겠습니다
좋은글 고맙습니다

WR
1
2018-06-19 12:56:04

감사합니다

2018-06-19 11:04:59

코비는 코트 위의 플레이어로서의 모습보다 이런 인간적인 면모가 더 멋집니다.(둘 다 멋짐)
고로 추천

WR
2018-06-19 12:56:59

플레이에 반해서 결국에 그의 많은 결점을 포함한 인간적인 면모까지 들여다보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2
2018-06-19 11:31:08

아직도 은퇴전에서 코비가 클락슨에게 어시스트하고, 동료들이랑 포옹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항상 저에겐 no.1 입니다.

WR
2018-06-19 12:57:51

마지막은 림으로 패스하지 않았죠. 저에게도 영원한 넘버원입니다.

2018-06-19 11:38:41

번역 감사합니다. 코비 팬으로서 저 당시 감정이 살짝 다시 떠오르네요.
저 필자가 저 글을 쓰고나서 누구도 상상 못했던 마지막 코비 경기를 봤을때 어떤 느낌이었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73승 시즌 최다승 신기록과 시즌 400 3점슛 기록을 아예 싹 묻어버린 은퇴경기와 맘바아웃.. 보고싶네요 코비.

WR
Updated at 2018-06-19 13:03:23

저도 번역하면서 잠시 그 때로 되돌아가 울컥했네요. 정말 그립습니다.


죽정리님과 한 번도 말씀 나누어본 적은 없지만 2008년 NBA에 갓 입문했던 고등학생 시절에 매번 올려주시는 레이커스 관련 글 읽으며 식견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2018-06-19 12:32:17

강한 에고의 애송이가 그 에고만큼이나 대단한 노력으로 성장해서 결국에는 최고의 자리로 오르는 드라마, 코비와 호날두는 개인적으로 너무 닮아 보입니다. 둘 다 너무 멋있어요.

WR
2018-06-19 13:02:33

코비도 누구 못지 않은 대단한 재능러지만 그 재능을 갈고 닦은건 피나는 노력이죠. 공감합니다.

2
Updated at 2018-06-19 13:43:04

지구에서 가장 농구를 잘하는 선수는 아닐지언정 지구에서 가장 농구를 사랑한 선수가 아닐까 싶네요. 슈팅핸드가 부러져도 수술을 미루고 플레이오프를 마치고, 아킬레스건이 끊어져도 자유투 2샷을 메이드하고, 눈빛은 누가봐도 승리를 갈망하면서 20년 커리어내내 이글이글 끓고있던 선수. 저한테 코비는 농구 선수 그 이상의 플레이어입니다. 위대한 승부사, 위대한 에고이스트

WR
2
Updated at 2018-06-19 18:01:08

네, 위대한 승부사죠. 말씀하신 일화처럼 지독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허슬러였고요. 감히 롤모델로 잡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저는 그래서 더 열심히 응원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2018-06-19 14:22:31

확실히 코비는 수많은 레전드들 중에서도 남들과는 차별되는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합니다
이런 글 보는 재미로 매니아합니다

WR
2018-06-19 17:16:27

그게 코비가 팬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죠! 번역만 했을 뿐인데요, 감사합니다.

2018-06-19 14:36:19

 번역 정말 잘 하셨네요. 감사합니다 

WR
2018-06-19 17:17:08

아닙니다, 감사해요

2018-06-19 16:59:36

그립네요. 블랙맘바 ... 스테이플스센터 코트사이드에서 맘바를 볼 수 있을거라 기대하며 살았는데, 결국 그가 먼저 은퇴해서 너무 허무했습니다. 

WR
2018-06-19 17:18:58

네, 저도 그게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딱 한 번 LA에 갔을 때가 오프시즌이었던터라 스테이플스 센터 구경만 하다 왔네요. 대신에 2011년 내한했을 때 본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2018-06-19 19:21:18

그를 보면 ,
그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성격도 재능이다."

위대한 승부사이자 언제나 도전자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던 그를 respect
합니다.

WR
2018-06-20 10:23:54

생각만 바를 실천하는 성격과 노력하는 DNA도 재능처럼 타고나야하는 부분일 수 있겠네요. 리스펙합니다.

1
2018-06-19 19:43:48

제 마음속의 GOAT 입니다

WR
2018-06-20 10:22:51

제 마음 속에서도 넘버원입니다.

1
Updated at 2018-06-20 20:59:19

제게 브라이언트는 

전날 경기에서 오른손 검지 손가락 부상을 당하고

당일 경기인 재즈와의 경기에서 3할이 안되는 야투율에 16점에 그치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다음 경기인 불스와의 경기에선 5할이 넘는 야투율로 42득점을 

그리고 그 다음 경기에선 39득점을 하는 그런 선수였습니다.

WR
1
2018-06-20 10:22:35

자신 앞에 놓인 장벽을 즐기며 극복해낸 선수였죠. 공감합니다.

Updated at 2018-06-20 20:28:11

농구를 잘하는 역대순위등을 많이 따지지만..

역대 농구를 제일 사랑한 선수를 꼽으라면 저는 1초도 주저하지 않고

코비를 넘버원으로 꼽을 것입니다.

 

제가 그를 위대하게 보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죠.

 


Updated at 2018-06-24 20:49:39

경외감 마저 들게 하는,,

울컥하네요,,,

2018-07-02 20:25:43

정말 인간으로써도 가장 존경하는 인물중 한명입니다. 코비 아직도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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