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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번역 : 당신이 좋아하는 NBA 스타의 점프슛, 그 뒤에 서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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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8-15 12:48:12

다들 기억하실 SC live in Seoul 사진 두 장입니다. 꼬맹이들을 상대로 스킬 트레이닝 지도를 하던 와중에 찍힌 사진이죠.

오늘은 저 사진들 속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단, 스테판도 아니고 세스도 아니죠. 알 사람은 아마 알고 있을 Rob McClanaghan에 대한 칼럼, 드라마틱한 그의 인생 스토리를 옮겨보았습니다. 편의상 반말 양해부탁드립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NBA 스타의 점프슛, 그 뒤에 서있는 남자


Rob McClanaghan은 커리, KD, 존 월, 웨스트브룩에서부터 NBA 무대를 밟아보지도 못한 이름 모를 저니맨에 이르기까지 함께 일해 왔다. 이 글은 NBA 무대 뒤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 된 대학농구 워크온(농구장학생이 아닌 일반선수)에 대한 이야기이다.



챈들러 파슨스는 비 오듯이 흘러내리는 땀에 흠뻑 젖었다.


20분전 이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포워드는 웃고 또 웃으며 벨 에어에 있는 개인소유 체육관에 들어왔다. 그의 목소리는 그 큰 공간을 울리고 있었다. 그 체육관은 스테이플스 센터를 본따 만들어졌는데, 벽에는 영구 결번된 저지들이 유리 케이스에 담긴 채 걸려있었고 사이드라인에는 검은색 가죽 쿠션으로 씌워진 금속 의자들이 자리해 있었다. 파슨스는 코트에 앉아 드라마 Ballers의 제작자인 Joey Krutel에게 자기도 에피소드에 출연시켜 달라고 계속 조르던 참이었다. 그리고 유쾌함은 딱 거기까지였다. 지금 파슨스는 얼굴을 찡그린 채, 빠른 속도로 슈팅 드릴을 해내느라 근육을 혹사시키고 있다. 코트를 가로질렀다 다시 돌아오는 달리기만이 그 드릴을 중단 시킬 뿐. 대화 따위는 없다. 고무 밑창만이 나무 바닥에 문대져 끽끽대는 비명을 지른다. 7월 중순의 어느 무더운 여름날. 음악과 에어컨은 모두 꺼져있다. 


"우리 계속 이렇게 하면" 

파슨스의 말이다.

"나 토할지도 몰라요"


"좋아"

Rob McClanaghan은 짧게 대답하곤, 그에게 공을 튕겨준다.


라디오 진행자 Mike Francesa의 젊은 시절과 비슷한 목소리를 갖고 있으며 로드아일랜드 출신으로 시라큐스 대학 일반선수였던 McClanaghan은 현재 38살로 프로선수로는 단 한 번도 경기를 치러본 적이 없다. 한때 그는 고등학교 체육 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NBA 스타 선수들의 스킬 트레이너다. 


며칠 후 그는 자신의 고객인 스테판 커리와 함께 언더아머 투어를 위해 전용기를 타고 아시아로 향할 예정이다. 2011년 데릭 로즈와 케빈 러브는 각각 NBA 역사상 최연소 MVP와 MIP를 수상했는데, 시상식 수상소감에서 모두 그에게 감사를 표했었다. 지난 시즌 그의 고객 중 한 명(러셀 웨스트브룩)은 MVP가 되었다. 다른 한 명(케빈 듀란트)은 파이널 MVP가 되었다. 또 다른 한 명(존 월)은 2017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시즌 엔딩의 위기로부터 자신과 팀을 구해내는 3점을 성공시켰다. 7.1%라는 쥐꼬리만 한 3점슛 성공률을 찍었던 1112시즌이 끝나고 존 월은 McClanaghan을 고용했고, 그해 여름부터 함께 뜯어고치기 시작했던 점프슛으로 그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는 무척 경쟁이 치열하다고 할 수 있는 개인 훈련 분야에서 맨 꼭대기에 올랐죠"

ESPN 기자인 Adrian Wojnarowski의 말이다.

"거의 왕국을 건설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McClanaghan은 자신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확신하며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확신하지 못했을 때조차도. 현재 그는 보통은 잘 보이지 않는 - 경쟁의 우위에 서기 위해 필요한 개인 체육관, 스킬 트레이너, 땀 흘리는 여름날과 같은 - 또 다른 농구 세상의 실력자로 우뚝 선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타인을 거의 믿지 않는 스타들은 그를 신뢰하고 있다. 그는 수백만 달러의 가치가 있는 재능들을 가르침으로써 언제나 밥을 먹고 살 수 있는 농구계 주변의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저지의 뒤에 새겨진 이름 너머로 존재하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요즘엔요" McClanaghan은 말한다.

"2~3년마다 NBA 감독들이 해고되죠. 자신의 커리어 동안 선수들은 5명의 감독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들에게 일관된 트레이너가 옆에 있다면 어떨까요. 누구보다 자신의 경기를 더 잘 알고 믿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겠죠. 저는 바로 여기에 시장이 있다는 것을 보았어요." 


파슨스는 여섯 시즌 동안 3명의 감독과 함께 했다. 그는 정확히 McClanaghan의 지도가 필요하다고 여겨질 만한 유형의 선수였다. 자신의 지난 세 시즌을 망쳐버린 부상으로부터 벗어나 꾸준한 경기력을 되찾도록 노력하고 있다. 여기 벨 에어 체육관으로 다시 돌아오면, McClanaghan은 메스꺼워하는 파슨스를 향해 돌면서 그들이 방금 해낸 드릴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고 있다. (헤지테이션의 약어인)"hesi"와 leg through 드리블 후 슛 대신에 이제는 hesi와 behind the back 드리블 후 슛이다. McClanaghan은 수비하기 위해 파슨스에게 다가간다; 그와 훈련하는 선수들은 그가 이렇게 훈련에 관여하는 걸 즐긴다. 그리고 그 역시 선수들이 지쳤을 때 그들을 테스트 해보는 걸 좋아한다. 파슨스는 지쳤지만, 도전이 다가옴을 감지한다. 그리곤 미소를 짓는다.


"오우" 

그가 말한다.

"역시 내가 원하는 걸 안다니까."




McClanaghan의 훈련은 공격 스킬 연마에 집중되며 훈련 시간은 1시간 15분을 넘어가진 않는다. 선수들은 계속해서 움직이며 딱 한번 물 마실 때를 빼고는 휴식 시간을 갖지 않는다. 대화는 보통 트래쉬 톡, 좌절감에 선수가 내뱉는 말, McClanaghan의 지시 정도 일 뿐. 그는 모든 드릴 훈련을 웨이트 트레이닝처럼 "세트"와 "반복"으로 세분화하고, 매일 다른 스킬군을 훈련하는데 중점을 둔다. 각 세트에서 마지막 슛을 쏠 때 McClanaghan은 "게임 위너"라고 크게 소리치고 3에서부터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선수는 다음 드릴로 넘어가기 전 그 샷을 꼭 성공시켜야만 한다. 선수들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것은 강도와 실용성 측면에서 "실제 경기의 반복" 수준이라고 한다. 외부인의 눈에 모든 것은 단순하게만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이 이 훈련방식을 좋아하지 않을까. 



"핵심을 곧바로 향하죠"

前 위저드 가드인 브랜든 제닝스의 말이다.

"어디에도 여분은 없습니다. 저는 훈련에서 제 움직임을 녹화하는 사람들이나 크게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 여기와선 그저 훈련에 집중, 그리고 나선 떠나는 거죠."


McClanaghan과 그의 선수들은 종종 함께 훈련하고, 함께 식사하고, 함께 외출하기도 한다. 

"그는 멋진 사람이에요", 그에 대해 존 월은 말한다.

"함께 훈련하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동시에 그런 유형의 애정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죠."


McClanaghan은 말한다.

"어떤 선수들은 제게 이렇게 물어볼 때도 있었죠. '대체 우리가 이 드릴을 왜 하는 거야?'" 

"하지만 우리가 하는 모든 드릴 하나하나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 맹세컨대 제게 그 질문을 했던 선수들은 모두 자신의 최대 잠재력에는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거든요. 그게 우리 사이의 신뢰와 직결되는 부분이기에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열심히 훈련하리란 걸 믿고 있다고. 그러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리란 걸 믿으라고. 시간을 때우거나 써버리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말이죠.  제 최고의 선수들이 '대체 우리가 이 드릴을 왜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그게 우리가 각자의 일에 있어 성공한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우리에게는 신뢰가 존재합니다."


McClanaghan은 자신의 구체적인 훈련 요법에 대해 게시하지 않는다. 이 바닥에서 좀 더 성공하려 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고객으로 하여금 그들을 믿도록  만들라고 충고한다. 선수들은 사기꾼을 간파해내니까. McClanaghan은 자신의 고객들의 직접적인 말보다는 퍼포먼스를 통해 알아채는 쪽을 선호한다. 그 고객들은 주기적으로 훈련코트에 그를 날아오도록 해 그가 7~10경기마다 각각의 선수들에게 보내주는 그 광범위한 비디오 녹화본과 분석 글을 흡수하는 시간을 갖는다. McClanaghan은 그가 고등학교에서 지도했던 Joe Mazzulla을 어시스턴트로 고용해 분석 글이 적절한 문법과 구두법을 만족시키는지 검수토록 한다. 파슨스의 말에 의하면 McClanaghan은 코트 위에서 메커니즘적인 결함을 찾아내기도 한다고 한다. 팀의 전체 공격을 신경 쓰느라 구단의 코치들은 미쳐 놓칠 수도 있는 부분인 슛 궤적이 낮아졌다든지, 슈팅 시 몸이 뒤로 쏠린다든지, 팔로우-쓰루에 문제가 생겼다든지 하는 점들을 말이다. 


파슨스의 훈련이 끝난 후, 그는 자신의 폰을 꺼내 인스타그램을 스크롤한다. 거기에는 파슨스가 McClanaghan에게 말해 준, 한 트레이너가 있다. 그는 NBA 스타 선수들에게 훈련장면을 녹화하고 그 영상을 포스팅하는 조건으로 공짜로 workout을 진행한다고 한다. 이 방식을 통해 그 트레이너는 명성을 쌓고, 자신의 소셜 미디어 방문 횟수를 늘리며, 여러 캠프들 및 개인적인 workout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번다. 


"어때보여?" 

McClanaghan이 흥미를 느꼈다는 듯이 물어본다.


"어디보자"

화면을 잡아당기며 파슨스는 말을 잇는다.

"저 계정으로 대충 일 년에 5만 달러는 벌겠는데?"


이는 McClanaghan이 십 년은 더 전에 시작했던 인터넷 민주화의 일종이다. 마이클 조던의 트레이너였던 Tim Grover가 처음으로 개척한 이 분야에서, 농구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McClanaghan은 독립적으로 일한다는 하나의 목표를 갖고 스킬 트레이닝 영역에 진입한 최초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Neil Olshey와 같은 선배 트레이너들은 그 위치를 잘 활용해서 구단 경영진이나 코칭 스탭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현 시점에서 트레이닝은 그 자체로 종착역이 되었으며, 시장에는 "[이름][성]Basketball" 같은 소셜 미디어 계정과 사업들이 홍수처럼 넘쳐나고 있다.


"뭐"

McClanaghan은 폰을 쥔 왼손으로 그 계정을 스크롤하며, 오른손으로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희끗희끗함이 섞인 자신의 검정 올백머리를 쓸어내리며 짧게 내뱉었다.


 


몇 시간 후, 前 레이커스 GM 미치 컵책은 다리를 꼬고 코트사이드에 앉아, 오른손 검지는 휴대폰 위에 올려놓은 채 콧등에 걸린 안경 너머로 시선을 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자 UCSB(UC–Santa Barbara) 3학년인 Maxwell이 점퍼를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Maxwell과 McClanaghan은 가우초(역자주:UCSB의 스포츠 팀을 일컫는 애칭)의 코치들이 여름 동안 숙제로 내준 "1-2 리듬 슈팅 드릴"을 함께 훈련하고 있다. Wojnarowski의 말에 의하면, 팀의 계획을 선수의 훈련에 기꺼이 반영하는 McClanaghan의 성향은 그가 값비싼 투자를 하는 NBA 구단 운영진의 신뢰를 얻는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 McClanaghan은 Maxwell로부터 5 피트쯤 떨어진 위치를 향해 바운스 패스를 던지며, Maxwell은 공을 잡으러 달려간 후 림을 보며 몸을 똑바로 편다. 그리곤 공을 던진다. 


"Rob, 좀 더 이렇게요"

나이 지긋한 컵책은 이렇게 말한다. 손목에 더 위쪽 방향의 스냅을 줘서, 공을 튀어 오르게 하기보다 백스핀을 주며.


"아, 아빠. 됐어요"

Maxwell이 대꾸한다.


"내가 뭘?"

미치는 말한다.

"니가 그래서 내가 이러는 거라고."


 

인물과 배경을 살짝 바꿔서 McClanaghan이 어떻게 2002년 여름에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 살펴보자. 롱 아일랜드에서 온 한 어머니는 둘 모두를 아는 친구를 통해 그를 알게 되었고, 로드아일랜드 주 내러갠섯에 있는 공공 농구코트에서 그가 그녀의 10대 초반 아들딸과 함께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workout이 끝나자 그는 그 여성에게 비용을 말했다. 

대략 40달러였다.


"그게 제게 요구하는 금액이라고요?"

그녀는 놀라워하며 물었다.


McClanaghan은 혹시 자신이 가격대를 잘못 잡았는지 걱정했다. 

몇 달 전, 그는 2001-02 시즌을 USF(University of South Florida)에서 조교로 일한 후 그 곳을 떠나버렸다. 훈련에 대한 NCAA의 제약 때문에 그는 완전히 당황한 상태였다. 

"만약 대학생 선수가 자신의 코치와 함께 여름동안 매일같이 훈련하기를 원한다면, 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맞지 않나요?" 

그는 덧붙인다. 

"도무지 말도 안 되는 거죠."


USF에서 I-93A를 타고 남쪽으로 60마일쯤 내려오면 IMG 아카데미가 있다. 유소년에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훈련을 담당하는 이곳에서 NBA 선수들도 종종 오프시즌에 스킬 트레이너인 Joe Abunassar와 함께 훈련을 진행하곤 했다. USF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 McClanaghan은 Abunassar가 케빈 가넷과 함께 훈련할 때 튕겨나간 공을 주워주는 일을 했다. 그 여름들을 거치면서 그는 청소년 클리닉을 운영하는 법을 배우고자 IMG에서 인턴을 했다. 물도 나르고 점수판도 기록하면서. 그는 스킬 트레이너가 되고자 했다. 코트에 머무르게 해주는 동시에 선수로서는 맛보지 못한 경기의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는 방법을 제공해줄 수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때까지 트레이너들은 IMG 같은 학교나 회사 소속으로만 일했고 독립적인 커리어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 McClanaghan은 선수들과 함께 훈련할 기회를 거의 잡지 못해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하여 가을에 로드아일랜드 주에 위치한 자신의 모교 Bishop Hendricken 고등학교로 돌아와 체육교사가 되었다. 그는 농구 대표팀 어시스턴트를 시작했고, 모든 지역 YMCA에 전단지를 붙이며 트레이닝 사업도 시작했다. 그 롱 아일랜드 어머니가 자신의 비용에 의문을 표했을 때, McClanaghan은 싹트기 시작한 자신의 사업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고 한다. 


"당신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받을만한 가치가 있어요."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했고, 이는 McClanaghan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녀는 한사코 두 배를 현금으로 지불하려 했다. 그리고 그는 더 많은 세션을 계획하고, 캠프보다 개인적인 레슨을 위해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던 부모들을 찾아냈다. 몇 달 만에 그가 트레이닝으로 얻은 수입은 그의 교사 연봉과 같아졌다고 한다. 


"그 때 제가 거기에 뭔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소니 바카로(Sonny Vaccaro)는 이 어린 McClanaghan에 대해 얼마나 많은 전화를 받았는지 까먹었었다. 하지만 가장 최근이었던 2003년 봄에 이루어진 한 통화를 끊고나서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직 누구랑도 일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을 뭐 땜에 내가 고용해야 하냐고?"


Rob을 지금껏 만나본 일반선수들 중에서 "최고"라고 손꼽는 시라큐스대의 감독 짐 베이하임(Jim Boeheim)을 포함해서 McClanaghan의 지인들은 이 신발회사 경영진이자 아마추어 농구의 기획자에게 전화를 넣었다. 그들은 그가 팀 그루리치(Tim Grgurich)의 지휘 아래에 자신의 전설적인 ABCD 여름 농구캠프를 통해서, 고등학교 교사를 데려와 엘리트 코칭스태프로 키우도록 독려했다. 바카로는 McClanaghan에게 자신의 휘하에는 충분히 코치가 많다고 말했던 걸 기억한다. 그에 대한 McClanaghan의 대답은 "압니다, 그래도 좋아요" 였다.


"그 아이의 자신만만함을 기억해" 바카로는 말한다.

"캠프의 코칭 수준을 올리기 위해 그가 확실히 지도에 참여토록 하는 게 내 의무였다고 말하면 될까. 그게 바로 Rob McClanaghan 였지: 전적인 자신감. 그 주제넘은 모습은 중요하지 않았어, 내가 좋아했다는 것만 빼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카로는 그에게 그린 라이트를 주지 않았다. McClanaghan은 소니와 일하는 캠프 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우리 보게 될 거에요" 라는 대화를 나누었다. 전화를 더 이상 받지 않을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되자 McClanaghan은 팩스 번호를 찾아냈다. 


McClanaghan은 지금 담당 선수들과 계획된 훈련을 할 때 보여주는 가차 없는 모습만큼이나 그 당시에도 그러했다. "당신이 내게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는 말한다. "저는 당신에게 몇 번이고 계속해서 문자를 보낼 것입니다. 보내고 보내고 또 보내고... 당신이 대답하거나 저를 차단할 때까지."


McClanaghan은 자신이 바카로의 체육관에 한 자리를 차지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침내 프로선수를 훈련하게 되었으니까. 2002년 초여름 그는 둘 모두를 아는 친구를 통해 루벤 가르세스(Rubén Garcés)를 소개받았고, 자신의 첫 프로 고객이 된 가르세스와 함께 훈련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함께 훈련한 결과, 가르세스의 말에 의하면, 스페인 리그인 ACB에서 리바운드 3위로 리그를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듬해 여름엔 프로비던스 대학의 포워드였던 라이언 곰스와 동농에서 만나 함께 훈련하기 시작했다. 6피트 7인치의 이 대학선수는 림을 등진 채 하는 플레이로 수비수들을 박살내며 2학년 시즌도 잘 마무리 한 상황이었지만, NBA에서도 이런 식의 플레이가 통할 정도로 자신의 키가 크지 않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리바운드를 넘어 트랜지션 공격 및 퍼리미터 슈팅을 연습하기 시작했고, 다른 무브들과 곰스의 주 무기인 훅샷을 섞기 시작했다. McClanaghan은 바카로가 믿는 사람들의 추천과 더불어 이 훈련이 캠프에 그의 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ABCD 캠프를 한 달 남긴 시점에서, McClanaghan에게 캠프 총괄자 Bobby Hartstein의 전화가 걸려왔다.


"너 포함됐어." 그가 말했다.


McClanaghan이 뉴저지 주 티넥에 위치한 페어레이 디킨슨 대학교에서 열린 캠프에 도착한 첫 날, 그는 바카로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그는 그들이 나눈 대화를 이렇게 기억한다.


"저를 포함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한테 선택권이 있었나?"


 


4년 후, 2007시즌 NBA 올스타 주간 동안, BJ 암스트롱은 라스베가스의 체육관에서 한창 훈련 중이던 McClanaghan을 보았다. 당시 암스트롱은 ESPN 분석가를 그만 두고 Wasserman 미디어 그룹과 계약하며 막 에이전트 업계에 뛰어든 상태였다. McClanaghan을 보는 순간, 늘 생각해온 아이디어가 형태를 갖추어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몇 년 전 암스트롱이 시카고 불스 GM의 특별 어시스턴트로 있을 당시, 그는 우수한 드래프트 유망주들이 대학 시즌이 끝난 후 NBA 드래프트 훈련에 돌입하기 전까지 3개월 정도의 시간을 거의 허송세월로 보낸다는 문제에 주목하고 있었다. 다양한 경기들이나 올스타 게임 등을 뛰지도 못한 채로. 암스트롱은 드래프트 되는 선수들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으며 더 많은 NBA 구단들이 "육성" 타이틀이 달린 코치들을 고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드래프트는 원래는 잠재력에 초점을 둔 채로 시작되었죠." 암스트롱의 말이다.

"이들의 연령대는 더 이상 22~24살이 아니며 이제는 19~20살입니다. 여름이라는 소중한 시간들은 기술 연마에서부터 실제적인 농구 육성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잠재력에 집중되었던 시선은 육성으로 옮겨갔고요."


둘 모두를 알던 한 친구는 암스트롱에게 당시 점점 리그에 그 이름을 알려가던 McClanaghan과 함께 이 아이디어에 대해 토론해보라고 충고해주었다. McClanaghan은 ABCD 캠프에서 수년간 일하면서 2008 드래프트의 잠재적 1순위 후보군이던 OJ 마요, 케빈 러브, 데릭 로즈와 함께 훈련하고 있었다. 2005년 봄에 모교인 Bishop Hendricken 고등학교를 떠난 이후로는 트레이닝 일을 전업으로 삼았다. 그러다 한 연령대의 미국 청소년 대표팀을 지도하는데 합의했으나, 그의 말에 의하면, 대표팀은 막판에 그에게 약속했던 연봉을 2/3로 규모로 줄여버렸다. 모교는 이미 그의 빈자리를 채운 상태였기 때문에 당황스럽고 무엇을 해야 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그는 그해 혼자 일하는 것을 택했다. 2006년에는 Impact Basketball이라는 이름의 개인 트레이닝 회사를 시작한 Joe Abunassar와 다시 함께 일하기 위해 베가스로 이사했다.


그해 여름, 프로비던스 대학 출신의 포워드 곰스는 NBA 커리어 전체 8시즌 중에서 막 첫 시즌을 끝낸 상태였다. 그는 McClanaghan의 베가스 집에서 3주 동안 머물렀다. 그들은 함께 훈련하고 플레이오프를 시청하는 거 말고 다른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당시 곰스는 그를 지난 3년간 지켜봐온 상태였으며, McClanaghan이 독립적인 트레이너가 되기에 충분히 명확한 비전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이다.

"그 전에는 우리가 도로 위에 있다 비유했다면, 그때는 고속도로 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었을 겁니다." 

"... 만약 Rob의 시선이 무언가에 꽂혔다면, 그는 우리들과 다름없이 열심히 노력할 거예요. 다만 자신에 대한 확신의 수준이 남다르다고 할 수 있죠."


암스트롱은 대학 선수들이 프로로 옮겨가는 과정을 돕기 위해서 McClanaghan에게 Wasserman의 일자리를 제안했다. McClanaghan은 이를 받아들였고, 2007년 여름 Wasserman의 본사가 위치한 LA로 옮겨왔다. 이듬해 봄에는 드래프트 대상 유망주들을 대상으로 프로 세계에서 필요한 기초훈련을 지도했다: 용어, 스페이싱, 포스트로 향하는 관점 등. 암스트롱은 그저 선수들이 NBA에 익숙해지는데 도움을 주려는 정도의 의도였지만, 많은 선수들은 이듬해 봄에도 함께 훈련하기 위해 다시 찾아왔다. 

"저는 그들이 돌아왔을 때 충격을 받았어요"

암스트통의 말이다.

"pre-드래프트 훈련이 눈덩이처럼 구르고 굴러서 이제는 유행이 되어버렸네요. ... Rob은 대단합니다. 그는 관계를 구축할 줄 알아요."




McClanaghan의 명성은 2011년 여름에 선수들이 감사의 뜻을 표했던 것처럼 그의 성공 스토리가 퍼지면서 점점 높아졌다. 그는 당시 첫 올스타에 선정되었던 러브에게 NBA에서 뛰는 빅맨에게 있어 퍼리미터 슈팅은 미래가 달려있는 문제라고 말했던 첫 번째 사람이었다. 여름 내내 3점슛 연습을 마치고 돌입한 그 시즌 미네소타의 네 번째 경기에서 러브는 다섯 개의 3점슛을 성공시켰다. 그를 수비하던 더크 노비츠키는 어리벙벙해져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 이제는 스텝백 3점을 쏠 차례인가?" 

2013년 McClanaghan은 회사 밖에서 물밀듯이 들어오는 수요로 인해 Wasserman을 떠나 “Rob Mac Basketball”을 차려 완전히 독립했다. 


"그를 처음 만난 날 이후로 그가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바카로는 말한다.

"어린 선수를 만나는 것과 똑같지.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너무나 확실하고, 실제로 그렇게 해내. 그가 해냈다고! Rob은 자신의 성격을 돈이 되는 사업으로 바꾸어 놓았어. 바로 자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McClanaghan과 훈련하는 모든 선수들이 MVP나 올스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NBA 무대를 밟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의 지시 중 대부분은 기초에 집중한다. 림을 바라보며 몸을 쭉 펴라, 그리고 팔로우-쓰루를 해라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그의 방식을 통해 선수들을 구단이 지시하는 테두리 바깥으로 인도한다: 그는 수상, 승리, 패배, 조직 내 자신의 직업 안정성 따위의 것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 선수에게 헌신한 의지만 있다면 잠재력의 크기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가 제공하는 믿음이 답례로 요구될 뿐이다; 그게 바로 게임의 규칙이다. McClanaghan은 NBA 측의 제안들을 거절해왔다. 왜냐하면, 아마도, 지금 그가 떠날 수는 없기 때문이리라.


그는 트레이너고, 저들은 그의 선수들이다. 

 


 

로즈가 암스트롱과 에이전트 계약을 맺은지 6개월이 지난 시점이자 드래프트 1순위로 뽑힌 지 5개월이 지난 시점이던 2008년 11월, McClanaghan은 카메론 실내 체육관에서 흥분으로 가득한 푸른색의 Duke 학생 무리 사이에 앉아있었다. 학교에 있던 그의 친구로부터 표를 받아 Bishop Hendricken 고등학교의 코치인 Jamal Gomes를 데리고 제자였던 Jimmy Baron(당시 University of Rhode Island 소속)을 보러간 것이었다. Baron은 Bishop Hendricken 고등학교에서 McClanaghan과 함께 아침수업 전에 훈련하던 그룹을 일컫던 "Breakfast Club"의 멤버였다. 경기 전날 밤 카메론 체육관에서 뛴다는 생각에 Baron은 잠을 설쳤다. 숨을 가다듬기 힘들었고 경기 전 몸을 풀 때엔 슈팅이 삐거덕 거렸다. 그는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McClanaghan에게 전화했다. 

"니 페이스대로 플레이 하면 돼" 

트레이너는 충고해줬다. 

"공을 잡으면, 림을 바라보고, 잠깐 시간을 두었다가, 던져."



경기가 시작하고 나서 던진 5개의 슛이 모두 실패하자, Baron은 블루 데빌스의 감독 마이크 슈셉스키 너머 몇 줄 뒷자리에 앉아있던 McClanaghan을 바라보았다. McClanaghan의 두 손바닥은 아래로 향했다. 

진정하라고.


후반 들어, Baron은 장거리 3점슛 하나를 성공시켰다. 그리고 하나 더 넣었다. 27피트 거리에서 슛을 성공시켰다. 그는 손가락을 들어 McClanaghan을 가리켰다. 허나 듀크 팬들에 의해 완전히 둘러쌓인 McClanaghan은 Jimmy Baron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모르는척하고 있었다. 이 URI의 명사수는 이날 7개의 3점슛을 연속으로 성공시켰다. 마이크 슈셉스키는 이 퍼포먼스를 두고 "이 경기장에서 목격했던 가장 위대한 후반 중 하나"라는 찬사를 보냈다. 79대82로 비록 로드아일랜드는 패했지만. 경기가 끝난 후 코트 위에서 McClanaghan이 하던 말을 Baron은 기억하고 있었다. 

"어이, 좋은 경기였어. 그렇게 쏘는 거지. 져서 유감이긴 하지만."


"그게 Rob이죠"

Baron은 웃으며 말한다.

"그는 결코 너무 비행기 태우지도, 너무 깎아내리지도 않아요."


2009년 Baron은 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NBA 드래프트에 참가한 모든 팀들은 그를 지나쳤다. 그는 터키에서 한 시즌을 보내고 스페인으로 가서 두 시즌을 더 보냈다. 그리고 McClanaghan은 그가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두 나라를 모두 방문했다. 지금도 Baron은 유럽 프로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여름이 되어 집에 돌아오면, 그는 부업 하나를 한다. 그의 그 인생게임 이후 6년이 지나 올라온 한 YouTube 광고 속, Baron은 뉴잉글랜드의 한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 폴로셔츠를 입은 채로 입을 연다.


"BaronBasketball.com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BY SAM FORTIER  AUG 9, 2017



 

 
이 게시물은 아스카님에 의해 2017-08-15 12:02:27'NBA-Talk' 게시판으로 부터 이동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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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7-08-15 12:51:39

저분 아이스하키 하시던 분인가요??

WR
2017-08-15 12:59:52

아니요. 말씀하시는 아이스하키 선수는 Rob McClanahan인듯합니다. 이분은 Rob McClanaghan이고요

2017-08-15 13:41:57

감사합니다.누군지 궁금해서 구글에 쳤는데 아이스하키 선수로 나와서..

2017-08-16 23:56:58

멋진 분이네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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