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의 스몰라인업 효과와 스퍼즈의 대응
1. 휴스턴에게 강제된 스몰라인업
플레이오프 2라운드 1~3차전 휴스턴의 센터 카펠라, 네네, 하렐의 출전시간을 모두 더하면 각각 48분. 하렐은 가비지타임에 잠시 나왔고, 카펠라와 네네가 거의 48분을 분담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4차전 네네의 부상아웃과 카펠라의 파울트러블로 센터들이 라인업에 포함된 시간은 총 29분으로 줄어들고, 5차전에도 카펠라 혼자 34분을 뛰며 팀은 연장 포함 19분을 순수 스몰라인업으로 가동하게 된다.
4차전 휴스턴 승리의 분수령은 스몰라인업 가동이었다. 네네의 부상과 카펠라의 파울트러블은 사실상 시리즈의 전화위복을 위한 계기였다고도 볼 수 있다. 휴스턴의 의도치 않은 스몰라인업 가동으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첫째는 스퍼즈의 이번 시리즈 수비 수훈갑이라 할 수 있는 파우 가솔의 출전 시간 제한이다. 2차전 선발로 복귀한 가솔은 2차전과 3차전에서 각각 29분과 31분을 뛰며 도합 6블럭을 해낸다. 그러나 휴스턴의 스몰라인업이 가동된 4차전과 5차전은 각각 19분과 20분으로 출전시간이 극히 제한된다.
잘 알려졌다시피, 가솔은 BQ가 뛰어난 빅맨이다. 발이 느려 가드들의 스텝을 따라가는 가로수비 능력은 떨어지지만, 높이가 좋고 블록 센스가 좋아 페인트존 내로 수비 동선이 제한될 시 높은 림보호력을 보여주는 선수이기도 하다. 가솔의 수비가 빛날 수 있는 조건은 상대가 스몰라인업을 가동하지 않을 때다. 카페라와 네네가 있을 때 가솔의 수비동선은 철저히 페인트 존 인근으로 배치되며 높이를 활용한 샷블럭 위협을 보여준다.
휴스턴 3점 농구의 특성상 스퍼즈의 골밑 수비에 핵심을 이루었던 알드리지가 외곽으로 견인되어 나갔다. 알드리지는 아리자를 상대하며 시종일관 외곽으로 겉돌았고(겉돌며 혼란에 빠졌고), 하든은 가드진들의 스크린 세팅에 기반해 카와이를 피해 연이어 돌파를 감행한다. 가솔의 골밑 수비가 시리즈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조건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스퍼즈의 수비는 가솔이 골밑을 지킬 때와 그렇지 않을 때로 양분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이미지를 클릭하면 영상 재생).
(가솔의 빅라인업 수비 시 도움수비)
위 영상은 가솔의 수비가 이 시리즈에서 얼마나 큰 열쇠가 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장면이다. 탑에서 하든이 아리자와 2대2를 하는데, 이때 이미 가솔은 페인트존에 발을 담그기 시작한 상태다. 그런데 카펠라가 3점 슈터 라이언 앤더슨으로 바뀌면 상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수비의 핵심은 골밑 사수에 있다.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골밑 수비가 되는 빅맨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수비 패턴은 극과 극으로 나뉠 수밖에 없다(https://nbamania.com/g2/bbs/board.php?bo_table=maniazine&wr_id=167361&sca=&sfl=mb_id%2C1&stx=louisekarl79). 다른 장면을 하나 더 보기로 하자. 앞서의 장면이 2선 도움수비 장면이라면, 아래 장면은 2대2 게임에서 빅맨이 뒤에 쳐저서 수비를 하는 이른바 ‘드랍백’ 수비의 장면이다.
(가솔의 쳐진 수비)
카펠라와 네네가 시즌 내내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그런데 언제나 상성이라는 걸 갖는 농구에서 변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오기도 한다. 아무튼 외곽 점퍼가 없는 카펠라와 네네가 코트에 있을 때 높이가 우월한 가솔은 림보호에서 탁월한 효과를 만들어 냈다. 스퍼즈가 시리즈 반등을 이뤄낸 2차전이 가솔의 선발출전이 시작된 경기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앞서 말했듯, 가솔은 2차전과 3차전에서 각각 4블럭과 2블럭을 한다.
그렇다면, 스몰라인업 가동 시에는 어떤 변화가 연출되었을까. 스퍼즈의 빅맨 수비수들의 딜레마는 훌륭한 림보호력에도 불구하고, 외곽 2대2 게임 능력이 좋지는 못하다는 점에 있다. 발이 느린 가솔은 공격수 5명이 모두 3점 슈터가 되는 휴스턴의 스몰라인업에서는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없다. 리는 시리즈 내내 하든의 하이레벨 플레이에 말려 픽앤롤 수비의 혼란을 보여 주는 중이다. 알드리지 역시 픽앤롤 1선 수비의 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무튼 상대 스몰라인업에 맞춰 스퍼즈도 4차전부터 본격적으로 알드리지나 데이빗 리를 원 빅맨으로 두는 스퍼즈의 스몰라인업을 가동한다. 이제 크게 두 가지의 혼란이 발생한다. 하나는 데이빗 리와 알드리지가 하든에게 미스매치 공략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미스매치를 피하는 방법으로 스퍼즈가 택한 수비는 ‘헤지 앤 리커버리’ 혹은 강조점을 두기에 따라서는 ‘쇼’(Show)라고 불리는 디펜스다.
이 수비의 패턴을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하든에게 아리자가 와서 스크린을 걸어줄 때 아리자를 막던 알드리지가 앞으로 튀어나와 하든을 살짝 압박할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Hedge). 그러나 알드리지의 임무는 제스처를 취하기만 하고, 반원을 그리듯 돌아서 다시 자기 마크맨(아리자)에게 돌아오는 것이다(Recovery). 알드리지가 압박을 주는 척하면서 튀어나오는 시간 동안 카와이는 아리자의 스크린을 돌아나와서 하든에게 다시 붙는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카와이가 아리자의 스크린을 타고 하든에게 돌아올 때까지 알드리지가 헤지 동작으로 시간을 벌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카와이가 하든에게 다시 붙게 되면서 미스매치를 피하는 수비가 완성된다.
스퍼즈 수비의 고민 중 하나는 이 헤지 앤 리커버리 동작에서 알드리지와 리의 대처가 좋지 못하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가솔이 있을 때에는 이들의 수비 미스를 가솔의 2선 림보호로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했다는 게 중요하다. 휴스턴의 의도치 않은 스몰라인업 농구는 가솔의 이 2선 수비를 제거하는 효과를 불러왔다.
(4차전 장면으로, 리의 헤지 앤 리커버리 동선 미스와 휴스턴의 코너 오픈 찬스)
위 영상은 스퍼즈의 수비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 장면이다. 우선, 리가 헤지 타이밍을 놓치면서 동료인 카와이의 수비동선을 막아 버리는 역효과를 만들어 냈다. 이게 첫 번째 문제가 된다. 두 번째는 골밑이 비어 있어서 코너 수비수가 깊게 도움수비를 오게 되었다는 점이다. 코너로 패싱레인이 열리면서 하든은 어렵지 않게 패스를 돌리게 된다.
이제 여러 팀들이 스몰라인업 농구를 추구한다. 리그에서 스몰라인업 농구에 가장 집중하는 두 팀, 골스와 클블은 놀랍게도 지난 2년간 파이널에서 맞붙었던 팀들이다. 올시즌에도 역시 파이널 진출이 가장 유력한 팀들이며, 특유의 벌떼 수비로 높이의 약점을 커버하는 중이기도 하다.
얼마전 토론토와 밀워키의 수비에 대해 언급한 바 있지만, 스몰라인업은 높이의 결핍을 운동량으로 메워야 하기에, 기본적으로 볼이 가는 쪽으로 수비 밀도를 극대화하는 벌떼 수비형 동선을 창출하게 되어 있다. 이때 핵심은 앞선의 타이트한 압박 이후 생겨나는 2선 혹은 위크사이드(볼 없는 사이드)의 넓은 수비공간을 커버할 수비자원이 존재하는가 하는 점이다. 듀란트, 드레이먼드 그린, 쿰보, 이바카, 르브론의 공통점은 모두 2선의 넓은 수비반경을 가져가는 스몰라인업 특화형 수비수들이라는 점이다. 특히, 듀란트와 르브론 등은 일종의 프리롤 형태의 역할을 부여 받아 본인 마크맨보다는 도움수비 움직임에 집중하며 위크사이드 수비공간을 커버하는 농구를 한다.
그런데 스퍼즈의 문제는 카와이가 에이스 스타퍼를 하게 되면, 2선에서 넓은 수비반경을 가져갈 수비수가 없어진다는 점에 있다. 알드리지까지 외곽으로 견인되어 나왔고, 상대 공격수들 전원이 뛰어난 3점 슈터이다 보니 특정 수비수에게 프리롤을 맡기기도 쉽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스몰라인업 수비는 스퍼즈에게 익숙한 패턴도 아니다.
잠시,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한 장면을 하나 더 보기로 하자.
(알드리지의 도움수비 미스와 2선 수비공백)
우선 알드리지의 움직임은 전형적인 측면 도움 수비의 움직임이다. 이 수비에서 알드리지가크게 잘못한 것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든을 압박하기 위해 도움수비 간격을 좁히는 동선을 상대가 예측해서 아리자가 컷인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장면까지는 수비에서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장면이고, 두 번 세 번 당하는 패턴도 아닐 것이기에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정작 문제는 그렇게 림으로 컷하는 아리자를 수비하기 위해 다시 코너의 오픈 상태를 열어주어야 했다는 점이다.
핵심을 정리하면 이렇다. 점프슛이 없는 카펠라나 네네가 코트에 있으면, 가솔이 페인트존 인근에서 본인의 수비거점을 용이하게 잡을 수 있다. 혹은 가솔이 벤치에 있을 때는 알드리지나 리가 동시에 코트에 나와 있으면서 한 명은 가솔의 수비포메이션을 대체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5명이 모두 3점 슈터가 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관건은 페인트존에 빅맨의 수비거점을 만들 수 있느냐 하는 데 있다.
2. 스퍼즈의 대응
스퍼즈가 5차전에 나름의 해법을 들고 왔다. 필자가 전반전은 띄엄띄엄 봤기에 전반전 상황은 충분히 알지 못하지만(전반에는 다소간 수비 패턴에 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적어도 후반전에서는 확실한 수비 변동이 나타났다.
하든이 코트에 있을 시 휴스턴의 거의 모든 공격은 미스매치 시도에서부터 시작된다. 휴스턴의 농구는 3점 농구이긴 하지만, 그 근간에서는 에이스의 슬래셔(돌파) 농구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카와이는 리그에서 프레싱 능력이 가장 압도적인 수비수이다. 손으로 볼을 긁어내는 능력이 워낙 탁월하고, 공격수가 돌파를 할 시 사이드스텝/백스텝으로 따라가는 순발력 역시 뛰어난 선수라 할 수 있다. 카와이가 막을 때와 그린이 막을 때 하든의 플레이에는 상당한 편차가 발생하며, 기본적으로 카와이를 앞에 둔 상태에서 하든의 드리블은 공격적인 성향을 그다지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하든의 모든 공격은 카와이를 떼어놓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과정은 크게 두 단계를 거친다.
- 첫째, 루 윌리엄스나 에릭 고든 같은 가드 슈터가 와서 카와이에게 스크린을 걸도록 한다. 빅맨의 스크린은 최대한 스크린을 피해서 다시 하든에게 붙고자 하는 게 카와이의 전략이고, 실제로 빅맨의 스크린은 카와이가 꽤 용이하게 피해 온 편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든이나 루윌 같은 3점 슈터는 스크린 후 바로 3점을 쏠 수 있고, 미스매치되는 수비수도 그린이나 밀스 등 수비가 되는 외곽 플레이어들이기에 그대로 미스매치를 내주는 경우가 많다.
- 둘째, 그렇게 미스매치로 카와이가 아닌 수비수와 매치업되면 하든은 다시 아리자 등을 끌고 와서 알드리지와의 미스매치를 연출한다.
(알드리지의 드랍백 & 밀스의 파이트쓰루)
이 장면은 5차전의 장면으로, 이날 스퍼즈의 수비 컨셉이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 카와이를 밀스로 스위치시키고, 알드리지와의 미스매치를 위해 다시 밀스에게 아리자가 스크린을 거는 장면이다. 이전 같으면 알드리지가 외곽으로 더 나와서 헤지 앤 리커버리를 했을 것이다. 앞으로 튀어나와서 하든을 압박한 후 밀스가 스크린을 타고 하든에게 다시 붙을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 이 장면의 특징은 알드리지가 뒤로 쳐져서 수비하고, 밀스는 하든에게 타이트하게 붙어서 스크린을 파이트쓰루(스크리너 밖으로 튀어나와서 막는 것)로 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경기 4쿼터와 연장전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밀스와 시몬스의 수비다. 가드 수비수가 스크린을 밖으로 돌아나온 후, 하든에게 빠르게 달라붙어서 (빅맨이 쳐져서 수비하기에) 바로 3점을 던질 수 없도록 압박할 수 있느냐가 수비의 주요 관건이다.
시몬스는 결정적인 스틸을 했고, 밀스는 위 화면에서 보는 것처럼 잔발의 빠른 발놀림으로 하든의 숨쉴 공간을 억제한다. 밀스의 수비에 대해서는 정규시즌 OKC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웨스트브룩을 막는 것을 보며 개인적으로 놀랐던 적이 있다. 하든은 드리블링부터 패스까지 개인기량이 너무나 탁월한 공격수다. 이런 유형의 선수는 아주 특별한 케이스가 아닌 한은 앞선에서부터 온전히 플레이를 하기 힘들 정도로 타이트하게 붙는 수비를 해줄 수 있는냐가 수비의 관건이 된다. 웨스트브룩도 마찬가지인데, 프레싱능력이 뛰어난 베벌리가 웨스트브룩에게 좋은 수비를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하다(반대로 대니 그린의 하든 수비는 매우 아쉽다).
위 장면과 비슷한 맥락에서 알드리지의 수비 위치 변동과 밀스의 뛰어난 프레싱 능력이 낳은 수비 효과에 좀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알드리지의 드랍백 & 시몬스의 위크사이드 존디펜스)
아리자가 하든의 패스를 받고 돌파하다가 코너로 패스를 빼주는 장면은 위의 네 번째 영상과 동일하다. 하지만, 수비 결과나 수비 포메이션에서 모두 큰 차이가 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봤던 영상에서는 아리자가 오픈이 된 림을 향해서 돌파를 하고 있었다. 오픈이 된 곳을 커버하기 위해 코너 수비수가 도움수비를 오자 코너로 킥아웃패스를 찔러준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알드리지가 미리 페인트존으로 내려와 있다 보니 돌파가 알드리지의 수비컨텍을 단 채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코너 수비수 카와이가 도움수비를 왔는데, 코너 오픈찬스가 났다기보다 수비수 둘에 아리자가 에워쌓였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할 듯하다. 아리자의 킥아웃 패스는 매우 수세적인 방식으로 형성되었고, 패스각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시몬스는 스틸을 시도하게 된다.
휴스턴의 스몰라인업 5명 전원이 뛰어난 3점 슈터이다 보니 스페이싱 효과가 매우 극단적이다. 이 효과로 인해 가솔이 라인업에서 배제되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반면, 5차전은 스퍼즈에서 나름의 해법을 가져와 결과적으로 승리를 이끌어냈다. 6차전에서는 양팀들이 또 어떤 변주를 가져올지 흥미롭게 지켜볼 만하다.
오늘 양팀 감독님들 짬밥위엄 제대로 보여준거같네요..하지만 후반의 하든 모습이나 카와이의 부상때문에 양팀다 다음경기에 전략이 또 바뀔꺼같네요..6차전이 휴스턴 홈이기도 하고 베벌리의 슛감이 어느정도 지속 되면 7차전갈꺼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