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가 내일 당장 은퇴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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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3-21 22:21:44
저는 커리를 포인트가드 역대 3위에 랭크할 것이고 현지의 수많은 전문가들도 제 의견에 동의할 것입니다.
실제로 작년 ESPN에서는 이미 은퇴는 아직 먼 커리를 역대 4위에 랭크하기도 했고요. 원문참조
포인트가드는 보통 팀에서 제일 작은 선수입니다. 심지어 코트에 나와있는 10명을 합쳐 제일 작은 경우도 많죠.
키가 클수록 유리한 스포츠인 농구에서, 이 제일 작은 선수인 포인트가드가 10명 중 제일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보다 한단계 위라 할 수 있는, 단순 게임 영향력이 제일 클 뿐 아니라, 본인이 자신의 능력과 스타일로 농구 경기의 패러다임을 바꿔버릴 수 있는 선수는 역대 다섯 손에 꼽기도 힘들만큼 극히 드뭅니다.
한번 꼽아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역대 모든 포인트가드를 통틀어 리그의 트렌드를 바꿔버린 포인트가드는 딱 다섯 명입니다.
첫째가 밥 쿠지.
가장 작은 신장으로 뛰어난 드리블링과 시대를 뛰어넘은 듯한 창조적인 패스로 현 포인트가드의 교과서적인 모습을 가장 잘 정형화시킨 혁신적인 선수로, 사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포인트가드는 이 밥 쿠지의 아류작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겁니다.
둘째가 오스카 로벗슨.
슈팅가드를 봐도 될만한 큰 키의 선수가 처음으로 포인트가드 포지션을 센세이션하게 만들었습니다. 역대 유일무이한 (아마도 올해 깨질) 시즌 트리플더블의 주인공이었을만큼 득점은 물론 리바운드와 어시스트에도 능했는데, 포인트가드가 리바운드에 참여하며 거기다 빅맨을 상대로 리바운드 경합에서 이기까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빅오 이전에는 어려웠을겁니다. 밥 쿠지가 정형화해놓은 포인트가드의 기존 개념은 볼을 운반하고 분배한다는 차원이었는데, 빅오는 이걸 그대로 유지하며 슬래셔+포스트 플레이어+리바운더의 요소까지 포인트가드에 첨가시켜버린거죠. 포인트가드에 대한 기존 통념을 완전 부숴버린 괴물 중 괴물이었고, 그야말로 혁명 그 자체였습니다.
세번째가 그 이름도 전설적인 그 사람입니다.
너무나 특별한 불세출의 선수라, 별명이 본명마저도 묻어버린 선수.
쿠지가 창조한 볼 핸들러+플레이메이커의 모습과 빅오가 정형화해놓은 큰 신체+올어라운드함+운동능력을 고스란히 유지하거나 심지어 더 업그레이드한채, 파워포워드 해도 될 법한 압도적인 덩치로 능란하게 드리블링하며 코트를 내달리면서, 그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던 마법같은 패스를 심지어 팀원을 보지도 않은채 사방 팔방으로 찌르는 핵폭탄같은 기괴한 생명체가 탄생하고 만겁니다.
매직 존슨은 오로지 자기 혼자만의 영역을 독야청청 개척하며 매일밤 코트를 자기의 진한 색깔로 흠뻑 적셨고 관중들은 자리에서 껑충 일어나 만세 부르고 하이파이브 하느라 타코 먹을 새도 없었습니다. 매직은 그 존재 자체로 전설이었고 타팀에게는 악몽이었으며, 존재 자체가 미스매치였습니다. 상대편 포인트가드로서는 막을 수 없었고 포인트가드 대신 신체 조건이 그나마 비슷한 스몰포워드를 매직에게 붙이느라 로테이션이 1쿼터 첫 점프볼도 하기 전에 이미 붕괴되어 있는 채로 경기를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엇박자로 드리블을 치며 태풍같이 코트 정중앙을 휩쓸고 내달리는 매직의 손끝에서 노룩 패스가 코트 어디론가 날아갈때마다 NBA 역사는 한 획 한 획씩 쓰여졌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훗날 포인트가드도 아닌 스몰포워드 포지션에서 르브론 제임스라는 또다른 괴상한 생명체가 탄생하기 전까지 이 매직 존슨의 스타일과 위력은 신성 불가침의 것이라 해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네번째는 스티브 내쉬입니다.
누가 알았을까요. 그 댈러스에서 노비츠키, 핀리랑 같이 뛰던, 꽤 쓸만하다 싶은 정도의 백인 포인트가드가 훗날 리그의 판도를 바꿔버릴줄을.
내쉬는 빅오나 매직처럼 압도적인 신체나 운동능력은 없었으나, 오로지 본인의 능력으로만 리그의 트렌드를 바꿔버리는 엄청난 센세이션을 만들어냅니다. 쿠지처럼 볼을 컨트롤하고 오픈찬스를 만들어내 어시스트를 찌르는 플레이를 하였으나 쿠지보다 훨씬 더 빠른 업템포 공격을 자신이 전개하면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만큼 독보적인 슈팅력을 탑재합니다. 디앤토니와 내쉬의 05년 만남은 제갈량을 만난 유비의 수어지교와도 같았는데, 이 내쉬승상이 이끈 2000년대 중반의 피닉스의 런앤건 농구는 혀를 내두를만큼 대단했습니다. 인바운드 되자마자 내쉬가 공을 잡으면 느닷없이 저 반대편 골대에서 선즈 선수가 골을 넣는 장면이 연출되었는데 심지어 이 과정이 인바운드 되고 단 1초만에 이루어질때도 있었습니다.
정신없이 달리고 또 달리면서 킬러 패스를 찌르면서 스스로는 마치 삼점슛 전문 슈터처럼 정확한 슈팅을 코트 아무데서나 막 던져넣는데다 자유투라인에 서면 자동 적중에 가까웠습니다. 밥 쿠지가 엄청난 스피드로 공격을 전개하며 레이 앨런처럼 삼점슛을 꽂아댄달까요. 스티브 내쉬 이전에도 이렇게 패스, 돌파, 슈팅에 빼어난 선수로는 마크 프라이스가 있었으나, 프라이스는 내쉬만큼 엄청난 속공 전개력은 없었습니다.
내쉬의 버프를 받은 선즈 전원의 능력이 상승함은 물론이었습니다. 런앤건은 한계가 있다는 패러다임을 내쉬 혼자 상당 부분 일소했다고 할 수 있는거죠. 내쉬승상이 이끄는 선즈 북벌군의 기치를 많은 팀들이 모방하기 시작했던 것도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그 속공, 그 패싱, 그 임팩트, 그 슈팅력...
백투백 mvp 시절 내쉬는 제가 라이브로 본 그 어느 포인트가드보다 뛰어난 포인트가드였습니다.
그 속공, 그 패싱, 그 임팩트, 그 슈팅력...
백투백 mvp 시절 내쉬는 제가 라이브로 본 그 어느 포인트가드보다 뛰어난 포인트가드였습니다.
10년 후 이 선수가 혜성처럼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다섯 번째가 바로 이 스테판 커리입니다.
그리고 이 커리가 지 혼자의 능력과 스타일로 헤집어놓은 NBA는 아직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커리는 내쉬가 집대성해놓았다 할 수 있는 돌파+패스+슈팅의 삼지선다를 자기만의 독보적인 능력으로 바꿔버립니다. 패스를 좀 줄이는 대신 돌파력을 극대화하고, 시그내쳐를 삼을만한 화려한 드리블링을 가미하면서, 무엇보다도 nba 역사상 있어본 적도 없는, 이 세상에서 오로지 자기만 할 수 있는, 보고 있으면 미치고 팔딱 뛸 초장거리 슈팅력을 접목시켜버립니다.
비하인드 백, 크로스오버, 더블 크로스, 비트윈더 렉, 헤지테이션 드리블을 3초만에 모두 섞어서 후두둑 쏟아내며 깐족거리며 돌아다니다 수비수가 있든 없든 수비의 존재나 림과의 거리를 깡그리 싸그리 몽땅 싹 다 무시하고 그냥 코트 아무데서나 0.2초만에 말도 안되는 초장거리 슈팅을 오프 더 드리블로 막 날려버리는 이 어처구니없는 포인트가드 한 명 앞에 리그의 모든 팀과 모든 수퍼스타들이 무릎을 꿇고야 마는, 한 10년 전까지만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만거죠.
커리는 삼점라인의 존재와는 전혀 무관하게 하프라인을 넘은 코트의 모든 지점이 편안한 풀업 슈팅 레인지였습니다. 하프라인 넘자마자 그냥 40피트 거리에서 들입다 풀업. 2초 후에는 넋 나간 수비수들을 힐끗 바라보고 이죽거리는 커리의 얄미운 미소만이 남을 뿐이었죠.
지금까지 nba에는 뛰어난 슈터들이 많았으나, 역사상 그 누구도 커리처럼
1) 그토록 화려한 드리블링을 치면서
2) 그만한 거리에서
3) 그만한 성공률로 장거리 슈팅을 소낙비처럼 터뜨리진 못했습니다.
많은 팀들이 있었으나 삼점슛을 주무기로 삼았던 팀은 극히 드뭅니다. 3점슛은 성공하면 보상은 크되 성공 확률이 낮고 기복이 심해 실패할 경우 잃는게 더 크기 때문이었죠.
커리는 이 해석 불가능하다 싶은 자신만의 독야청청 영역을 개척하며, 리그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뒤엎어버렸습니다. 점프슈팅팀이 우승할 수 없다는 공식은 커리의 손에 깨졌고요. 절대 질 것 같지 않은 무적의 포스로 팀을 이끌며 그런 말도 안되는 슈팅을 아무데서나 열화처럼 꽂아넣으며, 심지어 득점왕까지 동시에 해버린 겁니다. 이런 선수에게 역대 유일한 만장일치 mvp는 너무 당연한 것 같습니다.
삼점슛 관련된 NBA 의 모든 기록은 뭐 스테판 커리의 일기장이나 다름없이 되어버린 것 또한 당연하고요.
아이재이아 토마스, 제이슨 키드, 존 스탁튼을 많이 보았으나
이 셋은 커리만한 압도적인 선수도 아니었으며, 그런 평가를 받아본 적도 없습니다.
사실 그건 쿠지나 내쉬도 마찬가지죠.
마이클 조던은 제가 본 역대 최고의 농구선수이며, 역대 최고의 공격수입니다.
하지만 조던은 삼점라인 안으로 들어와야 무서운 반면,
커리는 하프라인 넘어오자마자 무섭습니다.
만일 내일 커리가 은퇴한다면,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보아도,
커리가 놓여야 할 올타임 랭킹은 매직과 빅오 뒤인 것 같네요.
심지어 Stephen A Smith는 매직보다 커리를 뽑겠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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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올타임은 누적이 어느정도 맞쳐주어야 해서 아직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키드의 3점성공이 아직 커리보다 앞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