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p
NBA Maniazine
/ / /
Xpert

개천에서 태어난 용

 
32
  8416
2016-08-25 21:55:29

이 글은 주로 데니스 로드맨에 대한 것으로 어제 올렸던 글의 마지막 부분에 이어집니다.


1988년 NBA 파이널 7차전에서 피스톤스는 경기종료 47초를 남기고 100-103으로 뒤진 상태에서 레이커스에게 공격권을 내줬으나 존 샐리가 제임스 워디의 레이업을 블락했고, 공을 잡은 비니 존슨은 드리블을 하다 오픈 챈스를 맞은 데니스 로드맨에게 패스했습니다. 로드맨이 공을 잡자 반대편에 자리 잡은 조 듀마스가 자신에게 볼을 달라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로드맨은 종료 40초를 남긴 오픈 챈스에서 그대로 슛을 날렸고, 림을 맞고 나온 볼은 바이런 스캇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해설을 맡은 빌리 커닝햄은 계속 로드맨을 비난했고, 카메라는 로드맨의 슛이 불발되는 순간 척 데일리(1930~2009) 감독의 절망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데일리 감독은 그 순간 손으로 얼굴을 감쌌고, 등을 제치며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부분의 영상을 첨부합니다.

https://youtu.be/TY9VvJsuGYQ

디트로이트는 종료 전에 레이커스에게 자유투를 연속으로 내줘 108-105로 통한의 눈물을 삼켰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패배의 책임 추궁은 주로 애드리언 댄틀리와 데니스 로드맨에게 집중되었습니다. 매스컴은 로드맨에게 왜 그 상황에서 당신이 슛을 날렸냐고 질문했고, 로드맨은 거의 멘붕 상태였습니다.


상식적으로 40초를 남기고 3점을 뒤진 상태에서 프로선수가 오픈 점프슛 챈스를 맞았다면 당연히 슛을 하는 게 정상입니다. 슛을 성공시켜 1점차로 만든 후 상대의 공격을 막으면 역전할 수 있는 마지막 공격 챈스가 오기 때문입니다. 티비 해설자와 기자들은 그 상황에서 로드맨은 슛을 하면 안 되는 것을 기정사실로 단정해버렸습니다. 영어에서 ill-advised 는 경솔하고 잘못된 것을 나타내는 형용사입니다. 각종 신문에서는 로드맨의 슛을 ill-advised shot이라고 표현했고, 그 표현은 현재까지 그 상황에서 로드맨의 행동에 대한 공식 용어로 굳어진 상태입니다. 그건 모두가 로드맨은 중요한 순간에 점프슛을 해서는 안 되는 반쪽짜리 선수라고 공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증표였습니다.


그 슛 때문에 로드맨은 1년 사이에 두 번째, 나쁜 일로 전국 매스컴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로드맨은 1년 전에도 전국 매스컴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피스톤스는 87년 플레이오프 동부 컨퍼런스 결승 5차전 종료직전에 래리 버드에게 통한의 스틸을 허용해서 패한 후 7차전에서도 3점 차이로 패해 결승 진출이 좌절된 바 있었습니다. 7차전 패배 후 로드맨은 기자들 앞에서 래리 버드를 맹렬히 비난했습니다. “래리 버드는 절대 위대한 선수가 아니다. 단지 백인이기 때문에 특별 대접을 받는 것이다.” 로드맨 옆에 있던 아이제이아 토머스는 그 말을 거들면서 만일 버드가 흑인이었다면 그는 just another guy 였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로드맨과 토머스는 그 발언 이후 전국 매스컴의 융단 폭격을 맞았고, 자신들이 흥분해서 터무니없는 말을 했다고 사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로드맨과 토머스의 발언은 많은 흑인 선수들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선수들이 데이비드 스턴과 NBA 사무국이 백인 팬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버드에게 특별대접을 해준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버드를 상대하는 수비수가 버드만큼 거친 플레이를 한다면 4쿼터가 시작되기도 전에 퇴장당하고 말거라는 이야기가 나돌았습니다. 심판들은 버드의 유니폼을 스치거나 그에게 입김만 불어도 반칙을 선언할 것이라는 푸념이 선수들 사이에 이미 나돌고 있었습니다. 로드맨과 토머스의 발언은 일정부분 그런 불만과 맥락을 갗이 했습니다.


그런 것들을 논외로 치더라도 디트로이트 피스톤스가 NBA의 경기패턴을 바꾼 87~88년 이후 스몰 포워드들은 80년대 중반과 그 이전의 스몰 포워드보다 올 타임 순위를 산정할 때 불이익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데니스 로드맨이 등장하기 이전에 NBA 스몰 포워드 포지션은 대부분 수비가 약하거나 수비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선수들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드리언 댄틀리, 도미닉 윌킨스, 버나드 킹, 알렉스 잉글리시, 마크 어과이어, 닥터 J 등 80년대 스몰 포워드들의 스탯이 뛰어난 것에는 그들이 서로 열심히 수비하지 않던 시대상황이 많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닥터 J는 거의 아무도 수비에 신경 쓰지 않던 ABA에서 NBA로 옮긴 이후 예년 근처에도 미치지 못하는 스탯을 기록했습니다. 래리 버드가 겪었던 가장 강한 수비수는 레이커스의 마이클 쿠퍼였는데, 쿠퍼의 수비능력은 90년대 선수와 비교해서 중간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버드에게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은 수비수는 로드맨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때 버드와 NBA 운영자들에 대한 불신이 로드맨으로 하여금 그런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게 한 것입니다.


그 발언 파동이 잠잠해지자 시카고 트리뷴 등 전국 종합지에서는 로드맨이 백인을 미워하는 인종주의자가 아니라 백인 가족의 애정과 지원 속에 스타로 성장했고, 로드맨의 가장 친한 벗은 브라이언 리치라는 백인 소년이라는 것을 보도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드라마 같은 기구한 스토리가 있는데, 이 글에서 소개하면 너무 장황해질 거 같아 시카고 트리뷴 기사로 대체합니다. 3페이지에 걸쳐 나오는 기사입니다.

http://articles.chicagotribune.com/1987-11-01/sports/8703220482_1_bryne-rich-gun-mustang-gt

데니스 로드맨이 명예전당에 입성하면서 연설한 내용 중에는 자신이 다섯 살 때 46명의 형제자매가 있었다는 말이 포함되어 이슈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월남전 참전군인이던 그의 부친은 매우 방탕했으며 로드맨이 어릴 적에 집을 떠나 필리핀으로 이주했고 40여명의 자식을 뒀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습니다. 그 직후 로드맨의 부친이 직접 ESPN의 크리스 파머에게 접촉해서 자신의 아들딸은 로드맨의 말처럼 47명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29명이라고 확인했습니다.


로드맨은 고등학교 신입생 때 농구 선수가 되려 했지만 그 전까지 공을 거의 만져본 적이 없었고, 중거리 슛은 커녕 레이업 슛도 못하던 학생이었습니다. 게다가 그의 키는 168cm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농구부에 들어가는 데 실패하자 미식축구 선수를 꿈꿨지만 학교 팀에서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로드맨은 고등학교 졸업 후 댈러스 국제공항의 야간 경비원으로 취직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175cm에 불과하던 그의 키는 3년 사이에 거의 30cm가 자랐고 22살의 늦은 나이에 Southeastern Oklahoma에서 장학생으로 농구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국 대학농구리그는 NCAA 디비전1에 속한 대학교들을 의미합니다. NBA선수들은 거의 대부분 NCAA 디비전1 대학교 출신입니다. NCAA는 전체 1,281개의 대학교가 소속되어 있고 그중 디비전1에 351개 대학교가 있습니다. 실제로 NCAA 디비전1 대학교의 스타 중에 스타플레어만 NBA에서 선수생활을 합니다. 로드맨이 선수생활을 했던 Southeastern Oklahoma는 NCAA가 아니라 거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NAIA에 속한 대학교입니다. 농구의 기본기는 약했지만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이 뛰어났던 로드맨은 NAIA 리그를 씹어먹었습니다. 그는 대학교를 3년간 다녔는데, 마지막 해의 스탯은 평균 득점 25.7에 리바운드 15.7개였습니다. 로드맨은 Southeastern Oklahoma 대학교 역사상 유일하게 NBA 드래프트에 지명된 선수입니다. 그는 1986년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전체 27번째 픽으로 디트로이트에 지명되었습니다. 로드맨은 2라운드 지명이었지만 1986년 드래프트 된 모든 선수들 중에서 (현재까지) NBA 커리어로 명예전당에 입성한 유일한 선수입니다.


로드맨의 가장 큰 행운은 프로에서 척 데일리 감독을 스승으로 만난 것이고, 자신의 능력을 가장 필요로 하는 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것입니다. 척 데일리 감독은 로드맨의 모든 약점을 철저히 감쌌고, 그의 장점을 최대로 살리는 든든한 후원자였습니다. 로드맨은 대학에서 무적의 공격력을 자랑했지만 프로 선수가 된 후 자신의 득점력이 남들보다 떨어지는 것을 자각하고 상대가 득점을 못하게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로드맨은 자신이 임자 없는 볼(리바운드, 루스볼)의 주인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볼을 잡지 못하면 자신은 댈러스 공항이나 어릴 적 끔찍했던 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1988년 파이널 7차전에서 로드맨이 ill-advised shot으로 팬들과 언론의 공격을 받을 때에도 척 데일리는 로드맨을 감쌌습니다. 그는 기자들에게 연습 때 로드맨은 아주 훌륭한 슈터였고, 3점 슛에도 명수였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데일리는 실전에서 박빙일 때 로드맨이 롱2나 3점슛을 하는 것을 가급적 막았습니다.


1992년에 척 데일리 감독이 피스톤스를 사임하고 뉴저지로 떠나자 로드맨은 크게 좌절했습니다. 로드맨은 데일리 감독을 가끔씩 신(God)이라고 불렀는데, 그날 신은 자신을 버렸다고 외쳤습니다. 그는 자신이 인생의 목표를 잃었다면서 자살하고 싶다고 동료들에게 말했습니다. 로드맨은 그 이전까지 NBA에서 가장 성실한 선수로 외부에 알려져 왔습니다. 매년 상세한 선수 리포트 책을 출간하는 릭 배리는 데니스 로드맨이 가장 완벽한 팀 플레이어라고 찬양했고, 래리 브라운 감독은 자신의 팀에 가장 데려오고 싶은 선수들 중에 로드맨을 포함시켰습니다. 하지만 척 데일리 감독이 떠나자 로드맨은 점차 좌충우돌, 통제불능의 선수로 탈바꿈했습니다. 팬들은 신선하고 즐거웠지만 로드맨을 통제해야 하는 소속 팀 감독과 코치는 죽을 맛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데일리 감독에게 어떻게 로드맨을 다스리고 통제했냐고 물었을 때 그는 다스리고 통제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 사이에 신뢰가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거기에는 못 미치지만 유사한 신뢰감이 훗날 조던과 로드맨에게 있었습니다. 로드맨과 계약연장을 포기하려는 불스 사령탑에게 조던은 그가 3연속 우승을 위해 꼭 필요한 선수라고 설득과 압박을 가했고, 결국 불스는 두 번째 쓰리핏을 이뤘습니다.




로드맨이 드래프트 된 다음해인 1987년에도 또 한명의 NAIA에 속한 대학교 출신이 드래프트에서 화제에 올랐습니다. 그도 고등학교 때 키가 작아서 NCAA 디비전1 대학교에 스카웃되지 못했던 선수였습니다. 스카티 피펜은 아칸소의 시골에서 태어났는데, 그가 어릴 적에 제지공장에 다니던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가족의 생계에 어려움이 있던 피펜은 장학금을 받으면서 선수생활을 할 수 있는 대학을 고를 수밖에 없었고, 결국 NAIA 에 속한 센트럴 아칸소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피펜은 농구 팀에서 장비를 관리하는 일자리를 맡으며 선수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대학에 와서 키가 부쩍 자라 4학년이 되었을 때는 리그의 스타플레이어로 각광받았습니다. 거의 모든 NBA 스카웃들이 NAIA 선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아무도 모르게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는 일에 열중하는 제리 크라우스는 달랐습니다.


크라우스가 보기에 피펜은 전천후 선수가 되기에 알맞은 신체조건을 가졌고 탁월한 점프력과 스피드를 보유했습니다. 1987년에 시카고는 8번과 10번 드래프트 픽의 권한이 있었으니, 크라우스는 조용히 있다가 피펜을 8번으로 뽑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드래프트 직전 워크아웃에서 피펜의 큰 활약이 있은 후에 크라우스는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팀에서 먼저 피펜을 뽑을까봐 가슴앓이를 하던 크라우스는 마침내 특단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5번 픽을 갖고 있던 시애틀 슈퍼소닉스가 버지니아 대학의 올든 폴리니스에게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고 크라우스는 솔깃한 제안을 했습니다.

“폴리니스는 5번으로 지명하기 아까운 선수이니 우리가 8번으로 뽑아주겠다. 대신 당신들은 스카티 피펜을 5번 픽으로 지명한 다음 우리와 트레이드하자. 일대일 트레이드가 아니라 우리가 다음 드래프트 지명권 하나를 붙여 주겠다.”


그렇게 해서 시애틀은 5번 픽으로 피펜을 지명한 직후, ‘폴리니스+미래 드래프트’를 받고 피펜을 시카고에 넘겼습니다. 제리 크라우스는 만족했지만 무명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너무 많은 대가를 치렀다고 언론과 팬들에게 질타를 받았습니다.


시카고의 제너럴 매니저 제리 크라우스는 이렇듯 피펜에게는 은인과 같은 사람입니다. 스카티 피펜도 센트럴 아칸소 대학교 역사상 유일한 NBA 출신입니다. 그런데 팀에 도착하자마자 피펜은 또 다른 커리어의 은인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마이클 조던입니다. 그런 면에서 피펜은 커리어 운이 가장 좋은 선수에 속했습니다.

22
Comments
2016-08-25 22:47:46

참 신기합니다
NAIA출신 두명이 한팀에서 레전드가 되었네요
저 둘 빼고 NAIA출신 농구선수는 KBL에서 뛰는 김효범 밖에 모를 정도로 소외된 리그로 압니다

WR
2016-08-26 16:57:26

로드맨이 디트로이트에서 뛰던 시절 팀메이트인 릭 마혼도 NAIA출신이었습니다. 80년대까지는 아주 드물에 NAIA출신이 NBA에 있었는데, 90년대 이후에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2016-08-25 22:50:12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어렸을때 로드맨이 그냥 아무이유 없이 좋았어요

디트때는 이야기만 듣다가 샌안 그리고 시카고때를 잠깐이나마 보면서 아무이유 없이 애착이 가는 선수입니다

물론 그의 사생활과 코트위에서 엄한 행동 마지막으로 머리에 하는 물감놀이는 별로지만요


다음에도 좋은 글 부탁드리겠습니다.

WR
2016-08-26 17:01:57

조던의 시카고에서 마지막 시즌에 구단은 통제가 불가능한 로드맨과 계약을 포기했지만 조던이 은퇴하겠다고 으름짱을 놓는 바람에 계약연장이 이뤄졌습니다. 그 시즌에 로드맨은 완전 통제불능이어서 무단으로 연습에 불참한 채 헐크 호건과 레슬링을 하고 팬들과 불상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경기당 리바운드 15개를 잡아 7년 연속 리바운드왕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코칭스태프는 인내의 한계를 보여 플레이오프에서는 스타팅 자리를 쿠코치에 내주고 로드맨을 벤치 멤버로 대기시켰습니다.

1
2016-08-25 23:27:57

매니아에서 유일하게 Damon님을 구독하고있습니다.

매번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WR
2016-08-26 17:02:13

감사합니다.^^

1
2016-08-26 10:46:25

로드맨도 그렇고... 타이슨도 그렇고...

그런 역사적인 악동 선수들은... 의외로 여리고 감성적인 부분이 있나봐요.
타이슨도 아버지처럼 따르던 트레이너가 세상을 떠나자, 통제불능이 되버렸고..
로드맨도 유사하네요.
WR
2016-08-26 17:02:44

타이슨의 트레이너는 전설적인 안젤로 던디였죠.

Updated at 2016-08-26 17:09:33

타이슨을 키워낸 스승은 커스다마토 아니였나요?;

안젤로 던디는, 무하마드 알리와 슈거레이 레너드의 트레이너로 알고 있는데..

검색해보니깐,
안젤로 던디가  다마토 사후에 타이슨이 어깨 근육을 보면 연습량이 부족한게 티가 난다고 언급했다는 말이 있네요..
WR
2016-08-26 17:18:49

그렇군요. 제가 착각했네요.

2016-08-26 11:22:17

국내에 번역된 로드맨 자서전이 있었는데 포포비치, 밥 힐, 로빈슨 등 스퍼스쪽 웬만한 인물들에 대해서는 거의 극딜을 한 반면 척 데일리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엄청난 존경심을 보여주더군요. 
2016-08-26 13:56:11

우리나라에 "나쁜녀석"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죠. 대대적인 홍보까지 하는거 보고 "와 로드맨 인기가 많긴하구나"생각했더랬죠.

좀 보려고 도서관을 찾아봤는데 없더라구요^^

WR
2016-08-26 17:05:51

국내에서 출간되었는지 몰랐습니다. 무슨 내용이 담겼을지 궁금하기는 한데, 예전에 체임벌린과 로버트슨의 자서전을 읽었을 때는 도가 지나친 자부심과 자기중심적 사고에 심하게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 괴짜 선수의 자서전은 가급적 멀리하고 있습니다.

2016-08-26 14:02:19

이 글 또한 잘 보고 갑니다.

WR
2016-08-26 17:06:06

고맙습니다.

2016-08-26 19:25:12

정말 좋은 글 감사합니다.

WR
1
2016-08-27 02:17:06

좋은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2016-08-26 23:01:46

이북리더의 페이보릿 플레이어.
생각해보면 매니아 활동을 할지도...

WR
2016-08-27 02:17:24

헉!

2016-08-27 04:14:22

조던불스에 대한 이런 배경까지는 잘 알지 못했는데 드라마로 써도 너무 드라마라서 인기없을만한 그정도 스토리의 팀이군요..

2016-08-28 20:03:06

제가 정확히 기억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마이클 조던과 시카고 불스가 두번째 쓰리핏에 도전하던 97-08시즌을 앞두고 불스 구단측에서 피펜과 로드맨,필 잭슨 감독과 같이 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는데 조던이 이들을 붙잡지 않으면 불스를 떠나 뉴욕 닉스로 이적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압력을 가해서 새시즌(97-08시즌)에도 조던이 이들과 같이 불스의 두번째 3연패에 도전하게되었다라는 내용의 기사가 국내 신문에 실렸던 기억이 납니다.그 기사를 보면서 구단까지 꼼짝 못하는거 보면 역시 조던의 위상은 대단하다라고 생각했었죠.

2016-09-05 12:18:30

어떻게 야간 경비를 했는데 키가 30센티나? 빨리 자야 큰다는 말도 다 맞는건 아니군요 ... 클놈클 인가요?

hou
54
8994
24-03-23
bos
122
28431
24-03-18
atlgsw
87
20743
24-03-18
bosden
57
7147
24-03-16
den
122
24767
24-03-14
lal
44
8578
24-02-24
den
92
18787
24-02-20
dal
80
16265
24-02-17
dal
79
8879
24-02-06
bos
54
6250
24-02-15
dal
72
11547
24-02-14
cha
69
21220
24-02-14
orl
36
6251
24-02-09
phi
42
6880
24-02-10
indphi
60
6389
24-02-08
atlbkn
45
10627
24-02-08
sas
50
16929
24-02-05
phi
46
11126
24-02-04
cle
40
12461
24-02-04
검색 대상
띄어쓰기 시 조건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