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스토리] 아버지와 아들 그 이상 - 데빈 부커
만 18세로 이번 드래프트에서 가장 어린 친구 중 하나로 꼽히는 데빈 부커의 이야기입니다.
NBA팬, 특히 피닉스 팬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겠지만 데빈 부커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잘 모를 겁니다.
데빈 부커가 NBA선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선, 부커의 NBA 비교대상 선수가 클레이 톰슨인 걸 다들 잘 알겁니다. 장점은 매우 성숙하며, 규율이 잘 잡혀있다는 겁니다. 또한, 슛팅이 매우 뛰어나고, 공격과 수비에 다 재능이 있고 최선을 다한다. 무엇보다 농구IQ가 매우 뛰어나 경기 순간마다 어떻게 플레이를 해야 할 지 잘 아는 친구라는 평입니다. 당연히 패싱능력도 좋고요.
그가 NBA 로터리픽으로 뽑힐 수 있었던 것은 부커의 재능도 있었지만 그의 포텐셜을 폭발시키기 위해 자신의 농구인생까지도 포기한 아버지, 멜빈 부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데빈 부커와 아버지 멜빈 부커를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게 분명하기에 그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데빈 부커
1996년 10월 30일생(만 18세)
슈팅가드
켄터키 대학교 1학년 중퇴
SEC 올해의 식스맨상 수상
2015년 드래프트 1라운드 피닉스 선즈 13번픽
신체사이즈
신장(신발 벗고) | 신장(신발 신고) | 몸무게 | 윙스팬 | 스탠딩 리치 |
6'4.5'' | 6'5.75'' | 206lb | 6'8.25'' | 8'6.25'' |
대학교 성적
(38경기 21.5분) 평균 10점, 47% FG%, 41.1% 3P%, 82.8 FT%, 2리바, 1.1어시, 0.4스틸
https://www.youtube.com/watch?v=NkNr6kS3WDU
멜빈 부커
1972년 8월생(만 42세)
6-1(185cm) 포인트가드
미주리 대학교 졸업
1994년 Big Eight Plyer of the Year 수상
대학교 4학년 성적
평균 18.1점, 4.5어시, 3.8리바, 1.3스틸, 50.4% FG%, 40.5% 3P%, 82.3% FT%
주요 프로경력
NBA 휴스턴, 덴버, 골든스테이트 등에서 총 32경기 평균 5.2점 2.3어시
CBA(미국 하부리그)에서 3시즌
그리고 프로 대부분을 유럽리그에서 보냄(이탈리아, 터키, 러시아)
데빈 부커의 탄생 및 유년기
아버지 멜빈 부커의 미주리 대학교 4학년 시절은 엄청났습니다. 1994년 Big Eight Player of the year에 뽑혔었고, All-American 퍼스트팀에 선정됐으며, 미주리 대학교를 광란의 3월 토너먼트 8강에 진출시켰었습니다. 당연히 NBA 드래프트에 뽑히길 기대했지만 드래프트되지 못하는 비운을 맞게 됩니다.(글렌 로빈슨, 제이슨 키드, 그랜트 힐 등이 뽑혔던 94년 드래프트입니다.)
NBA 진출이 꿈이었던 멜빈은 CBA(미국 하부리그)에서 뛰면서 기회를 엿봅니다. 그러던 중, 멜빈은 그랜드래피즈(도시, 미시간 주)의 팀에서 뛰게 되는데 여기서 데빈 부커의 어머니인 베로니카 구티에레즈를 만나게 됩니다. 베로니카는 당시 멜빈에게 그랜드래피즈를 관광시켜준 투어가이드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데빈 부커입니다.
아버지 멜빈 부커는 10일짜리 단기계약 등을 맺으며, 휴스턴, 덴버, 골스 등에서 총 32경기를 뜁니다. 하지만 NBA의 벽은 너무도 높았고, 미국 내 하부리그를 전전하고서는 아이를 부양할 만한 경제적 여건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 멜빈은 결국 꿈을 포기하고, 해외(유럽리그)로 진출하게 됩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데빈 부커가 해외생활을 많이 했을 거라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데빈 부커는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손에서 자라나며 유소년의 대부분을 미시간 주 그랜드래피즈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매년 해외리그가 끝나면(여름) 본인의 고향인 미시시피 주에서 생활을 했었는데, 베로니카는 여름마다 데빈을 아버지가 있는 미시시피로 보내서 같이 생활하게 했다고 합니다.(어머니와 아버지가 같이 살지 않았습니다.)
해외생활은 커녕 아버지와 함께 했던 기억조차도 적었던 데빈 부커였기에 아버지, 멜빈은 아들이 자신의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멜빈은 아들이 방문할 당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데빈 부커가 아버지가 해외에서 뛰는 모습을 처음으로 본 것이 12살 때였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매번 아버지가 있는 해외로 여행가는 것을 반대하다가 12살이 되어서야 겨우 허락하여, 봄방학 때 아버지가 뛰던 이탈리아를 방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아버지 멜빈은 다닐로 갈리날리(현 덴버 너겟츠)와 같은 팀에 있었습니다.
데빈 부커는 아버지 덕분에 이탈리아에서 아버지 동료들과 함께 놀러 다니고, 다닐로 갈리날리 등과 1대1 농구도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경기를 직접 보면서 데빈은 더욱 더 농구선수에 대한 꿈을 확고히 합니다.
데빈은 그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습니다.
데빈 부커의 재능과 아버지의 올인
아들의 이탈리아 방문을 통해 아버지 멜빈은 아들의 농구재능이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미 그 나이 또래에서 실력이 월등했던 데빈이었지만, 아버지는 그 이상의 포텐셜을 봤습니다.
아버지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하였습니다.
아버지 멜빈은 아들의 슛팅능력도 슛팅능력이지만 아들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농구IQ에도 주목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신체적 조건(신장, 팔길이 등)과 농구IQ는 가르쳐서 늘 수 있는 항목이 아니라는 것을요. 데빈 부커는 타고난 농구IQ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더 미래가 밝아 보이는 어린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농구재능이 출중하지만 그 재능을 만개하기 위해선 도움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멜빈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멜빈은 이런한 데빈 부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농구커리어가 마감되고 있음을 직감하였습니다.
사실, 아버지 멜빈은 당시 해외에서 몇 시즌 더 뛸 수 있는 기량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돈을 더 많이 벌고, 본인이 사랑하는 농구를 몇 년 더 할 수 있었지만 아들 데빈 부커의 성장을 위해 자신의 전부였던 농구커리어를 서둘러 정리하고, 아들에게 달려 갑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이 있는 미시시피 주로 전학하기를 권유합니다. 당시 데빈 부커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하지만 아들을 떠나보내기 싫었던 엄마 베로니카를 설득하기는 쉽지 않았고, 아들 역시도 자신이 평생 살았던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아 했습니다.
당시, 데빈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답했습니다.
아버지 멜빈은 당시 엄마와 아들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음을 토로했습니다.
엄청난 훈련량과 진정한 워크에틱의 탄생
결국 아버지에게 설득 당한 아들과 엄마는 아들을 아버지 곁으로 보내 주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아들을 공항으로 데려가는 내내 엄마는 계속 울었다고 합니다.
데빈은 이렇게 회상합니다.
데빈 부커가 도착하자마자 훈련은 바로 시작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Hard working을 역설하며 아들이 언제 어디서든 본능적으로 열심히 운동할 수 있게 몰아 붙입니다.
어떤 날들은 8시간 이상을 연습하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당시를 이렇게 말합니다.
당연히 데빈 부커는 이러한 노력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슈팅가드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특히 이 당시에 형성된 데빈의 워크에틱은 그 누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대단합니다.
내용에서 벗어나 데빈 부커의 워크에틱에 관한 일화를 간단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캔터키 대학교로 갓 입학했던 시절입니다. 켄터키는 정규시즌에 들어가기 앞서 선수들의 상태를 체크하는 테스트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런닝머신을 이용한 평가인데 각 단계별로 진행하면서 얼마나 힘든지를 확인하는 테스트입니다. 이건 단순히 선수의 몸상태를 체크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는 중간에 힘들면 중단을 하면 됩니다.
이러한 평가에서조차도 데빈 부커는 절대로 멈추지 않고, 계속 테스트를 진행합니다. 지쳐 쓰러져 다리가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달리려는 거였죠. 켄터키 대학의 그 누구도 그렇게까지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트레이너가 테스트를 중단시키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질책을 하죠. 하지만 부커는 당시를 회상하며, 자신은 스스로 포기를 외치는 선수가 아니라고 말을 합니다.
또한, 피닉스 GM 라이언 맥도너는 13번픽 데빈 부커를 소개하며, 그의 워크에틱에 관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위대하고, 헌신적이었던 아버지 훈련방법
다시 데빈이 아버지와 함께 훈련했던 시절로 돌아가 보면 아버지가 얼마나 아들을 제대로 훈련시켰고, 교육시켰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 멜빈은 아들과 함께 훈련을 했습니다. 아침 일찍 아들과 함께 해변가를 뛰었고, 체육관에서 수 없이 많은 슛들을 던졌습니다. 또 함께 웨이트트레이닝을 했었죠. 또한, 멜빈은 본인 대학교시절과 프로시절 배웠던 훈련방법들을 아들에게 접목시켜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멜빈은 자신의 친구들을 불러 아들과 함께 픽업게임도 하게 합니다. 당연히 멜빈의 친구들은 성인이며, 힘도 데빈보다 훨씬 좋은 선수들이었습니다. 종종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다른 팀이 되어 서로를 상대해야 했습니다. 언젠가 아들이 유치하게 파울이라고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드디어 아들을 시험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 멜빈은 당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또한, 포인트가드이자 뛰어난 슛터이기도 했던 아버지는 아들의 슛팅 메커니즘을 손보며 아들이 더 정교한 슛터로 변모할 수 있게 만듭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절대 말로만 가르치지 않고, 직접 슛을 던지면서 데빈 본인이 느낄 수 있게 만듭니다.
아버지 멜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데빈은 아버지한테 배운 슛의 기본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데빈 부커의 은사 캔터키 대학교 존 캘리패리 감독은 데빈의 슛팅능력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멜빈은 아들을 가르치는데 절대 적당히 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아들 데빈의 고등학교 농구시즌이 끝나면 아들을 주말마다 앨러배마주에 있는 AAU(Amature Athletic Union)팀에 합류시켜 경기를 뛰고, 훈련을 받게 하였습니다. 아버지 멜빈은 아들의 농구를 위해 주말마다 200마일(약322km)이 넘는 거리를 운전하며 아들을 AAU팀에 보냈습니다.
당시 AAU팀 감독이었던 로버트 쉐넌은 아버지 멜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을 단 한번도 훈련에 빠지게 하지 않았고, 단 한번도 아들이 지각하게 만들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또한, 아버지를 정말 호감이 가는 좋은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버지 멜빈은 코치들이 아들을 가르치는데 있어 절대 참견하지 않고 지켜만 봤다고 합니다. 단지 코치들에게 아들이 발전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끊임없이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 그 이상
아버지는 아들의 성공을 위해 무엇이든 했으며, 그런 모습을 보고 함께 생활해 온 아들은 그 누구보다 아버지를 믿는 그런 사이가 됐습니다.
AAU팀의 로버트 쉐넌은 둘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캔터키 대학교 존 캘리패리 감독은 부커 부자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멜빈은 단순히 아들을 혹독하게 훈련하고, 독설만을 내뱉으며 아들을 대하지 않았습니다. 매주 목요일 밤을 데이트 날로 정해, 두 부자는 밖으로 나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몇 시간을 같이 놀았습니다. 그 때마다 부자는 데빈의 농구에 대해, 데빈의 미래,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기서 재밌는 규칙이 있었는데 부자들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둘 다 핸드폰은 차 안에 넣어 놓고 식사를 하고 같이 노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멜빈은 데빈을 AAU팀에 데려다 주기 위해 장거리 운전을 할 때마다 차 안에서 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이 때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데빈 부커가 말하는 롤모델은 리차드 해밀턴입니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디트로이트 팀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슈팅가드 리차드 해밀턴을 동경했었고,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죽 슈팅가드로 뛰며 롤모델을 닮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데빈 부커가 진정으로 존경하고 경외하는 프로선수는 바로 아버지 멜빈 부커입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활약했던 90년대 시절의 오래된 테잎들을 계속 보고, 또 보고 자랐다고 합니다.
이들의 마지막 종착지는?
아버지의 선택은 옳았습니다. 아들은 고등학교 마지막 해, 평균 30.9점을 올리며 전미 고등학교 No.2 슈팅가드로 발돋움합니다. 그리고 전미 최고 대학교 중 하나인 캔터키 대학교로 진학을 하게 됩니다. 드디어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했던 3년간의 여정이 끝나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아들 데빈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대학교 때 인상적인 활약을 하여 드래프트 로터릭픽으로 피닉스 선즈에 선택되어 NBA로 진출합니다.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룬 것이지요.
데빈 부커의 NBA 커리어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한 선택은 옳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을 함께 이루기 위해 또 다시 빅리그에서 열심히 도전할 것입니다. 아버지한테 배운 모든 것을 잊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아버지 멜빈은 10시간이 넘게 운전을 하며 아들의 캔터키 대학교로의 전학을 돕습니다. 그리고 차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아들의 새로운 삶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홀로 미시시피 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아들이 없는 빈집을 보며 비로서 아들과 함께 했던 3년이 끝났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아들은 그만큼 성장하여 스스로의 도전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아버지 멜빈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데빈 부커의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부커 부자에 관한 기사들이 많이 있어 그것들을 인용하여 썼습니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이렇게 멋지다니 글을 쓰면서 좀 많이 부러웠네요. 부커 부자의 성공스토리가 앞으로 이어지길 바라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와 아버지가 왜이래 간지나죠??? 무슨 힙합프로듀서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