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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What if - 만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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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5-04-01 09:45:58

사실 의미없는 일이긴 하지만 스포츠에서 만약이라는 것은 때때로 진한 아쉬움과 함께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최근에 이 대표적인 사례가 2013파이널이 아닌가 싶은데요. ‘만약 포포비치가 마지막 클러치 때 던컨을 넣어서 보쉬에게 리바운드를 뺏기지 않았다면, 레이 알렌이 슛을 쏠 기회도 없었을 것이고 샌안토니오가 우승을 하지 않았을까?’ 이 가정은 당시에 정말 많이 있었던 가정인데요. 오늘은 지난 10년간 “what if” , 만약에 라는 주제로 올라온 글이 있어서 번역해 봤습니다.

의역과 오역 평어체는 양해부탁드립니다.

 

스티브 내쉬의 공식적인 은퇴 선언을 접하는 것은 무척이나 슬펐다. 그리고 은퇴선언 만큼이나 내쉬의 말년이 전성기 때에 비해 너무나 초라했다는 것 또한 너무 슬프다.

LA 레이커스는 2014-15 시즌을 앞두고 41살의 포인트가드인 스티브 내쉬를 전력에서 제외시켰다고 발표했다. 14-15 시즌은 내쉬의 계약 마지막 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구단은 그 이유가 지난 12-13시즌 내쉬가 레이커스 유니폼을 입고 뛴 2번째 경기에서 데미안 릴라드와 충돌한 이후 지속되어 온 허리와 다리 통증 때문이라고 밝혔다. 블리체 리포트의 Kevin Ding은 레이커스가 20127월에 내쉬를 데려오기 위해 썼던 드래프트 픽들과 돈 때문에 트레이드 데드라인이 지난 3월이 되어서야 은퇴를 발표한 것이라고 하였다.

내쉬의 은퇴로 인해 내쉬의 커리어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었고, 기념비적인 순간도 있었다. 그리고 만약에...’라는 가정도 해볼 수 있다. 내쉬의 18년 커리어동안, 내쉬는 많은 동료들과 뛰었고 어떤 순간에 만약 이랬다면?’ 이라는 가정을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내쉬가 2004년에 댈러스를 떠나 피닉스로 리턴하지 않았다면? 만약에 어떤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양상이 다르게 진행되었다면? 만약에 내쉬가 레이커스에서 건강을 유지했다면? 그랬다면, 내쉬가 MVP 트로피 옆에 챔피언 반지도 놓게 될 수 있었을까? 아니면 MVP도 하나도 없이 은퇴하였을까?

이 글에는 내쉬의 커리어 후반기에 관한 이랬다면?’이라는 가정들과 지난 10년간 리그에서 가장 흥미로운 몇 개의 가정들이 있다. 10개의 나비 효과를 불러온 가정들을 시간 순으로 살펴보자.

 


1. 2007 : 만약에 피닉스 선즈 선수들(보리스 디아우,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이 세미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출장정지를 당하지 않았다면?

스티브 내쉬와 피닉스 선즈의 닥치고 공격전술은 내쉬의 명성이 길이길이 기억되기 해준 전술이다. 댄토니의 지도 아래 펼쳐진 내쉬와 동료들의 ‘7초이내공격 전술은 NBA 농구에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우승반지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하지만 분명히 피닉스는 몇 번 우승 근처까지 갈 뻔한 순간들이 있었고, 2007년은 이 논쟁에서 빠질 수 없다.

피닉스는 샌안토니오와의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4차전을 104-98로 이기면서 22 타이를 이뤘다. 하지만 이 경기 뒤의 판정은 피닉스의 포스트시즌을 여기서 끝내라는 말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스퍼스의 포워드인 로버트 오리는 4쿼터 종료 직전에 내쉬를 광고판으로 거세게 민 댓가로 2경기 출장정지를 부여받았다.

오리의 결장과 내쉬의 부상은 양팀 모두에게 타격이 있으므로 쌤쌤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당시 오리의 내쉬 가격은 샌안토니오와 피닉스 선수들이 서로 신경전을 펼치게 유발했고, 내쉬의 동료들은 그를 보호하기 위해 달려나갔다.

그리고 그 중에는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와 보리스 디아우도 있었고, 이 둘은 싸우지도 않고 그 근처까지만 갔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뛰지 않고 있던 선수들이 벤치를 이탈하였다는 이유로 5차전 출장정지를 받았다.

피닉스는 이 두 빅맨이 없이도 5차전을 잡기 일보직전까지 갔지만, 4쿼터를 3223으로 내주면서 결국 8885로 패하고 파이널로 향하는 결정적인 길에서 발목을 잡혔다. 결국 샌안토니오는 6차전도 승리하면서 시리즈를 가져갔고, 서부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유타 재즈를 41, 파이널에서는 르브론의 클리블랜드를 40으로 가볍게 제압하면서 우승을 하였다.

만약 이 두 명이 퇴장당하지 않았다면 피닉스가 5차전을 잡고 결국 시리즈를 승리하면서 내쉬가 우승반지를 커리어에 하나 추가할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2. 2007 : 만약에 레이커스가 코비를 트레이드 하였다면?

코비 브라이언트도 레이커스에서 19년을 뛰면서 일촉즉발의 상황들이 있었다. 1996년 드래프트 당일에 블라디 디박 등등을 샬럿으로 보내고 코비를 받아오면서 코비의 레이커스 생활은 시작되다. 그리고 코비는 레이커스를 압박하여서 2004년에 샤킬 오닐을 마이애미로 트레이드하게 하는 등 레이커스에서 막강한 파워를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코비 중심으로 레이커스가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코비는 2007년에 트레이드될 뻔한 순간이 있었다. 브라이언트는 Grantland와의 방송 인터뷰에서 자신의 전성기를 디트로이트나 시카고에서 보낼 뻔했다는 말을 하였다.

하지만, 브라이언트는 결국 레이커스에 남았는데, 이에 대해 코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레이커스에 제가 원하는 팀들의 목록을 말했죠. 하지만 디트로이트는 그 목록에 없었어요. 그래서 트레이드를 거절했죠.”

시카고 불스는 하지만 코비가 가장 원하는 팀 중 하나였다. 하지만 ESPNChris Sheridan에 따르면 레이커스가 코비 트레이드의 댓가로 루올 뎅과 벤 고든, 타이러스 토마스와 (당시 루키) 조아킴 노아를 요구했고, 코비는 이런 핵심 전력들이 빠져나간 시카고 불스에 합류하는 것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당시 소스에 따르면, 루올 뎅은 어떤 경우에도 코비의 트레이드 상대에 포함되었어야 하지만, 코비는 계속해서 뎅이 트레이드에 포함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코비는 NBA 우승 가능성이 있는 재능들이 모여있는 팀으로 가고 싶어했던 것이다.”

결국 레이커스는 트레이드는 포기하고 코비의 요구를 들어줌으로써 트레이드 소동을 진압하게 된다. 바로 다음 시즌(2007-08)에 레이커스는 앤드류 바이넘이 무릎 부상으로 아웃되자마자 파우 가솔을 트레이드 해옴으로써 서부에서 가장 좋은 57승을 거둠과 동시에 파이널에 진출한다. 그리고 결국 2009년과 2010년 백투백 우승을 차지한다.

당시 코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 실패한 팀들은 어땠을까? 2007-08 시즌에 디트로이트는 무려 59승을 거둔다.(이 시즌 이후로 디트로이트는 올 시즌까지 한 번도 승이 패보다 많은 시즌이 없다.) 그리고 시카고 불스는 이 시즌 3349패로 로터리로 떨어지지만, 결국 2008 드래프트에서 행운의 1번픽에 당첨되고 시카고 홈타운 보이인 데릭 로즈를 데려오게 된다.

 


3. 2009 : 만약 미네소타가 커리를 두 번이나 지나치지 않았다면?

데이비드 칸 시대의 미네소타는 아직까지도 팬들이 불평할 만한 최악의 선택들을 몇 개 하였다. 먼저, 미네소타 프런트는 2011년에 러브와 5년 맥시멈 계약 대신에 4년 계약을 비교적 낮은 금액으로 체결하였다. 이는 러브가 미네소타 구단과 마음이 상하게 된 계기로 아직까지도 데이비드 칸 시대의 최악의 행보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미네소타를 떠날 것이 확실시 되었던 러브를 트레이드해서 앤드류 위긴스, 앤써니 베넷, 테디어스 영 같은 좋은 자원들을 데려온 것은 그나마 괜찮은 움직임이었다. 그런데 만약 (러브가 연장 계약을 체결할 당시) 울브스가 리키 루비오와 연장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고집부리지 않았다면, 러브는 미네소타에 남았을 수도 있다. 리키 루비오는 그 때 고작 루키였다.

하지만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또 다른 데이비드 칸의 행동이 있다. 미네소타는 2009드래프트 당시 커리를 놔두고 5번 픽으로 리키 루비오를 뽑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6번 픽까지 가지고 있었던 미네소타는 또다시 커리를 지나친다.

그럼 6번 픽으로 커리 대신 뽑은 선수는 누구냐고? 바로 시라큐스의 조니 플린이었다. 플린은 루키 시즌에 평균 13.5득점에 4.4어시스트로 준수한 활약을 펼쳤지만, 2년차 때는 D리그와 NBA를 오가다가 2011 드래프트날에 휴스턴으로 트레이드되고 만다. 그리고 2012년 여름, 미네소타가 뽑은 두 명 중 플린은 이미 NBA 리그에 살아남아 있지 못하는 선수가 되었고, 루비오는 ACL 부상을 당한다. 반면에 커리는 2012-13 시즌에 22.9득점에 6.9어시스트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현재 커리는 MVP후보, 그 중에서도 1순위로 거론되는 선수로 성장했으며 만약에 커리가 미네소타에 지명되고 러브가 팀을 떠나지 않았다면 미네소타가 가넷 시대(2003-04) 이후 11년 동안이나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4. 2010 : 만약 카멜로 앤써니가 이 해에 FA로 나왔다면?

2010년 여름은 르브론이 디시젼 쇼를 하면서 사우스 플로리다(마이애미 히트)로 팀을 옮긴 해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20143ESPN 기사에 따르면, 카멜로 앤써니 또한 이 역사적인 순간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선수가 될 수 있었다.

“2006년에 그의 짧은 생각이 2010년에 드래프트 동기들인 르브론 제임스, 크리스 보쉬, 드웨인 웨이드와 함께 FA가 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놓쳤다. 앤써니는 스스로 2011년에 FA가 되는 선택을 했는데 이는 위 3명보다 FA1년이나 늦게 되는 것이었다.”

앤써니는 위 슈퍼스타 동기들처럼 2006년에 3년의 루키 연장 계약을 맺는 대신에 5년 계약(4년 후 옵트아웃 조항 포함)을 덴버 너게츠와 체결하였고, 그때부터 꼬인 것이다.

당시 앤써니는 ESPN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그런 긴 계약을 원했고 팀이 받아들여줘서 상당히 고맙다는 인터뷰를 하였다.

그리고 4년 후, 이 계약이 앤써니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뉴욕 닉스와 계약하는 것을 간절히 원했는데, 20107월에 뉴욕은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와 5100밀의 초대형 계약을 체결한다. 앤써니는 상당히 간절했고, 결국 각종 트레이드 루머가 양산되며 소위 멜로 드라마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뉴저지 네츠로 향하는 트레이드를 거절한 앤써니는 마침내 20112월에 블록버스터 트레이드로 뉴욕 닉스로 향하게 된다.

, 이제 가정해보자. 만약 앤써니가 르브론, 웨이드, 보쉬처럼 2010년 여름에 나와서 뉴욕 닉스로 입성했다고 해보자. 그러면 앤써니의 트레이드 급부로 닉스를 떠난 윌슨 챈들러, 다닐로 갈리날리, 티모페이 모즈코프, 라이몬드 펠튼, 1라운드 지명 픽 한 장, 2라운드 픽 두 장은 그대로 닉스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랬다면, 닉스는 올 시즌 보여주는 처참한 경기력 대신에 동부 컨퍼런스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 컨텐더 팀 중 하나로 자리잡았을 것이다.

 


5. 2011 : 만약 샌안토니오가 카와이 레너드를 트레이드해서 얻어오지 않았다면?

카와이 레너드가 없었다면, 팀 던컨의 말년이 이렇게 풍요롭지는 못했을 것이다. 2014년 파이널 MVP, 2013년 히트를 상대로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들이 이를 증명한다.

이런 엄청난 재능의 카와이 레너드가 샌안토니오에 오는 과정은 순탄하지 못했다. GrantlandZach Lowe에 따르면, 드래프트 날에 조지 힐과 카와이 레너드를 트레이드하는 과정에 몇몇 장애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렉 포포비치는 조지 힐을 매물로 선수를 트레이드해오기 위해 문의를 하였고, 인디애나는 자신들이 드래프트에서 카와이 레너드를 뽑아서 이 둘을 트레이드하는 것을 제안한다. 샌안토니오도 토니 파커를 옆에서 보좌할 수 있는 선수를 찾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 레너드를 14팀이 지나칠 경우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다.(인디애나가 2011년에 가지고 있었던 픽이 드래프트 15번 픽이었습니다.)

결국 이 딜이 성사가 되었고, 이 트레이드는 현재까지도 샌안토니오 인디애나 모두에게 윈윈인 트레이드가 되고 있다. 샌안토니오로써는 포스트 던컨 시대를 책임질 스타를 데려올 수 있었고, 카와이 레너드는 이번 여름에 연장 계약이 확실시되고 있다. 20135월에 Zach Lowe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 던컨 은퇴 전에 5번째 반지를 낄 지도 모른다는 전망은 레너드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스퍼스는 파커와 조지힐 두 명의 가드가 공존하는 것보다는 레너드를 데려오는 것이 훨씬 탁월한 선택이었죠.”

그리고 레너드 본인으로써도 샌안토니오와 함께 하는 것이 자신의 커리어에 훨씬 더 좋은 길이었다. 만약 인디애나에 있었다면, 레너드는 대니 그레인져와 폴 조지에 가로막혀서 출장 시간을 많이 보장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샌안토니오에서는 팀에서 누구보다 많은 출장 시간을 부여받으면서 최근에는 고 투 가이의 면모까지 과시중이다.

 


6. 2011 : 만약 당시 크리스 폴의 레이커스 트레이드가 승인되었다면?

2011128, 이 날은 LA레이커스, 그리고 레이커스 골수 팬들에게는 잊지 못할 날이 될 것이다.

이 날은 크리스 폴이 레이커스로 가고, 파우 가솔이 휴스턴으로, 라마 오돔, 고란 드라기치, 케빈 마틴, 루이스 스콜라와 한 개의 1라운드 픽이 뉴올리언스로 향하는 초대형 트레이드를 데이비드 스턴 총재가 거부한 날이기 때문이다. 스턴이 “Basketball reasons”라는 명목으로 막은 이 트레이드는 당시 NBA에 대혼란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당시의 쇼킹보다도 그 후유증들이 상당했다.

만약 이 때 트레이드가 이루어졌다면, 레이커스는 코비의 백코트 파트너로 전성기의 크리스 폴을 가지고 있을 수 있었고, 그랬다면 드와이트 하워드가 팀을 떠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크리스 폴은 NBA의 가장 큰 프랜차이즈 팀의 빛나는 스타가 될 수 있었다. 게다가 레이커스는 팀의 중요한 자원들을 많이 소비하면서 스티브 내쉬를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휴스턴으로서도, 파우 가솔이 팀에 합류하였다면 당시 FA였던 네네가 휴스턴과 계약할 가능성도 있었고(물론 가정이지만..), 제임스 하든과 파우 가솔의 콤비를 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뉴올리언스도 이 때 크리스 폴의 반대 급부로 쟁쟁한 선수들을 많이 받아왔다면, CP3가 떠난 이후에 로터리 1번픽까지 받는 최악의 성적을 낼 일은 없었을 것이다. , 물론 그 1픽으로 앤써니 데이비스를 데려오기는 했지만..

그랜드랜드의 빌 시몬스가 12월에 이렇게 이때의 사건을 리뷰한 적이 있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알아야 할 것은 레이커스는 몰락하고 있고, 클리퍼스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휴스턴은 하워드와 하든을 보유하였고, 뉴올리언스는 여전히 리빌딩중이다. 이 모든 사건이 당시 스턴 총재가 뉴올리언스 구단주 대행으로써 내린 그 결정 때문에 일어난 엄청난 나비효과인 것이다.

 


7. 2012 : 만약에 데릭 로즈가 무릎을 다치지 않았다면?

데릭 로즈의 아웃 판장은 시카고 불스의 2011-12 시즌 전체를 나타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전해(2010-11) MVP였던 데릭 로즈는 이 시즌에는 66경기 중 27경기나 사타구니, 발목 부상으로 결장하였다. 하지만, 그래도 출장한 39경기에서는 평균 35.3분이나 소화하였다.

하지만 이 부상으로 인한 결장경기가 1라운드에서 로즈가 십자인대 파열로 아웃되면서 시카고의 시즌이 마감될 거라고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탐 티보듀 감독이 시카고가 필라델피아를 10391로 이긴 그 경기에서 막판까지도 로즈를 빼지 않으면서 로즈가 십자인대 파열을 당하였는데, 만약 미리 빼줬다면 어떻게 됐을지는 잘 모른다.

그 말은 즉, 로즈의 무릎이 멀쩡했다면 시카고는 그 해에 플레이오프 1라운드 탈락이 아닌 아주 다른 상황으로 시즌 종료를 맞이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정해보라. 2011-12 시즌에 이미 우승후보의 자리에서는 약간 멀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던 보스턴 셀틱스도 마이애미 히트를 7차전까지 몰아붙였다. 시카고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마이애미와 만났다면 그들을 물리치고 파이널에 올랐을지도 모른다고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이 해에 시카고 불스는 샌안토니오와 함께 리그에서 가장 좋은 정규시즌 성적을 낸 팀이고, 수비는 리그 전체 1, 공격은 전체 5위를 차지한 강팀이었다.

이 해에 허무하게 대권 도전이 좌절되고, 어느 누가 로즈가 그 다음 시즌까지 통째로 날릴 것이라고 예상했겠는가? 그리고 201311월에 또 다른 무릎 부상으로 아웃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만약 로즈가 계속 건강하게 있었다면 시카고가 루올 뎅을 트레이드했을까?

제기랄..로즈처럼 이렇게 길게 부상과 재활을 반복한 선수가 몇 명이나 있는가?

 


8. 만약에 제임스 하든이 오클라호마 시티에 남았다면?

말하기에 앞서, 제임스 하든의 만약에는 크리스 폴이 레이커스로 가지 않고 클리퍼스로 가게 된 데이비드 스턴의 결정이 없었다면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제임스 하든이 2012 10월에 오클라호마 시티 썬더를 떠난 일은 지금까지도 미디어에서 반복적으로 보도하는 대표적인 만약에사건이다.

야후 스포츠의 Adrian Wojnarowski에 따르면, 2012년 여름에 4년 총액 52밀리언의 계약을 제시한 오클라호마 시티와 460밀리언을 고집한 하든 측과 의견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썬더는 이후에 54밀리언까지 제시하였지만 대신에 1시간 이내에 OKC에 남을 건지 휴스턴으로 떠날 건지를 결정하라고 했다고 한다.

하든은 당연히, 떠나는 쪽을 택했다. 썬더는 하든의 반대급부로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자원들만 받아왔다.(케빈 마틴, 제레미 램, 3장의 픽 스티브 아담스, 미치 맥게리, 한 장의 2라운드 픽)

하든과 함께 했다면, OKC는 적어도 한 개의 우승 트로피는 차지했을 지도 모른다. 적어도, 썬더는 듀란트, 웨스트브룩, 하든이라는 3명의 올스타 선수를 보유했을 것이고, 준 올스타인 서지 이바카와 이들을 보좌해줄 몇몇 유망주들을 데리고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썬더는 하든이 떠나고 지난 2년간 플레이오프에서 좌절을 맛보았다. 2013년에는 웨스트브룩이 플레이오프 도중 무릎 부상으로 아웃되면서 탈락하였고, 작년에는 이바카의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올시즌 역시 듀란트는 아웃이 확정되었고, 이바카의 복귀 여부도 불투명하다. 하든은 물론 훌륭한 선수지만, 하든이 의사가 아닌 이상 이러한 줄부상까지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고 결국 하든이 있었더라도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렸을 지는 의문이기는 하다.

ESPNRoyce Young는 하든이 남기고 간 유산들로는 OKC의 선수 뎁쓰가 깊어지지는 않고 있다고 하였다.

“OKC가 하든의 반대급부로 받아온 선수들은 지금 하든의 MVP급 활약에 비하면 가치가 상당히 낮은 선수들이다.(물론, 스티브 아담스와 미치 맥게리는 좋은 선수들이지만..) 하지만, 프레스티 단장은 올 시즌에 이들 외에 다른 유동성있는 선수들을 이용해서 좋은 트레이드를 2개나 하였다. 프레스티는 랜스 토마스와 보호가 강한 1라운드 픽만을 이용해서 디온 웨이터스를 데려왔다. 그리고 미래를 봤을 때 길게 끌고 갈 자원이 아니었던 켄트릭 퍼킨스와 팀에서 마음이 떠난 레지 잭슨을 이용해서 에네스 칸터, DJ 어거스틴, 카일 싱글러, 스티브 노박을 데려왔다.

그렇다면, 떠나기 전에 식스맨 상까지 수상한 바 있는 제임스 하든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자신의 기량을 맘껏 펼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좋았을까 아니면 OKC에서 편하게 벤치멤버로 나오는 게 좋았을까. 켄트릭 퍼킨스는 블리처 리포트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단호히 말하건대, 하든은 자신의 팀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웨스트브룩과 듀란트 밑에서는 기량을 만개할 수가 없었겠죠. 그래서 지금 휴스턴에서 하는 것처럼 자신이 에이스가 될 수 있는 자신만의 팀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OKC로써는 아직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는 하든의 자리를 채울 선수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9. 2013 : 만약에 스티브 내쉬가 다리를 다치지 않았다면?

LA 레이커스는 2012년 여름, 스티브 내쉬를 데려오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4장의 드래프트 픽(2개의 1라운드, 2개의 2라운드)을 소진하고 내쉬 연봉을 3년간 28밀리언이나 부담해주기로 한 끝에 레이커스는 백투백 MVP 수상자인 내쉬를 디비젼 라이벌로부터 데려올 수 있었다. ESPNMark Stein20127월에 이렇게 쓴 바 있다.

레이커스는 이미 샐러리 캡을 넘은 구단이었고, 내쉬를 데려오기 위한 방법은 딱 한가지 뿐이었다. 라마 오돔을 댈러스로 보내면서 얻은 8.9밀의 트레이드 익셉션. 그리고 이 트레이드를 피닉스가 승인했을 때는 피닉스 팬들의 분노는 엄청났다.”

그리고 미치 컵책을 비롯한 레이커스의 관계자, 팬들의 꿈은 내쉬의 레이커스에서의 첫 시즌인 2012-13 시즌 두 번째 경기에서 데미언 릴라드와의 충돌로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이 충돌은 내쉬의 다리를 부러뜨렸으며, 기존에 이미 겪고 있던 신경 부상까지 더 악화시킬 수 있는 민감한 부상이었다. Sports IllustratedLee Jenkins는 이 부상은 내쉬가 견디기에는 상당히 큰 부상이라고 말했다.

내쉬의 말년인 LA에서의 3년은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내쉬의 허리 신경 부상은 그가 경기중에 스피드를 올리거나 방향을 바꿀 때면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속공 상황은 내쉬에게 고난이었고, 원정 경기를 떠나는 것 또한 견디기 힘들었다. 이러한 신경 통증은 햄스트링에도 부담이 가게 했다. 그리고 설령 이러한 아픔들을 참아낸다 하더라도, 자신의 기량이 저하되는 것은 막지 못했다. 그는 스크린을 타고 나와서 경기를 이끌던 때의 민첩성을 거의 상실했다. 결국 내쉬는 자신을 세상에 알린 그 주무기를 더 이상 쓸 수 없게 됨으로써 더 이상 내쉬가 아니게 됐다.”

물론, 내쉬는 이러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첫 시즌에 50경기나 소화하기는 했다. 하지만 정규시즌 막판 내쉬의 결장은 코비에게 레이커스를 플레이오프로 이끌어야 한다는 더 막중한 책임감을 부여했다. 결국 상당히 많은 출장시간을 가져가면서 무리를 한 코비는 아킬레스 건 부상을 당하면서 정작 중요한 플레이오프 무대에는 설 수 없게 되었다.

만약 내쉬가 그 때 다리가 부러지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올스타 선수로 남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랬다면, 드와이트 하워드에게 위닝팀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면서 연장 계약도 맺을 수 있었을까?

물론, 드와이트 하워드는 표면적으로는 코비와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팀을 떠난 것이 맞다. 그리고 내쉬는 다리를 다치기 전부터 이미 판타스틱 4의 포인트가드로 뛰기에는 맞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이 있었기는 하다.

 


10. 2014 : 만약에 클리블랜드가 1번픽을 모으지 못했다면?

클리블랜드 캐빌리어스는 르브론 제임스가 사우스 비치로 떠나있던 2011-2014년까지 충분히 안 좋은 성적을 거둠으로써 매 해 드래프트에서 높은 픽들을 받았다. 클리블랜드는 이 4년 동안 승률이 31.1%로 이 기간 승률이 30개 팀 가운데 26위이다.

하지만, 그래도 4년 동안 3번이나 1번픽을 손에 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2011년에 클리블랜드는 1번픽을 가져갈 확률이 2번째로 높은 팀이었지만 4순위로 미끄러지고 만다. 하지만, 클리블랜드는 배런 데이비스의 샐러리 더미를 떠안는 대신에 클리퍼스의 픽을 받았었다. 그리고 이 클리퍼스의 픽은 1순위 확률이 8번째 밖에 안되는 낮은 확률이었지만 기적적으로 1픽이 된다. 결국 클리블랜드는 이 픽으로 듀크의 카이리 어빙을, 자신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4픽으로는 텍사스의 트리스탄 탐슨을 지명한다.

2012년에는 클리블랜드는 1픽 확률이 3순위였지만, 4순위로 미끄러지고, 이 픽으로 클리블랜드는 시라큐스의 식스맨이었던 디온 웨이터스를 지명한다. 이 해 1픽은 뉴올리언스가 차지한다.(앤써니 데이비스)

다음 해에 클리블랜드는 또다시 1번 픽이 걸리면서 UNLV의 앤써니 베넷을 지명한다.

하지만 2014년 드래프트만큼 기적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클리블랜드는 13-14시즌에 3349패로 꽤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1번픽이 걸릴 확률은 전체 9순위밖에 되지 않는 희박한 상황에서 또다시 1번픽이 걸린다. 그리고 캔자스의 앤드류 위긴스를 지명한다.

이러한 연속 1번픽으로 인한 유능한 자원들이 집결한 클리블랜드는 르브론 제임스가 고향으로 리턴할 만한 큰 이유가 되었다. 물론, 파이널에서 샌안토니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면서 히트에서의 영광의 시대가 끝나간다는 것을 직감한 탓도 있을 테지만. 르브론 또한 Sports Illustrated에 자신이 클리블랜드 리턴에 흥미를 보인 이유가 최근 드래프트 결과 때문이라고 한 바 있다.

저는 스스로 유망주들의 멘토가 되고 이 재능있는 선수들의 리더가 되는 데 흥미가 있습니다. 저는 카이리 어빙을 리그 넘버원 포인트가드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고, 트리스탄 탐슨과 디온 웨이터스의 실력 향상에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죠.”

하지만 웨이터스는 시즌 도중에 3각 트레이드에 연루되어 팀을 떠나고 JR 스미스와 이만 슘퍼트가 합류한다. 그리고 위긴스와 베넷은 케빈 러브를 얻는 데 쓰인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러브는 제임스와 공존하는 데 불편함을 겪고 있다.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은, 드래프트에서의 행운들이 없었다면, 아직까지도 클리블랜드는 르브론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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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5-04-01 12:48:35

만약에 0809시즌에 가넷이 무릎을 다치지 않았다면?

2015-04-01 15:21:41

보스턴의 쓰리핏이 나왔을수도..

2015-04-01 13:17:4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15-04-01 16:46:21

지노빌리가 노비츠키에게 파울하지 않았다면

WR
2015-04-01 16:48:56

스퍼스의 쓰리핏?

Updated at 2015-04-01 16:52:38

하하, 라존롼도님의 번역글 아주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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