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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유망주였던 정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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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5-05-07 02:07:46

아래에 정훈 이야기가 언급된 김에 얹혀가는 기분으로 이야기 좀 해볼께요.

정훈(199.2cm)은 초등학교때 육상부터 시작해서 리틀야구선수로 활약하다(리틀야구단시절 친구는 장성호) 중학교 1학년때 운동 그만두고 일반 학생으로 지내다가, 고1때 박성근씨의 눈에 띄어(당시 키가 192cm에 팔다리 길쭉길쭉한 일명 네덜란드인 체형) 뒤늦게 명지고때 정식농구부에 입문합니다.

명지고 1학년 후반기에 정식부에 입문, 1년을 쉬며 농구 기본기훈련을 쌓고,
고2때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되었으며 명지고 3학년때 박성근씨를 따라 낙생고로 전학갑니다.

반년간은 전학생 패널티로 경기출전을 못했고, 낙생고는 후반기에 고교대회 3개를 석권하며 한순간에 고교농구 최강자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 당시 낙생고 주전선수들을 살펴보면,

전병석-진경석-이근석-이한권-정훈.. 이었는데요. 정훈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이 모두다 공격지향적인 선수들이었고,

사실 정훈은 국제전에서 잠시 잠깐을 제외하곤 제대로 가드로 뛴적은 없지만,

정훈의 가드 성향, 패스 선호적인 마인드는 처음 시작하던 단계인 이때 뿌리박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구리구리 연예인 양동근을 닮았다는 말도 듣는 전병석은 서전트 1m의 고탄력 선수로도 알려져있는데,
상당한 공격지향적 가드였고,

일명 성균관대로 같이 진학한 일명 낙생트리오외에 좀 생소할 수 있는 이근석 선수는 고등부시절 198cm의 프로필키에 슛거리도 길었던 맘먹으면 경기당 25점 이상은 밥먹듯 넣었던 대표적인 스코어러 선수였지요.


정훈은 명지고-낙생고 시절 포지션은 센터였지만 처음부터 리바운드와 불낙외에 공격적인 롤에서는 피딩, 패스를 우선시 하는 선수였고 4명의 주전이 자기공격성향이 강한 구성에서 정훈의 그러한 역할로 인해 팀이 더 강해지는 효과는 분명히 있었지요.


처음부터 패서, 가드를 희망했던 정훈에게, 박성근 감독은 성균관대 감독으로 부임하며, 대학까지 함께 같이가면 대학에선 가드시켜주께 하고 꼬득여서 정훈을 성대로 계속 같이 데려갑니다. 하지만 성대에서 졸업때까지 단 한번도 가드를 시켜주진 않았지요.


정훈이 프로데뷔전 장신가드란 말이 나온건 그의 가드지향 마인드와 잠시잠깐 나오는 플레이 성향을 본, 당시 대학부 팬들이 붙여준 것이었을 뿐입니다.


정훈은 대학시절 간간히 명지고시절 1년후배 김동우와의 1:1 다득점 대결을 펼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스스로 적극적 개인공격플레이를 자제하고 팀플레이에 우선하는 성향탓에 주로 팀공격의 3옵션이었습니다. 그러다 팀이 크게 패하고 있으면 그때서야 팀의 공격 제1옵션으로 올라와 스스로 적극적으로 자기공격을 펼치던 선수였지요.(농구대잔치에서의 상무 현주엽과의 다득점 대결 등등)

그래서 항간엔 정훈이 다득점 하는 날은 성대가 크게 패하는 날이라는 그닥 좋지 않은 늬앙스의 소문이 붙어다니기도 했어요.


정훈이 소속학교에서 제대로 가드로 뛰어보진 못했지만,
그나마 국제전에선 가드로 뛰며, 의외로 괜찮은 활약상을 펼치기도 합니다.


아래에는 정훈의 대학시절 국제전 활약상을 좀 길게 언급해볼까 합니다.




윗 짤은 00년 존스컵때(대학선발+상무 조합팀으로 구성)의 것으로 과거 중앙대 팬싸이트이던 드래곤바스켓싸이트에 올라와 있던 것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


2000년 7월에 치뤄진 제23회 대만 존스컵 대회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면,

당시 감독은 상무감독이었던 추일승 감독이었고, 대학+상무의 조합으로 출전했었습니다.

한국은 대만B, 코스타리카, 남아프리카공화국, 뉴질랜드 와 더블어 예선 B조에 편성되었고

조예선에서..
한국 86 : 66 남아프리카공화국
한국 85 : 58 대만B
한국 89 : 69 코스타리카
한국 54 : 71 뉴질랜드

.. 3승1패의 조예선 성적으로 조2위로 준결승(4강)토너먼트에 올라갔으며


A조 1위었던 실질적 대만 국가대표팀인 대만 A팀을 상대로 87 : 78로 격파하고...


결승에서 (예선에서 패한 상대인) 뉴질랜드와 리턴매치를 하여 67 - 78 로 패하고 준우승을 차지했었습니다.
.

이때 한국을 두번이나 꺽고 우승을 차지한 뉴질랜드 대표팀이 바로, 불과 2년후 2002년 세계선수권에서 4위의 돌풍을 일으킨 그 팀의 리빌딩 과정중의 팀이었었지요..


여기서 정훈은 6경기에서 평균 16.8분 출전 6.3점 (3P% : 33.3%[6/18]) 1.8리바 1.0어시 0.5스틸의 스탯을 찍었는데요..
(당시 존스컵 감독이었던 추일패 상무감독은 훈이를 스읭맨으로 활용하였고, NBA 서머리그에 참여하는 등 NBA진출을 노렸던 탈아시아급 첸신안 등을 잘 수비하고, 경기운영시 윤활유 역할도 잘 해내며 좋은 활약을 펼쳤었지요.)

당시 주전은 김승현(전형수)-김병철(상무)(이형주)-정훈(박재일)-송영진(김태완)-김주성.. 이었습니다..

일견 스탯이 대단치는 않아보일 수도 있지만, 예선전에서 25득점 전후로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던 대만A팀의 에이스 첸신안을 전담수비하여, 단 6점으로 꽁꽁 틀어묵는 수비로 팀승리에 공헌하는 등 스탯이상의 공헌도가 높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다음 2001년 5월 동아시아대회때에는,

한국, 일본, 대만, 몽고, 호주, 중국, 카자흐스탄이 대회에 나와 돌아가며 1경기씩 붙고 그 성적에 따라 4강을 편성하여 준결승, 결승전을 치루는 방식이었는데요.

정훈은 몽고전에는 출전치 않아 팀의 6경기 중 5경기에 나왔었구요.

정훈의 경기별 스탯은,

일본전 40분 16점(3P : 3/7) 8리바 5어시 3스틸
대만전 31.5분 14점(3P : 2/3) 5리바 2어시 3블락
호주전 32.5분 10점(3P : 1/8) 5리바 2어시 1스틸
중국전 18분 13점(3P : 3/6) 8리바 2어시 1스틸 (후반전 포인트가드로 뜀)
카자흐전 32.5분 13점(3P : 1/7) 7리바 2어시 1스틸

입니다.

평균 30.9분 13.2점(3P : 10/31.. 32.25%) 6.6리바 2.6어시 1.2스틸 0.6블락의 평스탯이었고,


특히 후웨이동-왕즈즈-야오밍이 모두 뛴 역대최강 중국팀을 상대로 아시아팀으로 유일무이하게 승리하는데에 있어 후반전 포인트가드로 출격하여 큰 공헌을 세웠지요.(중국전 후반전 정훈-김동우-송영진-김태완-김주성의 주전 라인업, 이때 코칭스탭인 김남기씨는 당시 중국전에서 정훈이 포인트가드로서 수비와 김주성과의 2:2플레이를 참 잘 소화해내주었다고 칭찬합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보기엔 여러모로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참 다재다능한 선수라고 칭찬을 많이 했었지요.)




이 위짤은 01년 유니버시아드 대회때 전체 기록표로 역시 드래곤바스켓에 올라왔던 것을 간직하고 있던 것입니다.


2001년 8월 유니버시아드 대회

스웨덴, 멕시코, 영국, 브라질, 미국, 우크라이나와 각각 경기를 치뤘습니다(총 6경기)


위 전체 스탯표를 참고하시고,
훈이는 6경기 모두 나와 평균 12.67점(팀내 3위) 4.0리바(팀내 2위) 1.3어시(팀내 3위) 0.5스틸, 3점슛률 20.1%(5/24)의 스탯을 찍었었는데요...

 
특히 비록 지역대표로만 출전했지만, 장신에 피지컬이 강한 미국전에서 장신 스윙맨으로 뛰며 무한 돌파로 자유투를 무려 11개나 얻어내는 활약(10개 성공)과 19점을 넣어, 국제전에서 통할 수 있는 장신 슬래셔(또는 스윙맨)으로 아마팬들에게 인정받기도 했었지요...



프로에서 2순위로 정훈을 지명한 이는 다름아닌 박수교씨였는데,
물론 감독으로서는 팀을 망하게 하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훈을 2순위로 지명한 다음의 코멘트는, "훈이를 장신가드로 잘 키워서 써보겠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곧 박수교씨는 모비스 감독에서 해임되고 이후 부임한, 연세대시절 분업화농구를 맞춰나갔던 최희암감독과는 아무래도 궁합이 맞지 않았습니다. 결과를 떠나 정훈 본인에게는 차라리 박수교 감독 밑에서 뛰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물론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감독이 어떻든 뛰어난 선수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역할을 제대로 다하며 코트에서 빛을 발해야 하는 게 맞는 말이긴 하나, 농구구력이 길지 않고, 소극적 성향의 정훈은 사실 어느정도 관리가 필요한 선수였지요.


프로에서 가드로서 능력미달로 판명되었다지만,
사실 프로에서조차 제대로 가드로 뛰어본적이 없었지요.

모비스 데뷔시즌 후반부에 잠시 가드용병을 수비하는 수비형 슈팅가드로의 롤을 맡은바 있고, 그나마 그러면서 좀 살아나긴 했었습니다만...


그 큰 키(맨발 199.2cm)때문에 최희암감독과 전창진 감독밑에서 4번 용병을 수비하는 식스맨 파워포워드 역할을 주로 했었고, 허재감독밑에서 뒤늦게 3번롤을 부여받지만, 그 시점에서 이미 속된말로 폼이 다 무너진 다음이었습니다.

그 폼이 다 무너진, 속된말로 이미 회생불능의 망가진 이후 3번으로 뛰는 그를 보고 드리블이 너무 높고 애초에 가드볼 자질이 부족하다고 평하는 것도, 성균관대시절 낮고 빠른 드리블로 돌파하던 그를 기억하는 입장에선 아무리 대학과 프로의 레벨을 생각하더라도 아쉬움이 남더군요.

국제전에서 가드역할을 잘 소화해내었던 것도 그의 숨겨진 능력중의 하나였었을테니까요.

물론 어째꺼나 저째꺼나 결국 스스로 꽃피워내지 못하고 종료된 상황에서 이런 저런 사정을 아쉬워 하는건, 속된말로 죽은자식 부랄만지기격밖에 안된다는 것을 잘 알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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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Updated at 2015-05-03 15:27:31

비슷한 유형이였지만 아킬래스건 파열후 운동능력을 상실한 김동우가 프로에서 살아남은것만 봐도 정훈은 기량미달이거나 멘탈이부족했던게 아닐까요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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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5-05-03 15:42:26

정훈과 김동우(195.2cm)는 명지고때 1년 선후배사이에 대학때에도 자주 비교되어지던 비슷한 유형의 선수같지만,


마인드나 플레이스타일은 완전히 달랐지요.
박성근씨가 명지고에서 낙생고감독으로 옮겨갈때 명지고의 알짜배기 선수들을 다 빼어가면서 홀로 남은 김동우는 역시나 구력은 짧았지만 고1(당시 188cm)때부터 에이스역할을 부여받으며 자기공격을 마음대로 펼쳤던 선수였고, 연세대때에도 1학년때부터 에이스롤을 부여받았던 선수였지요.

평생 자기가 희망했던 포지션에서(실제로 정훈은 포인트가드로 뛰어보고 싶다는 의력을 피력하기도 했었습니다.) 뛰어보지 못한 정훈에 비해 김동우는 고교-대학-프로에서 3~3.5번으로 마음껏 뛰었었구요.

소심하고 소극적인 마인드나 멘탈이 부족했던 거라면, 물론 맞는 말씀이긴 합니다. 그러면서도 고등부때부터 지켜봤던 선수였고, 재능이 전혀 없던 선수도 아니었던 지라, 그저 일개 무명팬의 개인적 아쉬움일 뿐인거지요.
2015-05-03 18:38:17

개인적으로 좋아(기대)하던 선수였는데 빛을 못보는게 너무 아쉬웠던 기억이있네요

2015-05-03 21:45:57

그 유명한 낙생고 3인방이... 정훈이 전학 후


후반기에 일궈낸 작품이로군요...


김동우가 명지고 시절 1년 후배라는것도 처음 알았네요..


정훈 이름만 들어도 아련한 그 이름

2015-05-03 22:36:33

 좀 다른 이야기인데 옛날에는 확실히 장신포가에 대한 로망이 대단했습니다. 미국에서도 페니부터 숀 리빙스턴까지 2m포가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왔구요. 매직존슨의 영향인가? 포가만 커지면 모든 선수들을 다 큰 선수로 도배할수 있다는 점 때문인지... 



 2m의 포가 리빙스턴, 2m 10의 슈팅가드 조나단 벤더, 그리고 7피트의 스몰포워드 케빈 가넷 등등.... 이렇게 가다간 농구는 정말 더욱더 일반인과는 거리가 먼 거인들의 스포츠가 되는거 아닌가 했는데 요즘보면 도리어 단신포가가 옛날보다 더 잘나가고 슈팅가드들의 키도 전체적으로 좀더 작아 졌더라구요. 물론 NBA기준으로 말입니다. 너무 키에 대한 로망이 과했던 것인지... 
WR
1
Updated at 2015-05-03 23:44:45

우리나라도 80년대 초반엔 장신 리딩가드들이 제법 많이 등장했었습니다.

프로필키가 최대 192까지 표기되던 신동찬 이후, 명지대에서 리딩가드 맡고 현대전자 입단 초기에도 가드였던 이문규(신선우의 2차 은퇴이후 골밑이 약해지자 장신에 웨이트 좋던 이문규가 빅맨으로 전향했죠.)

그리고 대학 졸업반때 김현준보다 더 실업의 관심세례를 받았던 이민현, 그리고 약관의 나이에 국대 리딩가드를 꿰찬 허재까지 계속해서 등장했었지요.

이들의 키가 모두 당시로는 센터급에서 최소 장신 포워드급 키였던지라, 요즘 우리나라 농구쪽으로 키보정을 해보면 거의 190대 극후반 이상의 포인트가드로 볼 수 도 있겠지요.

NBA에서도 페니가 부상없이 기대치를 충족해줬다면, 장신가드 열풍이 아마 더 오래오래 이어졌겠지요.

2015-05-04 00:17:33

그 길쭉함과 풀업점퍼가 티맥같아서 정맥이라고 좋아하던게 엊그제같은데... 아련하네요

Updated at 2015-05-04 01:12:23
   그동안 정훈 하면 정말 선수의 창의성과 개성을 무시하는 한국 농구의
최대 피해자라고 생각 했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군요.

   그냥 애매하게 큰 키로 부흥을 누렸던 대학 센터 선수가 KBL 외국인선수
2인 보유 2인 출전의 국내 빅맨 초토화 미래를 걱정하던 중에 국가 대표에 뽑혀
포워드 농구 성애자 추일승의 포워드 시스템(센터도 외곽 플레이 해야하고, 드리블 해야하는)
과 김주성의 버프를 받아 그동안 잠재해 있던 포인트 가드 꿈을 안고 KBL에서 포지션 변경하여
별다른 스킬셋 없이 이도 저도 아니고 붕붕 떠서 유야무야하게 사라진 이야기인거군요.

   프로에 입단하기 전까지 한번도 정식 포인트 가드였던 적이 없었다는 것도 오늘
처음알았네요. 저는 프로에 입단해서 가드라고 하길래 그전부터 가드인줄 알았는데
정말 충격적입니다. 게다가 구력이 짧다는 것도 오늘 처음알았습니다. 다소 충격적입니다.
그래도 그가 왜 포지션 변경을 하려고 했는지는 충분히 이해 합니다. 전년도 1순위 송영진
그전년도 1순위 이규섭이 프로에서 어떻게 되었는지 봤을테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패스 성향과 동료들을 살려주는 플레이를 하고 싶다고 해도 포인트 가드
전향을 하기 보다는 수비형 빅맨으로 성장했으면 어땧을까 싶네요. 참 안타깝네요.

외국인 선수 2인 보유 2인 출전 제도의 국내 빅맨 피해 사례 중 하나군요.
진짜 프론트 코트 한 명, 백코트 한 명씩 뽑아야 할텐데..





2015-05-04 02:08:05

정훈이 구력이 짧은것 유명했죠. 그래서 가드는 애시당초 힘들다고 보는 사람도 많았고 잘 풀렸으면 포인트포워드로 풀렸으면 좋았는데. 수비가 문제였죠. 가드도 센터도 포워드도 제대로 못막는바람에 이도저도 아니게 되었고 막판에 오리온스가서 추감독이 왔는데도 못살려서 모든 정훈팬들이 포기했죠.

WR
1
Updated at 2015-05-04 14:53:38
제가 정훈의 속마음까지 속속들이 다 알지는 못하지만, 굳이 이규섭과 송영진의 사례를 보고 포인트가드를 희망한건 아니라 봅니다.

이미 본문에 언급드렸듯 정훈이 자기공격보다 팀동료에게 패스하는 플레이를 즐긴건, 농구를 정식으로 배우고 1년만에 실전투입되었을 시작단계부터였습니다. 이 부분은 이미 언급한바 있으니 생략하구요.


이규섭은 00년도 드래프티로 00-01시즌 데뷔하였는데, 데뷔시즌 파워포워드로 꽤 잘 했습니다. 삼성의 우승때 주전 파워포워드로 뛰었고 신인선수상도 수상했지요. 이규섭이 슈터로 변신한건 군대다녀와서 서장훈이 삼성에 입단해있던 상황인 04-05시즌이후부터였습니다.


01드래프티로 01-02시즌 데뷔한 송영진의 경우,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지만 데뷔전 비시즌때 원래 장이 약한 선수였는데 무리하게 살찌우려다 계속에서 장에서 탈이나고, 파워보강은 별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래 최대강점인 운동능력과 활동량을 상실해버린게 실패의 원인이었지요.


정훈은 이미 고3때인 97년에 포인트가드를 선호했던 선수였고, 본문에 살짝 운을 띄웠지만 자세히 언급드리진 않았는데, 그때 이미 포인트가드로 뛸 수 있는 대학을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97년 고등부 최고팀 낙생고의 주전선수였고, 청소년대표 출신에, 잘 달리고 다재다능하다고 알려진 정훈의 경우, 여러 대학에서도 꽤 관심을 많이 받았지요. 당시 성균관대는 대학1부에서 밑바닥 팀이었구요.

그런데 정훈 등 낙생3인방의 졸업과 동시에 성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 박성근씨가, 정훈에게 포인트가드 시켜주께 하는 사탕으로 꼬셨던 거죠.


물론 정훈이 성대에서 4년내내 포지션은 센터였지만, 골밑에만 죽치고 있던 선수는 아니었고,
포인트가드를 도와 볼운반도 가끔 보조하고, 외곽으로 나와 패스도 찔러넣어주고, 활동범위가 매우 넓었었어요.


별다른 스킬셋이 없었다지만,
아시아 역대 최강팀을 상대로, 1번으로서 별 경험도 없고 농구자체의 구력도 짧은 선수가, 포인트가드로서 후반전 승부처를 잘 이끌었던 점은 재능이 전혀 없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지요. 아무리 김주성 버프가 있었다 해도 또한 아무나 할 수 있는 역할은 아니었지요.
(물론 그때 정훈을 깜짝 포인트가드로 잘 쓰고 칭찬 많이했던 김남기씨도 프로에서 이미 회생불능의 정훈을 되살리진 못하더군요.)

학생부 팬들이 한두경기 보고 정훈을 장신가드로 염원했던것이 아닙니다.


또한 비록 정규 대회 경기는 아니었지만,
졸업반때 KCC와 연습경기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옥범준이 이상민에게 계속 당하자,
경기 중반이후 정훈이 1번자리에서 뛴적이 있었어요.


근데 중국전에서 후웨이동과 맞상대도 해봤던 이상민이, 정훈을 상대로는 매우 힘들어했었어요.
팔다리 길고 사이드스탭이 좋은 정훈의 가드수비를 상대로 이상민이 공격시에도 전보다 힘들어했고,

정훈의 낮고 빠른 돌파(대학시절은 살아있었습니다. 그걸 바탕으로 유니버시아드 미국전에서 자유투를 11개 따내고(10개 성공) 19득점을 올렸었지요.)도 버거워했고 머리위로 패스 넣는 것도 제대로 막지 못했어요.


그리고 정훈이 프로에서 수비형 빅맨으로 크다가 망했는데, 일찌감치 대학때부터 수비형 빅맨으로 컷다 해도 장래성은 없었습니다. 탄력은 좋았지만 몸싸움에 약했어요. 프로에서는 자기보다 25센티 가까이 작은 김승현의 포스트 업에도 죽죽 쳐밀렸는걸요.


다만 정훈은 대학시부터 사이드스탭은 좋았고, 대학대표로 국제전에서 스윙맨으로 뛰거나, 프로데뷔시즌 막판 가드용병 수비형 슈팅가드로 뛸때 수비력은 빛이 낫습니다.

수비수로 쓰더라도 밖에서 안으로 치고들어오는 선수를 막는 용도로가 더 안성맞춤이었던(강점이 있던)선수였지요.

대학때에도 밖에서 안으로 치고 들어와 레이업 올리는 선수를 쫓아가서 블낙 찍는건 김주성 이상급이라고 했었어요. 그런데 안에서 버티는건 쥐약이었죠. 그래서 성대 박성근감독도 이한권과 골밑을 로테이션으로 막으며 훈이가 센터지만 내외곽을 넓게 뛰어다니게 했던 것이구요.
Updated at 2015-05-04 21:00:21

공감합니다. 단순히 전년도 드래프티들 사례 때문에 가드 경험이 전무한

선수가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내기 위해서 가드 전향을 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본문 내용에서도 가드 경험이 전무하다고는 적혀 있지 않으니까요.

동려를 살려주는 가드 같은 경험이 전무하지는 않지만 일천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이나 고교 경기 시합중에 잠깐식 그런 역할을 수행했다고 나오는데
이것은 가드로서의 역할 수행했다기 보다는 시야가 좋은 센터가 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잘 수행한것으로 보여집니다.

본문이나 댓글에서도 나와 있는 것처럼 큰 키에 반해 힘 보다는 스피드에
강점이 있는 선수이고 코트 범위 활동량 또한 넓고 많습니다. 
힘을 바탕으로한 포스터업 공격이 효율적으로 보이지않고 스피드를 활용한
페이스업이나 픽 플레이에 더 능해 보입니다. 혼자서 득점을 만들어 내는
능력 보다는 득점력이 뛰어났던 동료를 활용한 플레이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득점력이 뛰어난 동료들이 고교, 대학시절을 함께 했으니까
보다 동료들을 살려주는 패스를 선호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동료들을 살려주는 플레이는 고교, 대학 시절에도 그의 포지션이
장신 센터이면서 상대적으로 빠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큰 키를 이용한 더블팀 유도시 킥아웃 패스, 상대 센터를 끌고나와 공간 벌려주기, 
미스매치 발생시 엔트리 패스 넣어주기 등, 득점력이 좋은 동료들을 살려주는 
일반적인 센터가 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로 보입니다.
수비시에는 큰 키와 빠른 스피드로 전방위 헷지&리커버리, 블락, 트랩등
전형적인 키 크고 빠른 빅맨의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가드의 재능이라고 하기에는 그의 패스의 질은 스윙맨을 살려주는 것에 더 짙으며,
이것이 일반적인 가드와 뭐가 다르냐라고 반문한다면 그에게는 빅맨을 살려줄 수 있는
일반적인 가드의 패스의 질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국제대회에서 김주성과 뛰어본것 외에 본인이 아무추어 시절 센터와 동시출전해서
빅맨을 살려준 경험이 많았을까? 의구심이 듭니다. 왜 이렇게 어정쩡할까 했던 의구심이
본문을 통해서 확 풀리네요. 컨트롤 타워였구나..정훈..게다가 드리블, 외곽슛도 부족하고..
KBL은 득점의 대부분을 외국인 선수가 담당합니다. 대학 농구에서는 스윙맨이 담당할지
몰라도 KBL은 빅맨이 절대적이라고 봅니다.  

활동 반경이 넓고 빠르다고 해서 발빠른 상대 가드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은 일시적인
것이지 경기내내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이부분에서 국제대회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것도 추일승 감독의 포워드 농구에 정훈이
적합했던 타이밍적인 요소가 크다고 봅니다. 체력적 안배는 선수들이 풍부하기 때문에
전술적인 측면에서 일시적으로 맞은 것일 뿐이지 경기내내 혹은 시즌 내내 그렇게 해서
성공 가능성을 보기에는 표본수가 너무 적다고 봅니다.
김종규가 상대 가드에게 도움수비는 갈 수 있어도 전담 수비를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정훈도 빅맨 중에 빠른 수비수이고 시야가 좋은 컨트롤 타워 역할에 적합한 선수이지 
가드의 재능이 있는 선수는 아니라고 봅니다. 

감독의 감언이설에 선수가 꾀인거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감독이 정훈의 장점을 최대한 끌어냈다고 보이기도 합니다. 구력이짧고 웨이트가
빈약하기 때문에 공격에서 큰 기대 보다는 큰 키와 빠른 발을 최대한 활용한 동료
살리기에 최적화 시킨 것으로 보이고 더욱이 고교 시절 동료들과 감독까지 함께 대학에
간 것은 그에게 단점을 감추고 장점을 극대화 시킨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시절에 정훈 보다 키 큰 선수라고는 김주성, 송영진 외에는 별로 생각 나지를
않네요. 다른 대학에 갔으면 정말 센터 출신을 포인트 가드를 시켰을까 라는 의구심도 
듭니다. 

단지 그가 프로에서 성공하기에는 애매한 키에 빈약한 웨이트로 빅맨이 될 수 없었고
가드를 보기에는 빅맨을 살려주는 역할 부족, 기타 스킬들이 좀.. 저만의 생각일 뿐이지만
한국 농구 감독 탓만 했던 기존의 시선을 좀 다르게 볼 수 있는 본문 같아서 재밌는
글이었습니다. 


WR
1
2015-05-06 00:59:35

일단은 정훈이 송영진보다 조금 더 큽니다.KBL드래프트직전 맨발키측정에서 소수점 반올림을 하면, 정훈은 199cm, 송영진은 197cm입니다.

그리고 정훈이 이규섭, 송명진의 프로에서의 포지션 변경사례를 보고 가드를 원했던게 아니라니까요. 이규섭, 송영진이 프로에 데뷔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스스로 가드를 지향했던 선수였어요.

단편적이지만, 대학시절 정훈의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을 회상해보면,

김주성과 송영진의 중앙대시절 물론 대학부 최강자인건 잘 이실톄고, 특히 수비가 엄청났던 팀이었습니다.

특히 김주성과 송영진 황진원의 수비는 과히 동급 최강이었죠.

김주성이야 특별한 부연설명 없어도 될것 같고, 황진원도 몸 아프지 않을때 프로에서 돌파력과 수비력만큼은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됩니다.

송영진은 몸망가지기전 대학에서 흑인급 운동능력으로 유명했었늣데, 그것이 수비에서 빛을 발했지요.

넖은 수비활동반경과 짐승스런 반사신경은 어마무시해서 송영진 근처에 있는 선수들이 슛시도를 꺼려할 정도였죠. 송영진의 그러한 수비농럭으로 00년 동아시아 대회에서 공포의 후웨이동을 꽁꽁 틀어막기도 합니다.

암튼 정훈은 김주성 송영진 황진원 이 대학부 절대 최강 수비수세명의 트리플팀에 갇힌적이 있었는데 드리블과 스탭기술로 벗겨내고 기어이 레이업을 성공시킨적이 있어습니다. 그것도 한번이 안라 다른 경기의 유사한 상황(김주성 송영진 황진원의 트리플팀수비)에서 마찬가지로 뚫어버리죠.

직접 보지 않으몃 잘 와닿지 않는 법이라 그게 뭐 대술까하질지도 모르나, 같이 그 장면을 본 모 고수 논객분은 그 상황을 파훼하는건 역대최고의 테크니션 허재도 하기 힘든 걸 해냈다고 언급하셨고, 저 역시도 동감했던 바입니다.

정훈이 단 한번도 가드자리에서 뛰어보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역시나 가드로서 어울리지 않는 선수였었다는 확신을 더 하신건지도 모르겠는데요.

커리어 대부분을 빅맨으로 보나면서도 사실 빅맨 기본기가 좋은것도 아닙니다.

그럼 또 애초에 농구선수로서 키를 제외하곤 재능자쳬가 없었던 무능한 선수였을까요?

실례지만 "발빠른 상대 가드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은 일시적인 것이지 경기내내 그렇게 할 수는 없을것이다"란것도 그저 귀하의 넘겨짚기식의 잘 모르느 상태에서의 추정 아닌지요?

실제 팩트를 바탕으로 비교식으로 다시 말씀드립니다.

픽맨으로 오래 뛰었지만, 상대 포스트업 버티기 대처수비는, 왜소한 단신가드 김승현에게도 쭉쭉 밀려날 정도로 형편 없습니다.

그 키와 탄력으로 대학부에서도 포스트업을 제대로 쳐본적이 없엏구요. 페인트존에서 자리잡는 능력도 부족합니다.

반면, 일시적이고 단편적이라 말씀하신 상대가드나 스윙맨에 대한 수비는 오히려 그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그 적은 기회적 상황에서 여러번 훌륭한 수비를 보여줬습니다. NBA를 노리던 탈 아시아급 스윙맨으로 평가받던 선수나 프로에서도 국내 선수들이 제대로 수비하기 어려워했던 앤트완 홀 갇은 선수도 잘 수비해내었지요.

어쩌다 한번이 아니라, 다시한번 정리하자면, 좁은곳에서 버티기 수비등은 낙제점이지만,

원래 사이드 스탭이 매우 좋고, 밖에서 안으로 치고들어오는 선수에 대한 대처수비력은 매우 뛰어나습니다. 그건 대학부때 수시로 여러번 보여준 것이기도 하구요.

와곽슛이요? 물론 안정적 슛터는 아닙니다. 하지만 슛팅가드나 스윙맨이 무조건 외곽 전문슛터여야만 하는건 아니라 봅니다.

대학시절 정훈은 외곽 기복이 있었지만, 3점위치에 있을때 버려두고 오픈해두어야 할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반면 공격도,

좁은 페이트존 금방에 가둬버리면 답답해지는 선수고 오히려 내외곽을 자유롭게 넘나들게 할때 살아나는 선수였습니다.

사실 저도 정훈의 장신 가드 바라기이고, 정훈의 적정 포지션은 슛팅가드라고 오랫동안 주장했던 입장이었는데요.

일개 팬의 그저 주관적인 사견일 뿐이지만,

정훈을 명지고와 낙생고, 성균관대시절 등부터 오랫동안 고스란히 지켜보며 응원해온 입장에서 감히 말씅드리면,

회복불능으로 망가지기전,
적어도 대학시절 정훈은,

장신 슛팅가드, 장신 스윙맨의 자질이 충분했었지만, 그 기회를 제대로 부여받지 못했던 선수였다고 개인적으론 단언하는 바입니다.

Updated at 2015-05-06 22:38:56

정훈의 낙생고시절부터 그의 팬이었던 저로서는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선수는 그 전의 포텐을 보여주던 시절까지 싸그리
평가절하당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정훈을 바라보는
현재의 시각 역시 그러하다고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정훈에게 가장 적합한 포지션이 3번이고
피펜 같은 3번이 될거라고 기대를 했었습니다만...
어쨌든 신체적 능력과 재능의 포텐을 터뜨리기에는 멘탈이 너무 약했고
대학 입학부터 환경적인 부분도 너무 꼬여버렸죠.
진짜 정훈의 고등학교/대학교 시절을 제대로 보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평가에 단정을 짓지 않았으면 하는게 그의 오랜 팬으로서
마지막 바람입니다.
현주엽과 더불어 시대를 너무 빨리 타고난 선수라고 봅니다.
10년만 늦게 태어났으면 지금처럼 망가지지 않았을거 같다가도
그의 멘탈을 생각하면 재능을 압도하는(나쁜 쪽으로) 역대급 멘탈이라고
생각됩니다.
혼자만의 생각인데 윤호영과 정훈이 방성윤의 멘탈을 가졌다면
정말 한국농구를 이끄는 쌍두마차가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무튼 님 덕분에 간만에 정훈을 추억할 수 있었네요...
WR
Updated at 2015-05-08 06:42:13

정말..
정훈, 류종현, 윤호영, 김종규 등 낙생고를 이끈 선수들의 특징인건지...

김종규도 206cm 의 맨발키에 기동력과 탄력 등을 감안하면 아직 아쉬운 점이 많고,

귀하께서 정훈의 낙생고 성대시절부터 지켜볼 정도의 국내 학생부에 관심 있으션던 분이면, 잘 이실겁니다. 고등부때 류종현이 얼마나 괴물이었는지를...

2015-05-04 02:04:31

정훈 본인은 스스로의 커리어에 어느 정도의 아쉬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미어오는 그런 이름입니다.
2015-05-04 11:30:05

좋은글 잘봤습니다.

저도 한때 정훈선수에게 많은 기대를 했는데 참 아쉽습니다.
2015-05-09 02:43:20

정훈이 장성호보단 어리지 않나요?

WR
2015-05-11 14:55:51

아, 친구사이가 아니라 같은 부에서 같이 운동했던 선후배사이로 봐야죠..;; 지적 감사드립니다.

Updated at 2015-05-09 03:41:46

서대문 청소년 수련관에서 농구강의를 열고 계십니다. 오랜 팬이시라면 한번 찾아가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2015-05-09 10:55:13

로망과 환상을 품게해주는 타고난 신체조건에 비해 기량자체는 그에 미치지 못했던 선수
그래도 트리플더블도 한번하고 준수한 활약을 보여준적도 있었습니다.(?)

WR
2015-05-11 14:54:37

그 트리플더블기록은 사실 타이틀 만들어주기를 위한 속된말로 국내농구인들에게 영원히 쪽팔릴 짜고치기담합경기에서 나온 기록이라,


오래토록 정훈을 지켜보고 잘되었으면 하고 바라왔던 팬이라면 팬 입자에서도 사실 인정해주고 싶지 않은 기록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그 경기에서 문경은의 3점슛 22개 기록(66득점) 및, 앨벗 화이트, 김주성, 정훈 등 NBA에서도 유래없는 한경기내에 세개의 트리플더블이 기록된 경기였지요.(같은 날 같은 시간 모비스-LG 경기에서는 역시 사전 담합으로 우지원의 70득점 기록이 억지로 만들어지기도 했지요.)

상대적으로 정훈은 저 억지 담합경기와 관련된 비난의 대상에서 좀 빗겨간듯 하지만, 또한 기록상으론 트리플더블을 찍고도 아무 조명을 받지도 못했지요. 국내 농구계의 흑역사 중 으뜸인 경우인지라...
2015-05-12 11:29:48

알고있습니다. 실시간으로 그경기를 보며 황당해 했던 1인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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