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근 은퇴 발표를 보면서... (장문 주의)

꽤 오래전 얘기이다.. 내가 응원하는 농구팀 모비스에 감독이 최희암으로 바뀌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미 허재가 정인교로 바뀐 상태였는데, 강동희가 오성식으로 김영만은 우지원으로 바꾸는 등 대대적 개편에 들어갔다. 이후에 신인 1순위 김동우도 들어왔지만 예전 선수들의 빈 자리를 채우기엔 조금 벅찼고, 그렇게 내가 응원하던 팀이 전력은 둘째치고 정체성에서 혼란이 생겨가고 있을 무렵, 감독이 다시 바뀌었고 TV에서 이번 시즌도 시작되었다며 모비스 베스트5라고 선수 소개를 하는데 처음 보는 선수가 눈에 띄었다.

양.동.근

신인 1순위로 모비스에 들어왔는데, 이 선수의 눈에 띄는 플레이가 있었다. 포인트가드인데 패스를 잘 안 하고 스크린 타고 미들슛 풀업점퍼를 자주 한다는 점. 근데 그 슛이 정말 정확했다. 그 상황에서 쏘는 슛은 정말 다 들어갔고, 어느 순간부터 경기가 접전이면 양동근의 스크린 타고 슛 쏘는 플레이가 나왔으면 하는 기대를 하게 되고, 또 그렇게 해 승리를 가져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고 이후에 좋은 동료들이 하나둘씩 모이더니 우승을 한번 하고. 플레이오프는 꾸준히 올라가면서 가끔 우승을 또 하고. 주춤하는가 싶었는데 팀을 재정비해 우승을 또 하고. 그렇게 15년 이상 팀을 꾸리면서, 어느새 모비스 걱정이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란 말이 나올정도로 모비스는 농구 명가가 되어 있었다. 그 명가의 시작이 바로 양동근의 입단 후에 이뤄진 것이다.


그 양동근이 며칠 전에 은퇴 발표를 했다.. 요 며칠간은 할 일을 하면서도 중간중간 뭔가 좀 허한 감정이 올라왔다. 15년 이상 내 일상에서 자연스레 같이 한 좋은 기억들이, 이제는 끝을 향해 간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선수들이 세대교체되고 혹은 전력도 좋아져 다시 강팀으로 거듭날수는 있다. 근데 그것이 좋은 기억이 계속 이어진다기보다는, 한번 종료되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느낌? 유재학 감독도 양동근만큼이나 팀에 오래 있었는데, 만약 감독도 은퇴하거나 나중에(길지도 않다..) 함지훈마저 은퇴하면 이런 느낌은 더 확실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랜차이즈 선수와 감독이 있다는건 팀의 정체성이 뚜렷하고 귀한 케이스라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끝을 향해 가니까 마음이 허해지는 후유증도 같이 생겨져 버리는것 같다.(그리고 마냥 좋았던 나의 어렸을때와 같이 한 오랜 기억들이라, 더 아련하게 느껴지는 것일수도 있다)

그리고 그동안 쭉 농구 경기는 TV나 모바일 중계로만 보는것에 익숙했고 만족해 왔었는데, 올해는 원정 경기라도 직관을 한번 가보자는 마음이 생겼었다. 근데 뭐가 그리 바쁜 척을 했는지 수도권 팀과 하는 원정경기 일정만 확인하고, 예매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지나다 코로나 때문에 시즌이 조기종료 되었고, 이후에 양동근은 은퇴를 발표했다. 이제는 양동근의 플레이를 경기장에서 직접 볼 기회는 없는 것이다. 직관 생각을 계속 안 했으면 모를까, 이제 한번 직관 가볼까 생각이 들은 찰나 그 기회를 놓쳐서 후회와 아쉬움이 더한것 같다..

그래봐야 공놀이고 취미이고 다들 내 할 일에 신경쓰기도 벅찬데, 이렇게 시간을 꽤 들여 장문의 글을 쓰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그만큼 양동근의 은퇴가 아쉽고, 내가 살아오면서 생긴 좋은 기억에서 모비스 경기를 오랫동안 본 것이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것 같다. 이제는 아쉬움보단 양동근의 제2의 인생을 응원하고, 예전의 좋은 기억들은 앞으로도 쭉 오래 가기를 바라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