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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서장훈 왕즈즈 대결 양상이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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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3 21:13:33

2002아시안게임에서 야오밍과 좋은 승부를 했던 서장훈인데 왕즈즈하고는 어땠나요? 경기를 본적이 있는데 밀린거 같다는 기억이 있는데 구체적인 기억이 앖어서 여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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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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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3 22:35:53

확실히 밀렸죠. 사이즈와 힘은 비슷해도 왕즈즈는 서장훈이 따라갈 수 없는 스피드와 움직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서장훈과의 매치업에서 주로 페이스 업으로 풀어갔던 걸로 기억하는데 스핀 무브에 번번히 득점을 주곤 했었습니다. 센터보단 포워드에 가까운 움직임을 갖고 있었는데, 서장훈보단 확실히 한수위의 기량을 갖고 있었고 야오밍과 멍크 베티에가 나오기 전까지 중국 인사이드를 꿰차고 있었던 선수였습니다. 

비록 벤치만 달구다 끝났다지만 NBA에 몇년 몸담았던 게 이유가 다 있었죠!  

1
2020-03-23 23:10:33

맞습니다. 서장훈이 막을 수가 없는 선수였어요. 반면 왕즈즈는 서장훈을 막을 수 있었구요.

Updated at 2020-03-24 14:09:32

간헐적인 골밑슛과 미들샷을 제외하면  서장훈은 왕즈즈에게 할 수 있는게 없었죠. 반면 왕즈즈는 자신이 갖고 있는 걸 다 풀어낼 수 있었고... 심지어 크로스오버로 제껴서 메이드하는 걸 본적도 있었습니다.

1
2020-03-23 23:57:41

아직도 기억에 남는게...

그때 당시 서장훈이 힘으로 포스트를 치고 턴어라운드가 아니라 조금 유연한 느낌으러 턴어라운드 슛을 던질때였어요.

부드럽게 포스트를 치고 턴어라운드를 던졌는데 왕쯔지가 아주 여유있게 떡블락을 했어요...

그렇게 그경기에 똑같은 떡블락을 두개를 하더라구요.

속으로 저 중국놈 뭐지 대단한 놈이네 키큰 센터가 엄청 빠르네 생각하고 지나갔는데...

좀 지나고 주말에 티비를 켰는데 댈러스 경기를 하는거예요 왕즈지가 나왔는데 세상에 그런 느림보도 없더라구요.

그때 느바는 괴물들만 가는구나 싶었습니다.

왕즈찌보다 멍크베이에가 더 느바에선 비볐던걸로 기억합니다.

1
2020-03-24 05:21:05

멍크 배터(3시즌)보다 왕즈즈(5시즌)가 NBA에서 더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전 경기수도 137 vs 46으로 비교가 안되구요.

둘 다 엄청나게 느렸지만 멍크 배터는 몸뚱이밖에 없었고, 왕즈즈는 외곽슛이 있었죠.

2
2020-03-24 00:50:29

서장훈보다 키가 7~8cm 가량 더 크고 스킬도 더 좋으니 상대가 될 수 없었죠.

왕즈즈도 하필 노비츠키가 있는 댈러스로 드래프트가 되고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미국으로 가서

팀에서도 키울 상황이 아니였는데 젊은 나이에 갔으면 더 좋은 활약을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 시절 장신에 외각슛 능력도 워낙 좋았는데 아쉽네요.

2020-03-24 07:53:27

서장훈이 상대하기 어려운게 신장도 열세고 슛레인지도 길어서 마킹도 힘들고 상성이 영 안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2
2020-03-24 08:13:21

 왕즈즈가 한수위의 기량이었죠... 

 nba에서 콜한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2020-03-24 09:02:23

앙즈즈는 오히려 김주성을 까다로워 했죠. 서장훈은 공수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기억이

4
2020-03-24 10:03:57

2001년 동아시안 게임때 왕즈즈가 김주성에게 고전했던 적이 있죠.중국의 최정예 국대에 맞서 당시 우리나라는 상무+대학선발로 대표팀을 구성했는데 우리가 100-97로 이기는 이변을 일으켰던...우리나라는 김주성이 28득점,7리바운드로 골밑에서 활약한 반면 중국은 야오밍이 초반 파울 트러블로 경기를 제대로 뛰지 못했고 왕즈즈는 38득점을 올렸지만 별로 의욕이 없었는지 주로 외곽에서 미들 점퍼만 던져대서 골밑 장악력이 떨어졌습니다.그외에 황성인,손규완의 3점이 터지고 만년 유망주 정훈이 중국의 간판 슛터 후웨이동을 봉쇄하면서 후반에만 13점을 올렸으며 김동우도 김주성을 골밑에서 잘 도와주면서 이변을 일으킨 경기였습니다.다만 이미 중국과의 경기 전에 1패를 당한 상태였고 중국전 이후 카자흐스탄에게 대패하면서 예선에서 광탈합니다.

 

하여튼 왕즈즈는 이후 nba에 집중하고 싶다면서 대표팀 차출을 거부(?)했다가 자국에서 거의 역적으로 몰리며 한동안 중국 대표로 뛰지 못했다가 nba커리어가 끝난 이후 2006 도하 아시안게임부터 중국 대표로 컴백해서 김주성과는 2006,2010아시안게임과 아시아 선수권에서 여러번 붙는데 nba에서의 적응을 위해 10kg이상 몸을 불리면서 과거의 스피드+운동능력은 많이 사라졌지만 정확한 슛과 농구센스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니 정말 좋은 선수더군요.그리고 2001년과는 달리 김주성보단 이승준의 스피드와 운동능력에 좀 당황해하던 모습도 있었습니다. 

Updated at 2020-03-24 09:13:14

야오밍은 중국 내에서도 손 꼽히는 선수였지만 nba에서 더욱 성장한 케이스입니다. nba에 진출하기 전까지는 야오밍은 왕즈즈에게 밀렸었습니다. 그 전 중국 내에서의 상대 전적은 왕즈즈가 압도적이였으니 왕즈츠도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 알 수 있죠. 서장훈도 대단한 선수였지만 맞붙었던 경기 내용으로나 선수로서나 비교할 수 없다고 봐요.

2020-03-24 09:48:06

야오밍이 nba진출하기 직전인 중국 cba 01-02시즌 정규리그 평득 32점 19리바 4.5블락 야투율 70%찍고 파이널에서 당시 중국 cba 최강팀인 빠이 로케츠 상대로 파이널 평균 40-20을 찍으면서 소속팀 상하이 샤크스를 우승으로 이끈 시점에선 이미 야오밍이 왕즈즈를 능가했다고 봅니다.왕즈즈도 cba최고였지만 야오밍의 01-02시즌정도의 도미네이트함은 아니었거든요.

 

왕즈즈가 nba에 가기 직전인 00-01시즌에 평균 25득점 11리바를 기록하면서 소속팀 우승으로 이끌고 씨엠,파엠 휩쓸었을 때도 야오밍은 평균 27점 19리바 5블락을 찍으면서 시즌 스탯으로는 밀리지 않았는데 맞대결에서 차이가 났던 것은 3살 어린 야오밍이 한창 성장하던 시점이었다는 것과 왕즈즈의 소속팀이었던 빠이 로케츠와 야오밍의 소속팀이었던 상하이 샤크스의 전력 차이도 감안을 해야할겁니다.당시 빠이 로케츠는 우리나라 농구로 비유하자면 농대 시절의 기아자동차같은 압도적인 최강팀이었으니까요.

2020-03-24 10:06:26

혹시 빠이 로케츠에 왕즈즈 대신 다른 확연한 전력 보강이 있었는지요? nba 진출 전의 중국 내에서의 야오밍은 왕즈즈에 비해 어렸고, 왕즈즈가 nba에 진출 한 뒤 어마어마한 실력을 보이며 상하이 샤크스의 우승을 이끌어내는 대단한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어찌보면 왕즈즈가 빠진 빠이 로케츠를 이겼다고도 봤거든요. 그리고 nba에 진출 한 뒤 초기에 잠시 해메다가 리그에 적응하고 또 성장했다고 생각했어요.

1
Updated at 2020-03-24 10:08:02

당시 중국 국대의 핵심 선수들은 죄다 빠이 로케츠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90년대 초반 기아자동차처럼 빠이 로케츠 소속으로 중국 국대 베스트5 구성이 가능했으니까요.

2020-03-24 10:08:55

아하, 왕즈즈를 빼고도 화려한 라인업이었고, 왕즈즈가 있었을 당시는 슈퍼팀이었던거군요. 거기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1
Updated at 2020-03-24 12:45:39

왕즈즈가 nba에 진출한 이후인 cba 01-02시즌 정규리그에서도 야오밍의 상하이 샤크스가 왕즈즈 없는 빠이 로케츠한테 처참하게 발렸으니까요.

 

야오밍을 더블팀,트리플팀으로 막아내면서 듀란트가 합류한 골스처럼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점수차를 벌려버리고 후반에 야오밍이 방전되면서 그대로 게임 오버였던 것이 대체로 두 팀의 경기 양상이었습니다.(당시 제가 중국에 있을 때라 cba경기를 볼 기회가 여러번 있었습니다.)

 

파이널에서 두 팀이 붙을 때도 개인적으로는 워낙 정규리그때 격차가 커보여서 상하이가 빠이한테 안될거라고 봤는데 그야말로 야오밍이 무쌍을 찍어버렸습니다.

2
Updated at 2020-03-24 15:51:38

왕즈즈와 서장훈이 처음 만난 건 96년 u-22아시아영맨선수권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우리나라가 결승에서 중국을 이기고 우승을 하는 이변을 일으켰었죠.대학 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이라 고려대 박한 감독이 감독을 맡고 연세대 최희암 감독과 경희대 최부영 감독이 코칭스태프로 합류했었습니다.

 

당시 결승전에서 중국의 주전 센터는 멩크 바티어였습니다.굉장히 힘이 좋으면서도 비주얼과는 다르게 꽤나 농구센스도 좋고 3점도 가능할 정도로 슛도 정확한 선수였는데 단점은 굉장히 느리다는 것이었죠. 매치업 상대였던 서장훈은 당시만 해도 김주성급의 스피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달릴 수 있는 런닝센터였고 수비에선 멩크 바티어의 파워를 잘 버텨내면서 공격에선  멩크의 단점인 스피드를 적극 공략하면서 경기를 잘 풀어나갔습니다.(그래서 이후에도 서장훈은 멩크 베티어한테는 상당한 자신감을 보였고 나중에 멩크가 nba간다는 얘기 듣고 그정도 레벨의 선수도 nba에 갈 수 있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죠.)

 

하여튼 경기가 우리의 승리쪽으로 많이 기울었을 쯤에 중국에서 멩크를 빼고 왠 키크고 삐쩍 마른 후보 센터를 경기에 내보내길래 가비지용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이 선수가 서장훈을 상대로 쉽게 쉽게 득점을 하더군요.그래서 저 선수가 왜 스타팅으로 나오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는데(물론 이미 우리의 승리가 확정적인 상황이라 서장훈의 경기 집중력이 떨어졌던 점도 감안해야죠.) 나중에 알고보니 그 선수가 왕즈즈였습니다.

 

하여튼 왕즈즈는 1년후 중국 국대의 주전 센터(반대로 멩크가 백업)로 97아시아선수권 4강에서 서장훈,현주엽 없이 전희철과 정재근이 골밑을 지키던 우리나라에게 다시 한번 86-72로  패배하는 쓴맛을 본 후 98방콕아시안게임에서 그야말로 서장훈을 압도하며 중국의 우승을 이끕니다.(경기는 중국이 112-92로 대승)

 

스탯만 따지면 왕즈즈는 16득점,9리바운드,4블록이고 서장훈은 20득점,7리바운드여서 별 차이가 없어보이지만 분명 둘의 경기력 차이는 뚜렷했습니다.당시 서장훈은 무리하게 공격하다가 여러번 왕즈즈에게 찍히는 모습을 보여 혼자 농구한다고 농구팬들에게 엄청 욕을 먹기도 했는데 서장훈외에 우리의 공격을 이끌었어야할 강동희,이상민,문경은,현주엽 모두 부진했고 점수차가 벌어지면서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의욕도 없는 모습으로 일관한 마당에 그나마 서장훈만이 거의 유일하게 적극적으로 공격을 시도하면서 점수차를 줄여보려고 했던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비판을 받아야했던 건 다른 선수들이라고 개인적으로는 보네요.

 

그리고 1년 후 99년 아시아선수권 결승에서 다시 붙었는데 이때는 1년전만큼 당하지는 않았습니다.우리나라는 24초를 거의 다 사용하는 극단적인 느린 템포로 경기를 하면서 최대한 적게 실점하는 방향으로 경기를 풀어나갔는데 서장훈이 왕즈즈 상대로 골밑에서 꽤나 잘 버텨줬죠. 경기는 우리가 4점차까지 따라붙은 상황에서 경기를 잘 이끌어나갔던 이상민이 라인크로스 턴오버를 범하면서 공격권이 넘어가면서 경기 분위기가 바뀌었고 결국 후반 막판 후웨이동에게 소나기 3점을 얻어맞으며서 점수차가 벌어졌고 63-45로 18점차의 패배를 당합니다.(후웨이동은 대회 mvp까지 거머쥡니다.그리고 야오밍이 바로 이 대회를 통해서 중국 성인 국대 데뷔를 했고 우리와의 결승에도 나왔는데 서장훈에게 무득점으로 막혔죠.다만 드라이브인을 하던 허재를 블록해서 강한 인상을 남기긴 했습니다.)

 

서장훈의 당시 스탯은 9득점,6리바운드였는데 그외에도 현주엽(6득점,5리바운드),조성원(5득점),허재(2득점) 모두 부진했고 체력 저하로 출전 시간이 적었던 강동희(10득점)가 팀내 최다 득점자일정도로 우리나라 선수들 모두 극심한 슛팅 난조에 시달렸기 때문에 1년전과는 달리 서장훈에게 패배의 책임을 씌우는 여론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이후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8강에서 만난 것이 서장훈과 왕즈즈의 마지막 경기였는데 이때는 서장훈이 하승진의 백업 센터로 출전 시간이 길지 않아서 큰 의미는 없었습니다.(왕즈즈는 20분 채 뛰지 않았는데 워낙 슛이 좋아서 13득점을 기록했습니다.)정확한 스코어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중국이 13점차 정도로 이겼죠.

 

사실 이 경기는 서장훈과 왕즈즈의 매치업보단 하승진과 이지엔리엔의 매치업이 더 관심을 가졌던 경기입니다.(하승진은 16득점,16리바운드를 기록했고 이지엔리엔은 18득점,14리바운드를 기록하면서 거의 대등했습니다.둘이 덩크를 한번씩 주고받으면서 나름 꽤 치열했죠.)

WR
2020-03-24 14:33:59

모두 답변 감사드립니다! 역시 매니아 !!!

2020-03-27 18:46:18

2002 아시안게임때 서장훈과 야오밍 대결로 많이들 기억하는데

야오밍 김주성 매치업 또한 많았고 오히려 골밑에서 더 좋은 모습보여준게 김주성입니다.

부산아시안게임 중국과의 경기에서 제일 많은 득점을 해준것도 김주성(21점)이구요. 

서장훈 야오밍의 대결이아니라 

김주성 야오밍의 골밑대결이라고 봐도 될정도였습니다. 

 

서장훈+김주성 대 야오밍 느낌이였죠. 기억에 남는 장면중 하나가 서장훈이 몸으로 버티는 수비해주고 야오밍이 슛할때 김주성이 블럭슛하던게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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