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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제갈공명" 미스터리 유비를 선택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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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4 22: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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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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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5-24 22:46:36

아무리 인권이란 개념에 대해 미개했던 시대라도 학살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나빴죠. 확실히 설득력있네요!

그나저나 서주대학살은 다시생각해보니 무섭습니다.. 백기,항우에 맞먹는 임펙트라 생각합니다.

13
Updated at 2019-05-25 00:30:24

조조는 시인이다 이 말인즉슨 조조는 뛰어난 지략가인 동시에 감정적인 측면이 강함을 뜻합니다 어릴 적 본 서주의 대학살이 조조에겐 가지 않겠다라는 강한 동기로 작용 했을지라도 영특한 제갈공명이 이 부분 하나로 조조를 제외하진 않았을 겁니다 감성이 풍부하다는 말은 기준이 쉽게 변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어제까지 최측근이었던 사람도 한순간에 내처질 수 있는 상황에 이를 수 있습니다 조조 말년의 순욱 순유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공명은 이 같은 조조의 성격도 염두에 두고 여러모로 판단한 후에 조조를 주군 후보자 명단에게 삭제했을 겁니다
그럼 왜 유비인가? 한왕조의 부흥을 위해? 제갈씨가 대대로 한왕조의 녹을 먹었던 충신 가문도 아니고 십상시로 부패해지고 무능한 한왕조를 재건한다 이성적인 공명에게 맞지 않은 명분입니다 유비는 연의에서 표현되었던 그저 착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세력도 없이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여기저기 위탁하는 생활을 10년 넘게 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수읽기에 능하고 어느 수준 이상의 지략도 갖추면서도 속내를 들어내지 않는 능구렁이 같은 면모도 보인 것이 유비입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터랑 곁에는 용맹한 관우 장비 조운은 있는데 한단계 업글을 해 줄 참모진은 보이지 않는다? 그건 유비 본인 자신이 지략이 있다고 판단한 것은 아닌가? 그러면 그 자리에 내가 가면 어떨까? 공명도 유비의 인품 성격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었을 것이고 여러 주군 후보군 중에 한 명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2
2019-05-25 02:11:38

대부분의 의견에 동의하며 유비가 난세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로는 지모와 겸비해 무력이 있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즉 제갈량의 삼고초려는 집까지 찾아가서 세번 맞게 된것이고 일종의 스톡홀름 신드롬 이었던 것이죠

13
Updated at 2019-05-25 00:22:11

그리고 때마침 형주에 있던 유비도 융중의 와룡선생 제갈공명의 명성을 듣고 그가 참모진으로 가능한 지 알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같이 두 사람 모두 한번 만나볼 가치가 있다라는 공통된 생각을 갖게 되었고 그 유명한 삼고초려라는 예(연의에서 묘사된 유비의 일방적인 모시기가 아닌)를 갖추고 만남이 성사된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공명은 유비의 사람 됨됨이를 직접 평가한 후 자신이 오랫동안 품어왔던 대의(백성의 안정)와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유비에게 맞는 삼분의 계를 역설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유비는 제갈공명은 소문 이상의 엄청난 인재다 그를 놓쳐서는 절대 안된다 판단하였을 것입니다 우직한 관우 용맹한 장비나 다른 가신들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던 숨은 속내를 터놓고 말한 수 있는 사람을 드디어 만났다 가슴 한 편에 꽉막힌 것이 뚫린 그런 느낌이었을 겁니다 그 뒤는 다들 아시겠지만 공명은 유비의 수하로 들어가고 수어지교라는 사자성어가 나올 정도로 유비는 공명을 끝까지 아꼈습니다
제갈공명은 어린 시절을 난세를 겪으며 통일을 통한 백성의 안정을 자신의 목표를 삼아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파트너(나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어줄 유능한 주군)을 오랫동안 물색하여 왔고 그 후보군 중에 하나였던 유비와의 만남의 자리에서 유비의 인품 지성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가졌고 그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의 목표 달성에는 완벽하진 않았지만 유비의 절대적 지지 아래 촉을 기반으로 한 삼분의 계를 실현시켰고 그의 재능을 정치 내정 전투 등 다방면에서 맘껏 펼치게 되었습니다 유비 또한 공명이 자신을 주군으로 선택해 준 것을 매우 고마워하였고 영광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초창기 관우 장비 불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형주 익주를 잇는 오랜 시기 동안에도 공명을 승상으로 하여 안팎의 여러 일들을 맡기게 됩니다 후에 관우 장비 죽음으로 인해 돌이킬 수없는 감정으로 오를 정벌하러 갈 때조차 정벌을 반대하였던 공명에게 사예교위까지 겸임하도록 할 정도로 공명을 처음과 같이 신뢰하였습니다 공명 역시 유비 사후 여러모로 됨됨이가 한참 모자란 유선을 죽을 때까지 모셔 유비에 대한 신의를 지켰습니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다던 출사표에서 제갈공명의 선왕(유비)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잘 엿볼 수 있습니다
가끔씩 내 모든 것 심지어 가족조차도 믿고 맡길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절실히 할 때가 있습니다 유비와 공명은 의형제는 아니었지만 그 관계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나라 운명을 좌지우지할 대소사를 믿고 맡겼다는 점에서 얼마나 서로를 신뢰하고 믿었을까하는 생각에 둘 사이의 관계가 정말 너무나 부러워집니다 그리고 관우 장비 조운 손건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떠나지 않고 끝까지 남아 충성하는 모습에서 유비의 인품은 우리가 아는 것 그 이상 무엇이 있었을까 매우 궁금하기도 합니다
두서없이 쓴 글이 길어졌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WR
1
2019-05-24 23:38:12

읽기전 정성에 놀라 추천누릅니다

1
2019-05-25 00:07:01

고맙습니다 ㅎㅎ 엔떠니님

1
2019-05-25 01:04:08

엄청난 글이네요. 삼국지 다시 읽고 싶어지는 댓글입니다.

1
Updated at 2019-05-25 01:11:13

진짜는 맞아서 아니던가요
삼고초려가 사실 세 번 찾아가서 팬거 아니던가요
관우, 장비도 유비한테 쳐맞고 의형제 맺은거라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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