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재정에 대한 생각
1. 선진국 레벨에서, 의료 보험 체제는 거칠게 나누어 보면 3케이스로 나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미국 : 사보험 중심이며, 공보험은 사실상 유명무실함.
2)영국 등 유럽 : 비효율적이지만 저렴한 공공의료/공보험 체제와 서비스질은 좋으나 비싼 개인병원/사보험의 이원 체제
3)일본 : 민간보험이 잘 발달하지 않았고, 전국민을 건강보험체계에 묶어놓고 의사들은 국가로부터 수가를 받는 체계
이 중 한국은 3)번 일본 체계를 모방하여 전국민 건강보험 체계를 수립했고 점차 보장범위를 넓히는 동시에 일원화시켜 2000년 전후 완성시킨 것 같습니다. 이후 경제발전, 전산화와 맞물려 '싸고 빠른데 서비스질도 좋은 한국 의료'가 자리잡았죠.
한 20년 정도는 잘 돌아간 것 같습니다만 대충 10여 년전부터 보험에서 비보험영역으로 의사들의 이동이 가시화되면서 필수 의료인력의 재생산이 어려움을 겪는 한편, 의사들의 수입은 크게 오르면서 타 직업과의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죠.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라는 특성 때문에 주어진 인허가 면허를 이용해 비보험영역(미용, 통증) 으로 지대 수입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분명 논란이 될 부분은 있습니다. 의사들 입장에서야 처음부터 국가 재정을 위해 저수가로 묶어놓고 비보험으로 수입을 올리라고 한 것 아니냐고 항변할 수 있지만.
2. 일본의 수가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몇 가지 차이가 있고 이것이 일본에 비해 한국의 필수 의료 붕괴를 가속화하고 있는 원인인 듯합니다.
1) 대학 교수들이 후생성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개원가까지 장악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개원가가 더 로비력이 강하다.
2) 일본과 달리 혼합진료가 허용된다.
3) 미용 의료로 대표되는 비보험 시장이 매우 거대하다.
4) 의료계 외부적으로 보면, 일본은 상당한 규모의 국가 부채를 감수하고 있는 반면, 한국 기재부는 부채에 대해 보수적이다. 보건복지부가 재정 확대를 원해도 기재부가 제지할 가능성이 크다.
일단 4)번은 한국 재정 정책 전체의 이슈로 너무 큰 문제이고 위의 1), 2), 3)만을 놓고 보면 각각 아래와 같은 문제들을 가져오게 됩니다.
1) 개원의에게 주어지는 수가가 크고 환자의 자기 부담율이 낮다(단순화시켜서 보면, 수가 10000 환자 자기 부담 5000이 아니라 수가 14000 환자 자기부담 1000이어서 개원의가 단골 수요를 확보하기 용이한 구조로 되어있다) 이는 대병, 종병 등에서 행해지는 필수 의료에 분배되는 수가가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효과를 가져오며, 낮은 자기 부담율 때문에 환자의 모럴 헤저드를 유발한다(불필요한 잦은 병원 방문 etc)
2)혼혈 진료 허용은 초기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2000년대 후반 이후 실손 보험이 발달하면서 의사로 하여금 건강 보험 수가 뿐만이 아닌 민간보험에서 수익을 얻어내기 위해 불필요한 '처치'를 남발할 경제적 유인을 제공한다(도수치료 남발, 생내장 수술 등) 즉 의사의 모럴 헤저드를 유발한다.
3) 성형, 피부, 라식 등 비보험 시장이 매우 거대하며 특히 성형과 피부는 매우 거대하다. 최근에는 고령화로 통증관리 시장이 성장하고 있고 고령화 관련 시장은 계속 성장할 전망이다.
의사 입장에서는 정해진 수가만 받을 수 있는 건강보험 시장과 달리 민간 시장에서 새로운 의료 수요에 대응한 술기를 개발하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므로 보험 시장에서 비보험 시장으로 탈출할 강력한 유인을 제공한다. 소위 의사에 의한 수요의 창출이 가장 심하게 일어나는 곳.(안 좋은 의미에서..)
위의 요인들로 인해 의사들이 건강보험 진료에서 민간 보험/비보험 진료로 대거 이동한다, 즉 대학병원에서 전문의-펠로우 수련을 거쳐 교수를 지망하던 전통적 코스에서 이탈하여 개원가로 대거 탈출하게 되고, 새로 진입할 플레이어들은 처음부터 개원대박을 꿈꾸며 개원에 유리한 과만 지망하게 됩니다.
한국 특유의 외모지상주의와 맞물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의료비 지출만 보면 한국인들은 암보다 대머리를 더 무서워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죠. 생물학적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사회적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 큰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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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용을 제외한 개원가들은 우리나라 의료 접근성을 세계 최고로 만들어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개원의 비율이 타국에 비해 높은 편인데 그게 바로 우리나라가 맨날 인용되는 oced 평균보다 적은 의사 수에도 불구하고 의사를 만나기 훨씬 쉬운 이유입니다.
의사 많은 타 국가에서는 애기가 열 나도 최소 3일은 집에서 해열제 먹고 버티다가 그래도 정 안되면 병원 예약하고 갈 때, 저희는 그냥 동네 소아과 당일에 가서 최대 몇시간 기다리면 누구나 진료받을 수 있는 시스템은 개원의 비율이 높기 때문이죠.